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28화 (427/508)

428. 닥쳐라, 이노옴!

“재미있는 거라니…….”

위종악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때 당예설이 한 걸음 나서며 말을 가로질렀다.

“단주, 이게 갑자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지단에 문제가 생겼어.”

“네, 들었어요. 백묘가 도망갔다죠? 그래서 제가 지금 지단주님께 도움을 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남궁천이 씨익 웃으며 위종악을 보았다.

“사실 이번엔 좀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죄수가 탈옥을 했으니까 지단주는 엄중한 문책을 받아야 마땅하죠. 이건 실수라는 말로 넘어갈 사안이 아니거든요. 정말 대가리가 깨지도록 박거나, 뒈지도록 처맞아야 하는 사안이랄까?”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이 상황에서도 농을 던지는 거요?”

위종악이 기분 나쁜 투로 묻자, 남궁천이 손을 저었다.

“에이, 농이라니요. 다 지단주님을 도와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이대로면 진짜 지단주님의 대가리가 깨질 수도 있으니까요. 다시 말해 제가 지단주님의 대가리를 지켜 드리겠다는 이야깁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듣자 하니 백묘가 달아난 시각이 비슷하더라고요.”

“뭐가 말이오?”

“뭐긴요. 이놈들이 절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시각이죠. 이쯤 되면 뭔가 감이 팍 오지 않습니까?”

그러자 당예설이 흠칫거리고는 나섰다.

“설마 그럼 이자들이…….”

“예, 제가 어제 말씀드렸죠? 이놈들은 원래부터 제 호신위가 아니었어요. 오다가 주운 놈들이죠. 그런데 역시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니, 그 말이 거기에 어울리는 것 같진 않은데.

당예설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남궁천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갔다.

“처음부터 딱 이상하다 싶었죠. 제가 이래 봬도 눈칫밥이 수십 년이라…….”

“허세는 그쯤 하시고. 그래서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요?”

위종악이 잔뜩 날 선 반응을 보이자, 남궁천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어쩌긴요? 이제부터 괴롭혀야죠.”

“괴롭혀……?”

그러자 남궁천의 손에 머리채가 잡힌 두 혈귀쌍검이 마구 흐느끼면서 눈알을 굴려댔다.

그야말로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궁천이 광기마저 서린 얼굴로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제가 학관에서 호구로 지내던 시절, 너무 할 게 없어서 집에 처박혀서 책을 많이 봤습니다. 그때 우연히 ‘환상적인 고문의 기술’이라는 책을 봤죠. 어려서부터 정말 시험해 보고 싶었거든요. 이제 드디어 그걸 할 수 있다니 너무 기분이 좋아요.”

“도대체 이들을 고문해서 뭘 알고자 하는 거요?”

“그야 당연히 공범 아니겠습니까? 이대로면 누가 백묘의 탈옥을 도운 건지도 모르게 되잖아요. 그럼 지단주님은 책임을 져야 하고, 그럼 대가리가 깨지도록 박아야 하고. 그러니 이놈들을 조져서 공범을 찾아내고, 지단주님 대가리도 지키는 겁니다.”

이익, 그놈의 대가리, 대가리……!

위종악이 어금니를 뿌득 갈았지만, 겉으로 내색은 하지 못했다.

“그럼 어느 놈부터 해볼까요?”

“…….”

“……?”

“나한테…… 묻는 거요?”

“예.”

“그걸 왜 나한테…….”

“주인이니까요.”

“무슨 망발을! 내가 어째서 이들의 주인이란 말이오? 이들의 주인은 단주가……!”

“에이, 자꾸 제 말을 오해하시네. 여기 지단의 주인이잖아요. 백옥지단 안마당에서 고문을 하는데, 당연히 지단주님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나요?”

“끄음.”

그제야 위종악이 침음을 흘리고는 혈검과 귀검을 번갈아보았다. 두 사람 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선택하지 말아달라는 눈빛을 보내왔다.

‘도대체 무슨 짓을 어떻게 당했기에 이들이 이렇게까지 겁을 먹은 건가?’

하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들이 만약 고문을 당하다가 고통을 참지 못해 공범을 불어 버린다면? 그래서 자신이 은마령이라는 게 들켜 버린다면?

‘설마…… 그럴 리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지단주님?”

남궁천이 다시 한번 재촉하자, 위종악이 마지못해 혈검을 가리켰다.

“우선 저자부터 해봅시다.”

그와 동시에 귀검의 얼굴에 안도감이 서렸고, 혈검의 표정은 거무죽죽하게 물들어 버렸다.

‘미안하네! 상황이 어쩔 수 없네.’

‘아무리 그래도 왜 하필 저부텁니까?’

미안함과 원망이 담긴 눈빛이 잠시 오고 갔다.

남궁천이 귀검을 아무렇게나 밀쳐내고는 혈검의 머리채만 움켜쥐고는 말했다.

“자, 그럼 당첨! 그럼 이 녀석부터 괴롭혀 보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익힌 고문 기술은 아무리 지독한 놈이어도 일각을 참지 못하고 사실을 불어 버린다는 극악무도한 기술이니까요.”

“그런데 고문을 할 필요가 있긴 하오? 공범이라고 한들 이미 달아나고 없다면…….”

“아뇨, 전 그 개새끼가 여기 있다고 확신합니다.”

남궁천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은 위종악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남궁천의 서늘한 눈을 마주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설마 내 짓이라는 걸 아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다.

그 시각 남궁천은 혈귀쌍검을 막고 있었을 테니까.

남궁천이 주변을 슬쩍 둘러보며 말했다.

“이들이 절 공격하는 사이에 백묘가 탈옥했어요. 이게 과연 우연일까요? 그렇다면 왜 여기에 도착해서야 백묘를 탈옥시켰을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으려면 여기밖에 없었던 거죠. 그 이유는 이곳에 와야만 백묘를 탈옥시킬 자가 있다는 뜻이고. 과연 그게 누굴까요?”

꿀꺽……!

남궁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훑자, 묘한 긴장감이 장내에 내려앉았다.

마침 남궁천의 눈빛을 받은 부지단주가 화들짝 놀라더니 소리쳤다.

“지단주님! 저, 전 아닙니다! 저는 정말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믿어 주……!”

짜악!

순간 부지단주의 뺨이 휙 돌아갔다.

위종악이 미간을 좁히고는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 차려라. 누구도 자네라고 하지 않았다.”

“아, 예. 죄송합니다!”

“남궁 단주. 만약 당신 생각이 틀렸다면 어쩔 것이오? 이런 소란을 피우면 자칫 서로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 수 있소. 하면 결속력이 흐트러질 텐데.”

“결속력이 흐트러지기 전에 범인을 색출하면 되죠. 그럼 오히려 더 조직력이 굳건해질 겁니다. 그런데…… 되게 기분 나빠 보이시네요. 혹시 찔리시는 거라도?”

“닥치시오! 그저 내 식구가 의심받는 게 불쾌할 뿐이외다!”

이쯤 되자 당예설도 미묘한 기류를 파악하고는 슬쩍 나섰다.

“지단주, 우선은 남궁 단주의 제안을 받아들이지요. 찜찜한 기분을 남기는 것보다는 확실히 털고 가는 게 낫겠어요.”

“흥, 좋소. 두 분 뜻이 그렇다면 어디 해보시오.”

그러자 남궁천이 활짝 웃으며 혈검의 머리채를 다시 움켜쥐었다.

“그럼 지금부터 백묘를 빼돌린 개새끼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감히 내가 애써서 여기까지 데려온 백묘를 남몰래 탈옥시켜 준, 이 씨 발라 먹을 새끼. 잡히기만 하면 아주 그냥 살가죽을 홀라당 벗겨서 소금을 친 다음에 저기 신무 지역의 사막에다가 집어 던질 새끼. 그 개망나니 같은 새끼가 누군지 지금부터 알아보죠.”

“끄음…….”

위종악이 신음처럼 침음을 흘리는 사이 남궁천이 고개를 숙이고는 혈검을 마주보았다.

혈검의 안면 근육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그만……! 제발 그만……!”

“자자, 진정하고. 이제 우리가 솔직해질 시간이다. 그럼 시작하자. 누가 공범이지?”

푸욱.

순간 남궁천의 손가락이 혈검의 늑골을 파고들면서 푹 파묻혔다. 곧이어 끔찍한 비명이 장내에 가득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아아압!”

단순히 손가락이 늑골을 부러뜨리며 파고 든 게 아니다. 거기에 공력을 실어서 혈검의 전신 혈맥을 마구잡이로 휘젓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오체분시를 당하는 고통이 뇌리를 들 쑤셨다.

푸확!

마침내 혈검의 눈이 뒤집히면서 쌍코피가 터져 나왔다.

“크륵…… 끄르르륵……! 크르륵!”

입에 거품을 물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고통스러운 모습이 어찌나 처절한지 당예설조차도 시선을 돌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눌러 참았다.

한편 위종악은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저 미친 놈…… 도대체 사람을 어찌 저 지경까지……!’

정말이지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 아닌가?

혈검의 늑골에 손가락을 파묻은 남궁천은 묘한 광기 서린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 같았다.

“이야아, 진짜 대단하네. 이렇게까지 잘 버티다니!”

남궁천이 진심으로 감탄한 듯 감탄을 터뜨린다.

하지만 웃음기는 여전하다.

정말이지 악마가 따로 없다.

“그르르륵……!”

혈검이 어찌나 어금니를 세게 물었는지 입가에서 피가 흐르는가 싶더니, 부서진 이가 떨어져 나왔다.

“끄아아아아아아!”

혈검이 목을 꺾어들고 울부짖었다. 이제 눈에서는 피눈물마저 흐르고 있었다.

“그르르륵……!”

마침내 입에 거품을 문 혈검이 그대로 의식을 잃더니 축 늘어지고 말았다.

늑골에서 손을 뽑아낸 남궁천이 손바닥을 툭툭 털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에이, 기절했네요. 아깝네. 조금만 더 공력을 잘 조절했으면 계속 깨워가면서 할 수 있었는데.”

“이익, 지독한……!”

위종악이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나서며 이를 부득 갈았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위종악이 얼른 말을 얼버무렸다.

“참으로 지독한 놈이오. 저런 고문을 끝까지 견뎌내다니.”

“그렇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조금 있다가 깨우면 되니까요. 그리고 우리에겐 아직 한 명의 협조자가 더 남아 있잖아요?”

남궁천이 씨익 웃더니 귀검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귀검이 연신 도리질을 하며 물러났다.

“어어……! 오, 오지 마! 제발……! 제발 그만……! 크아아아아악!”

다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귀검이 물가에 튀어 오른 생선처럼 팔딱거렸지만, 남궁천은 늑골을 쥔 채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끄아아아악! 끄으으으읍!”

연신 터져 나오는 비명.

이제는 장내에 있던 모든 무인들이 안마당으로 몰려와서 고개를 빼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하나 정말이지 누가 보더라도 눈살이 절로 구겨지는 장면이었다.

“어찌 저리도 잔인한……!”

“배신자를 찾는다고 하던데…….”

“그래도 저건 너무 잔인하지 않나?”

“백묘라는 마인이 탈출했으니, 간자를 색출하긴 해야지.”

무인들이 술렁거리는 와중에도 귀검은 정신없이 비명을 내질러댔다.

그는 시뻘게진 눈으로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위종악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위종악은 알 수 있었다.

귀검은 차라리 죽길 바란다는 것을.

그만큼 남궁천의 고문이 지독하기 때문이리라.

겉보기에는 그저 늑골에 손가락을 파묻고 지그시 누르는 게 전부 같지만, 당하는 자는 사지가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고 있으리라.

그럼에도 기절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남궁천이 계속해서 공력을 불어넣으면서 정신을 깨우기 때문이리라.

그야말로 끝나지 않는 지옥을 겪는 중인 것이다.

이런 식의 고문은 남궁천이 어느 사파 무인에게서 배운 것인데, 전생에 맹원들로부터 정보를 빼낼 때 종종 써먹은 것이었다.

때문에 당예설과 위종악도 이 생경한 고문 현장이 그저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고문이 진행될수록 위종악의 표정은 점점 그늘이 졌다.

‘견뎌내야 한다. 이겨내야 해!’

하나 귀신도 울고 갈 만큼 지독했던 각오도, 몸이 무력해지고 약해지자 점점 무너지기 시작한다.

“끄으으윽……!”

이제 비명을 지르기도 지쳐 버린 듯 귀검이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들었다.

“큭……! 말, 말하겠소…… 제발…… 흑……! 제발 좀…… 그만……! 이제 그만…… 죽여주시오……!”

“……!”

순간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술렁이며 서로를 보았다.

누구보다 표정이 굳은 사람은 위종악.

반면 남궁천은 활짝 웃으며 물었다.

“그래, 내려두면 편해져. 모든 걸 내려두고 말해 봐.”

“백묘를 탈옥시킨 사람은 바로…….”

“……?”

“으아아아압!”

그 순간 느닷없이 기합성이 튀어나오더니 위종악이 달려와 검집째로 귀검의 머리를 내려치는 게 아닌가?

퍼어억!

단 일격에 머리가 박살 난 귀검이 그대로 맥없이 고꾸라졌다.

모두가 경악한 가운데 위종악만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헉, 헉, 헉……!”

“이게 무슨 짓일까요?”

남궁천이 입매를 끌어 올리며 천진한 목소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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