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 천라지망
“잡아랏! 근방을 샅샅이 뒤져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하라! 놈은 무림공적 일 호라는 것을 명심해라!”
“존명!”
천라단주의 목소리에 천라단원들이 일제히 대답하며 흩어졌다.
진천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빌어먹을 맹주! 이 개 같은 놈!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놈!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새끼! 갈아 마셔도 맛도 없을 개새끼!’
진천랑은 비탈진 언덕길을 달려 오르며 연신 욕지거리를 속으로 되뇌었다.
입 밖으로 차마 욕도 내뱉지 못하는 처지가 바로 자신이었다.
숨결조차도 조심해야 한다.
무림맹에서 펼친 천라지망이다.
욕 한마디 할 시간에 퇴로를 모색하고 죽을힘을 다해 달려도 모자랄 것이다.
그렇게 경공을 펼치면서 바위 위에 안착했을 때였다.
투둑!
얼어붙었던 바위 일부가 부서지면서 허물어졌다.
촤르르르.
자갈돌이 으스러지면서 비탈진 길을 따라 굴렀다.
‘젠장!’
속으로 혀를 차기가 무섭게 아래쪽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저쪽이다!”
“거기 서라! 나쁜 놈아!”
결국 발끈한 진천랑이 몸을 휙 돌리고는 외쳤다.
“이 개새끼들아!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냐! 너희들이 날 먼저 죽이지 못해 안달이지 않았느냐! 도대체 내가 왜 무림공적 일 호란 말이냐! 나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단 말이다!”
“닥쳐라! 네놈의 죄를 네가 모르는구나! 뭣들 하느냐? 놈이 저기 있으니 서둘러라!”
천라단원들이 개미떼처럼 비탈진 길을 따라 우르르 달려 올라왔다.
진천랑이 혀를 차고는 다시 몸을 날렸다.
숲을 지나서 얼마나 내달렸을까?
일부러 길도 없는 곳을 골라서 정신없이 뛰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비탈진 길이 나타났다.
무작정 내달렸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경공을 펼치다가도 바닥을 구르길 반복했다.
옷이 찢어지고 살갗이 베이고 손톱이 빠졌다. 칼바람이 살을 엘 것처럼 불었다. 숨을 몰아쉴 때마다 차가운 공기는 폐부를 찢어버릴 것만 같다.
그렇게 내달렸더니 눈앞에 바다처럼 드넓은 강이 나타났다.
“이런 젠장!”
고개를 꺾어 들고 하늘을 원망했다.
도대체 자신이 뭘 잘못했냐고 따졌다.
불공평한 건 상관없으니, 최소한 억울함은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늘 그랬듯 하늘은 고요했다.
시린 달빛만이 시커먼 강물을 비출 뿐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포위망이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천라지망.
저만치 강물 위에 떠 있는 누선이 보인다.
무림맹을 상징하는 깃발이 내걸려 있었다.
저곳에 아마 맹주가 타고 있으리라.
생각 같아서는 당장 강물로 뛰어들어 저 배로 향하고 싶다.
그리고 맹주의 모가지를 따버리고 싶다.
하나 저기까지 가면 힘이 빠져 생포되고 말리라.
강물에 뛰어들더라도 반대 방향으로 죽어라 달아나야 한다.
그게 자신의 운명이다.
“맹주, 이 개새끼야! 언젠간 내가 널 죽이겠다아앗!”
성질대로 소리 한 번 지르고 나니 조금은 후련해진다.
대신 위치를 파악한 천라단원들이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진천랑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후우우웅!
공력을 운기하자 후끈한 열기가 전신을 뒤덮는다.
잠시 후 그는 망설임 없이 강물로 뛰어들었다.
첨벙!
수면 아래로 잠겨든 그가 잠영으로 한참을 나아갔다. 물속에서 돌아보니 수면 밖에서 횃불을 들고 서성이는 이들이 보인다.
진천랑은 최대한 공력을 운기하면서 기슭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강심을 향해 나아갔다.
공력을 운기해 몸을 뜨겁게 했고 호흡도 길게 유지하고 있었지만,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를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
지금은 한겨울이다.
그렇게 한참이나 헤엄쳐 나아갔더니 갑자기 머리 위로 화살이 스쳐 지나갔다.
슉!
곧이어 수십 자루의 화살이 물고기 떼처럼 진천랑을 스쳐 갔다.
슈슈슈슉! 슉슉슉!
푹!
마침 화살 한 대가 잠영을 하던 진천랑의 팔뚝에 꽂혔다.
“크읍!”
입에서 부글거리며 공기 방울이 터져 나왔다.
그래도 지금은 수면 밖으로 올라설 수 없다.
어차피 밤이니까 피를 볼 순 없을 것이다.
그렇게 통증을 참으며 한참을 잠영한 끝에 가까스로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푸하!”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간신히 토해냈다.
아니나 다를까, 강기슭에 모인 무인들이 횃불을 들고 서성이며 자신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반대편을 보니 맹주가 탔을 것으로 추정되는 배가 둥실 떠 있었다.
진천랑은 호흡을 고른 다음 천천히 강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한편 누선에서 강기슭 쪽을 바라보던 묵천악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달아난 모양이군.”
“어찌 천라지망의 등급을 한 단계 낮추셨는지요?”
옆에 선 총관이 공손한 자세로 묻자, 묵천악이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아름답지 않은가? 저 모습이.”
“강기슭에 횃불이 모여 있으니 축제 같긴 합니다.”
“허허, 그런 말이 아닐세. 단 하나의 공적을 잡기 위해 저렇듯 합심해서 협력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느냐는 말일세.”
“아…….”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는 법이지. 무림공적이 본 맹을 단합시키고 더 단련시킨다면 그 존재 또한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나?”
“그렇군요.”
“그나저나 걱정이군.”
“……?”
“진천랑이 혹여나 삶을 포기할까 봐. 마지막까지 버텨줘야 할 텐데.”
“이렇게 악착같이 도망간다면 어떻게든 버티지 않을까요?”
“글쎄. 그건 어떨지. 이 시기의 강물은 생각보다 춥네. 아니, 춥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지. 강물에 빠진 순간 살을 도려내고, 심장과 폐를 잘라내는 것만 같은 고통이 음습할 것이야. 물론 무공을 익히면 다소 덜하겠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지. 한데 진짜 무서운 건 무엇인지 아는가?”
“무엇입니까?”
“인간의 정신을 좀먹는 것은 그 후에 찾아와. 모든 고비를 넘기고 자신의 처지를 새삼 실감할 때. 정신없이 달아난 후 비로소 고요함을 찾았을 때. 그때 나를 집어삼키는 악귀가 나타나지. 나는 부디 진천랑이 그 악귀에게 지지 않았으면 좋겠군.”
묵천악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시커먼 강물을 바라보았다.
* * *
“부디 그 악귀에게 지지 마시오. 맹주.”
누선에 올라서서 시커먼 강물을 바라본 남궁천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무슨 악귀 말인가?”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돌아보니 당우기가 옆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남궁천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지독한 추위가 가셨을 때, 세상이 비로소 고요해졌을 때, 누구도 날 쫓아오지 않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악귀가 있지. 그만 포기하라고. 세상에 순응하라고. 거대한 힘에 굴복하라고 속삭이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
“뭐, 네가 알 필요는 없다.”
“그런데 정말 괜찮나? 맹주가 결국 강물에 뛰어들면서 천라지망을 벗어날 것 같은데.”
“괜찮아. 맹주는 결국 내 손바닥이니까.”
“이젠 네 속내가 짐작도 안 되는군. 난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겠다.”
“그래야지. 그게 부단주 역할이니까.”
남궁천의 말에 당우기가 피식 웃어넘겼다.
예전 같았으면 저 말이 정말 듣기 싫었을 터다.
한데 인정을 하고 나니 듣기 싫지 않다.
오히려 책임지고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어 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고 야망이나 욕망이 사라진 건 아니다.
무공을 더 성취하고 싶은 욕망은 훨씬 강해졌다.
이전에는 명예욕에만 취해서 개인 기량을 발전시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내실을 다지고 싶었다.
남궁천처럼.
선실로 걸어가는 남궁천을 바라보다가 당우기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저기.”
“……?”
“고, 고맙다. 누이를 살려줘서.”
“말로만?”
“뭐, 뭘 바라는데?”
“글쎄. 생각 좀 해보자. 천천히. 네가 엎지른 걸 내가 수습했으니 여간해서는 안 될 것 같거든.”
당우기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얼마든지 생각해 보고 말해라. 한 번은 들어주마.”
“그 말 지켜라.”
“어음…… 뭐 너무 이상한 요구만 아니라면야…….”
뒤늦게 불안해진 당우기가 어설프게 조건을 붙였다.
남궁천이 피식 웃다가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천라단주에게 묵천악이 자갈이 깔린 강기슭으로 빠져나갈 거라고 일러둬.”
“그걸 어떻게 알아?”
“도망자의 기본이니까.”
“도대체 뭔 소린지…….”
하지만 이미 남궁천은 선실로 들어간 후였다.
홀로 남은 당우기가 시커먼 강물로 시선을 던졌다.
“맹주…… 당신은 적을 잘못 고른 것 같소. 지금쯤 어디서 뭐 하시오?”
* * *
촤아아아.
물속에서 솟구친 묵천악이 비틀거리며 산기슭으로 걸어갔다.
얼마나 오랫동안 장강을 헤엄쳤는지 모르겠다.
팔과 다리의 감각이 사라진 지는 오래됐다.
게다가 왼쪽 어깨를 관통한 화살 때문에 제대로 헤엄을 치기도 어려웠다.
완전히 강기슭으로 나가기 전에 묵천악은 점혈로 지혈했다.
탁탁탁!
피가 멈추자 그는 다시 강물에 몸을 담아 피를 말끔히 씻어내고는 천천히 자갈밭을 따라 기슭으로 올라왔다.
여전히 화살이 꽂힌 상태였지만 상처가 덧날 수도 있는 만큼 당장은 섣불리 뽑을 수가 없었다.
바작바작……!
자갈 밟히는 소리가 울린다.
자갈이 깔린 기슭으로 올라온 건 흔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진흙을 밟으며 이동하다간 분명 천라단에게 들킬 테니까.
물론 자갈밭으로 올라와도 흔적은 남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소한 행적이 발견될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다.
후우우우웅!
공력을 끌어 올리니 전신에서 훈풍이 불어나가면서 몸을 데웠다.
“끄으으……!”
꽁꽁 얼어붙었던 몸이 조금씩 녹아간다. 마치 얼어붙은 수면이 갈라지듯 온몸의 뼈마디가 삐거덕거리며 소리를 내지른다.
“하아아.”
묵천악은 양손을 모아 쥐고 덜덜 떨며 입김을 불었다.
무인이 공력으로 몸을 데우는 것도 모자라서 입김으로 손을 녹이고 있다니.
살면서 이렇게 비참한 순간이 또 있었던가?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억울하고 분해서 미칠 것만 같다.
“하아아아.”
다시 손을 녹인다.
울컥 울분이 차올라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입가로 피가 흐른다.
얼른 손등으로 피를 닦아내고 그걸 다시 핥았다.
피 한 방울도 흔적이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까보단 꽤 기울어 버린 달이 홀로 떠서 묵천악을 비추고 있었다.
어제 새벽까지만 해도 아름다웠던 달이 이젠 자신을 보며 비웃는 것만 같다.
‘내가 우스운가? 두고 보아라. 나는 절대로…… 크흑…… 절대로……!’
말을 잇지 못하겠다.
자꾸만 눈물이 앞을 가린다.
추위에 떨면서 웅크리고 앉아서 손을 녹이는 처지라니.
세상이 조용한 가운데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 들린다.
온 세상이 자신의 이 한심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 같다.
‘이길 수 있을까?’
처음으로 회의감이 든다.
자신은 지금 누구와 싸우는 것인가?
남궁천? 진천랑?
아니다.
세상과 싸우는 중이다.
과연…… 자신이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포기하고 싶어진다.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는 건 어떨까?
철썩!
묵천악이 스스로 제 뺨을 후려쳤다.
안 된다.
의지가 약해져서는 안 된다.
이겨내야 한다.
자신은…… 강호 그 자체다.
“나는…… 백도무림의…… 하늘이야…….”
식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묵천악이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세상이 그를 외면한 가운데 시커먼 하늘에 뜬 달만이 그를 집요하게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