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18화 (417/508)

418. 미끼

후우우웅.

좁은 협곡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사시사철 짙은 안개가 자리를 떠나지 않는 곳.

보기만 해도 음기가 집약되어 있을 것처럼 보이는 이곳을 사람들은 용취곡(龍吹谷)이라 불렸다.

용의 몸통처럼 구불구불 길게 이어진 협곡에 용의 입김 같은 안개가 내내 자욱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데 최근에는 이곳에 또 다른 이름이 붙었다.

바로 혼계곡(魂繫谷).

최근 오 년 사이, 이곳은 인근에서 악명 높은 금역이 되었다.

특히 무공을 익힌 자들은 절대로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곳.

오죽하면 용취곡 입구에는 이런 팻말이 세워졌을까?

그대의 목숨이 귀하지 않다면 기꺼이 용의 먹이가 되어라.

용취곡, 아니, 이젠 혼계곡이 되어버린 이곳으로 무인이 들어서면 십중팔구 귀신에게 홀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워낙 악명이 높은 곳이다 보니 어지간한 무인들은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무공을 익힌 자들은 누구나 호승심이 있게 마련이다. 이따금씩 혼계곡을 들어가서 자신의 용맹함을 증명해 보이려는 자들이 만인의 만류도 뿌리치고 들어가곤 한다.

물론 결과는 실종이다.

과연 용취곡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용의 숨결에 녹아 버린 것일까?

아니면 정말 귀신에게 홀려 이승을 떠나 버린 것인가?

이따금씩 살아서 돌아온 자들이 있긴 하다.

하나 그들의 증언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생환자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없던데요? 여기가 그렇게 무서운 곳이었어요? 그냥 안개만 자욱하던데.”

이러니 용취곡은 최근 강호에서 가장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처척!

용취곡 앞으로 세 명의 무인이 내려섰다.

사천삼귀(四川三鬼)라 불리는 무인들이었다.

쌍도를 쓰는 일귀, 장창의 대가인 이귀, 그리고 사천 제일의 권사인 삼귀.

이들은 정사지간의 무인들로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자들이었다.

온갖 궂은일을 도맡으면서도 무림공적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은 그들의 행적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기 때문.

용취곡 입구를 빤히 바라보던 일귀가 뒤를 힐끗 보며 물었다.

“여기란 말이지?”

“헉, 헉, 헉……! 맞, 맞습니다…… 바로 거깁니다!”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는 자.

그는 사천의 황룡표국 표사였다. 일전에 황룡표국은 부득불 용취곡을 지나게 되었을 때,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자였다.

다만 그 역시 용취곡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자욱한 안개 때문에 표행이 잠시 쉬어갈 때, 으슥한 곳에서 소변을 보고 왔더니 모두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이에 황룡표국은 사천삼귀를 고용해서 이 일에 대해 알아봐 주길 의뢰했다.

일귀가 쌍도를 뽑아 들고는 다른 이들에게 일렀다.

“자, 들어가 보자고. 여기가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용취곡이니까. 살아 돌아오면 우린 영웅이 된다.”

“거, 듣기 좋수다. 이참에 사천삼귀가 아니라 중원삼귀로 명성 좀 알립시다, 형님.”

삼귀의 말에 이귀도 맞장구를 쳤다.

“모처럼 막내가 좋은 말을 했다. 어차피 우리가 삼귀인데 귀신 따위가 나와봐야 뭘 하겠느냐? 안 그렇소? 형님.”

“후후. 옳은 말이다. 그럼 가자.”

일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함께 온 표사도 그 뒤를 바짝 따라붙으면서 주변을 연신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좁은 협곡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사방으로 안개가 자욱해서 정말이지 한 치 앞도 구분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구르르르릉.

협곡 어디에선가 천둥이 울린다.

그 소리가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기지개를 켜는 것만 같다.

표사가 어깨를 움찔거리는데, 마침 앞서 걷던 삼귀가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데 황룡표국은 왜 굳이 이런 곳을 지나간 거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겨우내 폭설 때문에 표행을 많이 미뤘던 터라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 지름길을 이용한 것이지요. 한데 그런 일을 당해 버려서…….”

“재수가 없었군.”

“설마 진짜 귀신의 짓은 아니겠지요?”

“흥! 우리가 사천의 삼귀다. 귀신이 나타나 봐야 우리랑 친구밖에 더 되겠느냐?”

“역시 대협들과 함께 가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표사가 애써 웃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등줄기에서는 이미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긴장감을 느낀 것인지 삼귀가 뒤를 돌아보며 히죽 웃더니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표사 양반.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말라고. 적어도 우리 형님들이 함께 있는 한 귀신 따위는…….”

“삼귀야!”

순간 날카로운 목소리가 안개 속에서 솟아올랐다.

움찔거린 두 사람이 얼른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몇 걸음 옮기지 않아서 두 사람은 이귀가 굳은 듯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삼귀가 얼른 이귀 곁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오? 형님!”

“저기.”

이귀가 눈을 부릅뜬 채로 턱짓을 한다.

삼귀가 자연스럽게 그 시선을 쫓아갔더니 안개 너머로 그림자 하나가 멀뚱히 서 있었다.

그제야 삼귀가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이귀의 등을 툭 쳤다.

“형님도 참. 일귀 형님이잖소. 괜히 사람 놀라게…….”

“뭔가 이상하지 않느냐?”

“뭐가 이상하단 거요?”

삼귀가 눈살을 찌푸리고는 일귀가 보이는 곳으로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일귀의 얼굴이 조금 더 분명하게 보인다.

한데 이귀의 말대로 일귀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허공만 응시하고 있다.

“형님?”

삼귀가 조심스럽게 불렀지만 일귀는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다.

“형님, 거기 서서 뭐 하는 거요?”

삼귀가 조심스럽게 다가갔지만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는다.

“형님?”

저벅……!

삼귀가 다시 걸음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스윽.

일귀의 얼굴이 묘하게 기울어진다 싶더니 그대로 목이 잘려 나가면서 미끄러져 내리는 게 아닌가?

“어엇!”

반사적으로 달려 나간 삼귀가 얼떨결에 굴러떨어지는 일귀의 머리를 받쳐 들었다.

“어어……? 형, 형님이……? 큰 형님이……?”

“삼귀야! 피해라!”

이귀의 외침 소리에 삼귀가 움찔 놀라면서 돌아보자, 일귀의 몸이 바닥에 쿵 쓰러졌다.

곧이어 잘려 나간 목의 단면에서 온갖 시커먼 벌레들이 바글바글 기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꿈틀거리며 기어 나온 벌레들이 이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으어억!”

삼귀가 펄쩍 뛰며 물러나는 순간!

“헉!”

삼귀는 자신의 팔목을 따라 꾸물거리며 기어오르는 벌레들을 확인했다.

잘려 나간 일귀의 머리통에서 기어나온 벌레들이었다.

“으아아악!”

깜짝 놀란 삼귀가 일귀의 머리를 집어 던지고는 제 몸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맨살을 파고들기 시작한 벌레들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크억! 끄아아아악!”

삼귀가 몸부림을 치며 주먹으로 제 가슴과 복부를 마구 쳐댔다. 누가 보면 주화입마에 걸려 미치광이가 된 무인이 스스로 자해를 한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도 시커먼 벌레들은 삼귀의 배꼽과 항문, 그리고 입과 귀를 통해 마구 들어가고 있었다.

“커거걱……! 쿨럭! 쿠웨에에엑!”

시커먼 핏물이 토해졌다.

토사물에는 벌레들이 섞여서 연신 꿈틀대고 있다.

“이, 이귀 형님……!”

삼귀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뻗었다.

이귀가 경악한 눈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이, 이럴 수가……!”

이귀 곁에 있던 표사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벌벌 떨고만 있었다.

마침내 삼귀는 눈알이 안쪽에서부터 녹아들면서 그 구멍으로 시커먼 벌레가 나오기 시작했다.

“끄으으읍! 으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다, 달렷!”

이귀가 몸을 돌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표사도 이귀를 뒤따라 뛰려다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대로 엎어지고 말았다.

콰당탕!

“크헉! 살, 살려주시오!”

“시끄러워! 우선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

“날 두고 가버리면 보상금도 받을 수가 없을 겁니다!”

“이익……! 칫!”

혀를 찬 이귀가 얼른 돌아와 쓰러진 표사를 등에 들쳐 멨다.

“젠장할, 다신 이딴 곳에 들어오면 내가 성을 간다!”

이귀는 체내의 모든 공력을 끌어 올려 내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섬뜩한 기운이 소용돌이치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진 않았다.

호기심 때문에 명줄을 끊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호호호호.

깔깔깔깔.

묘한 공명을 일으키는 웃음소리가 협곡 가득 울렸다.

정말이지 그 웃음소리만으로도 등줄기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여긴 진짜 귀신이 있는 거야. 괜히 혼계곡이 아닌 게야! 오는 게 아니었어!”

이귀가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부지런히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안개는 끝이 없었다.

길을 잃은 것인지 계속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는 기분.

한참 후에야 걸음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는데 유난히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 이 새끼, 지린 거냐?”

“…….”

“왜 말이 없어?”

이귀가 신경질적으로 표사를 내려놓다가 흠칫거렸다.

“어, 언제……?”

표사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하반신은 어디로 간 것인지, 배꼽 아래로 내장이 쏟아져 내려 길게 늘어져 있지 않은가? 자신의 등허리가 축축했던 것은 피범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언제 당한 것인가?

이쯤 되자 이귀도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무공을 익힌 후로 다리에 힘이 풀려서 쓰러질 날이 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건만.

그렇게 넋이 나간 표정으로 죽은 표사를 보는데, 안개 너머로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멍하니 그림자를 보던 이귀가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염병할…….”

츄아아아아악!

순간 뜨끈한 피가 그의 전신에서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아악!”

그리고 긴 비명이 용취곡을 가득 채웠다.

* * *

“한마디로 그 용취곡에서 자꾸 그렇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니까, 귀신의 혼을 달래기 위해서 죄수의 시체를 제물로 바쳤단 말이군요?”

남궁천의 말에 제갈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백옥지단의 설명은 일단 그렇소.”

“하면 처음부터 그런 이유 때문에 백옥지단으로 죄수의 시체를 이송한다고 할 것이지, 왜 갱생묘에 옮긴 척을 한 겁니까?”

“아마도 윤리적인 문제일 거요. 본 맹은 그래도 백도 무림을 대표하오. 명분이 중요하오. 그런 만큼 망자를 욕보이는 짓을 그 누구의 동의도 없이 강행한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했을 거요.”

“하여튼 정파 놈들은 복잡하다니까.”

그러는 너도 정파야.

제갈승이 속내를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물론 이러한 이유는 표면적인 핑계라고 생각하고, 사실 나는 좀 다르게 보고 있소.”

“어떻게요? 전 총군사님 생각이 더 궁금하네요.”

제갈승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가 섭선을 살랑이며 말했다.

“만약 용취곡의 사건도, 뇌옥의 죄수들이 그곳으로 옮겨진 것도. 처음부터 필요에 의한 것이라면?”

“그게 무슨 소리죠? 용취곡 사건을 해결하려고 뇌옥의 죄수들을 제물로 바친다면서요?”

“그러니까 그건 핑계라는 가정하에 생각해 보는 거요. 실은 그저 용취곡에서 무인의 시체를 수집하는 중이라면? 애초에 맹주는 마교와 손을 잡고 있었소. 그러니 이런 상상도 가능하지 않겠소?”

“그러니까 그 말은…….”

남궁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열자, 제갈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일련의 사건들에는 마교가 엮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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