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347화 (346/508)

347. 성격 더러운 놈들

무한이 떠들썩했다.

무한 저잣거리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바로 패력궁과 강호신룡, 그리고 맹주에 관한 것이었다.

저잣거리 입구에 자리 잡은 어느 객잔에서도 무인 몇이 모여서 온통 강호신룡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정말이지 대단한 비무 대회였어. 남궁천 소협이 패력궁과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이다니 말이야.”

“그러게 말일세. 솔직히 나는 강호신룡이 어쩌면 패력궁을 이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네.”

“에이, 그 정도는 아니지.”

“아닐세. 잘 생각해 보게. 강호신룡은 패력궁을 상대하는 와중에도 누구보다 먼저 흑무련 놈들의 존재를 눈치챘어. 그게 무슨 뜻이겠나? 비무에 온전히 집중하지 않고도 그만한 무위를 보였다는 것 아닌가?”

“흐음. 그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긴 하군.”

“게다가 절체절명의 순간 맹주님을 위기에서 구했지!”

“그건 정말 대단했지. 나는 사실 강호신룡이 활을 쏠 때만 해도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몰랐으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을 때, 강호신룡만이 악굉을 처리했잖은가?”

그러자 듣고만 있던 또 다른 무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일로 산동악가의 충격이 클 걸세. 누가 알았겠나? 산동악가의 후기지수였던 차남이 폭멸고를 복용하고 맹주님에게 달려들 줄은. 어쩌면 산동악가는 남궁천 소협을 원망할지도 모를 일이야.”

“생각이 있다면 그러지 않겠지. 강호신룡이 나서지 않았다면 산동악가는 맹주님을 죽인 가문으로 낙인 찍혀서 몰락의 길을 걸었을 걸세.”

“하긴 그것도 그렇군.”

“그러니 오히려 남궁천 소협에게 감사할 일이지.”

“그나저나 흑무련 이 개 같은 놈들은 정말이지 악랄하군. 그 젊은 후기지수에게 폭멸고를 복용시키다니!”

“그러니까 사파 나부랭이 아니겠나?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으니 그런 비열한 수작질을 하는 거지.”

“아마 정면대결 하면 흑무련주 따위는 패력궁과 강호신룡에게 묵사발이 날 걸세!”

“그걸 말이라고. 하하하!”

왁자한 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바로 뒤에 있던 탁자에서는 죽립을 눌러쓴 세 명의 사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중 애꾸 사내가 팔을 부르르 떨자, 옆에 앉은 사내가 얼른 붙잡았다.

“참아.”

차분한 목소리를 꺼낸 사람은 다름 아닌 지강.

그가 옆에 앉아서 어금니를 빠득빠득 가는 여신우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런 소리 하나하나 신경 쓰면 큰일을 못 해요.”

“시끄럽다.”

“할 말 없으면 꼭 시끄럽대.”

지강이 볼멘소리를 하자 여신우가 눈을 부라렸다.

“자자, 그만 좀 티격태격해. 그나저나 남궁천이 이렇게까지 일을 잘 처리할 줄은 몰랐네.”

마주 앉은 류난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지강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남궁천의 무위를 너무 얕잡아 봤습니다.”

“뭐…… 남궁천의 실력이 우리 생각보다 뛰어난 건 사실인 것 같군.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냐.”

“하면…….”

“놈은 마치 내 방식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어. 그러지 않고서야 그 순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활을 쏠까? 상황 판단이 너무 빨라.”

“그건…… 부련주가 남궁천과 만났을 때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걸 흘린 게 아닐까요?”

은근히 질책하는 말에 여신우가 다시 한번 눈을 부라렸다.

“누굴 병신으로 보는 건가?”

“아니면 아니지 뭘 그리 발끈하시나?”

이번에도 류난이 말리면서 끼어들었다.

“그만들 하고. 아무튼 이번 일로 남궁천에게 확실히 기회가 가버렸어. 이젠 정말 그 녀석에게 돈을 줘야 할지도 몰라. 다섯 배나 되는 돈을.”

“그것도 어디까지나 남궁천이 성공했을 때죠.”

지강의 말에 류난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군사는 그 녀석이 실패할 것 같나?”

“으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류난이 쓴웃음을 지었다.

지강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꽤나 성공률이 높을 거라는 말이다.

“어쨌든 이제는 잠시 물러나서 지켜보자고. 상황을 보아하니 맹주도 남궁천을 좋게만 보지 않는 것 같으니까.”

“그건 역시 남궁천이 진천랑의 아들이기 때문이겠죠?”

“그럴 테지. 거의 이성을 잃고 광분하며 소리칠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어. 한번 지켜보자고.”

그러자 여신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남궁천이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갈까?”

“글쎄. 우리의 꼼수를 확실히 확인한 이상 뭔가 반응은 있을 테지. 그것도 두고 보자고.”

“그럼 이만 일어나시죠? 여기저기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리니 숨도 못 쉬겠어요.”

지강이 울상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아까부터 뒤에 앉은 무인들이 연신 흑무련 욕을 해대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지금 흑무련주를 거의 지렁이만도 못한 수준으로 만들고 있었다.

“흥! 흑무련주 따위는 내 발바닥에도 못 미칠 걸세!”

“크하하하하!”

류난이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만 가자. 나들이도 이만하면 됐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지강과 여신우도 얼른 따라서 일어났다.

그들이 객잔을 막 나서려고 할 때였다.

그들 뒤에서 연신 욕을 해대던 무인 중 하나가 갑자기 목을 움켜쥐고는 괴로워했다.

“컥, 크억……!”

“응? 자네 갑자기 왜 그러나?”

“몰, 몰라…… 갑자기 숨이……! 컥!”

“장난하지 말게나. 재미없어.”

“그, 그게 아니…… 크억!”

마침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사내가 옆으로 기우뚱하더니 바닥에 쿵 쓰러지고 말았다.

동석한 무인들이 화들짝 놀라서 달려왔다.

“이보게! 정신 차리게!”

“의원! 점소이는 어서 의원을 불러와라!”

“갑자기 무슨 일이야?”

순식간에 객잔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류난과 지강, 여신우는 태연히 객잔을 빠져나갔다. 바로 옆을 스치며 의원을 부르러 달려가는 점소이를 보면서 지강이 혀를 찼다.

“쯧. 조심하라니까.”

“안 걸렸잖아. 그리고 련주님을 욕보인 놈이다. 용서할 수 없지.”

“어휴, 말을 말자. 설마 죽인 건 아니지?”

“일각 내로 의원이 오지 않으면 죽을 거다.”

지강이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아, 진짜 성격 더럽다. 독종이네. 독종!”

그러자 이번엔 여신우가 극렬히 혐오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강을 흘겨보았다.

“젊은 후기지수에게 폭멸고를 집어넣는 인간이 할 소린가?”

“…….”

“…….”

잠시 서로를 노려보던 두 사람이 이내 고개를 휙 돌리고는 걸어갔다.

* * *

“그냥 죽여 버리라고?”

남궁천의 물음에 견습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팽수혁은 팔짱을 끼며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사실 나는 네가 그날 맹주를 죽이길 바랐다.”

“와아, 팽수혁. 너 무림맹원 아니었구나? 맹주를 죽이라니.”

남궁천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너스레를 떨자, 팽수혁이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맹주가 본 가를 대한 방식을 생각하면 울분이 차고 넘치지. 맹주는 본 가를 거의 버리다시피 했으니까. 아마 언가도 같은 생각일걸?”

“그럼 네가 죽이지 왜 나보고 죽이래?”

“야! 너는 배알도 없냐? 물론, 네가 그날 맹주를 죽였다면 여러모로 시끄러워졌겠지! 하지만 이젠 널 지지하는 세력도 꽤 있으니 어떻게든 덮어둘 수도 있지 않겠냐?”

피식.

남궁천이 실소를 흘리자, 팽수혁이 도끼눈을 하고는 소리쳤다.

“뭐야? 그 웃음은! 방금 나 무시한 거지?”

“확실히 좀 똑똑해진 것 같기도 하고.”

“뭐, 인마?”

“아무튼 맹주를 죽이라니. 싫은데?”

“뭐? 왜?”

남궁천의 표정이 일순 싸늘하게 식었다.

“그래서 네가 아직 멀었단 거야. 죽음은 복수의 완성이 아니지.”

“뭐?”

“이제부터 매 순간이 고통인 것은 맹주야. 내가 바짝 다가선 걸 아는 이상 단 하루도 발 뻗고 잠을 잘 수 없을 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네가 그랬어? 왜? 언제부터?”

“알 것 없고. 아무튼 난 한 달도 남지 않은 이 시간을 꽉 채워줄 거다. 오히려 살아 있는 것이 고통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매 순간이 지옥처럼 느껴지도록 숨통을 죄어갈 거다.”

말을 마친 남궁천이 뭔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씨익 웃었다.

한데 그 웃음을 보니 등골에 소름이 돋는다.

팽수혁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이 새끼 성격 진짜 더럽네. 벌써 즐기고 있단 거잖아? 지독한 놈. 방금 네 표정은 진짜 대살성 같았다.”

옆에 선 윤종승이 격하게 동의한다는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천이 피식 웃었다.

“어쨌거나 쉽게 안 식을 줄 생각은 없다. 남은 기간 꽉 채워서 두려움에 벌벌 떨다가 뒈지게 만들 테니까.”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당연하지. 두고 봐라. 아버지의 누명도 벗겨 버릴 테니까.”

“설마 너…… 네 아버지가 천살성이 아니라고 믿는 거냐?”

남궁천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것을 증명하기 전에는 누구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테니까.

‘결자해지하도록 만들어야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맹주의 정신을 바삭거리는 낙엽처럼 말려 버려야 한다.

“아마 맹주는 이제부터 발악을 할 거야. 악착같이 발악하다가 최후의 한 수를 사용하겠지. 원래 그런 영감탱이니까.”

“그럼 넌 그걸 이용할 생각인 거고?”

“그래. 마지막 그 한 수가 결국은 무리수가 될 거다. 원래 궁지에 몰려서 사용하는 한 수는 양날의 검과 같은 법이거든.”

“그럼 그 한 수가 뭔지는 알고?”

“몰라.”

“몰라……?”

“응.”

“그런데 어떻게 그걸 역이용한다는 거야?”

“상관없어. 어차피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쓰는 한 수 따위는 위협이 될 수 없을 테니.”

방심이 아니다.

남궁천은 지금까지 이런 상황을 철저하게 만들어온 것이다.

맹주는 지금 자신이 파놓은 늪에 빠진 상황.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져들 뿐이다.

남궁천이 활짝 웃으며 깍지 낀 손을 뒤통수에 댔다.

“어쨌든 이젠 편한 마음으로 맹주의 파멸을 지켜보자고.”

“역시 넌 성격이 지랄 같은 놈이야.”

“너한테 듣고 싶진 않은걸.”

두 사람의 대화에 진소홍이 풋 웃음을 터뜨렸다.

* * *

시산혈해.

묵천악은 시체더미를 밟고 선 채로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렸다.

“어디냐! 어디에 있는 것이냐! 당장 나와라, 진천랑!”

“당신 옆에 있잖아. 왜 나를 못 찾나?”

휙!

발작처럼 묵천악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피투성이가 되어 널브러진 시신들만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진천랑! 보이느냐? 네놈이 죽인 사람들이다! 천하대살성 진천랑! 네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것이다!”

“뭔 개소리야? 당신이 죽여놓고선.”

“노오옴! 네가 분명…… 헉!”

순간 이상한 느낌을 받은 묵천악이 깜짝 놀라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놀랍게도 시신들의 얼굴이 전부 진천랑으로 변해 있었다. 수많은 진천랑이 손을 뻗어 묵천악의 발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이익! 이것 놓지 못할까!”

하지만 그는 깊은 늪에 빠진 것처럼 점점 시체더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으윽! 날…… 놔라……! 크윽!”

“맹주님!”

순간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총관이 달려와서 손을 뻗고 있었다.

“총관! 나를 어서 꺼내주게!”

“맹주님!”

“어서 날……!”

“아직도 내가 총관으로 보여?”

“……!”

총관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진천랑의 모습으로 변한다. 묵천악이 기함하는 사이 진천랑이 발로 그의 머리를 지그시 눌러 밟았다.

“이젠 당신이 죽을 차례야. 맹주!”

“안 돼!”

“안 돼애애앳!”

순간 묵천악이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시커먼 어둠을 응시했다.

“헉, 헉, 헉……!”

꿈인가?

현실을 자각하기 무섭게 그가 일순 침상 옆에 둔 검을 쥐더니 매섭게 검신을 뽑아냈다.

차아아앙!

한 줄기 빛이 세로로 그어졌다.

챙그랑!

완전히 두 조각 난 쟁반이 바닥에 떨어졌다. 물 잔도 떨어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낸다.

쟁반에 물을 담아 왔던 총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더듬거렸다.

“맹, 맹주님…… 괜찮으십니까?”

“자네였군.”

“무슨 안 좋은 꿈이라도…….”

맹주가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읊조렸다.

“진천랑…… 아니, 남궁천을 만나 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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