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 뛰는 놈 위에 나는 놈들
쉬이이익!
까앙!
촤아아악!
쿠당탕!
사아아악!
푹!
털썩!
파공성과 금속성, 그리고 뭔가가 쓰러지는 소리만 들린다.
일체 기합성과 비명 따윈 들리지 않는다.
“이 새끼들이 방법을 바꿨네?”
소공마가 숨을 헐떡이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신없이 달리던 중 어느 순간 사방이 침묵으로 잠겼다. 이후로는 어둠 속에서 날붙이만 연신 날아들었다.
정확히 소공마와 백묘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선 후였다.
밀림처럼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선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달아나기 좋기 때문이다.
장애물이 많아야 추격자도 따돌리기가 쉬운 법이다.
다음으로는 시야를 가리는 게 많아야 패력궁의 화살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단점이 생겼다.
숲에 들어서니 살수들이 정말 살수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낭떠러지에서 싸울 때는 주변에 가림막이 없다 보니 살수들이 전신을 드러내고 덤벼들었다.
그러다 보니 필요에 따라 기합성도 내지르고, 비명도 터뜨려댔다.
한데 여러 장애물이 생기니 살수들이 종적을 감춘 채로 공격해 온다.
물론 기감을 끌어 올리면 이들의 공격을 눈치 못 챌 정도는 아니다.
백묘도 그 정도는 잡아챈다.
이미 살수들이 쫓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다만 기감을 계속 예민하게 끌어 올린 채로 달리자니 경공이 둔해진다.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다 보니 달리다가 멈추고, 달리다가 멈추길 반복하게 된다.
그나마 패력궁의 시야에서 벗어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쉬이이이잇!
다시 어둠 속에서 검신이 날아들었다.
검신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살수들이 사용하는 모든 검신은 시커멓게 물들어 있다.
빛을 반사하지 않도록 검게 칠해져 웬만해서는 눈으로 좇기가 힘들다.
역시 기감으로 판단해야 한다.
휙!
소공마가 순간 허리를 젖히며 눕자, 살기를 머금은 검신이 배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지나간다.
탕!
그대로 발을 뻗어 검신을 걷어차자 살수가 휘청이면서 중심을 잃었다.
때마침 배후에 있던 백묘가 몸을 던지면서 회전했다.
파라라라라!
츄아아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살수의 가슴이 갈라졌다.
털썩, 쿵!
이번에도 살수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어둠 속에서 살검만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가.”
“예!”
소공마의 간단한 명령에 백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닥을 찼다.
파앙!
쉬쉬쉬쉬이익!
두 사람은 다시 바람처럼 내달렸다.
쉬이이익!
이번에는 아래쪽에서 검이 솟구쳐 올랐다. 언뜻 보면 그림자가 저절로 치솟아 오르는 것 같다.
하지만 거의 동시에 소공마가 몸을 비틀면서 낭호도를 내려찍었다.
퍼억!
털썩!
소리 없이 쓰러진 살수가 그대로 백묘의 발에 밟힌다.
쉬이이이잇!
이번에도 정수리에서 살검이 떨어져 내린다.
“젠장, 도대체 몇 놈이나 있는 거야?”
소공마가 짜증스럽게 소리치면서 몸을 비틀었다.
휙!
스팟!
슈칵!
그대로 낭호도를 휘두르자 살수의 얼굴이 절반이나 찢겨 날아간다.
쿠당탕!
나무에 부딪히면서 쓰러진 살수는 몇 차례 꿈틀거리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이것들이 앞뒤로 에워싼 것 같은데?”
“애초에 자리를 벗어날 것까지 감안하고 위치를 잡았던 것 같아요.”
“아아, 정말 싫다. 이런 치밀함. 이것도 다 그 남궁천 짓이겠지?”
“아마도요.”
“그럼 일단 여기서 처리해 버릴까?”
소공마가 달리던 걸음을 우뚝 멈췄다. 그 뒤를 잇던 백묘도 걸음을 멈추고는 심호흡을 했다.
“후우우. 패력궁의 눈에서 벗어났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천라지망을 벗어나진 못했을 거야.”
“네.”
백묘도 짐작하고 있다는 듯 짧게 대답했다.
소공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일단 이것들부터 다 쓸어버리자.”
소공마가 낭호도를 휘휘 돌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달릴 때는 벌떼처럼 달려들더니 이젠 또 조용하다.
상황을 살피는 것이리라.
소공마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입매를 비틀었다.
“뭣들 하고 있어? 먹이를 지켜만 볼 거야? 달려들어야지?”
도발이 먹힌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
다만 소공마가 말을 하는 사이 그 미약한 틈을 이용해서 살수를 펼친 것이다.
쒸이이이잇!
날카로운 파공성에 이어 암기 세 자루가 날아들었다.
따다당!
일도에 세 자루의 암기를 모두 튕겨낸 소공마가 빛살처럼 몸을 날렸다.
쉬팟!
정말이지 눈 깜빡할 사이에 이동한 소공마가 살수의 가슴에 낭호도를 박아 넣었다.
푸욱!
우우우웅!
“끄읍!”
모처럼 살수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그래, 그래야 좀 사람 같잖아.”
소공마가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릴 때,
“부교주님!”
백묘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부채를 날렸다.
쉬리리리리리릭!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간 부채가 소공마의 안면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더니 그대로 나무에 처박혔다.
푸욱!
놀랍게도 나무로 보였던 단면이 불룩 튀어나오더니 살수 하나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쿠다앙!
소공마가 백묘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모처럼 쓸모 있었어, 백묘.”
“……알고 계셨군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 백묘가 내 일을 한 번 대신했다는 게 중요하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바짝 정신 차려.”
“네.”
휘리릭, 탁!
소공마가 몸을 훌쩍 날려 바닥에 착지하자 이번엔 사방에서 살수들이 스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소공마가 눈을 가늘게 여미고는 살수들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많네. 남궁천이 날 이렇게 높이 평가해 줬다는 것에 감동할 지경이야.”
소공마의 빈정거림에도 살수들은 표정 없는 얼굴이었다.
마침 살수들 중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수신호를 내렸다.
그러자 살수들이 일제히 비도를 꺼내 들었다.
“쫄았어? 비도 날리면 뭐가 나아질까?”
소공마가 헤실헤실 웃으며 말하는 사이 살수 하나가 비도를 날렸다.
쉬이이익!
“어딜!”
소공마가 눈을 반짝이고는 얼른 낭호도를 휘둘렀다.
한데 낭호도와 비도가 부딪치는 순간!
꽈아아아앙!
폭발이 일어나면서 소공마가 튕겨나가는 게 아닌가?
츠츠츠츠츳!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소공마가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로 침을 탁 뱉었다.
“이게 뭐야? 더러워졌잖아.”
“아…….”
깜짝 놀라서 지켜보던 백묘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찰나의 순간 호신강기를 끌어올려 폭기로부터 몸을 보호한 것이리라.
소공마가 어깨를 으쓱이곤 백묘에게 말했다.
“조심해. 비도에 폭약을 묻혀놨…… 아, 이런! 그거였구나! 이 새끼들!”
“왜 그러세요?”
백묘의 말도 무시한 채 소공마가 휙 돌아보았다. 그러는 사이 두 번째 비도가 소공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 * *
탁!
천무류는 소공마가 내달린 방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삼나무 꼭대기에 멈춰 섰다.
워낙 높게 자란 나무였기에 바람따라 가지가 흔들렸다.
흔들…… 흔들…….
마치 나무와 일체가 된 듯 흔들리는 천무류가 시위에 철시를 여섯 개나 걸고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리고 소공마가 내달린 방향으로 화살촉을 겨누었다.
어딘지 알 수 없다.
제아무리 신궁이라 불리는 패력궁이라도 보이지 않는 적을 명중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나뭇잎과 수풀로 가려진 장소에서 소공마를 찾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이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언뜻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 노릴 수 있을 텐데, 그 역시 어디에서 나타날지도 알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패력궁은 말없이 기다렸다.
흔들…… 흔들…….
바람이 분다.
슬쩍 눈알을 굴려 사선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뭔가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게 보인다.
남궁천이다.
‘정말이지 대단하군.’
혀를 내두를 경공술이다.
저 젊은 나이에 어찌 저런 경지까지 올랐을까?
제 아비가 평생을 억울하게 도망만 다니다가 낳아서 그 능력을 물려받은 것일까?
천무류는 쓴웃음을 슬쩍 짓고는 다시 시선을 옮겼다.
지금은 넓은 곳을 한꺼번에 본다.
집중력은 필요하지 않다.
흔들…… 흔들…….
그렇게 얼마나 바람을 느끼며 서 있었을까?
시위를 당긴 손가락 끝에 감각이 사라져 갈 때쯤이었다.
꽈아아아앙!
먼발치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찰나지간!
휙!
천무류가 소리가 울린 방향으로 반사적으로 화살촉을 겨누었다. 곧이어,
패패애애앵!
시위에서 여섯 대의 철시가 각기 다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쒸쒸쒸쒸에에엑!
철시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천무류는 이미 두 번째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 * *
콰아아앙!
두 번째로 날아든 비도는 백묘가 쳐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소공마가 벼락처럼 고함을 내질렀다.
“엎드렷!”
백묘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소공마와 함께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뒤이어 하늘에서 폭격이 떨어졌다.
투투투투투투웅!
바닥에 철시가 꽂히면서 튀어 오른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간다.
어떤 철시는 나무를 그대로 관통해서 백묘 얼굴 옆에 처박혔다.
콰작!
“헉!”
백묘가 헛바람을 집어삼키는 사이에 또다시 철시가 쏟아졌다.
투투투투투투!
파편이 튀어 오르고 철시가 바닥에서 자라난 것처럼 쑥쑥 꼽혀간다.
마침내 철시 하나가 백묘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푹!
“아악!”
백묘가 비명을 터뜨렸다.
소공마가 이를 뿌득 갈고 소리쳤다.
“달려! 저놈들이 던지는 비도는 절대 쳐내지 말고! 최대한 멀리 떨어져!”
“네!”
비도의 폭약은 목숨을 위협하려는 용도가 아니었다. 위치를 알려주는 용도였다.
소공마는 미친 듯이 달리면서도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살수와 폭약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폭약을 쓴 것은 남궁천의 지시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정말 미친놈이 아닌가?
도망치는 사람을 수십 년간 쫓아다닌 놈 같다. 아니, 그 반대인가?
하지만 남궁천은 이제 약관이다.
그런 녀석이 수십 년간 도망쳐 봤을 리가 없지 않나?
도대체 어디까지 안배를 해둔 것인가?
생각에 빠진 사이에도 폭약이 묻은 비도는 연신 날아들었다.
쉬이이익! 쉬이이이익!
쾅! 콰앙!
지나간 자리마다 폭약이 터진다.
이러니 무조건 전속력으로 달릴 수도 없다.
천무류라면 필시 이동 속도를 감안할 테니까. 그러니 일정한 이동은 금물이다.
일부러 속도를 늦추거나 빨리 달려야 한다.
하나 한계 이상으로 빨리 달리는 것은 불가능하니 일부러 속도를 늦춰야 한다.
“빌어먹을!”
촤츠츠츠츠츳!
몸을 휙 돌린 소공마가 낭호도의 도신을 왼손으로 맞잡으며 앞으로 뻗어냈다.
철시 하나가 정확히 날아와 부딪쳤다.
이번에도 소리는 뒤를 이었다.
쒸에에에엑!
떠어어어엉!
츠츠츠츠츠츳!
역시 이번에도 한참이나 떠밀렸다가 가까스로 멈췄다.
천무류는 집요할 만큼 소공마만 노렸다.
백묘가 멈춰 서서 옆으로 달려왔다.
“부교주님!”
“백묘, 이제부터 각자도생이야.”
“예? 아…… 예!”
한마디로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귀에 익은 소리가 저쪽에서 들려왔다.
“어휴, 꼬마 새끼. 그새 멀리도 왔네. 이 형이 보고 싶었잖아. 징그러운 꼬마 새끼야.”
어느새 도착한 남궁천이 나뭇가지 위에서 씨익 입매를 비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