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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공검제-450화 (449/508)

450. 슬슬 돌아가자

남궁천은 쓰러진 백묘를 침상으로 옮긴 후 다시 혈을 점해서 앉은 자세로 고정시켰다.

그 뒤에 앉은 남궁천이 손을 뻗어 추궁과혈을 시작했다.

진기를 주입해서 백묘의 몸을 살펴보니 혈맥이 제멋대로 뒤엉켜서 인당혈에 많은 기운이 고인 상태였다.

이대로면 확실히 뇌에 이상이 생겨서 정신이 망가지고 말 듯했다.

‘너무 망가지게 두면 또 안 되니까.’

남궁천은 백묘의 몸에 천마신기를 불어넣어 인당혈에 맺힌 기운을 살살 건드려 보았다.

역시나 인당혈에 고인 기운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다소 무리를 한다면 꽉 막힌 혈맥을 한 방에 뚫어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뇌가 망가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하면 창벽공은 어떨까?

남궁천이 천마신기를 거두어들이고는 다시 창벽공을 운용했다. 창벽공을 운기하면 천뢰기가 조금 변형되면서 창벽기가 만들어진다.

솨아아아아!

남궁천의 손바닥을 통해 뻗어나간 창벽기가 백묘의 전신 혈맥을 어루만지듯 퍼져 나갔다.

마침내 인당혈에 다다른 창벽기가 똘똘 뭉친 마기를 녹여 버리듯 어루만진다.

슈르르르르.

백묘의 이마에서 아지랑이처럼 기운이 피어오른다.

막혔던 혈맥이 녹으면서 점점 흐름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슈우우우우우!

붉어졌던 백묘의 얼굴이 차츰 평온해지면서 전신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쉬운데?’

남궁천은 창벽공의 포용력에 다시 한번 놀랐다.

사실 안 되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도전한 것이다.

백묘가 미치광이가 되어도 아쉬울 건 없었다.

다만 써먹을 수 있으면 최대한 써먹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운 좋게 수련도 되고 장기 말 하나 얻은 셈도 됐다.

‘놀려먹는 재미는 덤이고.’

마침내 백묘의 숨이 고르게 돌아오자 남궁천이 추궁과혈을 멈추고는 손을 거두어들였다.

털썩!

백묘가 그대로 드러눕자, 남궁천은 침상에서 내려와 창밖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마침 저만치 백묘가 국수를 먹었던 노점상이 보인다.

당시 백묘는 점소이의 마혈을 점했지만, 멀리서 지켜보던 남궁천이 지풍을 날려 곧장 마혈을 풀어준 것이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백묘로서는 기가 찰 수밖에.

이후로는 계속 귀신처럼 나타났다가 몸을 숨기길 반복했더니 백묘 스스로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인당혈을 풀어주었으니 완전히 미치지는 않았을 테고. 조금 더 만들어봐야지.’

백묘 스스로 충성하지 않는다면, 충성할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실패하면 죽이면 되고.

‘아…… 이러니까 정말 천마 같네.’

생명경시사상이 자연스럽게 물드는 것만 같다.

하나 다 자업자득이 아니겠는가?

그간 백묘가 해온 짓이 그런 것이었을 테니.

“그럼 또 보자고.”

말을 남긴 남궁천이 창밖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 * *

“으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백묘는 몸을 뒤척이다가 퍼뜩 정신이 들어 눈을 부릅떴다.

‘여긴!’

재빨리 몸을 일으키다가 머리를 들쑤셔대는 통증에 이마를 짚었다.

“으윽……!”

한참을 굳은 자세로 있던 백묘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낯설긴 하지만 알고 있는 풍경이다.

‘객실인가?’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기억을 더듬었다.

“어떻게 된 거지?”

돈주머니를 훔쳐서 객잔으로 들어온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이후로 어떻게 됐더라?

마침 고개를 든 백묘의 눈에 열린 창문이 들어왔다.

“아……! 남궁천!”

그래, 저 창문을 통해서 남궁천을 봤다. 문득 팔뚝을 타고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남궁천, 남궁천, 남궁천……!

그 지독한 놈은 진짜인가?

진짜로 존재하는 놈인가?

생각해 보면 남궁천은 정말이지 지독한 놈이다.

이제 약관이 된 주제에 수십 년간 패권을 장악했던 묵천악 맹주를 처참하게 죽여 버리지 않았나?

게다가 적혈마를 제 수족처럼 부렸다.

천마라니!

그러고 보니……!

백묘가 얼른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침 침상 옆에 놓인 종이가 보인다.

[진짜 천마가 지켜보고 계신다.]

“……!”

도대체 이 종이는 뭔가?

남궁천을 놓치고 돌아왔을 때, 방 안을 정리하던 점소이가 분명 남궁천이지 않았던가?

그리고 본인을 천마라는 둥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이봐라!”

백묘가 앙칼지게 소리치자, 곧 문이 열리면서 점소이가 들어왔다.

“손님, 부르셨습니까요?”

“넌…… 오늘 낮에 나와 마주친 녀석은 어디 갔지?”

“마주친 녀석이요? 그게 누굽니까요? 저 말고 또 마주친 사람이 있습니까요?”

“내 방 침구류를 정리하던 녀석 말이야!”

“아무래도 착각하신 게 아닌지…… 저희들은 감히 손님방에 허락 없이 들어오지 않습니다요.”

“그럼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도통…….”

“됐어. 나가봐.”

“예, 손님. 그럼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또 불러주십쇼.”

점소이가 굽실거리며 나가자 백묘가 이마를 짚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침 바깥이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무심히 창가로 걸어갔던 백묘는 다시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바로 맞은편 전각 벽에 붉은 글귀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는 게 아닌가?

[본좌가 천마다. 백묘여, 본좌를 거부하지 마라.]

“이런 미친……!”

백묘가 저도 모르게 비명처럼 소리치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벌써 길거리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전각 벽을 올려다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저게 무슨 말이야? 대체 누가 저런 장난을 친 거지?”

“언제부터 저런 글씨가 있었던 거야?”

“낸들 알겠나? 천마라니. 마교가 꿈틀거린다는 소문은 들렸지만, 천마가 정말 여기에 있는 건가?”

“에이, 설마. 누군가 장난을 친 거겠지.”

“아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는 거리에서 누가 저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글씨를 적는단 말인가? 저 붉은색은 피가 아니면 뭐야?”

“끄음. 나도 모르겠네. 자자, 해도 저물었는데 집에 가세. 괜히 재수 없는 일이라도 생길라!”

“그러세.”

모여든 사람들이 흩어지다가도 다시 모여 술렁이곤 한다.

백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거짓말……! 이건 말도 안 돼!’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던 백묘가 다시 창가로 걸어와서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주변을 살펴봤지만 남궁천은 보이지 않았다.

거리 사람들은 맞은편 전각에 새겨진 글씨 때문에 백묘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여길 벗어나야 해!’

결심을 굳힌 백묘는 더 이상 망설임도 없이 훌쩍 몸을 날렸다.

파밧!

순식간에 저만치 골목 아래로 뛰어내린 백묘가 재빨리 경공을 펼쳐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운기행공을 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잠을 푹 잤기 때문인지 몸은 비교적 개운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래도 운기행공은 하는 게 좋았을 텐데. 저렇게 또 무리하면 금방 미쳐 버릴 수 있는데…….”

객잔 지붕 위에서 가만히 중얼거리는 한 사람.

바로 남궁천이었다.

그가 가볍게 지붕을 박차고 날아오르면서 미소 지었다.

“백묘야, 백묘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본좌는 그림자만 봐도 너를 알아본단다.”

* * *

무림맹 외원에서 가장 큰 전각은 바로 약천당이었다.

때문에 청풍과 덕양을 비롯한 구파일방의 인사들은 양천당을 주둔지처럼 삼고 무인들을 관리했다.

약천당주는 애초에 반 맹주 세력이었기에 그들에게 순순히 협조했다.

마침 오늘은 점창파의 능허자가 합류하는 날이었다. 그는 당주실로 들어서자마자 황망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공성전이 되어버리다니요? 대체 우 원주는 뭘 하고 있습니까?”

“내 말이 그 말이오! 우 원주는 지금 뒈졌는지, 썩었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있소!”

청풍이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대꾸하자 능허자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애초에 우 원주께서 내원의 문을 열어주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장로원도 다 장악한 셈이어서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고 해놓고서는…….”

“누가 아니라오?”

“게다가 정극진인은 왜 저러십니까? 지객당에 틀어박혀서 꿈쩍도 하지 않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청성파 문도들이 전부 두문불출하고 있다던데요.”

“끄응. 말도 마시오. 청성파의 수치사는 내 입으로 꺼내기도 민망하니.”

“청성파의 수치사……?”

“그보다 이리 될 줄 알았으면 청성파도 일찍이 합류할 걸 그랬소.”

“그러게 말입니다. 저야 당연히 모든 게 잘 정리되어 있을 줄 알았습니다만.”

능허자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실 그는 역대 점창파 장문인들과는 다르게 싸움에 조금 소극적인 인물이었다.

불필요한 싸움을 최소화해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는 인간이었다.

한데 이래서야 콩고물은커녕 자칫하다간 똥물을 덮어쓸 위기가 아닌가?

그때 덕양이 수염을 쓸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도 오래 버티진 못할 거요. 내원에 구비되어 있는 식량이 조만간 떨어질 테니. 흑무련 무인들도 합류했으니 조만간 식량이 부족해질 터. 그리되면 사기가 떨어질 것이고 의외로 쉽게 내원이 열릴 수 있소.”

“불행 중 다행이로군요.”

“아마 우 원주는 장로원을 장악하는 것에 실패한 것 같소. 그러지 않고서야 이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리가 없겠지.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닐 거요. 만약 맹주가 그를 죽였다면 지금쯤 내원 정문에 효시를 했을 테니.”

“듣고 보니 그렇군요. 그럼 이제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해야 합니까?”

“이따금씩 내원을 몰아붙여야 할 거요. 궁지에 몰린 쥐가 얼마나 처량한 신세인지 느끼게 해줘야겠지.”

“흥! 마음 같아선 내원에 벽력탄이라도 쏟아붓고 싶구려.”

청풍의 말에 덕양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감정에 휩쓸리다간 세간에서 우리를 받아들이지 못할 거요. 우리는 백도를 걷는 자들이오. 명분이 없으면 다 이긴 싸움도 패하고 말 거요.”

“그건 덕양진인의 말씀이 맞습니다. 청풍진인이 조금 참으시지요.”

“쳇! 말이 그렇다는 거요, 말이.”

청풍이 혀를 차고는 팔짱을 꼈다.

능허자가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식량이 곧 바닥나긴 하겠지요?”

“겨울도 아니고. 완연한 봄이외다. 식량이 너무 많아도 썩어서 골치 아플 거요. 그렇다고 비싼 벽곡단을 무더기로 구비하고 있지도 않을 테고. 약왕당주 말로는 지금껏 그런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고 하오.”

“그나마 다행입니다.”

능허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꾸했다.

청풍이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보이는 내원의 성벽을 응시했다.

“뭐, 굶어 뒈지기 싫으면 나오겠지.”

* * *

그 시각 무한의 지하를 연결하는 등하로에서는 분주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자자, 서둘러라. 거기 고기부터 나르고! 인원이 많으니 넉넉하게 준비해야 한다. 서둘러.”

불명회주 흑선이 친히 등하로까지 내려와 수하들을 독촉했다.

수레 가득 실어 옮기는 것은 신선한 고기를 비롯한 각종 음식 재료들.

흑선 곁으로 다가온 귀왕이 목을 긁적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소?”

“충분할 거요. 우선 오늘 한꺼번에 좀 옮겨놓고 열흘 뒤에 또 한 번 작업합시다.”

“알겠소. 준비하지.”

귀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파일방의 세력들이 약천당에 모여 내원의 무인들이 굶어 죽어갈 것을 기대하고 있을 때, 등하로에서는 온갖 신선한 음식 재료들이 대량 옮겨지고 있었다.

귀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왕이면 내가 직접 가서 요리를 해드릴까? 그럼 주군이 지분 좀 나눠 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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