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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공검제-435화 (434/508)

435. 성동격서聲東擊西

“훅, 훅, 후욱……!”

윤종승은 암벽을 짚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세상이 일그러져 보인다.

마치 바닥에서 신기루가 올라오듯이 공간이 묘하게 비틀린다. 피를 흘리며 달려오는 자들은 점점 이상한 형상으로 변하다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다.

두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에라도 피눈물을 쏟을 것만 같다.

“이익!”

짜아악!

윤종승이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뺨이 금세 발갛게 부풀어 올랐다.

괴물처럼 변하던 무인들의 모습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직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이 이 동굴을 이용해서 빠져나가야 한다.

윤종승은 팽수혁과 함께 숨은 통로를 찾기 위해 모든 암벽을 샅샅이 살폈다.

그러다가 암벽 일부가 무너져 내린 흔적을 발견하고는 폭렬갑을 이용해서 돌무더기를 날려 버린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암벽에 뻥 뚫린 동굴이 나타났고, 지금은 적랑단원들과 당가의 무인들, 그리고 백옥지단의 무인들이 이곳을 통해 대피 중이었다.

각 대주들과 당예설이 적무를 돌아다니며 엄호했고, 팽수혁과 윤종승이 동굴 입구에 서서 마인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지켰다.

문제는 적무를 상당히 들이켠 탓인지 윤종승의 환각 증세가 점점 심해진다는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주들과 당예설의 인솔하에 빠른 대피가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스스스슷!

“종승! 우측이다!”

순간 팽수혁이 버럭 소리쳤다.

벽을 짚은 채 심호흡하던 윤종승이 얼른 돌아서면서 반사적으로 일장을 뻗었다.

슈우우우욱! 퍼어어엉!

폭음과 함께 대검을 휘두르던 두건 사내가 멀찍이 날아갔다.

아마 상대는 아랫배에 붉은 연꽃이 피어난 채로 절명했으리라.

“헉, 헉, 헉……!”

숨을 참아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이미 적무를 상당히 들이켠 탓인지 호흡 조절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

그때 윤종승의 귓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비겁자.”

“……!”

윤종승이 몸을 홱 돌리면서 일장을 뻗었다.

퍼엉!

공기만 때린 손바닥이 바르르 떨린다.

다시 귓가에 비웃음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린다.

“천하의 비겁한 새끼.”

“누구냐!”

윤종승이 버럭 외치고는 휙 돌아섰다. 역시나 붉은 안개만 짙게 깔려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흐흐흐흐.”

“후후후후.”

“크크크크.”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울린다.

그 웃음은 분명 윤종승을 향한 것이었다.

스르르르.

마침 적무 너머로 희미한 그림자가 보인다.

“저건…… 나?”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림자. 한쪽 입매를 틀어 올리고는 어딘지 야비한 미소를 짓는 상대는 틀림없이 윤종승 자신이었다.

윤종승이 눈을 크게 뜨자, 또 다른 윤종승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꼴값 떨지 말고 너답게 행동해. 네가 무슨 대주야? 제 몸 하나 건사하지도 못하는 새끼가. 너 같은 멍청한 새끼가 대주를 하니까 수하들이 죽어나가는 것 아니냐? 부대주가 죽은 건 네가 이끄는 적랑사대 뿐이라고.”

“……!”

“그 말이 맞아. 넌 그저 병신 새끼다. 네가 호구 취급당하기 싫어서 날 괴롭혔지? 내가 벌써 잊은 줄 알았냐?”

“남궁천……?”

어느새 왼편에는 남궁천이 나타나 있었다.

저벅저벅…….

이번엔 다시 오른편 끝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아버지 윤첨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들아. 너는 내 피를 이었다. 너는 결코 협객이 되지 못할 피를 이어받은 것이다. 너도 이 아비가 얼마나 못난 인간인지 사실은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너 역시 어쩔 수 없다. 정의로운 척은 이제 그만하자꾸나.”

“아버지…….”

“클클클.”

“후후후.”

“흐흐흐.”

세 사람이 웃으면서 윤종승에게 점점 다가온다.

윤종승이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다가 암벽에 등이 닿으면서 멈췄다.

“아니야…… 나는 달라질 거야.”

“개소리 집어치워.”

“정해진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거야.”

“너답게 혼자 살길이나 찾아.”

세 사람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하나로 겹쳐진다.

이윽고 세 사람이 완전히 융합되면서 하나의 존재가 되자 거대한 괴물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성별을 특정할 수 없는 괴이한 목소리로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비겁자. 그것이 너의 운명이다!”

“닥쳐어엇!”

윤종승이 두 눈을 질끈 감으면서 괴물을 향해 재빨리 혁련장을 뻗어냈다.

슈우우우욱!

찰나지간 달려들던 괴물이 몸을 빙글 돌리며 피해냈다. 곧이어 녀석이 커다란 앞발을 휘둘러 윤종승 목을 노렸다.

“크읏!”

파바밧!

연거푸 바닥을 차며 물러나자 괴물의 앞발이 그대로 암벽을 때렸다.

콰앙!

파편이 튀어 오르면서 윤종승이 팔을 들어 올리는 사이, 이번엔 기다란 꼬리가 날아들면서 뺨을 철썩 때리는 것이 아닌가?

고개가 홱 돌아가는 순간 윤종승은 보았다.

상대는 괴물이 아니라 팽수혁이라는 걸.

팽수혁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 멍청한 새끼야! 정신 안 차려? 자꾸 호흡 쓰게 만들 거냐!”

“아…… 그 괴물은……?”

“뭔 헛소리야, 아까부터! 나도 이제 호흡이 떨어졌으니 말은 못 해! 정신 차려!”

“끄음. 미안. 나…… 이제 한계인 것 같아.”

윤종승이 이마를 짚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전신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무엇보다 분한 것은 자기 손으로 동료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런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

호구가 되기 싫어서 단짝 친구였던 남궁천을 괴롭히지 않았던가?

자꾸만 그 시절의 어리석은 자신이 떠오른다.

‘다시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윤종승이 입술을 질끈 씹는데, 마침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상자들까지 다 대피시켰다! 이제 너희들도 대피해라!”

손우곤이었다.

그의 양어깨에는 피를 줄줄 흘리는 적랑단원들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팽수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윤종승의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고 눈짓과 손짓으로 동굴 입구를 가리켰다.

대피하자는 뜻.

윤종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적무 너머를 슬쩍 돌아보았다.

이곳으로 달려오는 놈들의 기척이 느껴진다.

파바밧!

팽수혁이 먼저 바닥을 차면서 동굴 안쪽으로 달려갔다. 한참을 달리던 팽수혁이 멈칫거리고는 돌아보았다.

‘뭐 하는 거야, 이 새끼! 왜 안 와?’

팽수혁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되돌아가는데, 마침 저만치 입구에 서 있는 윤종승이 보였다.

“이미 난 글렀으니까 가라!”

‘뭐? 저 미친……!’

“내가 여기 남아서 다 조져놓을게!”

“아니, 야이 미친……!”

하지만 팽수혁은 말을 마저 이을 수 없었다.

양팔을 활짝 펼친 윤종승이 동굴 벽에 장력을 폭발시켰기 때문이다.

꽈꽈아아앙!

고막을 터뜨려 버릴 것 같은 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동굴 천장과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안 돼애앳!”

팽수혁이 소리쳤지만 이미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천장은 점점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이런 젠장!”

얼른 돌아선 팽수혁이 돌더미에 깔려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나니 비로소 안전한 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동굴 입구는 이제 완전히 꽉 막힌 상태.

마침 앞서서 달려갔던 유현이 돌아와서 수신호와 눈빛으로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윤종승이 혼자 남아서 입구를 봉쇄했어.’

‘그럼 어서 갑시다. 희생이 헛되지 않게.’

의외로 빠른 대응력에 팽수혁이 눈살을 슬쩍 구겼다.

‘실리적인 것도 좋지만 너 너무 흑화했단 말이야.’

물론 그런 표현까지 애써 전하지는 않았다.

한편 윤종승은 동굴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서는 손을 털고 돌아섰다.

“으하하하하하!”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리자 동굴 입구에서부터 쩌렁쩌렁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르르르르.

저벅저벅…… 저벅저벅……!

무너진 동굴 입구로 적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모두 기괴하게 생긴 괴물들이다.

두 눈을 뜨고 마주 보기도 힘들 정도로 역겹게 생긴 것들.

팡! 팡!

윤종승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때리며 호기롭게 외쳤다.

“좋아, 이제 다 덤벼! 이 새끼들아! 괴물이든 뭐든 다 박살 내주마!”

파바바밧!

순간 괴물들이 윤종승을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들었다.

콰콰콰콰콰콰아앙!

자욱한 적무 속에서 요란한 폭음이 연거푸 들려왔다.

* * *

까강!

촤촤촤촤촤아악!

벽라검이 춤을 추자 남궁천에게 달려 들었던 마인들이 일제히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남궁천이 손을 꿈틀거리고는 말했다.

“이런 감각 오랜만이네. 모처럼 대량의 피맛을 보는 기분 말이야.”

“제법이군.”

적혈마가 주변에 쓰러진 마인들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남궁천이 씨익 웃으며 저만치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마혈진인지 뭔지 믿고 여유를 부리나 본데…….”

“…….”

“네 생각보다 우리 애들이 좀 별종이라서 말이야. 방금 폭음 들었지?”

“…….”

“그게 윤종승이라고. 용천관 공식 호구였던 새끼거든? 그런데 이놈이 좀 똘끼가 충만해. 네놈들이 무슨 짓을 했든 그 이상의 악바리 근성을 보여줄 거란 말이지.”

“동료들을 믿는 건가?”

피식.

남궁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믿긴 뭘 믿어? 세상에 믿을 게 나밖에 없다는 건 소싯적 깨달은 몸이시다.”

“하면?”

“내 눈을 믿는 거지. 그놈들의 근성과 투지를 알아본 내 눈.”

적혈마가 빙그레 웃었다.

“하면, 그 눈이 없어질 땐 뭘 믿을지 궁금하군.”

피잉!

순간 적혈마의 손가락에서 탄지공이 발사됐다.

남궁천이 얼른 고개를 슬쩍 틀면서 피하자, 그 틈을 타서 적혈마의 신형이 날아들었다.

쉬이이이잇!

쩌엉!

적혈검과 벽라검이 서로 부딪치면서 다시 요란한 금속성이 울렸다. 잠시 멀어졌던 두 사람이 빠르게 엉겨붙었다.

따다다다당!

그야말로 화려한 춤사위를 보는 것만 같다.

기술이 궁극에 이르면 예술이 된다던가?

두 사람의 사투는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에 있었다.

남궁천은 검을 휘두르면서 모처럼 무아지경 속으로 젖어 들어갔다.

모처럼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적을 만났다.

게다가 초견파공안으로 살펴본 그의 운기는 독특하기 짝이 없다.

마공이라서 그럴까?

하긴. 전생에서도 마공을 따라 해본 적은 거의 없으니까.

이유는 간단하다.

마공을 함부로 운기하다가 자칫 주화입마에 빠질 것을 염려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편안하군.’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남궁천은 천마의 기운을 품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적혈공을 따라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다.

어디 그뿐인가?

단순히 적혈공이 아니라, 창벽공으로 다스려지는 적혈공이다.

오히려 순수한 적혈공보다 더 안전하고 보호되는 느낌.

그러다 보니 적혈마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이놈…… 왜 아직도 제정신인 거지?’

초견파공안으로 자신의 적혈공을 따라 한다면 필시 정신에 문제가 생겨 미칠 것이라 여겼다.

애초에 마공을 익힌 자라도 자신의 적혈공은 함부로 손댈 수 없다.

굉장이 예민한 무공.

한데 남궁천은 마치 제 것인 양 적혈공을 부린다.

그렇게 한참이나 검을 섞던 적혈마가 일순 눈을 부릅떴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붉은 눈동자로 검격을 퍼붓는 남궁천.

한데 그 뒤로 아지랑이처럼 기운이 올라오더니 뭉게뭉게 뭉치면서 하나의 형상을 희미하게 나타내지 않는가?

마침내 남궁천의 배후에 희미하게나마 존재하는 기운을 보고는 적혈마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소리쳤다.

“너…… 설마……?”

틀림없다.

저건 천마의 기운.

남궁천의 배후로 천마혼이 어렴풋이 나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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