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 대가리 박으시죠
쒜에에에엑!
화살 한 대가 빛살처럼 날아갔다.
아래에서 위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솟구친다.
마치 수면을 따라 평행으로 날아가던 물제비가 날개를 펼치며 비상하는 모습 같다.
그러나 다수의 관중들은 그 모습을 정확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화살의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다만 패력궁 천무류는 화살이 날아가는 궤도를 정확히 알아보았다.
‘이건……!’
놀랍게도 남궁천은 자신이 궁을 쓰는 방식과 똑같이 쏘았다.
자신의 독문무공인 패기궁법!
이게 말이 되나?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남다른 재능으로 궁에 매달려 왔던 자신이다.
강호 역사에 전무후무한 신궁의 탄생이라며 주변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어댔다.
얼마나 그런 호들갑이 지겨웠으면, 나중엔 그저 한직으로 물러나 조용히 지내길 원했을까?
그런데…….
‘이 아이의 재능은 나를 훨씬 능가하는구나!’
아니, 재능이라고 부르는 것도 뭔가 이상하다.
이건 그냥 차원이 다른 존재 같은 느낌이랄까?
일견에 무공을 파훼하고 그것을 자신이 그대로 쓸 수 있다니?
물론 초견파공안에 대해 어느 정도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일행여초.
단 한 번 보고 행하면 어지간히 초식을 흉내 낼 수 있다는 것.
하나 그것은 분명히 과장된 표현이다.
무공을 파훼하는 것과 실제로 그 무공을 행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능력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 한 번만 행해서 초식을 따라할 수 있으려면?
모르긴 해도 평생 온갖 무공을 다 섭렵하면서 따라해 봤어야 한다. 적어도 그 정도는 되어야 일행여초에 이르지 않겠나?
한데 남궁천은 이제 약관을 채운 청년이 아닌가?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재능이군. 인생을 이 회차 사는 인간도 아닐 터인데.’
얼떨결에 정답을 떠올린 패력궁이었지만, 그 가설은 가볍게 무시했다.
한데 놀라운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처음엔 패기궁법의 가장 기본적인 초식을 흉내 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쒜에에에에엑!
번쩍!
일순 화살이 빛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천무류의 눈자위가 사정없이 떨렸다.
‘저, 저건……!’
패기궁법의 섬광폭시!
카차아아아앙!
화살이 조각나며 터져 나가자 그 파편이 그대로 허공을 가로지르는 악굉을 아래에서 위로 덮쳤다.
퍼퍼퍼퍼퍼퍽!
조각난 파편이 솟구쳐 오르면서 그대로 악굉의 몸에 박혀들었다. 그 바람에 귀빈석으로 떨어져 내리던 악굉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면서 일순 대연무장 외벽 너머까지 튕겨 날아갔다.
“크아아아아아악!”
잔뜩 충혈된 눈으로 괴성을 내지르던 악굉이 마침내 창공에서 터져 나갔다.
퍼어어어엉!
폭음과 함께 악굉의 전신이 산산이 찢어지자 녹빛 독무가 주변으로 훅 퍼졌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던 관중들이 한참이나 굵다란 눈만 끔뻑였다.
이윽고 누군가의 목소리.
“저, 저건…… 독무잖아?”
“독무라니? 그럼 방금 허공을 가로지르면서 날아가던 녀석이 맹주님을 노린 거야?”
“틀림없다! 몸이 터져서 자폭하는 방식은 분명히 폭멸고다!”
“어엇! 그럼 이전에 칠대세가회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비슷하잖아?”
사람들은 일전에 황학루에서 일어났던 칠대세가회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때문에 폭멸고독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
또다시 누군가 소리쳤다.
“그, 그럼…… 강호신룡이 맹주님을 구한 건가?”
“그러고 보니 방금 화살을 쏜 사람이 패력궁이 아니라 강호신룡이었지?”
“맙소사, 강호신룡이 맹주님을 구하다니! 이건 비무를 떠나서 엄청난 공을 세운 거잖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와중에도 패력궁은 내심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평생을 갈고닦아 만든 패기궁법인데, 단 일행으로 거의 똑같이 구사하다니!
“남궁천…… 도대체 네놈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무슨……?”
“누군가 폭멸고까지 이용해서 맹주님을 노리고 있어요. 만약 악굉이 시선 끌기용이라면 암습이 아직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시선 끌기……? 대체 누구의 시선을 끈다는 것이냐? 아니 그보다 악굉이라면…… 설마 산동악가의 차남을 말하는 것이냐?”
궁금증이 두서없이 일어난다.
도대체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잠깐.
남궁천은 이러한 사실을 어찌 이렇게 정확히 알고 있나?
혹시 비무하기 전부터 이러한 사실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단 건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천무류는 다시 한번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무릇 비무란 모든 신경을 그 비무에만 쏟아야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는 법이다.
모든 신경을 오롯이 무공에만 집중해야 한단 뜻이다. 특히 비등한 실력 차이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 모든 걸 신경 쓰는 와중에 나와 비무를 치렀다고?’
이래서야 숫제 괴물이 아닌가?
비록 지금은 남궁천의 무위가 자신보다 아래지만, 자신을 뛰어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리라.
그렇다.
남궁천이 이토록 강한 것은 단지 초견파공안 때문이 아니다.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노회함이 있다. 마치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만큼의 경험을 전생에 쌓고 태어난 인간 같다.
‘무서운 녀석이구나. 이 정도로 무서운 녀석이면 보통 강호인에게 경계 대상이 될 텐데. 앞으로의 삶이 험난할……!’
생각을 이어가던 천무류가 순간 흠칫거리고는 맹주 쪽을 보았다.
맹주는 조금 전 있었던 습격에 놀란 것인지 꽤나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맹주가 경계한 것이 천살성이 아니라 그 재능이라면? 그럴 리가…….’
내심 부인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맹주의 진심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고 있다.
생각은 길었지만 흐른 시간을 매우 짧았다.
마침 관중석 한쪽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흑무련이다앗!”
공력이 실린 소리였기에 모든 관중의 시선이 고함을 지른 사내에게 향했다.
그는 다름 아닌 남궁표였다.
그의 손에는 남궁천이 그려준 용모파기가 들려 있었는데, 바로 여신우의 얼굴이었다.
출입구 쪽에 서 있던 여신우가 쓴웃음을 짓고는 얼른 몸을 빼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염라단이 소리쳤다.
“저 애꾸를 잡아랏!”
“거기 서랏!”
남궁표와 염라단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천무류가 남궁천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과연. 저 녀석들을 말한 것이냐?”
“아뇨. 흑무련 놈들이 저렇게 맥없이 물러갈 리가 없죠. 거금을 아낄 기회일 텐데.”
“거금을 아껴? 그건 무슨 소리…….”
“찾았습니다! 어깨 좀 빌리겠습니다!”
“으응? 뭘 빌려…….”
“저 좀 날려 보내주세요! 광폭공시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다급하게 말을 쏟아낸 남궁천이 활을 돌려주더니 벌떡 일어났다. 목마 탄 자세에서 천무류의 어깨 위로 완전히 올라선 것이다.
다음 순간,
파앙!
남궁천이 발끝에 공력을 실으면서 천무류의 어깨를 발로 차며 날아올랐다.
천무류가 반사적으로 호신강기를 운용했기에 망정이지, 평범한 무인 같았으면 진작 어깨가 부서졌으리라.
‘쯧,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천무류가 내심 혀를 차면서도 그 짧은 사이에 자신을 이만큼이나 파악했다는 게 놀라웠다.
거기에 광폭공시로 날려 보내달라니.
‘허! 기가 막힌 놈이로고.’
정말이지 평범한 생각을 지닌 녀석이 아니지 않은가?
방어용 궁법을 이런 식으로 응용할 줄이야.
이십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천무류가 찰나에 스친 생각들을 갈무리하고는 빠르게 활시위를 당겼다.
남궁천의 말대로 손가락 네 개를 걸어 당기는 광폭공시였다. 다음 순간, 그가 시위를 놓았다.
파아아아아아앙!
파공성이 터지면서 광폭의 기운이 남궁천을 뒤에서 덮쳐왔다.
후우우우우우웅!
경공을 펼쳐 날아가던 남궁천의 신형에 가속이 붙었다.
“우아앗! 강호신룡이 날아간다!”
“맙소사! 관중석을 단숨에 뛰어넘어서 귀빈석으로 간다!”
“잠깐! 아직 비무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잖아? 이러면 장외실격 아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와중에 누구보다 당황한 사람은 바로 맹주 묵천악이었다.
그는 뺨을 부들거리면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남궁천을 보았다.
꽉 말아 쥔 주먹도 부들부들 떨린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다니!’
하필이면 악굉이 자신을 덮치려다가 남궁천에게 튕겨 날아갔고, 패력궁은 남궁천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남궁천이 살기를 휘날리며 자신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이익! 남궁천 네놈이 정녕 나를…….’
묵천악이 두 눈을 부릅뜨는 순간, 시커먼 그림자가 앞을 훅 덮쳤다.
“맹주님!”
옆에 서 있던 총관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남궁천에게 지나치게 집착을 한 결과, 바로 앞에서 습격해 들어오는 무인을 미처 의식하지 못한 것.
푸욱!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뜨끈한 피가 묵천악의 얼굴로 튀었다.
묵천악이 시선을 내려 보니 복면을 쓴 흑의인 가슴에 두 자루의 검신이 튀어나와 있었다.
“끄륵…….”
쿠웅!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쓰러진 흑의인 뒤로는 호신위 한 명과 남궁천이 서 있었다.
남궁천이 피 묻은 벽라검을 털어내고는 씨익 웃는다.
“거, 몸 조심하셔야죠. 비싼 분이신데.”
남궁천의 묘한 말투에 호신위가 미간을 슬쩍 구기고 뭐라고 하려는 순간, 흑의인 십여 명이 귀빈석으로 쏟아지듯 들어왔다.
호신위가 버럭 소리쳤다.
“맹주님을 호위하라!”
차차차아앙!
순식간에 맹주를 에워싼 호신위들이 흑의인들과 맞부딪쳐 갔다.
귀빈석이 아수라장이 되자 수석 호신위가 묵천악에게 소리쳤다.
“맹주님!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괜찮네.”
묵천악이 딱딱하게 말을 뱉고 나서는 남궁천을 빤히 노려보았다.
‘이놈…… 역시……!’
등골을 따라 찌르르 울리는 이 감각.
틀림없다.
진천랑과 마주했을 때마다 느꼈던 그 죽음의 기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감각이다.
한데 남궁천도 똑같다.
시체가 즐비한 전장 복판에서 남궁천과 마주하는 기분이다.
묵천악이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신음처럼 흘렸다.
“진천랑…….”
순간 남궁천의 표정에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쩌면 저 미소까지 꼭 닮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일까?
어째서…… 어째서 네놈은 죽지도 않았단 말인가!
‘어째서!’
묵천악이 어금니를 꽉 깨무는데, 남궁천이 그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면서 자박자박 걸어온다.
이미 묵천악의 눈에는 앳된 남궁천의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 자신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오는 자는 늘 죽음의 기운을 몰고 다니던 진천랑이었다.
‘저놈이…… 결국 나를 죽이려고 환생한 것인가?’
마침내 남궁천이 지척에 다다랐다.
두 사람의 숨결도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
주변은 피 튀기는 전장으로 변해서 온통 아수라장이었지만, 두 사람만큼은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듯 고요함에 빠져들었다.
남궁천이 묵직한 목소리를 흘렸다.
“쫄지 마. 나는 지금 당신 안 죽일 테니까.”
“……!”
“그랬다간 또 무림공적 일 호가 되어서 평생을 쫓겨 다니겠지.”
“역, 역시 네놈은 진천랑…….”
남궁천의 입매가 미미하게 비틀렸다.
“하지만 머지않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