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12화 (411/508)

412. 검증

창졸지간 남궁검이 발로 탁자를 걷어차면서 의자에 앉은 채로 주르륵 밀려났다.

쾅!

촤츠츠츠츠츳!

콰창!

떠밀린 탁자가 산산조각 나면서 파편이 튀어 오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묘는 파편 사이로 쇄도하면서 사슬 채찍을 횡으로 휘둘러 갔다.

촤르르르르륵!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는 숨을 멈췄다.

곧이어 남궁검이 자리에서 일어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발검술을 보였다.

샤아아아아악!

한 줄기 섬광이 하늘로 솟구쳤다.

단 일검.

탁!

사슬 채찍을 휘두르며 날아갔던 백묘가 남궁검 옆으로 제비를 돌며 착지했다.

“……!”

순식간에 일격이 오고 간 상황.

모두가 침묵한 채 눈만 부릅뜨고 있는데, 마침 허공으로 솟구쳤던 쇠사슬이 가닥가닥 끊어지면서 후두두둑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아……!”

사람들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구파일방의 수뇌인사들도 마찬가지.

조금 전 기습에 반응한 남궁검의 일검은 가히 무림칠성 수준에 버금가는 정도였다.

다음 순간 백묘의 가슴이 찢어져 나가더니 핏줄기가 솟구쳤다.

촤아악!

백묘가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고는 격하게 각혈했다.

“쿠웨에에엑!”

뒤늦게 정신을 차린 무림맹 무인들이 거칠게 달려들어 그녀를 바닥에 짓눌렀다.

“잡, 잡앗!”

“가만있어!”

무인들의 거친 제압에도 백묘는 독한 눈빛을 잃지 않은 채 입술을 질끈 씹었다.

긴박했던 상황이 일단락되자 사람들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도 몇몇 이들은 남궁검의 무위에 대해 내심 경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무림칠성들마저 남궁검의 조금 전 일검에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맹주의 무위가 저 정도였나?’

남궁검의 매서움은 사실 무위보다도 그 독특한 성격에 있었다.

한데 지금 보인 무위는 무림칠성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가 아닌가?

다만 남궁천만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남궁검을 보았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시더니. 성과가 있었군요. 감축드립니다.”

그랬다.

남궁검 역시나 본인의 반응이 뜻밖이라는 듯 가만히 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확실히 몸이 가벼워졌군. 이것도 다 천이 덕분인가?’

잠깐 남궁천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인 남궁검이 모두를 향해 돌아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었소. 귀빈 여러분들을 놀라게 해드려 미안하오. 다행히 큰일은 아니니 다시 자리를 즐기시길 바라오.”

의연한 대처였다.

찰나지간 목숨이 오갈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음에도 시종 차분한 표정이다.

확실히 대협의 면모가 풍겨진다.

반면 우위광은 이번 연회에서도 별 소득이 없게 되자 어금니가 부서질 정도로 꽉 다물 뿐이었다.

* * *

“하면 소공마를 구했다는 그 금면인이 장문인이었단 말이오?”

우위광이 화들짝 놀라서 소리치자 청풍이 주변을 슬쩍 둘러보고는 나직이 일렀다.

“소리가 큽니다. 원주님.”

“커흠! 미, 미안하오. 너무 놀라서 그만.”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정혜 사태도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너무 위험한 일을 하셨습니다, 장문인. 아무리 그래도 마교를 돕다니요? 전임 맹주의 꼴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전임 맹주와는 분명히 다르오.”

청풍이 짐짓 듣기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날 선 목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전임 맹주는 마교와 손을 잡고 암암리에 거래를 하고 있었소. 하나 나는 마교와 손을 잡은 적이 없소. 그저 위기에 처한 무인 하나를 구했을 뿐이외다.”

확실히 깊게 따지고 보면 묘하게 다른 구석은 있다.

정작 마교는 누구에게 도움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니까.

그 차이점을 청풍이 명확히 알렸다.

“고로 나는 언제든 마교와 검을 겨눌 수 있소. 그저 남궁가에게 지나친 힘이 실리는 것을 잠시 경계했을 뿐이오. 그러니 묵천악과 같은 선상에 놓지 마시길.”

“제가 지나치게 생각했군요.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정혜 사태가 정중히 사과하자, 청풍도 더 이상은 따지지 않았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우위광이 침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하나 위험한 일이긴 했소. 만약 장문인의 짐작대로 남궁천이 눈치를 챈 것이라면 앞으로 한동안은 몸을 사리셔야 할 것 같소.”

“흐음. 우선은 지켜볼 생각입니다. 남궁천이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 그리고 때를 봐서 오히려…….”

“오히려?”

“그 반대로 먼저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하나 이미 경계를 받는 상황이니…….”

“원주께서도 보셨다시피 남궁천 단주는 의외로 속내가 복잡한 자입니다. 한낱 약관에 지나지 않은 애송이가 아니지요. 심계도 뛰어난 녀석입니다. 지금쯤이면 원주님의 생각대로 제가 몸을 사리기 시작할 거라 생각할 겁니다.”

“흐음. 해서 오히려 반대로 행동하시겠다?”

“아직 정해진 건 아닙니다. 다만 남궁천의 행동을 보면서 차차 결정하면 될 듯합니다.”

“흐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우위광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장문인의 뜻이 그렇다면.”

사실 평소 그의 성격대로였다면 기를 쓰고 반대했을 거다.

저 약삭빠른 남궁천이 눈치를 챘으니, 한동안은 숨을 죽인 채 조용히 지내라고 강하게 주장했을 터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여러모로 남궁천에게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나름 남궁가를 짓밟아 줄 속셈으로 구파일방을 초청한 것인데, 오히려 자신이 짓밟힌 꼴이지 않나?

그러다 보니 면이 서질 않았다.

청풍이 차를 마저 마시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남궁 맹주의 무위에 새삼 놀랐습니다. 단 일검이긴 했으나, 어제 보인 무위는 결코 가볍게 볼 수준이 아니더군요.”

“맞습니다. 만약 저라면…… 글쎄요. 제가 남궁 맹주를 당해낼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청풍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뜻을 드러냈다. 정혜로서는 기분이 나쁠 만도 하지만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사실 청풍의 눈이 더 정확할 것이니까.

우위광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 역시 놀라긴 했소. 맹주의 무공이 강하면 기뻐해야 할 일인데, 그 힘을 엄한 곳에 쏟아부을까 걱정해야 하다니. 참으로 어려운 시국이구려.”

“우선은 지켜보시지요.”

청풍이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며 포권했다.

“그럼 이제 저희들은 물러가겠습니다. 당분간은 무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볼 생각이니, 혹시 원주께선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열일 제쳐두고 달려오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장문인이 가까이에 머문다고 하니 마음이 든든하오.”

“아미파도 함께할 것입니다, 원주님.”

“허허. 고맙소. 내가 그래도 나름 잘 살았나 보오. 이렇게 인복이 넘치는 걸 보면.”

“물론이지요. 원주님이야말로 만인의 본보기가 아니겠습니까?”

형식적인 덕담이 오간 후 청풍과 정혜가 원주실을 나갔다.

* * *

“맹주님, 구파일방의 인사들이 모두 맹을 떠났습니다.”

보고를 올린 총관이 정좌를 한 채 눈을 감고 있는 남궁검의 눈치를 살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남궁검이 천천히 눈을 떴다.

“손님들 접대하느라 고생했네, 총관.”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총관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는 감히 남궁검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지난 수십 년간 은마령으로 살아오면서 이런 기분을 느낀 것은 처음이다.

남궁검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얼어붙은 송곳니를 마주한 기분이랄까?

언제든 그 섬뜩한 송곳니가 자신의 목줄을 물어뜯을 것만 같다. 단지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뼈마디가 시릴 정도로 오싹한 기분.

남궁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천천히 창가로 이동했다.

“총관.”

“말씀하십시오.”

“지난 과오를 자네에게 묻진 않겠네. 뿐만 아니라 자네를 이용해서 기존 조직의 치부를 밝히려고도 하지 않을 걸세.”

“…….”

“어차피 그건 천응대가 알아서 밝혀줄 테니까.”

총관은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

그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다.

전임 맹주를 수십 년간 보필한 사람을 이렇게 가까이에 둔다는 것은 결국 다른 조직의 치부를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걸 하지 않겠다고? 하면 왜 나를……?’

정말로 총관으로서의 자질만으로 재임용을 했다는 것인가?

모르겠다.

지금껏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것엔 일가견이 있다고 여겼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은마령으로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자신의 속내를 감추는 법이다. 두 번째로 배우는 것은 타인의 속내를 알아채는 것이다.

일종의 독심술이다.

눈빛과 표정, 호흡과 행동, 그리고 말투. 나아가서는 미세한 기류의 변화를 바탕으로 상대의 속내를 유추한다.

한데…….

‘정말이지 모르겠군. 이건 뭐 목석이 아니라 그냥 얼음덩어리가 아닌가?’

모든 게 얼어붙은 사람 같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남궁천을 대할 때만큼은 온기가 느껴진다.

그러니 더 어렵다.

한결같은 줄 알았던 사람이 남궁천 앞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니까 좀처럼 파악이 안 된다.

총관은 그저 형식적인 말로 대답할 뿐이었다.

“맹주님의 배려에 감복하였습니다. 최선을 다해 맹주님을 보필하겠습니다.”

“고맙군. 하면 총관이 보기에 지금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무엇이라 보는가?”

“맹주전의 조직을 재정비하는 것입니다. 어제의 기습도 그렇지만, 새로운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측근부터 확실히 구성하셔야 합니다. 맹주전의 호위각을 바로세우시고, 전담 호신위를 뽑으시길 바랍니다. 또한 언제든 맹주 직령으로 움직일 수 있는 충의대를 구성하시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보입니다.”

과연 총관은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자질이 뛰어난 자임은 분명했다.

남궁검은 그런 총관을 물끄러미 보았다.

‘총관의 자리에 적임자이긴 하군. 하나 천이는 이자를 의심하고 있다.’

남궁검은 일전에 남궁천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총관이 의심스럽습니다.”

“어째서냐?”

“할아버지께서는 총관이 어떤 자로 보이십니까?”

“글쎄. 수십 년간 맹주를 보필한 자다. 그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킨 것은 충성심 또한 대단하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마지막에 배신을 했지요.”

“주인의 몰락으로 제 살길을 찾은 것이 아니겠느냐?”

“그럼 모순 아니겠습니까? 할아버지 말씀대로 수십 년을 충성한 총관입니다. 그렇다면 결정적인 순간 누구보다도 의기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기를 지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총관은 지난 수십 년간 맹주의 온갖 치부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러고도 절대적인 충성을 이어왔지요. 그러다가 마지막에 배신했습니다. 만약 이게 배신이 아니라, 발을 뺀 것이라면 어떨까요?”

“발을 뺐다는 건…… 설마 총관이 다른 뜻을 품고 있었을 거란 말이더냐?”

“이상하지 않습니까? 마교와 손을 잡는 것마저 묵묵히 도운 총관입니다. 말이 새어 나갈 만도 했을 텐데, 끝까지 함구했지요. 할아버지도 아시겠지만, 묵천악은 독특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의를 내세웠지만 결코 정의롭지 않은 비틀린 사상. 멀쩡한 사람이 그 사상에 동조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나 다른 뜻이 있는 자라면, 수십 년을 침묵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너는 총관이…….”

“마교의 간자일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

“해서 저는 이 시국을 타파할 첫 단추로 총관을 이용할까 합니다.”

상념에서 빠져나온 남궁검이 총관을 물끄러미 보았다.

‘저 충직한 표정으로 마교의 간자라.’

아직까지도 믿을 수가 없다.

확실히 총관은 왠지 모르게 신뢰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행동한다.

그 또한 계산된 것이라면.

‘마교가 키운 간자는 정말 조심해야 할 존재로군.’

남궁검이 생각하는 사이 총관이 입을 열었다.

“허락하신다면 제가 직접 호위각과 호신위를 구성해 보겠습니다.”

“아니, 내가 알아서 정비하도록 하지. 의견 고맙네.”

“예, 맹주님.”

총관은 그 어떠한 표정의 변화도 없이 순순히 고개를 숙이며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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