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48화 (447/508)

448. 슬슬 돌아가자

이제 마교 총타의 총책이 된 적혈마는 수하들을 우르르 이끌고 용취곡 입구까지 남궁천을 배웅해 주었다.

비록 작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적혈마는 한낱 분타주에서 천마의 좌장이자, 총타의 총책이 되었다는 사실에 상당한 고무감을 지니고 있었다.

용취곡 어귀까지 다다른 남궁천이 뒤를 돌아보고는 적혈마와 마인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본 교는 진마교(眞魔敎)라고 칭하겠다. 진짜 마교라는 뜻이지. 좌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좋아. 너희들은 진마인이지. 뭐, 발음에 조금 더 힘을 줘서 찐 마인이라고 해도 좋겠다.”

“훌륭합니다.”

“그래. 우리가 바로 찐이다. 하지만 짝퉁이 판을 치고 있다. 내가 말했듯이 찐은 생사람 잡아다가 단전이나 뽑아먹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본좌는 홀로 오롯이 강하다. 본좌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니 너희들도 괴상한 짓거리를 하면서 본좌의 명성을 바닥으로 추락시키지 말아라.”

“명심하겠습니다.”

“짝퉁이 찾아오면 대충 둘러대도록 하고, 둘러댄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참교육을 시켜주도록 해라.”

“하나 짝퉁도 꽤나 강한 자들인지라…….”

“좌장.”

“예.”

“너는 내게 마혼단의 은혜를 입지 않았는가?”

“물론입니다.”

“마혼단을 얕보지 마라. 어지간한 마인은 이제 네 앞에서 찍소리도 못할 거다. 다만 매달 주기적으로 마생환을 복용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고.”

“하면 마생환은 어찌 받을 수 있습니까?”

“매달 한 번씩 당가의 무인이 마생환을 배달해 줄 것이다. 그러니 빠짐없이 챙겨 먹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천마시여!”

“그럼 본좌는 유아독존의 길을 가기 위해서 떠나겠다. 잘들 지내도록.”

“저어, 천마시여.”

“뭐지?”

남궁천이 발걸음을 떼다 말고 돌아보자, 적혈마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어…… 아뢰옵기 황송하나, 한 번만 더 천마혼을 보여주실 수 없으신지요?”

“이유는?”

“천마혼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과 충격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천마께서 총타를 떠나시기 전에 한 번 더 천마혼을 보여주신다면, 속하는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총타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날 못 믿는 건 아니고?”

“절대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맹세할 수 있습니다.”

“흐음. 그렇다면 좋아. 어려울 것도 없지.”

말을 마친 남궁천이 천마신기를 운공했다.

후우우우우우웅!

체내에서 천마신기가 빠르게 일주천하기 시작했다. 마공이 점점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자 남궁천의 전신에서 검붉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일어난다.

우우우우우웅……!

꿀꺽!

적혈마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두 눈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파아아아아아아!

남궁천의 등 뒤로 거대한 천마혼의 형상이 일렁이며 나타났다.

“오오오오오오!”

적혈마뿐만 아니라, 다른 마인들도 천마혼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개중에는 이 자리에서 천마혼을 처음 보는 마인도 있었다.

적혈마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털썩 무릎을 꿇더니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천마지존! 마도천하! 만세, 만세, 만만세!”

“천마지존! 마도천하! 만세, 만세, 만만세!”

마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절하자 협곡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남궁천이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의 그 마음을 잊지 말도록. 여기저기 가짜가 판 치는 세상이다. 너희들은 절대 현혹되지 말지어다.”

“물론입니다!”

슈우우우우.

남궁천이 기운을 거두자 천마혼이 흡수되듯 남궁천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확실히 용취곡에서는 천마신기가 잘 운기되네.’

어깨를 으쓱인 남궁천이 다시 한번 천마신기를 끌어 올리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천마혼이 튀어나왔다.

파아아아아아!

“오오! 천마지존! 마도천하! 만세, 만세, 만만세!”

“흐음. 귀여운 녀석들.”

천마혼을 볼 때마다 저 난리를 치니 은근히 재미가 붙는다.

그럼 어디 가는 척하다가 또 한 번!

파아아아아아!

“천마지존! 마도천하! 만세, 만세, 만만세!”

슈우우우우우.

“…….”

파아아아아아!

“천마지존! 마도천하! 만세, 만세, 만만세!”

“좋군. 좋아. 그럼 진짜 간다.”

남궁천이 손을 흔들고는 돌아섰을 때,

파아!

“천마지……!”

남궁천의 몸에서 기운이 솟구치다가 말자, 마인들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다가 움찔 멈춘다.

남궁천이 낄낄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귀여운 녀석들. 그럼 또 보자.”

* * *

그날 저녁 남궁천과 일행들은 백룡분타에 도착했다.

우선은 백룡분타를 정비하는 것도 시급한 문제였다.

분타주가 은마령이었다는 게 밝혀진 이상 최대한 빨리 신임 분타주를 임명하고 지금의 어수선한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맹주의 권한을 일부 위임받은 남궁천은 급한 대로 비월문주 연추량을 분타주로 임명했다.

청운대와 백운대도 이견은 없었다.

철석같이 믿었던 분타주가 은마령으로 밝혀졌으니 그들로서도 딱히 반대할 명분이 없었던 것.

한편 압송 중이었던 백묘는 자신을 뇌옥으로 끌고 가는 당고륜을 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고마워요, 당 가주님.”

“무슨 말인가?”

“제 몸을 치료해 주셨더라고요. 여기저기 구석구석.”

백묘의 묘한 말투에 당고륜이 헛기침을 하고는 퉁명스레 대꾸했다.

“교주…… 아니, 남궁 단주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다. 내게 감사할 일은 아니지.”

“호호. 당 가주님조차 남궁천을 교주라고 부를 뻔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

당고륜은 괜히 말을 섞어서 백묘에게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할까 봐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다.

백묘가 피식 웃었다.

“남궁천, 참 신기한 사람이란 말이에요. 도대체 그 분타주를 어떻게 구워삶았기에 하루아침에 천마가 된 걸까요? 가주님은 뭔가 아실 것 같은데. 설마 저한테도 당가가 천마를 섬기기로 했다는 개소리를 할 건 아니죠? 전 분타주만큼 정신 나간 인간이 아니랍니다.”

“몸을 치료하고 나니 살 만한가 보군. 말이 많아진 걸 보니.”

“가주님 덕분이죠.”

“감사 인사는 사양하지.”

당고륜이 시종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하고는 백묘를 뇌옥에 던지다시피 밀어 넣었다.

“아이, 너무 쌀쌀하게 구신다. 이왕이면 절 치료할 때만큼이나 좀 부드럽게 대해주시…….”

탁탁탁.

순간 백묘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 듯했다.

당고륜이 백묘의 입에 단환 하나를 밀어 넣고는 턱을 탁 올려쳤다.

“시끄럽군. 수면독이다. 무취무미라서 쓰지도 않으니 얌전히 먹고 쉬고 있도록. 어차피 내일 동이 틀 때까지 두드려 패는 한이 있어도 기절한 것처럼 자겠지만.”

이내 약효가 듣기 시작한 것인지 백묘가 스르르 눈을 감더니 털썩 쓰러졌다.

당고륜은 그런 그녀를 향해 코웃음을 한 번 치고는 뇌옥을 잠그고는 걸음을 저벅저벅 옮겼다.

그가 뇌옥을 떠나고 나서 한참이 지났을 때.

번쩍.

백묘가 거짓말처럼 두 눈을 떴다.

잠시 후 그녀가 입을 벌리자, 조금 전 당고륜이 밀어 넣었던 단환이 굴러 떨어졌다.

“수면독이라.”

혼잣말을 중얼거린 백묘가 목을 이리저리 비틀다가 천천히 일어났다.

당고륜은 수면독을 어지간히 믿고 있는 것인지 양발을 구속하지도 않았다.

물론 양손은 구속되어 있었는데, 일반적인 쇠고랑에 지나지 않았다.

공진철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부상 중이며 당고륜이 점한 마혈을 꽤나 신뢰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간 남궁천이 점한 마혈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네.”

아니면 자신이 중상을 입었다는 이유로 방심한 것이리라.

뭐, 그 덕에 백묘는 어렵지 않게 마혈을 풀고 쇠고랑마저 끊어낼 수 있었다.

‘운이 좋았어. 당 가주가 치료를 해준 덕에 몸도 훨씬 좋군. 멍청한 정파 놈들.’

한껏 비웃던 백묘의 표정이 잠깐 어두워졌다.

정파 놈들을 멍청하다고 비웃기에는 적혈마의 행동이 너무 어처구니없지 않은가?

‘도대체 분타주는 왜 갑자기…….’

오는 내내 거듭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타주는 정말이지 신실한 교인이었다.

다만 그 신실함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것을 백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어쩐다? 뇌옥을 부수고 달아날까? 그럼 달아날 수 있긴 할까?’

만약 전신의 진기를 모조리 끌어올린다면 쇠창살을 부수고 탈옥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공이 부족해질 테고 금방 붙잡힐 가능성이 크다.

‘이대로 자는 척하다가 내일 아침 기회를 볼까? 아니면…….’

때마침 행랑 쪽에서 기척이 들려왔다.

백묘는 얼른 수면독을 품에 갈무리하고는 털썩 쓰러져서 잠든 척했다.

마침내 기척이 가까워지더니 철창을 삐걱 열고는 누군가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백묘는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백묘, 일어나라. 너는 여기 쓰러져 있어선 안 된다. 어서 나를 섬기도록 해라.”

‘이건 또 왠 미친 소리야?’

백묘가 어이가 없으면서도 끝까지 눈을 감고 잠든 척했다.

남궁천이 발로 백묘의 옆구리를 툭툭 걷어찼다.

“일어나. 백묘.”

내공이 실려 있던 것인지 백묘는 옆구리가 뚫려 버릴 것처럼 아팠지만 내심 이를 악물고 버텼다.

“흐음. 당 가주 말대로 대단한 수면독인가 보네. 뭐,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내가 네 옆에 앉아서 술을 마시마.”

‘아니, 뭔…….’

남궁천이 말을 마치고는 털썩 주저앉더니 술병을 나발 불기 시작했다.

“크으, 좋구나. 백묘, 너는 아직 혼란스럽겠지만, 본좌는 천마다.”

‘미친…….’

“본좌가 그간 그러한 사실을 숨긴 이유는 마도천하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개소리도 작작해라.’

“우리의 천마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너의 마음속, 너의 가는 길, 너의 과거와 미래까지.”

‘…….’

“하여 본좌는 그간 무림맹에도 있었던 것이다.”

‘이 새끼 취했나?’

“그러니 본좌를 의심하지 마라. 본좌는 너를 언제나 지켜보고 있다. 너 또한 본좌의 은혜를 받았으니 본좌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 알겠느냐? 본좌는 신이다. 그러니 언제나 신앙심을 가지고…….”

“미친! 개소리도 그쯤하면 지겨운 법!”

순간 백묘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우씨, 깜짝이야!”

남궁천이 앉은 채로 한 자 정도 펄떡 뛰었다.

그 틈을 타서 백묘가 재빨리 품에 안고 있던 수면독을 꺼내 남궁천의 입에 밀어 넣고는 턱을 올려 쳤다.

“컥!”

곧이어 백묘가 술병을 뺏어 들고는 남궁천의 입에 쑤셔 박았다.

술이 콸콸콸 쏟아져 나오면서 남궁천의 목구멍을 타고 흘러들어간다.

“커윽……!”

백묘가 훌쩍 물러나서는 말했다.

“대단한 건 아니고. 당가에서 만든 수면독이야. 두드려 맞아도 깨질 않을 테니까 푹 쉬고 있어라, 이 천마 새끼야.”

“백묘…… 넌 역시…… 신앙이 얕구나. 하나 본좌는 널 포기하지 않아…….”

“미친놈.”

털썩!

이내 의식을 잃은 남궁천이 그대로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백묘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뇌옥을 빠져나왔다.

파밧!

순간 그녀가 어둠을 향해 빠르게 달려 나갔다.

잠시 후.

“끄응. 갔나?”

남궁천이 몸을 일으키고는 기지개를 켰다.

잠시 후 당고륜이 걸어왔다.

“계획대로 되었는가?”

“예, 일단은 백묘가 달아났습니다. 이대로 총타를 찾아가면 좋겠지만…… 아마 무림맹 쪽으로 갈 가능성이 크겠죠.”

“어찌 그리 생각하는가?”

“용취곡 분타를 찾아갔다가 한 번 된통 당한 전적이 있으니까요. 이번에도 총타로 찾아가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겁니다. 대신 무림맹으로 가서 은마령과 접선하는 쪽을 선택할 겁니다.”

“과연 그렇군. 하면 자네도 이제……?”

“예, 한시가 급하니 저도 백묘를 쫓아서 무림맹으로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손 대주에게는 먼저 간다고 전해주십시오.”

“알겠네. 그럼 무운을 빌겠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남궁천이 포권을 하고는 훌쩍 몸을 날렸다. 뇌옥을 나온 그가 단숨에 전각 지붕 위로 올라가서는 저만큼 달려가는 백묘를 보았다.

“백묘야, 백묘야. 그리 느려서야 본좌의 그늘을 벗어나겠느냐? 본좌는 무림맹도 수만 번 따돌렸을 정도로 빠른데?”

남궁천이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지붕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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