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17화 (416/508)

417. 미끼

남궁천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비량을 돌아보았다.

“걸리는 부분요?”

“응. 무림맹 뇌옥에 갇혔다가 죽은 자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알지?”

“아뇨. 어떻게 처리되죠?”

남궁천이 너무나 당당히 대답하자 비량이 움찔거리고는 말했다.

“정말이지 학관에서 뭘 배운 거냐? 종일 무공 수련만 한 거야?”

“그럴 리가요. 그때는 호구 취급 당하느라 바빴겠죠.”

“끄응. 그걸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할 건 아니잖아.”

“한때 교관님이셨으니, 책임을 좀 통감하시라고요. 생도가 호구 취급 당하지 않게 보호해야 할 의무도 있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래도 좀 억울하네. 내가 교관으로 있을 때 일어난 일이 아니라서.”

비량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남궁천도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답했다.

“학관에서 배운 게 없다고 나무라시기에 투정 좀 부렸습니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뇌옥에 갇혔다가 죽은 죄수들은 어떻게 처리되는 거죠?”

“흐음. 대개는 갱생묘(更生墓)로 보내진다.”

“아…….”

그러고 보니 전생에 어렴풋이 갱생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무림공적으로 내몰린 무인들을 이따금씩 만나게 되면 ‘나는 죽어도 갱생묘에 묻히진 않을 테니까’라는 말을 종종 했었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는데, 그런 뜻이 있었나 보다.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갱생묘라. 한데 갱생묘에 묻히지 않은 죄수들이 있나 보군요.”

“맞아. 정확히 말하자면 갱생묘에 묻혔다는 것으로 명단에 적혀 있긴 해. 다만…….”

“시체가 없다?”

“그렇지.”

비량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새 무덤을 다 파봤어요?”

“애초에 갱생묘는 관리 자체가 부실한 편이야. 실제로 묘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남궁천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림공적으로 낙인찍힌 자들의 묘지다.

무림맹이 시퍼렇게 눈을 부릅뜨고 있을 텐데, 누가 감히 그곳에 와서 명복이라도 빌겠는가?

오히려 지나가다 침이라도 뱉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그러다 보니 천응대가 묘비 몇 개 제거하고 땅을 파본다고 한들 반발할 자들도 없을 터.

“갱생묘로 가야 할 시체. 그리고 명단과 묘비에는 적혀 있지만 사라진 시체. 뭔가 구린 냄새가 나네요. 시체 썩는 냄새인가?”

남궁천이 입매를 비틀며 말하자, 비량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답했다.

“그래서 우선은 천뇌당에 의뢰를 맡겼어. 이번 일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그 결과가 오늘 나왔다는군. 해서 같이 가보려고 왔지.”

“천뇌당이 그 일에 엮여 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지각주가 이미 너한테 보고하지 않았을까?”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지각주는 목숨을 걸면서까지 자신에게 뭔가를 숨길 만한 위인이 아니다.

비량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만약 총군사가 뭔가를 숨긴다면 오히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알 수도 있겠지. 믿을지 말지 결정하지 못한 사람과 아예 벽을 쌓는 것보다는 끊임없이 시험해 보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저도 그쪽입니다. 가시죠.”

남궁천이 씨익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 * *

“두 분, 들어오시오.”

문이 열리면서 총군사 제갈승이 손수 남궁천과 비량을 맞이했다.

천뇌당주이자 총군사 제갈승.

그는 두 사람이 찾아온 용건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시종 차분한 태도였다.

‘총군사가 묵 맹주와 한통속이 아니었다는 건 천만다행인 셈이네.’

물론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남궁천은 제갈승만큼은 묵천악과 한통속이 아닐 것이라고 여겼다.

그건 제갈세가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자신들이 가장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가문.

그들은 타인의 사상에 쉽게 물들지 않는다. 또한 누군가에게 충성을 쉽게 맹세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먼저 나서서 지위를 얻고자 하지도 않는다. 세상 초연한 듯 지내더라도 각종 요직에서 먼저 그들을 찾으니까.

유비가 제갈량을 삼고초려 했듯이 그들은 먼저 굽히며 들어오지 않기에 일부러 모셔와야 한다.

이후에도 그들은 충성을 다하는 신하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지혜로 조언을 해주는 정도의 위치에 머무른다.

바로 그러한 특징 때문에 묵천악도 제갈승을 완전히 포섭하지는 못했으리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머리가 굵을 대로 굵은 자를 수하로 거두는 것이니까.

제갈승은 두 사람보다 앞서 걸으면서 말했다.

“비 대주의 말대로 확실히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소. 팔옥각에서는 죄수가 사망하여 갱생묘로 보냈다고 되어 있고, 갱생묘 기록부에도 분명히 인수한 것으로 적혀 있으나…….”

“시체의 행방은 없다는 거죠? 거기까지는 알고 있어요.”

남궁천의 대답에 제갈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주로 외부 소식에 집중을 하다 보니 내부 사정에 어두웠던 것 같소.”

“그렇다고 해도 등잔 밑이 너무 어두웠던 것 아닙니까? 맹주의 비리부터 시작해서…… 팔옥각에서 죽어 나가는 죄수들까지. 천뇌당의 명성이 아까울 지경입니다만.”

남궁천이 나름 날을 세워서 몰아붙이자, 제갈승이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책임은 통감하고 있소. 하나 묵천악은 수십 년이나 맹주로 입지를 공고하게 다져온 자요. 잘 알겠지만, 그는 지난 수십 년간 백도무림의 하늘이나 다름없었소. 내가 총군사 직을 맡기 전부터 그는 굳건한 맹주였소. 감히 그를 의심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 그런 만큼 묵천악은 심복을 여기저기 심어두었을 거요. 본 당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고. 그러니 내 눈과 귀가 어두웠을 가능성이 높소. 물론, 이 또한 변명일 뿐이오.”

마지막 말을 뱉으면서 제갈승은 다시 한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눈빛을 읽은 남궁천이 슬쩍 입을 열었다.

“은퇴는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그걸 어떻게……?”

“이마에 다 써 있잖아요. ‘아아, 이딴 짓은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 이게 무슨 망신이냐?’ 하고요.”

“그렇게…… 티가 많이 났소?”

남궁천이 피식 웃었다.

“제가 이래 봬도 눈칫밥만 수십 년이거든요.”

‘과장이 심하군. 이제 약관의 나이면서.’

제갈승이 내심 떠오른 속내를 갈무리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남궁천이 과장을 했건 말았건 그의 말대로 그만둘 생각을 하는 중이었으니까.

“사실 갈등 중이긴 하오.”

“책임을 느끼신다면 더욱 그 자리를 지켜서 비틀린 부분을 바로 세워 주세요.”

“…….”

“만약 여기서 그만두시면 묵천악의 비리에 동조한 걸 들킬까 봐 도망가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런……!”

“천뇌당에는 많은 인재가 있을 겁니다. 그런 자들 중 누가 묵천악의 그림자였는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을 거고요. 그러니 총군사께서 도와주시죠. 그거 다 정화시키고 나가면 인정해 드립니다.”

“허허…….”

제갈승이 실소를 흘렸다.

누가 눈앞의 남궁천을 약관의 나이로 볼까?

사람을 다루는 재주가 보통이 아니다.

말투만 바꾸면 산전수전 다 겪은 중년 이상이지 않은가?

그가 물끄러미 남궁천을 보다가 이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심이구려?”

“그럼요. 이 엄중한 시기에 농담 따위는 안 합니다.”

“흐음. 알겠소. 최대한 비 대주에게 협조하겠소.”

“좋습니다. 앞으로는 천뇌당의 인재 중에서 누가 독초인지 가려내는 작업에 보다 집중해 주세요. 바깥의 사정과 정보는 제가 알아서 최대한 해결해 보겠습니다. 아, 물론 외부 정보를 소홀히 하라는 건 아닙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소. 우선 따라오시오. 천뇌당을 제대로 보여 드리겠소.”

걸음을 옮긴 제갈승이 집무실 한쪽에 장식된 장신구를 매만졌다. 그러자 묵직한 소리가 울리면서 집무 책상 뒤의 책장이 스르르 밀려났다.

기관 장치가 작동한 것이다.

제갈승이 앞서 걸었고, 남궁천과 비량이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좁은 계단을 내려가서 복도를 따라가다가 몇 차례 철문을 지나쳤다. 물론 그 철문들도 숨겨진 기관을 작동시켜야 지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문을 열고 들어서니 후끈한 열기가 훅 전해졌다.

남궁천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살짝 벌렸다.

너른 공간에는 책상이 수십 개 놓여 있었고, 역시나 수십 명의 지자들이 온갖 서류를 들고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천장에는 야명주가 빼곡하게 박혀 있었는데, 이곳이 지하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밝은 빛이었다.

“이곳이 지각(地閣)이오. 강호 곳곳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수집하는 곳이지. 지각에서 일차적으로 정보의 진위 여부를 판가름하고, 인각(人閣)으로 보내오.”

그렇게 제갈승이 너른 공간을 지나서 또 다른 금속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곳에서도 역시나 많은 지자들이 자리에 앉아 분주하게 뭔가를 적고 있었다.

“여기는 인각이오. 지각에서 수집해서 진짜라고 판명된 정보만이 인각으로 오지. 인각에서는 다시 정보의 중요도와 종류에 따라 갈래를 나누는 역할을 하오. 그리고 순서에 맞게 천각(天閣)으로 보내고.”

다시 걸음을 뗀 제갈승이 인각을 관통하다시피 지나갔다. 남궁천은 자신들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열심히 일하는 지자들을 보며 내심 감탄했다.

‘여기서 이런 짓을 하고 있으니, 내가 어딜 가든 다 알고 있었구나!’

다시 생각하니 괜히 괘씸하단 생각도 든다.

자신은 도망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들이 태어난 줄도 몰랐는데, 이들은 온갖 수단을 이용해서 만 리 밖의 소식을 어제 일처럼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제갈승이 다시 금속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번엔 이전보다 확실히 좁은 공간이 나타났다.

다만 공간 한가운데에는 중원의 전도가 아주 크게 그려져 있었다. 실제로 지형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흙더미로 지형의 높낮이까지 대략이나마 재현해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역시나 흙판이 있었는데, 언제든 허물고 다시 쌓을 수 있도록 갖가지 도구들이 함께 놓여 있었다.

“이곳은 천각이오. 수집된 알짜 정보를 바탕으로 전술이나 책략을 세우는 곳이오.”

“과연 체계가 대단하군요. 천뇌당의 삼각이 전부 지하에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와보니 또 다른 세상 같은 느낌입니다.”

제갈승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잠시 자리를 비워주게.”

“예, 당주님.”

고개를 깊이 숙인 지자들이 잰걸음으로 천각을 벗어났다.

모두 자리를 비우자 천각 안이 무덤처럼 고요해졌다.

확실히 뭔가를 집중하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인 듯했다.

제갈승은 꾸민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흙더미 탁자로 걸어갔다. 분명 어딘가의 지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남궁천이 가만히 지켜보는 사이, 제갈승은 기다란 막대를 들고 탁자 한쪽 귀퉁이를 지목했다.

“여기가 어딘지 알겠소?”

“글쎄요. 어딘가의 지형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만 보니 잘 모르겠네요. 중원이 워낙 넓어야죠. 다만…….”

“다만?”

“산맥이 험하고 지형이 고르지 않은 것을 보니 사천 쪽이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호오, 젊은 나이에 과연 대단하시군.”

제갈승이 순수하게 감탄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 가보지도 않았을 사천을 책으로 본 것만으로도 알아보다니, 대단한 통찰력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남궁천은 전생에 안 가본 곳이 없는 도망자 신세였기에 지형을 보고 대략이나마 유추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이렇게나 자세히 만들었으니 못 알아보기가 더 어렵겠는데?’

아무튼 그건 그렇고.

“갑자기 여긴 왜요?”

제갈승이 막대로 지목한 곳을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이곳은 사천성의 백옥현으로 본 맹의 지단이 있소. 그리고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을 제외한 이 넓은 지도가 보여주는 곳은 사천이 아니라 신무(新蕃: 티베트) 지역을 재구성한 것이오.”

“꽤 먼 곳이군요. 백옥현에 지단을 둔 것은 역시 새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함이겠죠?”

“그렇소. 다만 지난 수십 년간의 평화로 인해 이곳은 정말 한가한 곳이었소. 지방의 한직이라고 볼 수 있지.”

“그렇군요. 아까부터 같은 질문이지만, 그래서 여긴 왜요?”

“그 시체들이 이곳으로 간 것 같소. 그리고 그 이유가 이 신무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고.”

문득 총군사 제갈승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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