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46화 (445/508)

446. 슬슬 돌아가자

“천 장로…….”

남궁검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성벽 위에 선 천무류를 보았다.

천무류 한 사람이 등장한 것인데도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확실히 천무류의 궁은 효과가 컸다.

정신없는 난전이 벌어지던 중에도 많은 무인이 고개를 꺾어 들고 천무류를 확인하자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근접전이라면 어떨지 모르지만 성벽 위에 선 천무류를 이겨낼 수 있는 자가 여기 어디에 있단 말인가?

치열하던 전투가 긴장감에 휩싸이며 소강상태에 빠지자, 남궁검이 눈알을 굴려 나무 아래에 쓰러진 백무극을 보았다.

‘저 아이를 두고 갈 수는 없지.’

남궁검이 자세를 고쳐 잡고는 천천히 호흡을 했다.

자신의 의도를 들키게 되면 청풍이나 덕양이 백무극을 순순히 데려가게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때문에 심중을 숨긴 채 가만히 기회만 엿보았다.

한편 청풍과 덕양은 갑자기 나타난 천무류 때문에 바짝 신경질이 난 상태.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자신들은 내원으로 들어가서 싸웠어야 한다.

천무류가 상대하기 까다롭긴 하겠지만 그래도 근접전을 펼친다면 이쪽에 승산이 있었다.

한데 이래서야 완전히 천무류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닌가?

다 잡은 물고기마저 놓치기 좋은 상황.

이제 와서 천무류를 회유한다고 해도 저 고집불통인 작자를 끌어들이긴 어려우리라.

결국 정면승부를 해야 한단 소리인데…….

‘난감하게 됐군.’

청풍이 남궁검을 슬쩍 돌아보았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남궁검이 지금 외원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남궁검만 제거한다면 무림맹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천무류가 홀로 내원에서 방어전을 펼친다고 한들 결국 시간이 흐르면 버티지 못할 것이니까.

그런데 그 순간, 남궁검이 바닥을 박차더니 백무극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어딜!”

남궁검의 의도를 단박에 눈치챈 청풍이 그대로 백무극이 쓰러져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덕양은 곧바로 남궁검을 향해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허공을 찢어발기는 파공성이 울리더니 화살 두 자루가 매섭게 날아들었다.

화살은 각각 청풍과 덕양을 노렸는데, 놀랍게도 움직이는 두 사람을 정확히 추격하는 것이 아닌가?

“치잇!”

따아아아아앙!

청풍이 기를 끌어 올리며 검을 휘두르자 무섭게 날아들던 철시가 검신에 부딪치면서 튕겨갔다.

콰아아아앙!

어찌나 강한 기운이 실렸던 것인지 전각에 부딪친 철시가 폭음을 터뜨렸다. 그와 동시에 전각 일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꿀꺽……!

그야말로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는 상황.

청풍은 반사적으로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힐끔 보았다.

철시가 너무 강맹하게 날아들어서 검신이 부러지지나 않았는지 본 것이다.

물론 자신 역시 강기를 입혀 막아낸 만큼 검신이 쉽게 부러지진 않겠지만, 가속을 받은 강기가 아무래도 더 강한 힘을 지닐 수밖에 없으리라.

다행히 검신은 부러지지 않았지만 청풍의 양팔은 아직도 저릿하게 울렸다.

게다가 철시를 막은 곳으로부터 십여 장이나 미끄러져서 겨우 멈춘 상태.

한편 덕양 역시 품으로 날아드는 철시를 보고는 몸을 돌개바람처럼 회전했다.

파라라라라라!

촤아아악!

철시가 덕양의 옷깃을 찢어내며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콰아아아아앙!

그대로 바닥에 꽂힌 철시가 폭음을 울리며 파편을 사방으로 튕겨냈다.

따다다다당!

덕양이 얼른 검을 휘둘러 날아드는 파편들을 쳐냈다.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도 파편이 오직 덕양을 향해서만 튀었다는 것이다.

‘과연 놀랍구나! 패력궁은 파편이 튈 방향까지 계산해서 나를 노렸단 말인가!’

청풍과 덕양이 그렇게 각자의 방어에 신경 쓰는 사이 남궁검은 그대로 백무극을 향해 달려갔다.

마침 그의 귓가를 스치며 화살 한 자루가 지나갔다.

쒜에에에엑, 꽈아아아앙!

남궁검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며 날아간 철시가 이번에는 백무극을 덮고 있던 버드나무를 박살 냈다.

조각조각 부서진 나무 파편이 어지럽게 덮쳐왔지만 남궁검은 그걸 막아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백무극에게 달려갔다.

피츄츄츗!

몇 개의 파편이 살갗을 찢고 날아갔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상처 몇 군데 더 나도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패력궁 덕분에 무거운 나무를 치워낼 필요도 없이 곧장 백무극을 들쳐 멜 수 있었다.

“끄으윽……!”

그제야 백무극이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돌아온 것인지 신음을 흘렸다.

“괜찮으냐?”

“죄송…… 합니다.”

“쓸데없는 말을. 너는 나를 지켰고, 나는 너를 지키려고 하는 것일 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백무극이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청풍과 덕양이 남궁검의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맹주! 이대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소?”

“그 아이를 살리고 싶다면 맹주께서 욕심을 내려두시오!”

남궁검이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마주 본 채 대답하지 않자, 백무극이 희미한 목소리를 흘렸다.

“엿이나 처먹으라고…… 해주십시오…….”

“퍽 마음에 드는 소리구나.”

“하지만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사람은…… 개하고 말을 섞지…… 않으니까요.”

“그 역시 썩 마음에 드는 말이다.”

남궁검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웃음이 너무나 희미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그가 웃는 것조차 모를 정도였지만.

남궁검이 시리도록 차가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빤히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함부로 짖는 개새끼라도 때론 사람 말귀를 알아들을 때가 있으니 한마디 하지.”

“……!”

“내가 가는 길에 자네들의 허락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맹주……!”

“기어이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닥쳐라. 자네들이 제안한 것은 전부 벌주였을 뿐!”

파아아앙!

순간 남궁검이 바닥을 차며 달리기 시작했다.

방향은 내원을 향하는 계단!

“순순히 보내 드릴 것 같소!”

“어딜 가시려고!”

청풍과 덕양이 동시에 외치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에도 몇 걸음 내딛기도 전에 몸을 돌려 세워야 했다.

패력궁의 엄호가 시작된 탓이다.

쒸쒸에에엑!

쩌엉! 쩌어어엉!

촤촤촤촤촤촤앗!

십여 장이나 미끄러진 두 사람이 어금니를 뿌득 가는 사이, 남궁검은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파바바바밧!

그야말로 전신진기를 모조리 쏟아 붓는 심정으로 달렸다.

이를 본 여신우가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다들 맹주를 엄호하라! 우리도 곧바로 뒤를 따른다!”

“복명!”

치열한 난투극이 벌어졌다.

베고 베이며 비명이 난무한다.

이번에도 패력궁의 화살은 무자비하게 쏟아져 내렸다.

투타타타타타타!

하늘에서 화살비가 쏟아지면서 바닥에 박혀들었다.

이것이 정말 단 한 사람이 쏘는 것이 맞는가?

적어도 수십 명이 동시에 활을 쏘는 것만 같다.

패력궁의 손은 그만큼 빨랐다.

시위를 놓기가 무섭게 다시 화살을 걸어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어, 엎드렷!”

“엎드려랏!”

투타타타타타타!

바닥에 화살이 박히면서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화살을 피한다고 해도 튀어 오른 파편 때문에 부상을 입는 자들이 생길 정도다.

결국 바닥에 엎드린 자들 중에서도 몇몇은 화살에 꿰뚫려 목숨을 잃었다.

놀랍게도 천무류는 정확히 적아를 구분하여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크아악!”

“아악!”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솟구친다.

한편 정혜는 날아드는 화살을 쳐내면서 주변을 둘러보고는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이 한심한! 다들 일어나서 싸워라! 엎드리지 마라! 맞서 싸우란 말이야!”

“사태! 지금으로선 무모합니다! 먼저 몸을 사리시지요!”

“닥쳐라! 웅크린 모습을 보이면 적의 기세가 더 등등해진다는 걸 모른단 말이냐!”

각 조직의 수장과 정혜 사태의 의견이 대립하자 무인들이 우왕좌왕하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는 사이 남궁검과 여신우를 비롯한 사파 무인들이 내원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천무류는 연거푸 서너 개씩 걸던 화살을 내리고는 외원의 상황을 잠시 살폈다.

화살 폭격이 잠시 멈췄지만, 아직도 많은 무인들이 선뜻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남궁검은 빠르게 내원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막아라앗!”

청풍이 발작처럼 외치자 내원으로 오르는 계단 쪽에 밀집해 있던 무인들이 그제야 몸을 일으키고는 저마다 무기를 앞세웠다.

천무류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유백랑을 돌아보며 말했다.

“폭시.”

“예? 아, 옛!”

유백랑이 처음 천무류가 왔을 때부터 맡겼던 화살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화살의 상태를 한 번 점검한 천무류가 천천히 시위에 걸어 당겼다.

뻐어어어억……!

대궁에 기다란 화살이 걸리면서 뻑뻑한 소리를 내지른다.

그 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많은 기운이 응축되어 있는지 짐작이 갈 정도다.

화살촉은 뭉툭하다.

왠지 맞아도 아프지 않을 것처럼 둥글다.

하나 그 뭉툭한 부분은 폭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무류가 강기를 실어 날리는 순간, 화살이 무언가에 부딪치면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게 되리라.

훌쩍!

천무류가 성벽 난간 위로 올라서더니 공력을 담아 소리쳤다.

“다들 물러나라! 맹주님을 막아선다면 노부의 궁이 죽음을 부르리라!”

목소리가 하늘에서 쩌렁쩌렁하게 떨어지자, 무인들이 저마다 움찔거리고는 눈치를 살핀다.

청풍이 코웃음을 치고는 마주 외쳤다.

“흥! 목숨을 걸고 막아라! 애초에 그 정도 각오도 없이 본 파의 한을 풀려고 한 것은 아닐 터! 죽음이 두려워 걸음을 물리는 자는 내가 용서치 않겠다!”

이쯤 되자 계단 입구를 틀어막고 있던 수십 명의 무인들이 결의를 다진 표정으로 검파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천무류가 혀를 차고는 나직이 일렀다.

“청풍 장문인. 그대는 욕심을 앞세워 문도들을 위기로 몰아넣으니 참으로 한심한 수장이오.”

“시끄럽소! 내 수하들에게 연민을 느낀다면 당신이 활을 쏘지 않으면 될 일!”

“어리석은 소리. 나는 분명 기회를 주었소. 원망은 마시오!”

말을 마친 천무류가 한껏 당긴 시위를 놓았다.

패애애애앵!

쒸에에에에에엑!

폭시가 어두운 공간을 가르며 떨어져 내린다.

그 순간 청풍이 바닥을 차며 날아올랐다.

파라라라라라라!

수하들에게 죽음을 각오하라고 외치긴 했지만, 눈앞에서 떼죽음 당하는 것을 바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아아아앗!”

운룡대구식을 펼치며 날아간 청풍이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일검을 내질렀다.

쑤아아아아앙!

강기가 터져 나오면서 폭시가 정확히 마주쳤다.

다음 순간!

꽈아아아아아앙!

허공에서 어마어마한 폭발이 터지면서 사방으로 뜨끈한 기운이 훅 불어나갔다.

“크으으읍!”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했지만 강렬한 폭발에 청풍의 몸이 튕겨 나가면서 전각을 부수며 나뒹굴었다.

쿠당탕탕!

쿠구구구구궁……!

전각이 터져 나가듯 부서지자, 청풍이 무너진 잔해더미에서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한편 계단 입구를 막아섰던 무인들 역시 그 폭발에 휩쓸리면서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그러는 사이 남궁검과 여신우를 비롯한 사파 무인들이 우르르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덕양이 외쳤다.

“쫓아라앗!”

“어딜!”

천무류가 다시 시위에 폭시를 걸어 당겼다.

패애애애앵!

쒜에에에에엑, 꽈아아아앙!

이번에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폭시가 그대로 계단 입구에 떨어졌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면서 비명과 함께 무인들이 무참하게 나가떨어졌다.

* * *

“아오, 저 병신, 저거! 호위를 하라 했더니 업혀서 들어가? 내가 돌아가면 요절을 내버리든지 해야지!”

수정구를 통해 무림맹에서 벌어지는 일을 살피던 남궁천이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그는 지금껏 옥안영오를 통해 맹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후우, 그래도 천만다행입니다.”

곁에 있던 손우곤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하자,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보다 아슬아슬했지만, 어쨌든 일차 고비는 넘겼네. 이제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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