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378화 (377/508)

378. 뛰는 놈 위에 나는 놈들

복면인들의 부축을 받은 소공마가 지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누구야? 너는.”

보아하니 소공마도 금면인을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당연히 양쪽에서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복면인들도 모르는 듯했다.

남궁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금면인을 노려보았다.

“말할 생각이 없으신가?”

금면인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물러났다.

그가 손을 들어 복면인들에게 수신호를 보내려던 찰나,

슈슈슈슈슈슉!

사방에서 암기들이 벌떼처럼 날아들었다. 순간 금면인이 돌개바람처럼 회전하면서 날아올랐다.

투타타타타타!

푸푸푸푸푸푹!

놀랍게도 그는 모든 암기들을 손과 발로 가볍게 쳐냈다. 튕겨 나간 암기들이 전부 살수들의 요혈에 꽂히면서 픽픽 쓰러져 나갔다.

남궁천이 눈자위를 꿈틀거렸다.

역시 만만한 자가 아니다.

갑자기 나타났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이렇게 빠르고 정확할 줄이야.

게다가 공력의 흐름을 거의 알아볼 수가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흐름이 보이긴 하지만 너무 빨라서 일찍 대응하기가 힘든 수준이다.

거기에 자신의 정체를 알기 때문인지 상대는 사문이 드러날 만한 무공을 쓰지 않았다.

한마디로 기본적인 싸움 기술에 지나지 않다는 뜻이다.

다시 살수들이 품에서 암기를 뽑아 들려고 하자, 남궁천이 손을 들어 올렸다.

“다들 멈춰.”

멈칫!

살수들의 동작이 그대로 굳었다.

금면인이 이채가 서린 눈빛으로 남궁천을 돌아보았다.

남궁천이 그 눈을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희들의 상대가 아니다.”

남궁천의 말을 들은 살수들은 일언반구도 없이 모습을 스르르 감췄다.

신형이 사라지긴 했으나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다.

여차하면 살수를 뻗을 준비가 되어 있으리라.

그러는 사이 나무 둥치에 처박혀서 쓰러져 있던 백묘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희뿌연 시야 너머로 남궁천의 등이 보였고, 마주 서 있는 금면인이 보였다.

‘누구……?’

흔들리는 시야 안에 금면인의 모습이 잡혔다가 흩어지길 반복했다.

주르륵.

이마를 타고 흐른 피가 눈썹을 지나 눈 안으로 스며들어 눈살을 찌푸렸다.

‘하늘이 돕지 않는 이상 빠져나가기 어렵다고 하셨는데…… 하늘이 도왔나 봐요.’

백묘가 겨우 의식을 붙들며 남궁천의 뒷모습을 빤히 노려보았다.

이건 어쩌면 절호의 기회.

금면인과 복면인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절망만 가득한 상황에서 일말의 변화라도 기대할 수 있는 건 저들뿐이다.

그런데 다음 순간 금면인이 눈을 부릅뜨더니 바닥을 박차고 엉뚱한 곳으로 날아올랐다.

마침 그곳에서는 시커먼 철시 한 자루가 번개처럼 내려꽂혔다.

쌍장을 펼친 금면인이 그대로 튕기듯 바닥에 꽂혔다.

쒜에에에에엑!

꽈아아아앙!

역시나 소리가 뒤를 이었다.

한데 더욱 놀라운 것은 금면인이 손목을 비트는 것과 동시에 철시를 튕겨냈다는 것이다.

쒜에에엑! 콰아아앙!

사선으로 튕겨 나간 철시가 한옆에서 폭발하자 살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추풍낙엽처럼 날아갔다.

남궁천의 눈이 더욱 커졌다.

‘패력궁의 철시를…… 쳐내?’

그 순간!

“하아아아앗!”

백묘가 기합성을 터뜨리며 마지막 힘까지 짜내 남궁천의 배후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파라라라라!

남궁천이 반사적으로 회전하면서 날아드는 부채를 쳐내고는 백묘의 목을 콱 움켜쥐었다.

커억!

쿠웅!

그대로 백묘를 밀어붙인 남궁천이 재빨리 마혈을 점했다.

탁탁탁!

순간 백묘의 몸이 나무처럼 굳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입매를 비틀며 웃었다.

“어쩌니? 너의 그 철저한 계획이 틀어져서? 살다 보면 변수가 참 많아, 그치? 특히나 이 강호에선.”

남궁천이 눈을 꿈틀거리고는 돌아보니 어느새 금면인과 복면인들이 소공마를 들쳐 업고는 달리고 있었다.

“칫!”

남궁천이 혀를 차고는 그대로 백묘를 던져두다시피 내버려 두고 소공마의 뒤를 쫓았다.

파바바밧!

그의 신형이 빛살처럼 수풀을 헤집으며 나아갔다.

‘경신술이 보통이 아니다.’

남궁천은 또 한 번 놀랐다.

금면인뿐만 아니라 복면인들의 경신술이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수준들이 아닌가?

‘마교는 아닌 것 같은데…….’

마침 시커먼 꼬리를 이끌며 철시 하나가 금면인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하나 이번에도 금면인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뒤돌아서며 쌍장을 펼쳐 막았다.

쒜에에에엑!

꽈아아아아아앙!

뒤이은 소리와 함께 요란한 폭음이 울리면서 금면인의 신형이 뒤로 십여 장이나 주르륵 미끄러졌다.

문제는 금면인이 튕겨낸 철시가 그대로 남궁천에게 날아든다는 것!

“헛, 젠장!”

욕지거리를 뱉은 남궁천이 얼른 몸을 회전하면서 돌개바람처럼 날아올랐다.

파라라라라라!

피츄츗!

옷깃을 스치면서 옷자락이 찢어지고 피가 튀었다.

촤촤아악!

바닥에 아슬아슬하게 착지한 남궁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금면인을 노려보았다.

“말을 못하시나?”

남궁천의 도발 아닌 도발에도 금면인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뭐라고 말을 이으려던 남궁천은 순간 눈을 가늘게 뜨고는 금면인을 보았다.

‘피……?’

그랬다.

금면인도 사람인 것만은 분명했다.

패력궁의 철시를 막아내고도 멀쩡하다면 거의 우화등선할 수준이 아니겠나?

하지만 금면인은 내상을 입은 것인지 입가로 선혈이 흘러내려 턱 끝에 맺혀 있었다.

금면인은 여전히 말없이 소매로 입가를 스윽 닦아내더니 순간 품에서 뭔가를 꺼내 던졌다.

“어딜!”

남궁천이 얼른 벽라검으로 쳐냈더니 폭음과 함께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다.

퍼퍼퍼펑!

‘연막탄인가!’

애초에 금면인은 싸울 생각이 없는 자였던 것이리라.

도대체 누가 저 꼬마를 도와준 것일까?

연막탄이 터지기가 무섭게 철시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투투투투투투투!

파파파파파파파!

철시 때문에 파편이 사방으로 튀면서 뜻하지 않게 남궁천마저 성가시게 만들었다.

타타타타타탕!

어지럽게 벽라검을 휘두르며 물러선 남궁천이 다시 바닥을 차고는 연막탄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더구나 이렇게 시커먼 연막탄을 사용했다는 건 역시…….

‘나에 대해 잘 안단 말인데.’

하긴.

이제 와서 자신에 대해 모르는 사람 찾기가 더 힘들 것이다.

마침 남궁천 곁으로 살수 하나가 내려섰다.

슈슉!

“주군, 어떻게 할까요?”

“그 여자는?”

“잡아두었습니다. 자폭을 시도했으나 입안에 품고 있던 독단을 제거했습니다.”

“잘했다. 어차피 저들은 너희들 실력으로 못 쫓아. 오늘은 그 여자로 만족하지.”

“알겠습니다.”

“일단 해산하고, 다시 부를 때까지 얌전히 지내도록. 의뢰는 불명회주에게 보고해서 가려서 받도록 하고.”

“예, 주군!”

“아, 그리고 이거.”

남궁천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휙 던져주었다.

“이번 달 해독제다.”

“감사합니다!”

남궁천이 피식 웃었다.

병을 주고 약을 주는데도 감사하단다.

하지만 이게 강호다.

힘을 가진 자가 주인이 되는 곳.

남궁천이 턱짓을 했다.

“그럼 가봐.”

“예, 주군!”

대답과 동시에 복면인이 스르르 사라졌다. 그는 바로 살곡의 부곡주였다.

* * *

복면인들의 움직임은 정말이지 검은 바람 같았다.

숲을 헤집으며 달린 지가 벌써 두 시진 가까이 지난 상황.

해는 이미 저물었고 세상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럼에도 그들은 산새처럼 달리면서 쉬지 않았다.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온갖 나무와 수풀, 그리고 바위가 튀어나와 있는 험난한 산행도 마치 평지처럼 가볍게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서 구름이 발아래 잠긴 바위 언덕까지 올랐을 때, 복면인들이 비로소 멈춰 섰다.

복면인 중 하나가 소공마를 바닥에 눕혔다.

여러 부위에 부상을 입은 소공마는 의식을 잃은 지 한참 지난 듯했다.

하긴.

몸 곳곳에 입은 상처를 보면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였다.

뒤이어 도착한 금면인이 휘적휘적 걸어오더니 소공마의 맥을 짚고는 다시 상처 부위를 훑었다.

그가 복면인들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응급처치만 해주어라. 그럼 알아서 살 터.”

“예, 장문인.”

고개를 숙인 복면인 하나가 얼른 소공마 곁으로 다가와 혈을 점하고는 신속하게 응급처치를 했다.

하지만 그야말로 투박하고 거친 손길이었다.

찢어진 상처는 대충 맞댄 금창약을 발라 찢어진 옷자락으로 동여맸고, 철시는 상처가 덧나든 말든 힘으로 단숨에 뽑아버리고는 지혈을 했다.

어느 정도 응급처치가 끝나자 복면인이 몸을 일으켰다.

소공마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입술은 시퍼렇게 물들어서 혈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정말이지 당장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아니, 그냥 보기에는 송장처럼 보일 정도로 창백한 얼굴이었다.

그럼에도 금면인이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이 정도면 알아서 살겠지.”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지 않을 것도 없다. 그만 가자.”

“예, 장문인!”

대답과 동시에 금면인과 복면인이 언덕 위에서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독수리 한 마리가 내려섰다.

녀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쓰러져 있는 소공마를 보고 기웃거렸다.

썩은 고기 냄새가 나면 좋겠는데, 아직은 살아 있는 모양이다.

독수리는 소공마 주변을 기웃거리며 그가 죽길 기다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독수리가 다시 소공마에게 다가가 부리로 목을 쪼려는 순간이었다.

쉬이잇, 콰악!

느닷없이 뻗어진 소공마의 손길이 독수리의 목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소공마가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독수리를 흘겨보며 중얼거렸다.

“배고프다.”

* * *

천뇌당의 합정관 안마당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언뜻 보면 연회라도 치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거창했다.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호법당주 안천길과 천우당주 유백랑이었다.

명목은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올 남궁천 단주를 환영하기 위함이었다.

하나 진짜 그 속내는 정반대였다. 두 사람은 남궁천이 오늘까지 맹주를 사로잡거나 죽일 수 없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맹주가 누군가?

그래도 한때 강호를 호령하던 자다.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해서 하룻강아지에게 물리진 않는 법이다.

두 사람은 자정이 되는 순간 가차 없이 남궁천 단주의 실패를 꾸짖고, 맹주를 갈아치워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요란하게 환영식을 벌인 것이다.

이제 반 시진만 지나면 오늘 하루도 지나간다.

남궁천은 역시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묵천악을 잡았다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안천길의 입매가 슬쩍 올라갔다.

“이제 슬슬 발동을 걸어볼까요?”

옆에 앉은 유백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실패가 거의 확실하겠군요.”

“그럼 시작합시다.”

두 사람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침 모여 있던 십당의 주인과 각주들이 시선을 모으고 그를 보았다.

안천길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오. 그리고 특히나 이 자리를 허락해 주신 맹주님께도 감사를.”

안천길의 인사에 남궁검이 무감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안천길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오늘은 무림공적 일 호를 제거하러 떠난 남궁천 단주를 환영하는 행사이올시다. 남궁천 단주가 호언장담을 하였기에 우리 십당의 주인들이 그 기백에 감동하여 이렇게 환영식을 마련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옳습니다.”

몇몇 이들이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실은 안천길과 한배를 탄 자들이다.

안천길이 내심 웃었다.

‘그런데 이 호언장담한 새끼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단 말이지. 클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