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47화 (446/508)

447. 슬슬 돌아가자

슈우우우.

남궁천은 침상에 걸터앉은 채로 운기행공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모종의 형상이 만들어지면서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천마의 기운이 만들어내는 형상이다. 이 운기에 조금 더 집중해서 천마신공을 끌어 올리게 되면 천마혼이 만들어진다.

‘확실히 여기서 더 잘되는 느낌이네.’

용취곡은 늘 습기가 가득하고 해가 잘 들지 않아서 극음의 기운이 충만한 곳이다. 그러다 보니 천마신공과 궁합이 좋다.

아마 천마혼이 자연스럽게 발현된 데에는 그러한 이유도 한몫했으리라.

어쨌거나 모든 마공을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마공이 바로 천마신공이다.

남궁천이 적혈마공을 따라하는 수준을 넘어 천마혼까지 발현했으니, 적혈마로서는 바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사실 남궁천이 천마신공을 지금처럼 집중하여 운기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칫 마기를 함부로 운기하면 주화입마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히 창벽공의 묘리를 알고 난 후에 천마신공을 익히니 안정감이 생겼어.’

창벽공은 제왕의 신공이다.

제국에는 뛰어난 선비도 있겠지만, 동네를 주무르는 파락호도 있는 법이다.

만약 천마신공이 제멋대로 폭주하여 주화입마에 처할 것 같으면 어김없이 창벽공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마치 집단을 이루어 봉기하는 도적떼를 잡아내는 제왕의 병력과 같은 느낌이다.

그만큼 포용하면서도 철저히 감시하는 무공.

모든 무공을 아우르면서도 적절하게 절제시키는 심공.

그것이 바로 창벽공인 것이다.

때문에 남궁천은 천마신공을 몇 차례 운기하다가 마무리는 창벽공으로 갈무리 지었다.

확실히 그러고 나면 훨씬 더 안정감이 들기 때문이다.

슈우우우우우……!

마침내 등 뒤로 번져 있던 오묘한 기운이 몸으로 스르르 흡수되자, 남궁천이 천천히 눈을 떴다.

“개운하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남궁천의 두 눈은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천마신공을 운기하면서 적혈공도 함께 운기한 탓이다.

남궁천의 눈동자가 차츰 원래의 색으로 돌아올 때쯤 마침 문이 열리면서 손우곤이 들어왔다.

“아, 끝나셨군요.”

“무슨 일?”

“아까부터 당 가주님이 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모시지 않고 왜?”

“운기 중이시라고 말씀드렸더니 방해하지 않으시겠다고.”

“그렇군. 모셔.”

“예, 주군.”

“쓰읍.”

“아, 교주님.”

“그래. 여기서는 본좌가 교주다.”

“명심하겠습니다.”

손우곤이 어딘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남궁천도 피식 웃어 넘겼다.

잠시 후 당고륜이 실내로 들어섰다. 그는 그래도 강호 명숙답게 실내로 들어서자마자 공기 중에 은은하게 배어 있는 마공의 잔기운을 느꼈다.

“흐음. 천마신공을 꽤나 잘 소화한 것 같군.”

“덕분입니다.”

“정말 보면 볼수록 자네는 놀라운 사람이야. 그 천마신단을 정말로 소화해 낼 줄이야.”

남궁천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뭐, 타고난 체질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점만 물려받은 모양입니다.”

“하긴. 그러지 않았다면 자네는 진작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테지. 자네 부모에게 감사해야겠네.”

“예, 그러고 있습니다.”

남궁천은 당고륜의 말에서 묘한 위안을 느끼면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부탁드린 건 어떻게 됐습니까?”

“아. 여기 빼낸 걸세.”

당고륜이 자그마한 목함을 꺼내서 내밀었다.

남궁천이 목함을 열어보니 악취를 풍기는 핏빛 애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바로 백묘의 몸속에 있던 혈마고였다.

“하면 백묘는?”

“멀쩡하네. 그래도 적혈마의 몸에서 꺼내는 걸 한 번 성공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훨씬 수월했네. 물론 마찬가지로 시간은 좀 걸렸지만.”

“백묘가 깨어나면 눈치를 챌까요?”

“아마 못 챌 거라고 생각하네.”

“호오.”

남궁천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정도로 감쪽같이 치료가 된 겁니까?”

“그럴 리가. 생살을 가르고 심장 부위에 기생하는 혈마고를 뽑아내는 일일세. 내 아무리 신의에 준하는 의술을 지녔다고 해도 그건 무리지.”

“하면?”

“이미 백묘에게 너무 많은 상처가 있었네. 오혈마와 싸우면서 두 눈 뜨고 봐주기 힘들만큼 상처를 입었더군. 그 상처 중 한 곳을 그대로 갈라서 혈마고를 꺼냈네. 그리고 다시 봉합해 두었지.”

“그럼 백묘는 혈마고를 꺼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저 상처를 치료한 것인 줄 알겠군요.”

“그럴 걸세. 그 상처뿐만 아니라 다른 상처도 몇 군데 치료해 두었네. 그리고 말해둔 조치도 취해두었고.”

“당가의 망심독(妄心毒) 말씀이군요.”

남궁천이 눈을 빛냈다.

당고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거운 목소리를 이었다.

“자네가 망심독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 혹시 그자가……?”

남궁천이 빙그레 웃었다.

“예, 천독노가 알려주었습니다.”

“하여튼 그 영감도 본 가 입장에서는 썩 달갑지 않군.”

“그래도 앞으로 자주 볼 사이니까 너무 미워하지는 마시죠.”

“커흠. 어쨌거나 그렇다면 자네도 잘 알겠지? 망심독에 당하면 정신적 충격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어지러워져 미치광이가 될 가능성이 높네.”

“알고 있습니다. 무인일 경우 당사자가 익힌 심공에 균열을 일으켜 정신 착란을 겪는다지요.”

“잘 아는군. 한마디로 심할 경우 폐인이 된다는 말일세. 그렇다고 치명적은 극독도 아니고. 딱히 해독제가 있는 것도 아니지. 굉장히 비싸기도 하고. 물론, 자네는 본 가의 은인인 만큼 값이 대수가 아니지만. 왜 굳이 그 독을 백묘에게 써달라고 한 건가? 차라리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죽일 수도 있을 텐데?”

“죽이기에는 아까워서요. 그렇다고 적혈마처럼 천마혼을 보여주고 따르라고 해도 안 통할 것 같고.”

“하긴. 그녀라면 적혈마처럼 단순하게 안 넘어갈 것 같군.”

남궁천도 같은 생각이었다.

적혈마는 천마혼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 같은 것이 있었다.

한데 백묘는 뭐랄까?

교주라는 자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느낌이랄까?

확실히 천마에게 충성하는 느낌이 아니라, 사람에게 충성하는 느낌이다.

때문에 천마혼을 보여준다고 해도 백묘는 오히려 의심을 할 것만 같다.

어떤 의미로 보면 오히려 불순한 마교도라고 볼 수도 있겠다.

당고륜은 그럼에도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었다.

“그렇다고 해도 망심독에 당하면 결국 미칠 것인데, 죽이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적당히 미치게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정 쓸모가 없어지면 그때 죽여도 늦진 않으니까요. 어차피 신병을 확보한 이상 죽이든 살리든 이제 제 손에 달린 것 아니겠습니까?”

말을 마친 남궁천이 스산한 웃음을 흘리자 당고륜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째 자네는 정말로 천마가 된 것 같군.”

“당분간은 그렇게 봐주셔야 합니다.”

남궁천의 말에 당고륜이 실없는 미소를 지었다.

* * *

오랜만에 적마동에 용취곡 분타의 모든 마인이 모였다.

핏빛 피풍의를 두른 마인들이 적마동 내부에 도열하자 숨 막힐 듯한 마기가 진득하게 공간을 채웠다.

다만 마인들은 융단이 깔린 길을 중심으로 좌측에만 빽빽하게 도열해 있었는데, 우측은 상대적으로 텅텅 비어 있었다.

남궁천은 여느 때처럼 태사의에 삐딱한 자세로 드러누운 채로 다과를 집어먹고 있었다.

잠시 후 적마동 밖에서 기척이 들리더니 손우곤을 비롯한 적랑단과 당고륜을 비롯한 가신들이 오와 열을 맞춰 들어왔다.

그 뒤를 이어 비월문과 백옥 지단의 무인들도 들어오니 적마동 내부는 정기와 마기가 마구 뒤섞이면서 묘한 분위기를 자극했다.

후우우우웅!

우우우우웅!

후우우우웅!

우우우우웅!

마기가 한번 기세를 드높이면, 어김없이 정기가 기세를 드높인다.

마인들과 정파 무인들이 서로 날카롭게 기운을 과시하자, 남궁천이 몸을 바로 세우고는 말했다.

“다들 그만. 너희들 모두 본좌의 충실한 신도들이다. 서로에게 날 세우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도록.”

그러자 당고륜이 두어 걸음 저벅저벅 걸어 나오더니 털썩 무릎을 꿇으며 절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고통 없는 죽음을 내려주소서! 천마지존! 마도천하! 만세, 만세, 만만세!”

그러자 뒤에 도열한 정파 무인들이 일제히 천장이 뜯겨져 날아갈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죽여주십시오! 천마지존! 마도천하! 만세, 만세, 만만세!”

어찌나 소리가 큰지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그 모습을 본 적혈마도 적지 않게 놀랐는지 입을 딱 벌리고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살다 살다 정파 무인들이 천마지존 마도천하를 외치는 걸 볼 날이 올 줄이야?

더구나 겨우 그 정도로 뭘 죽음까지…….

한편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남궁천이 미소를 지으면서 적혈마를 돌아보았다.

“우리 적혈.”

“예? 아, 예! 천마시여! 말씀 듣겠습니다!”

“적혈과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 죽,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부디 죽, 죽여주십시오! 천마지존! 마도천하! 만세, 만세, 만만세!”

“죽여주십시오! 천마지존! 마도천하! 만세, 만세, 만만세!”

그렇게 마인들마저 무릎을 꿇고 이마를 찧자, 남궁천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

“그만 됐다. 너희들의 충성심을 한 번 알아보았을 뿐이다. 고개를 들라.”

그러자 당고륜이 고개를 들며 다시 소리쳤다.

“성은이 망극…… 아니, 어…… 마은(魔恩)이 망극……? 어음…… 어쨌거나 자비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마시여!”

아슬아슬하게 버벅대는 말을 들으면서 옆에 엎드린 손우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당고륜이 더 실수를 할세라 남궁천은 얼른 말을 돌렸다.

“적혈.”

“예, 천마시여!”

“앞으로 우리 좌장 적혈을 총타의 총책으로 정한다. 내가 없을 땐 좌장이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하고, 총타를 잘 이끌도록 하라.”

“천마시여, 혹 어디론가 가시는 겁니까?”

“본좌는 바쁘신 몸이다. 본좌는 적랑단을 이끌고 무림맹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

“문제라도 있느냐?”

“천마께서 어찌 무림맹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좌장은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군. 이 모든 것은 본좌가 천하를 장악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마도천하를 이루기 위해 초석을 다지는 일이란 말이다. 좌장.”

“예!”

“너는 본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느냐?”

“제가 어찌 감히…….”

“그래. 좌장은 본좌의 생각을 알 수 없다. 이해할 수도 없지. 한낱 너 따위가 본좌의 숭고한 뜻을 헤아리려면 백 년은 이를 것이다.”

“명심하겠사옵니다!”

“앞으로 주둥이 조심하도록.”

“예, 천마시여!”

“가짜 마교에서 연락이 오면 늘 지내던 대로 지내도록 하라. 적랑단이 습격했으나 서로가 적당한 피해를 보는 선에서 물러났다고 하라. 마기환은 제조하는 장소가 무너지는 바람에 시간이 걸린다고 대충 둘러대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으이그, 멍청한 것들. 진정한 천마는 마기환 따위는 필요 없는 것이다. 어딜 할 짓이 없어서 생사람 잡아다가 단전을 뽑아먹어? 기생충 같은 짓을 하다니. 천마의 체면이 말이 아니구나.”

“진작 눈치채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됐다. 그리고 백묘는 내가 데리고 갈 테니 준비시키도록.”

“예, 천마시여!”

“그럼, 좌장에게 총타를 맡기고 나는 떠나도록 하겠다. 다시 보는 날까지 건강히 잘 지내도록.”

“천마지존! 마도천하! 만세, 만세, 만만세!”

정마의 무인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절을 올렸다.

남궁천이 기분 좋게 웃음을 지었다.

‘역시 이런 대접은 언제 받아도 기분 좋단 말이지. 마음 같아서는 며칠 더 머물고 싶구만.’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서둘러야 한다.

당장은 고비를 넘겼지만, 앞으로는 정말 시간과의 싸움이 되리라.

* * *

콰자앙!

우위광이 탁자를 거칠게 내려치고는 연신 어깨를 들먹였다.

새벽닭이 울더니, 이젠 날이 밝았다.

결국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는 공성전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젠장. 우리가 너무 안일했던 것 같소.”

“이제 어쩌지요?”

“방법이 없을까요?”

다른 장로들이 우위광의 눈치를 살피면서 물었다.

“그러게 천무류가 그 난리를 치는 동안 대체 다들 뭘 하고 계셨소!”

우위광이 짜증스럽게 소리치자, 장로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우위광이 매섭게 빛나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우선은 버텨봅시다. 어차피 시간을 오래 끈다고 해도 불리한 것은 맹주요. 남궁천이 제아무리 빨리 달려온다고 한들, 그보다 먼저 내원이 무너질 것은 기정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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