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 성격 더러운 놈들
“흐흐흥. 후후후.”
남궁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꾸만 웃음을 흘린다.
천천히 기수식을 취하던 묵천악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물끄러미 보았다.
“흐흐흥.”
그러거나 말거나 남궁천은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서 자꾸만 웃었다.
사실 남궁천이 웃는 이유는 단순했다.
전생에는 저 맹주를 피해서 얼마나 도망만 다녔던가?
한데 이렇게 대면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저 맹주를 마음 놓고 팰 수도 있는 자리…… 으흐흐흥.
“흐헤헤헤.”
남궁천이 여전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서 묘한 웃음을 흘리며 자세를 잡아가자 묵천악의 눈살이 더욱 찌푸려졌다.
아니, 저 새끼가 뭘 잘못 처먹었나? 아니면 비선향에 둘러싸여 살기를 받다 보니 정신이 나갔나?
그렇게 한참이나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웃던 남궁천이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커험! 그럼 시작하시죠.”
“흐음. 괜찮은가?”
“물론이에요.”
“알겠네. 시기가 시기인 만큼 확실히 검증하도록 하겠네.”
“좋습니다.”
“적랑단주라면 역시 온갖 상황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법. 그런 만큼 선공을 양보하진 않겠네!”
파앙!
순간 묵천악이 자리를 박차면서 화살처럼 날아갔다.
‘훗.’
남궁천이 가볍게 웃으며 발끝으로 바닥을 툭 찍어 찼다.
그의 신형이 튕기듯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포위하고 있던 비선향원들이 남궁천을 향해 쇄도했다.
타다다다닷!
쒸쒸쒸쒸에엑!
매서운 검풍이 남궁천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든다.
촤아아아앗!
바닥에 미끄러지듯이 멈춰 선 남궁천이 일순 몸을 돌개바람처럼 회전했다.
따다다다다당!
창궁대연검법의 돌풍검회(突風劍回)라는 초식이었다.
금속성이 터지면서 비선향원들이 일제히 튕겼다.
남궁천의 입매가 치켜 올라갔다.
‘이거 옛 생각이 나는데?’
오늘날 비선향은 당시의 비선향보다 더 강하다.
하지만 어딘지 독기와 같은 것이 덜 느껴진다.
정말이지 예전에는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지금은 재미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람이 이렇게 환경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다니.
과연 이렇게 되면 환경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일까? 인간이 환경을 지배하는 것일까?
그렇게 무아지경 속에서 검을 휘두르다 보니 생각이 점점 깊어져 간다.
천하대살성으로 살아왔던 전생의 운명.
그것은 환경이 인간을 지배한 것인가?
하면 자신을 만나서 사랑에 빠져 버린 남궁선은?
그녀는 인간으로서 환경을 지배한 것인가?
하나 그녀조차도 종국에는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지배당한 걸까?
그랬기에 천하제일룡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버린 것일까?
그리고 자신의 아들 남궁천.
생각이 점점 복잡해지고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또 깨달음이 손에 잡힐 듯 말 듯하다.
검격은 생각에 따라 살벌하게 펼쳐지다가도 잔잔하게 이어지곤 했다.
하나 무심한 듯 펼치는 검초 하나하나는 전부 살초에 가까웠다.
촤아악! 촤악!
푸욱!
“크억!”
“끄아악!”
비선향원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뒤집어간다.
확실히 대검식이라고 하기엔 거의 목숨을 걸고 싸운다.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이 자리의 누구도 이 과정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히 이런 살검이 펼쳐질 것을 알았다는 듯 담담하다.
쩌엉!
마침내 비선향원 하나와 검을 맞댄 남궁천.
독기를 품은 비선향원의 눈을 마주하고 있으니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그 정도로는 어림없지.”
입매를 비튼 남궁천이 순간 발을 내질러서 비선향원의 복부를 걷어찼다.
퍼억!
“커억!”
투다다다, 콰당!
튕겨 나간 비선향원이 다른 동료들을 쓰러뜨리면서 구석까지 날아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으으으.”
“끄윽……!”
여기저기 앓는 소리가 들린다.
처처처척!
그럼에도 남은 비선향원들이 남궁천의 앞을 막았다.
마치 맹주를 보호하겠다는 듯.
‘허! 어이가 없네.’
실소가 절로 나온다.
싸우자고 한 것도 그쪽인데, 누가 보면 자신이 급습이라도 한 것 같지 않은가?
‘이것들이 맹주를 향한 나의 극렬한 혐오 정서를 눈치챈 건가?’
어쨌거나 상관없다.
모처럼 원수의 앞에서 검무를 추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좋다.
지금은 그저 이 좋은 기분을 이어가고 싶을 뿐이다.
팟!
남궁천이 그대로 바닥을 차며 화살처럼 날아갔다.
창천일시 초식이었다.
슈우우우웃,
따다다당!
남궁천에게 날아들던 몇몇 비선향원들이 다시 튕겨 나간다.
마지막으로 남은 비선향주가 눈을 부릅뜨더니 그대로 바닥을 긁으면서 검을 올려 쳤다.
카가가강, 번쩍!
불꽃을 이끌며 솟구친 검신이 빛을 받아 번쩍인다.
비선향주의 독문무공인 일출섬광(日出閃光)이라는 초식이었다.
나름 비선향주가 펼친 회심의 일격이었지만, 남궁천은 뒤로 성큼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벽라검을 강하게 내려찍었다.
쩌어어엉!
고막을 찢어발길 듯한 금속성이 울리면서 솟구쳐 오르던 비선향주의 검신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콰차앙!
정말이지 검신이 깨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일 정도로 막강한 중검이었다.
“이건……!”
비선향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분명 이 단순하면서도 무게를 더한 움직임은 남궁세가의 검법이 아니다.
그가 아는 한 이건 틀림없이…….
‘종남파의 천하삼십육검이군!’
그중에서도 이렇듯 찍어 내리듯 힘을 싣는 검격은 제이초인 운간용두(雲間龍頭) 초식이리라.
팔이 저릿하게 울린 비선향주가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나는데, 남궁천이 찰거머리처럼 따라붙었다.
“어딜!”
곧이어,
카가가가가각!
벽라검이 바닥을 끌면서 불꽃을 터뜨리더니 그대로 솟구쳐 오르는 것이 아닌가?
번쩍!
일순 섬광이 터지자 비선향주는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었다.
다음 순간,
슈걱!
섬뜩한 기운이 비선향주의 몸을 세로로 스치며 지나갔다.
‘이런 젠장……!’
주르륵.
이마가 갈라지면서 피가 흐른다.
비선향주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온몸이 갈라진 것만 같다.
실제로 갈라진 건지도 모르겠다.
바로 눈앞에서 죽음이 자신을 스쳤으니까.
비틀.
균형을 잃은 그가 중심을 잡기 위해 걸음을 얼른 내디뎠다.
“하아…….”
처음으로 흘러나온 한숨은 안도의 의미였다.
정말이지 예리한 검기에 몸이 갈라진 줄만 알았으니까.
다음으로 든 감정은 놀라움이다.
방금 그 초식은 분명…….
‘일출섬광!’
자신의 독문무공을 남궁천이 단 한 번 보고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
등골을 따라서 소름이 쫙 끼친다.
이건 숫제 괴물이 아닌가?
강호 역사에 이런 인간이 있기나 했던가?
아, 진천랑이 있었지.
하지만 그는 진천랑과 실제로 검을 섞어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초견파공안을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풀럭!
다음 순간 앞섶이 갈라지면서 경장이 좌우로 찢어져 흘러내렸다.
졸지에 나신이 된 비선향주가 흠칫거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남궁천이 어깨를 으쓱였다.
“다행히 고자는 면했네. 나도 가끔 실수할 때가 있어서 걱정했는데.”
“……!”
비선향주의 몸은 세로로 선혈이 새겨져 있었는데, 정말 얕게 긁힌 정도였다.
하나 조금만 깊었다면 남궁천의 말대로 고자가 될 수도 있었으리라. 아니, 흘러내린 경장처럼 온몸이 좌우로 갈라졌을 수도 있다.
터벅…… 터벅……!
충격에 휩싸인 비선향주가 복잡한 심경으로 걸음을 옮겼다.
상대가 견습생 출신이라 방심한 것도 없지 않겠지만, 이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아닌가?
어쨌거나 알몸으로 더 이상 싸울 수도 없게 된 그가 옆으로 막 물러섰을 때였다.
후우우우웅!
순간 뜨끈한 바람이 불어나가는가 싶더니 묵천악이 맹렬한 속도로 남궁천의 미간을 향해 검을 내질러 갔다.
순간 남궁천이 기다렸다는 듯이 벽라검을 휘둘러 갔다.
까아아앙!
검신이 서로 맞부딪치는 순간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터졌다.
파라라라라!
곧이어 남궁천이 몸을 회전하면서 시커먼 검기를 이끌며 검을 횡으로 그어왔다.
‘이건……!’
묵천악의 눈동자가 커졌다.
역시나 남궁세가 검법이 아니었다.
‘하북팽가의 철혈회풍!’
초식을 알아차리기가 무섭게 손에 공력을 잔뜩 실었다.
마침내 검신이 서로 맞부딪치는 순간,
쩌어어어어엉!
천지가 격동할 만큼 굉장한 금속성이 울리더니 묵천악이 들고 있던 검이 손바닥을 찢으며 날아갔다.
“크읏!”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궁천 역시 벽라검을 놓쳤다는 것이다.
휘리리릭, 콱! 푹!
묵천악의 검은 저만치 나무 기둥에 처박혔고, 남궁천의 검은 쓰러져 있던 비선향원의 허벅지에 꽂혔다.
“끄아아악!”
비선향원이 비명을 내질렀다.
하나 누구도 그를 신경 쓰지 못했다.
남궁천이 곧바로 묵천악을 향해 쌍장을 내질러 갔기 때문이다.
순간 묵천악의 눈빛이 번뜩였다.
‘오냐, 차라리 잘됐다! 이 기회에 네놈이 마공을 익혔다는 걸 확실히 까발려 주마!’
후우우우웅!
묵천악 역시 양손에 공력을 집중하면서 쌍장을 뻗어냈다.
꽈아아아앙!
손바닥이 서로 부딪쳤는데 마치 폭음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의 장삼이 부풀어 오르면서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펄럭였다.
구오오오오오.
후끈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두 사람을 에워싼 비선향원들이 섣불리 다가서지 못한 채 멈칫거렸다.
‘진천라아앙!’
묵천악의 미간이 팍 구겨지면서 단전에서 공력이 마구 솟구쳐 올라왔다.
하나 남궁천 역시 지지 않고 공력을 끌어 올려 맞섰다.
시간이 흐를수록 묵천악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어째서……! 어째서……!’
남궁천에게서 느껴지는 공력이 너무나 정순하지 않은가?
마공은커녕 잡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광활하게 펼쳐진 창공을 대하는 기분이다.
너무나 맑고 깨끗한 기운을 마주하다 보니 오히려 자신의 내공이 더럽게 느껴질 판이다.
‘말이 안 돼!’
묵천악의 심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명 이놈은 진천랑인데, 어째서 마공을 익히지 않았단 말인가?
그때 묵천악의 귀로 남궁천의 전음이 흘러들었다.
[맹주, 기분이 어떤가? 당신이 날 죽일 때 그랬지? 다음 생에는 선행만 베풀라고. 클클클.]
순간 묵천악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역, 역시 네놈은……!”
[당신 말대로 평범하게 선행만 베풀며 살고자 하는데 왜 그리 날 미워하지?]
남궁천이 눈을 번뜩이자, 일순간 주변이 시산혈해로 변했다.
그날, 진천랑이 죽던 그 언덕이었다.
어디선가 혈향도 풍겨오는 듯하다.
그렇다.
이 미묘한 기운.
이건 틀림없는 진천랑이다.
한데 어째서 마공을 느낄 수 없단 말인가?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묵천악의 눈동자가 격하게 떨린다.
그때 다시 들려오는 남궁천의 전음!
[머지않았어. 이제 당신은 지옥을 걷게 될 거다.]
“이이익! 진천라아아아앙!”
격분한 묵천악이 무리하게 공력을 끌어 올리는 순간!
슈우우우웃!
한 줄기 공력이 묵천악의 손바닥을 통해서 팔뚝을 타고 빠르게 침투해 왔다.
“크읍!”
얼른 진정하며 공력을 다스렸지만, 이미 시린 공력 한 줄기가 묵천악의 혈맥을 휘젓고 다니면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결국은 더는 참지 못한 상황이 되었을 때,
퍼어어엉!
응축된 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묵천악이 부웅 날아가서 마당에 나뒹굴었다.
“맹주님!”
총관이 기함하며 달려오는데, 묵천악이 비틀거리며 일어나다가 그대로 엎어지며 피를 토했다.
“쿨럭, 쿠웨에에엑!”
시커먼 핏덩이를 토한 묵천악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괜찮으십니까?”
“됐네.”
묵천악이 딱딱하게 대꾸하고는 고개를 들어 남궁천을 노려보았다.
‘역시……! 네놈은 진천랑이야! 내가 틀리지 않았어!’
하지만 마기를 느낄 수 없었다.
그걸 느껴야 나중에라도 약천당주를 불러 정식으로 진맥해서 죄를 물을 수 있건만.
‘증명할 방법이 없다면 역시나 예정된 최후의 단계로 넘어갈 수밖에……!’
묵천악이 뺨을 푸들거리는 가운데, 남궁천이 포권하며 해맑게 말했다.
“이런, 죄송합니다. 맹주님이 너무 강하셔서 저도 모르게 그만. 살신성인의 자세로 절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입매를 말아 올린 남궁천이 더없이 시린 눈으로 맹주를 바라보았다.
‘자, 그럼 마지막 한 수 꺼내봐. 당신 수명도 이제 보름 정도밖에 안 남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