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 사방이 적이다
파라라라라라!
소공마의 신형이 돌개바람처럼 회전하며 사방에서 덮쳐오는 살수들을 일시에 쳐냈다.
따다당! 슈카카칵!
금속성이 터지면서 몇몇 살수들이 튕겨 날아갔고, 개중 몇 명은 옆구리와 복부가 베이면서 내장을 쏟아내며 쓰러졌다.
“크아악!”
“아악!”
비명이 터지는 와중에 소공마가 바닥을 차며 살수들 사이로 몸을 던졌다.
파바바밧!
소공마는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번쩍!
“크아아악!”
촤아아악!
“아아악!”
파바밧, 퍼엉!
“으아아아아!”
낭호도가 빛을 터뜨리면 어김없이 핏줄기가 치솟았고, 다시 파육음이 터져 나오면 비명이 솟구쳤다. 이어서 일장을 뻗어내니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살수가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하지만 살수들은 원래 제 몸을 사리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에는 동귀어진을 각오하는 게 바로 살수다.
오로지 상대를 죽이는 것.
한 번 물어버린 먹이는 절대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살수의 본능이다.
더구나 살곡의 정예 살수들이 아닌가?
“제길! 죽엇!”
“흐아압!”
살수들이 기합성을 터뜨리며 마구 달려든다.
어차피 암살은 글렀다.
그렇다면 온 힘을 다해 상대를 죽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소공마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슈칵! 사아악! 퍼억!
“크억!”
“윽!”
“으아악!”
소공마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죽음의 꽃이 피어난다. 도저히 가망성이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일당백의 상황이다.
백묘의 움직임도 나쁘지 않다. 아니, 그녀도 살수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촤라라라라락!
부채가 회전하면서 날아가면 살수 서너 명의 요혈을 날카롭게 베어내고 돌아온다.
그때마다 살수들이 인형처럼 픽픽 쓰러져 나간다.
그럼에도 살수는 위험하다.
절대 제 몸을 사리지 않기 때문이다.
“뒈져엇!”
살수 하나가 욕지거리를 쏟아내며 허공을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흥!”
백묘가 냉랭한 코웃음을 치고는 하얀 부채를 위로 던져 올렸다.
촤라라락, 촤아아악!
그대로 솟구친 부채가 떨어져 내리던 살수의 몸을 정확히 절반으로 갈라 버렸다.
쿠쿠웅!
인육이 되어버린 살수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면서 땅은 피범벅으로 변했다.
한데 갈라져서 쓰러지는 살수 뒤에서 또 다른 살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왔다.
쉬이이이익!
백묘의 눈이 부릅떠졌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었다.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아뿔싸! 동료를 이용한 거로구나!’
먼저 덤벼들었던 동료가 죽을 것을 기다렸다가 뒤를 이어 공격한 것이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른 부채를 펼치고는 방어하려는데, 이미 상대의 검신이 더 빠르게 심장으로 짓쳐들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 되자 다시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사투가 시작된 지 반각도 지나지 않아 죽는 꼴이 아닌가?
마침내 살수의 검봉이 백묘의 가슴을 찌르려는 순간!
쩌까아앙!
촤아아악!
검신이 튕겨 나가면서 백묘의 옷깃을 찢어냈다.
휘리리리릭!
백묘가 반사적으로 몸을 회전하면서 찢어져 나간 옷감을 가슴에 둘렀다.
촤아악!
미끄러지다시피 중심을 잡고 서자, 튕겨 나갔던 살수의 목에서 낭호도를 뽑아내는 소공마가 보였다.
“부교주님……!”
“정신 차려.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예뻐서 구해준 게 아닌 거 알지? 이런 상황에서는 도구 하나도 아쉬운 법이야.”
“명심하겠습니다!”
백묘가 굳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렇다.
이 순간 자신은 부교주의 훌륭한 도구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걸 증명하지 못하면 소공마의 손에 먼저 죽을 수도 있다.
부교주의 손속은 잔혹하다.
저 해맑은 얼굴로 그간 쓸모없는 이들을 어찌 처리하는지 수도 없이 보지 않았던가?
백묘는 일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공마가 자신을 살려준 것은 말 그대로 예뻐서가 아니라 일종의 경고인 것이다.
꽈악!
쥘부채를 틀어쥔 백묘가 어금니를 꽉 씹고는 기합성을 터뜨리며 바닥을 차며 튀어나갔다.
“하아아앗!”
소공마는 적의 무리에 몸을 던져서 살벌한 춤사위를 벌이는 백묘를 보곤 희미하게 입매를 말아 올렸다.
“이제야 좀 쓸 만해졌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이 싸움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당장 이곳의 양상만 본다면 두 사람이 살수들을 압도하는 것 같지만, 상황은 결코 유리하지 않다.
그것은 바로…….
쒸에에에에엑!
꽈아아아아앙!
츠츠츠츠츠츠츳!
소공마의 몸이 석 장이나 미끄러졌다.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낭호도가 연신 늑대 울음을 울린다.
“빌어먹을 철시!”
그렇다.
이곳의 싸움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이유는 무림칠성 중 하나가 반격도 불가능한 거리에서 자신들을 노리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은 이미 왼쪽 어깨에 철시 한 자루가 박힌 상황이 아닌가?
이렇게 강맹한 철시가 날아든 직후에는 어김없이 살수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샤샤샤샤샥!
소공마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자리에 살수의 검신이 내려꽂힌다.
퍼억!
“크아아악!”
그대로 발에 걷어차인 살수가 비명과 함께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촤촤아아악!
곧이어 날아든 두 자루의 검!
하지만 두 살수는 빈 허공을 그어버리고 이어서 동료의 목을 잘라냈다.
츄츄아아아!
공간에서 지워진 듯 보이지 않던 소공마가 다시 나타났을 때는, 머리를 잃은 살수 두 명이 피를 분수처럼 뿌리며 넘어가 버렸다.
쿠쿠웅!
쒜쒜에에에엑!
따다아아아앙!
다시 날아든 철시!
이번엔 두 자루다.
한데 각기 실린 공력의 크기가 다르다.
“크읏!”
소공마가 신음을 삼키면서 뒤로 주르르륵 미끄러졌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절벽 끝에 멈춰 선 소공마가 어금니를 빠득 갈고는 바닥을 찼다.
타앗!
한데 철시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쒸에에에엑!
파공성이 들렸다.
이번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어디!’
소공마가 몸을 홱 돌렸다.
철시의 속도로 보자면 소리보다 먼저 날아들어야 했다.
한데 소리가 먼저 들렸다는 것은 철시가 이미 지나갔다는 소리다.
‘빗나갔나?’
그럴 리가 없다.
상대는 무림칠성 중 한 명이다.
패력궁의 화살이 어이없을 정도로 빗나간다고?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빗나가도 믿기 어려울 판에?
그렇다면 이건 분명…….
‘이기어시(以氣馭矢)!’
오로지 진기로 검을 움직이는 이기어검처럼 기운만으로 화살을 움직이는 경지다.
상대는 무림칠성!
그렇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시위를 떠난 화살을 공력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림칠성이더라도 검처럼 자유롭게 어시술을 펼치진 못할 것이다.
‘하면 역시 측면이나 후면에서 단 한 번의 변칙만이 허용될 터! 어느 쪽이냐?’
잠시 갈등하던 소공마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따아아아아아앙!
촤츠츠츠츠츠츳!
운이 좋았다.
그의 예상대로 화살은 배후에서 날아들었다.
허공을 지나서 날아간 화살이 어느 순간 되돌아와서 배후를 노린 것이다.
소공마는 온 힘을 다해 철시를 막아내면서도 내심 궁금했다.
정말이지 궁술을 쓰는 고수들은 어떻게 이런 식으로 화살을 날릴까?
물론 그도 기본적인 것은 알고 있다.
시위를 한 차례 꼬아서 쏜다든지, 시위를 놓을 때 두 번 튕긴다든지 등의 방법으로 변칙을 준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이만큼이나 원심력을 이용하는 법은 모른다.
‘뭐, 궁금한 건 궁금한 거고……!’
운이 좋아 배후에서 날아든 화살을 막아내긴 했지만, 그 찰나의 시간에 살수들의 공격을 일부 허용하고 말았다.
주르륵.
베인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탁탁탁!
얼른 점혈을 해서 지혈하고 나니 백묘가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부교주님! 괜찮으세요?”
소공마가 피식 웃었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빈말이 아니었다.
백묘는 지금 전신이 피에 젖어 있었다.
물론 살수들의 피를 덮어쓴 것도 있었지만, 팔과 다리에 자잘한 검상이 여럿 새겨져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살수 하나가 백묘의 목덜미를 향해 검을 후려쳐 왔다.
“하아아앗!”
백묘의 눈이 매서워지면서 그대로 부채를 펼쳐 휘둘렀다. 두 사람의 검신과 부채가 서로 스치며 지나갔다.
촤촤아아악!
섬뜩한 파육음이 연이어 터졌다.
“크읏!”
주르르륵.
백묘가 신음을 뱉었다.
오른팔이 길게 찢어지면서 뜨끈한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상대는 비명이나 신음을 터뜨리지 않았다.
목을 잃었기 때문이다.
탁탁탁!
백묘가 얼른 지혈을 마치고는 숨을 몰아쉬며 대꾸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뚫어.”
“예?”
“어떻게든 살아야 할 것 아냐. 여기선 가망 없어. 빠져나간다.”
“아…… 예!”
“너무 희망 갖진 말고.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을 거야. 하늘이 돕지 않는 이상 살아서 돌아가긴 어려워.”
“……알겠습니다.”
“이왕 죽을 거라면 거칠게 한번 몸부림쳐 보자고. 최대한 약은 올리고 죽어야 할 것 아냐?”
“예, 부교주님!”
“그럼 가.”
“넵!”
타앗!
백묘가 대답과 동시에 바닥을 차며 날아갔다.
타닷!
소공마가 그 뒤를 바로 쫓았다.
“쫓아!”
“죽엿!”
살수들이 일제히 소리치면서 두 사람에게 몸을 날렸다.
날카로운 기합성과 금속성,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 * *
“달아나는군.”
화살촉을 겨누고 있던 천무류가 활을 내리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다가 나뭇가지를 박차고 훌쩍 날아올랐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몹시나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탓! 탓! 탓……!
마치 나비처럼 사뿐사뿐 자리를 옮기던 그가 어느 순간 허공에 떠올랐을 때 시위를 당기더니 놓았다.
패애애애애앵!
철시가 까마득히 먼 곳에서 달아나는 소공마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쒸에에에에엑!
곧이어 또 다른 나뭇가지에 착지한 그가 이번에는 유난히 깃대가 붉은 화살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화살촉을 돌려서 다른 쪽을 겨누었다. 화살촉이 가리킨 방향에서는 남궁천이 빠른 속도로 달리는 중이었다.
눈을 가늘게 뜬 천무류가 어느 순간 시위를 놓았다.
투웅!
쒸에에에엑!
날카로운 소리를 이끌며 붉은 화살이 빛살처럼 날아갔다.
* * *
파파파파파파!
남궁천은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달렸다. 마치 숲을 헤치며 날아가는 산새 같았다.
그가 나뭇가지나 바위를 한 번씩 찰 때마다 주변의 나무와 수풀이 그대로 뽑혀 나갈 것처럼 휘청거렸다.
이름 모를 나무와 잡초들이 남궁천 곁을 마구 스쳐 지나갔다.
쉭쉭쉭쉬쉬쉭!
그렇게 한 줄기 바람처럼 달려가던 남궁천이 언덕 중턱을 지날 때였다.
그의 시야에 허공을 가로지르며 저만치 날아가는 화살이 보였다. 깃대가 유난히 붉은 화살이었다.
“저건……!”
남궁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천무류가 있던 방향을 힐끔 보았다. 천무류가 보이지 않았다. 자리를 옮겼다는 뜻이다.
남궁천은 다시 화살이 날아간 방향을 보았다. 곧이어 그가 바위를 박차며 얼른 방향을 틀었다.
파앙!
남궁천의 입매가 슬쩍 비틀렸다.
“소공마가 달아나는군. 확실히 판단력은 좋다니까. 징그러운 꼬마 새끼, 이번엔 놓치지 않는다!”
파바바바바밧!
남궁천이 질풍처럼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