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5. 풍전등화
파바바밧!
청풍과 덕양이 남궁검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청풍의 경공술은 마치 구름을 밟는 듯 신묘한 움직임의 연속이었고, 덕양의 검법은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맹한 힘이 느껴졌다.
쉬까앙!
쒜에에엑! 쩌엉!
촤츠츠츳!
강맹한 일검을 받아낸 남궁검이 뒤로 대여섯 장이나 밀려났다.
하나 숨 돌릴 틈 따위는 없다.
파라라라라!
어느새 옆으로 이동한 것인지 청풍이 장삼 자락을 펄럭이며 새처럼 날아들었다.
남궁검이 얼른 허리를 젖히고는 재빨리 검을 내지르며 반격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다시 덕양이 끼어들었다.
투까앙!
쒜에에엑!
“……!”
파라라라라!
이번에는 남궁검이 몸을 눕히면서 빠르게 회전했다.
찌이이이익!
덕양의 검신이 남궁검의 옷깃을 찢어내면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펄럭, 펄럭!
바람결에 나부끼는 옷자락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았다.
타닷!
중심을 잡고 멈춰 선 남궁검이 심호흡을 하고는 허리춤까지 흘러내린 장삼 자락을 거칠게 찢어버렸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탄탄한 근육질 몸이 달빛 아래 훤히 드러났다.
“과연 무림칠성이군.”
남궁검이 검파를 고쳐 쥐며 말하자, 청풍과 덕양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노려보기만 했다.
두 사람은 내심 놀란 상태였다.
최근 성취를 이룬 것으로 보이긴 했으나 무림칠성 둘을 상대로 이만큼이나 버틸 줄은 몰랐기에.
하나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남궁검이 외원으로 나온 지금이 손을 쓰기에 가장 적기다.
파바밧!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을 박차며 남궁검에게 쏘아지듯 날아갔다.
역시나 먼저 다다른 것은 청풍.
쒸에에엑!
그의 검이 하늘을 가르는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그 뒤를 이어 덕양의 검도 빛의 속도로 날아들며 남궁검의 방어를 뚫으려고 했다.
타닷!
발끝으로 땅을 찍어 찬 남궁검이 허공으로 붕 떠오른 순간, 청풍의 품에서 암기 두 자루가 날아갔다.
쉬쉬이이잇!
따당!
곧이어 덕양이 부드러운 바람처럼 다가와 날카로운 살기를 쏟아냈다.
까가가강! 깡깡!
그야말로 숨 쉴 틈 없는 공방전.
청풍과 덕양이 번갈아 가면서 쏟아붓는 검격은 절대고수의 영역에 이른 남궁검조차도 눈으로 좇기 힘들 지경이었다.
때문에 남궁검은 일일이 모든 공격에 대응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폭풍 같은 공격을 감당하면서 태풍의 눈이 되었다.
주변에서 휘몰아치는 변초와 허초는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몸에 닿는 것들만을 쳐낸다.
즉, 청풍의 검봉이 살갗을 찌르고, 덕양의 검봉이 피부를 가를 때만 반응한다.
피츗! 까앙!
피츗! 따앙!
핏물이 흩뿌려지면서 남궁검의 아랫도리가 벌겋게 물들어간다. 탄탄한 상체에도 자잘한 검상들이 생기면서 피에 젖어간다.
어쩔 수 없다.
상대는 둘 다 무림칠성이다.
상처 하나 없이 깔끔하게 둘을 막아내기란 애초에 불가능이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수밖에.
하나 뼈를 취하기에는 적의 기민한 움직임을 쫓기가 역부족이다.
죽지 않고 살검을 막아내는 것만도 다행인 상황.
피츄츗!
투까깡!
마침 청풍의 검봉이 가슴을 찌르고 덕양의 검봉이 등을 찌르던 그 순간, 남궁검이 옆으로 몸을 물리면서 검을 내려쳤다.
가슴과 등이 찢어지면서 상처가 생겼지만 이 정도로 아픔 따위를 느낄 여유는 없다.
다음 순간,
파라라라라라!
남궁검이 돌개바람처럼 회전하며 솟구쳐 오르자, 마치 한 마리의 용이 몸을 뒤틀며 승천하는 것만 같다.
푸른 기운이 그의 몸을 감싸면서 비상했다.
따다다아앙!
촤츠츠츠츳!
멀찍이 밀려 나간 청풍과 덕양이 다시 바닥을 차며 날아들었다.
‘잠시의 쉴 틈도 주지 않는군!’
남궁검이 어금니를 꽉 깨문 채 청풍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최대한 공력 대결은 피해야 한다.
한 줌의 공력도 아껴야 둘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 테니.
쉬캉!
검신이 서로 빗겨 맞으면서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는 사이 덕양의 검이 바람에 흩날리는 가을 단풍처럼 어지럽게 날아든다.
까가가가가강!
피츄츗!
남궁검의 굵직한 팔뚝을 따라 핏물이 터져 나온다.
“크읏!”
일순 균형을 잃은 남궁검이 비틀거리는 찰나, 청풍이 바람을 탄 구름처럼 날아들었다.
쒸에에에엑!
절체절명의 순간!
떠어어어어엉!
촤츠츠츠츠츠읏!
갑자기 불쑥 나타난 그림자가 청풍의 일검을 막아내는 것이 아닌가?
“헉, 헉, 헉……! 니미럴, 더럽게 아프네.”
거칠게 말을 뱉은 자는 다름 아닌 백무극.
그가 부들부들 떨리는 팔에 힘을 잔뜩 주고는 칼을 움켜쥐었다.
확실히 무림칠성은 달랐다.
단지 일격을 막아냈을 뿐인데도 양팔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프다.
솔직히 이 상태라면 칼을 휘두를 수도 없을 듯하다.
하지만 그런 속내가 드러나서는 안 된다.
“빌어먹을 영감탱이들! 두 사람이 한 명을 협공하다니! 비열하기 짝이 없네! 카아아악, 퉷!”
백무극의 발악 같은 외침에 덕양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랬구나. 그런데 이제 네가 왔으니 머릿수가 맞구나.”
“흥! 나 같은 새파란 놈을 쪽수에 넣어줘서 퍽이나 고맙소.”
그때 청풍이 일갈을 터뜨리며 백무극에게 날아갔다.
“어린 녀석이 혓바닥이 길다!”
쒜에에에엑!
“헙!”
백무극이 어금니를 부서져라 깨물고는 도를 들어 올렸다.
쉬따아아앙!
막았다.
하지만 막은 것이 진정 막은 게 아니다.
슈우우우우우욱, 꽈다아아앙!
그대로 포탄처럼 튕긴 백무극이 버드나무에 처박히면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꾸구궁…… 쿠웅!
밑동이 부러진 버드나무가 그대로 몸을 꺾으며 육중한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단 일격에 의식을 잃어버린 백무극이 그대로 버드나무 아래에 깔렸다.
“극아!”
남궁검의 부름에도 백무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남궁검이 표정을 굳히고는 두 사람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의 전신에서 살기 섞인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청풍, 덕양! 이것이 그대들의 정의인가!”
“맹주, 이 비극은 당신의 사리사욕과 고집 때문이라는 걸 모르겠소? 애초에 순순히 물러났다면 저 아이가 저런 처참한 꼴을 당하지도 않았을 거요.”
“닥쳐라! 그 더러운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라!”
파앙!
남궁검이 일갈을 터뜨리면서 그대로 청풍을 덮쳐갔다.
“……!”
청풍의 눈이 커졌다.
‘아직도 이만한 힘이 남아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와는 분명 다른 공격.
적어도 남궁검이 이번 일격에 모든 힘을 쏟아붓는 것은 분명했다.
“어딜!”
청풍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공력을 극한으로 끌어 올려 맞섰다.
쩌어어어어엉!
마침내 검신이 서로 부딪치면서 기파가 사방으로 훅 불어 나갔다.
“맹주!”
덕양이 다급히 달려오자, 남궁검은 그대로 몸을 날려 전각 기둥 뒤쪽으로 몸을 빼냈다.
슈카앙!
덕양이 휘두른 검에 기둥이 통째로 잘려 나가자, 전각이 앓는 소리를 내며 기울어져 갔다.
꾸구구구웅……!
콰앙! 쾅!
검신을 들고 싸우는데도 마치 벽력탄이 터지는 것만 같은 소리가 연신 울려댔다.
쿠구궁……! 쿠궁!
전각 아래에서 사투가 벌어지니, 애꿎은 전각만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마침내 세 사람의 격투를 견디지 못한 전각이 어느 순간 육중한 소리를 울리며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쿵! 쿠웅!
그 바람에 주변에서 싸우던 수하들도 멈칫거리고는 무너진 전각 쪽을 돌아보았다.
잠시의 소강상태가 이어지던 끝에 마침 세 사람이 무너진 잔해더미를 뚫으며 밤하늘로 솟구쳤다.
타타타타탕! 티티팅!
마치 폭죽처럼 불꽃이 터지며 솟구치는 광경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청풍과 덕양의 합격술은 점점 호흡이 맞아가고 있었다.
마침내 두 사람의 일검을 각각 받아낸 남궁검이 그대로 튕겨 나가면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슈우우욱, 콰당!
“맹주!”
여신우가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 질렀다.
하지만 정혜가 그 앞을 막아섰다.
“흥! 어딜 가시려고?”
“끄음.”
여신우가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황이 좋지 않다.
내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완전히 차단됐다.
어지간하면 뚫고 가보겠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다.
‘제길, 언제 이렇게 많아진 거야?’
게다가 무당파 문도들까지 가세해서 인산인해다.
남궁검 쪽을 슬쩍 돌아보니 역시나 무림칠성 둘을 동시에 상대하느라 기력이 다한 듯 보였다.
어깨를 들먹이는 것이 두 다리로 서 있는 것도 정신력에 가까운 상황이리라.
‘이대로면…… 골치 아프게 됐군.’
뭐, 어떻게든 이 엿 같은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을 방법은 있다. 다만 다수의 수하들을 잃고 무림맹을 등진다면 아마…….
‘련주한테 쌍욕을 처먹겠지.’
애초에 이 싸움에 끼어들지 말았거나, 끼어들었으면 이겼어야 한다.
련주는 그런 성격이니까.
“젠장! 괜히 나섰네!”
여신우가 신경질적으로 말을 뱉고는 바닥을 차며 달려갔다.
* * *
‘큰일이다. 이대로면 맹주님이…….’
내원 성벽에서 외원을 내려다보던 유백랑은 저도 모르게 엄지손톱을 이로 물어뜯었다.
남궁검이 완전히 고립된 상황.
무림칠성이 둘이나 한꺼번에 덤비니 제아무리 성취를 이룬 남궁검이어도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적의 머릿수가 너무 많다.
활이나 석궁을 쏘려고 해도 적아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어서 그마저도 어렵다.
물론 퇴로를 차단한 무리들에게만 집중 사격한다면 안 될 것도 없지만…….
‘효과가 미미하다. 어쩌지?’
그때 마침, 어둠을 가르면서 한 인영이 날렵하게 옆으로 내려섰다.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얼른 돌아보니 어느새 비량이 옆에 서서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 대주! 지금 맹주님이 수세에 몰려서 위험한 상황이오!”
“이런! 내가 먼저 가보겠습니다!”
비량이 바닥을 차며 날아가려는데, 유백랑이 얼른 그를 붙들었다.
“잠깐! 지금 대주께서 가봐야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소!”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비량이 평소의 그와는 어울리지 않게 신경질적으로 외치자, 유백랑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을 해결해 줄 사람은 그분뿐일 것 같소. 대주께서 그분을 불러와 주시오.”
* * *
촤아아악!
“크읍!”
검신이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과 동시에 남궁검이 몸을 뒤틀면서 물러났다.
뚝…… 뚝……!
검을 쥔 그의 손을 타고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이제는 정말 일검의 무게가 천근만근이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자신을 돕던 혈검단원들이 완전한 수세에 몰려 궤멸직전인 상황.
“이거 미안하게 됐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순간, 청풍과 덕양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맹주!”
“그만 편히 가시오!”
쒜에에에에에엑!
찰나!
“헛!”
“엇!”
매섭게 달려들던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방향을 돌아보고는 얼른 바닥을 차며 튕기듯 물러섰다.
다음 순간!
꽈아아아아아앙!
벽력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리면서 두 사람이 달려들던 길 복판에 움푹 구덩이가 생겼다.
청풍이 눈을 치뜨고는 내원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패력궁!”
쒜에에에에엑!
패력궁이 날린 두 번째 화살이 빛살처럼 날아들었다.
떠어어어어어어엉!
촤츠츠츠츠츠츠츠츳!
검을 들어 막은 청풍의 몸이 무려 십여 장이나 미끄러졌다.
그는 양팔과 다리가 저릿하게 아려오는 것을 느끼면서 어금니를 꽉 씹었다.
‘도대체…… 우 원주는 뭘 하고 자빠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