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343화 (342/508)

343. 대가리 박으시죠

“어엇! 저기!”

윤종승이 화들짝 놀라며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팽수혁과 유현, 그리고 진소홍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시선을 돌렸다.

죽립을 쓴 사내가 인파를 헤치며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팽수혁이 미간을 팍 구기며 소리쳤다.

“저 녀석 악굉 같은데?”

“움직임이 유사하긴 합니다!”

유현이 마주 소리치며 몸을 날렸다.

뒤이어 세 명의 견습생도 얼른 달리기 시작했다.

“좀 비켜요!”

“미안합니다!”

“죄송해요! 급해서요!”

견습생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양민들을 이리저리 밀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네 사람보다 앞서 달리는 악굉은 훨씬 빠른 속도였다.

견습생들은 양민들이 다칠 것을 감안해서 비교적 조심스럽게 움직인다면, 악굉은 무작정 사람들을 밀치며 내달리고 있었다.

“으악! 뭐, 뭐야?”

“이봐! 조심하라고!”

성난 양민들이 잔뜩 화난 얼굴로 돌아보면 이미 악굉이 저만치 달려간 후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뒤를 쫓는 견습생들과 거리가 점점 벌어질 뿐이었다.

“내가 먼저 가볼게!”

마침 진소홍이 발끝으로 바닥을 툭 찍어 차더니 허공으로 훌쩍 날아올랐다. 곧이어 그녀가 유성추를 쏘아내자 곧게 뻗어나간 정이 대연무장 외곽 벽에 깊이 박혔다.

콰작!

부우우웅!

그녀가 은잠사를 잡아당기자 거미가 줄을 타고 날아가듯 수십 명의 관중들 머리 위를 지나쳤다.

그 모습을 본 윤종승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멋있다…… 그런데 유성추는 남궁천에게 주지 않았나?”

“야, 금왕의 딸인데 유성추 열 개를 가지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잖아! 집중이나 하라고! 우리도 가야지!”

“아, 그, 그래!”

그러는 사이 진소홍은 악굉을 가로질러 공중제비를 돌더니 바닥에 착지했다.

휘리릭, 탁!

곧이어 그녀가 곧장 뛰쳐나가면서 일장을 내질렀다.

“하앗!”

파앙!

순간 요란한 소리가 울리면서 악굉이 붕 나가떨어졌다.

쿠당탕!

“크윽!”

눈에 핏발이 선 악굉이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머리에 쓰고 있던 죽립이 바닥에 떨어졌다.

“너…… 악굉 맞구나.”

진소홍이 흠칫거리고는 말하자, 악굉이 콧잔등을 잔뜩 찡그리며 으르렁댔다.

“죽인다! 비켜라!”

“정신 차려! 악굉! 너 지금 사술에 당한 거야!”

“이익! 비켜라, 이 괴물아!”

찰나 악굉이 바닥을 차고 그대로 진소홍의 품을 기습했다.

쉬이이이잇!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날아드는 일권이었다.

하나 악굉의 주특기는 창술이었다.

적수공권으로 덤벼드는 악굉은 진소홍에게 그리 위협이 되지 못했다.

더구나 그녀는 최근 남궁천의 조언 등을 통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상태.

휘리리릭!

진소홍이 가볍게 몸을 회전하자 악굉의 주먹이 옆구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휘청!

중심을 잃은 악굉이 쓰러질 듯 균형을 잃어버리자 진소홍이 얼른 유성추를 던져 은잠사로 악굉을 휘어 감았다.

“크익! 이것 놔! 놓지 못해!”

악굉이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퍼덕거리며 저항했다.

그 바람에 주변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싸움이……!”

“자네들 여기서 뭐 하는 건가? 그보다 저 청년은 눈이 왜 저런 거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악굉과 진소홍을 보았다.

하지만 군중의 관심이 오래 유지되진 않았다.

어느 순간 함성이 솟구쳐 올랐기에 두 사람을 보던 군중들도 비무대로 시선을 옮겨 버렸다.

진소홍이 얼른 악굉의 혈을 점했다.

탁탁탁!

“크읏! 이 괴물이……! 나는 맹주를……!”

악굉이 연신 이를 갈며 소리쳤지만, 진소홍은 말상대를 하는 대신 악굉을 어깨에 들쳐 메고는 얼른 관중석을 빠져나왔다.

관중석에서 빠져나가는 통로를 지나니 둥글게 휘어 돌아가는 복도가 나타났다.

사람이 없는 것을 살핀 진소홍이 악굉을 바닥에 내려두었다.

“악굉! 정신 차려!”

“닥쳐라! 이 괴물아!”

악굉은 여전히 핏발 선 눈으로 진소홍을 잡아먹을 듯 으르렁댔다.

마침 팽수혁을 비롯한 다른 생도들이 진소홍이 있는 곳까지 달려왔다.

“후우, 괜찮아?”

“나는 괜찮아. 그보다 악굉의 상태가 이상해.”

“폭멸고에 당한 걸로 이렇게까지 되는 건가?”

팽수혁이 미간을 찡그리고는 악굉을 살폈다.

악굉은 마치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이제 어쩌지?”

진소홍이 묻자, 팽수혁과 윤종승이 선뜻 답을 내지 못했다.

남궁천은 악굉을 죽이라고 했다.

하지만 악굉은 한때 자신들과 함께 무연회를 하며 말도 섞었던 생도가 아닌가?

비록 같은 학관은 아니라지만 또래의 후기지수를 잔혹하게 살해한다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았다.

물론 한 사람을 제외하곤.

“죽여야죠.”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는 듯 말하는 유현.

윤종승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니까.’

견습생들이 망설이자, 유현이 그 속내를 짐작한 것인지 한 걸음 나섰다.

“동정에 얽매여서는 강호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정 내키지 않는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잠깐만!”

진소홍이 얼른 나서서 유현을 막았다.

유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정말…… 정말 죽일 거야?”

“예. 나중에 더 큰 화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린 위험한 상황입니다. 만약 흑무련 중 누군가 진 소저를 봤다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으니까요.”

“야, 인마! 아무리 그래도 악굉은 우리와 같이……!”

“우리와 같이? 뭐죠? 저 모습이 우리와 같이 무연회를 치르던 그 악굉으로 보이십니까?”

유현이 착 가라앉은 눈길로 악굉을 보았다.

두 눈에 핏발이 잔뜩 선 악굉은 연신 이를 갈아대며 짐승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팽수혁이 혀를 차며 눈을 질끈 감았다.

“칫, 젠장!”

“제가 알기로는 폭멸고를 빼낼 방법은 없습니다. 더구나 이런 모습은 저도 생소합니다. 폭멸고에 당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이성이 망가진 경우를 본 적이 없거든요. 강호에서 모르는 건…… 위험한 겁니다. 그리고 위험한 건…….”

“제거해야겠지.”

윤종승이 말을 받자, 팽수혁이 눈알을 부라렸다.

“이 새끼, 너까지 왜 이래?”

“유현 도장 말이 맞아. 이런 걸로 옥신각신할 시간이 없어. 만약 여기에 남궁천이 있었으면 진작 죽였을 거야.”

“그렇다고……!”

“너도 남궁천처럼 되고 싶다며?”

“내, 내가 언제! 나, 난 그저 그 녀석보다 강해질 거라고 한 거다!”

“어쨌거나 그러려면 더 독해져야 해. 남궁천이 강해지기 시작한 건 마음의 변화에서부터 일어난 거니까.”

“칫!”

팽수혁이 혀를 차고는 악굉을 쳐다보았다.

악굉은 이 상황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시뻘겋게 물든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고 있었다.

유현이 더는 기다리지 않고 한 걸음 나섰다.

“그럼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비켜. 내가 한다.”

모두의 시선이 돌아간 곳에는 팽수혁이 어느새 혈염도를 꺼내 들고 서 있었다.

그의 표정이 굳은 의지로 다져져 있었다.

유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확 먹물을 뽑아버릴라.”

“…….”

“누군가의 손에 피를 묻혀야 한다면 내가 한다.”

팽수혁이 딱딱한 목소리를 뱉어내고는 악굉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유현이 물러나자 팽수혁이 한쪽 무릎을 꿇고는 혈염도를 악굉의 목에 가져갔다.

“크르르……! 이 괴물들아! 날 방해하지 마라! 크아아!”

그야말로 악굉은 미치광이가 되어 있었다.

팽수혁이 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병신 새끼…… 그러게 왜 어울리지 않게 본 가로 지원을 와서는…….”

악굉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팽수혁이었다.

만약 악굉이 하북팽가를 돕기 위해 산동에서 출발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비참한 일도 당하지 않았으리라.

“크르르르! 크아아아!”

악굉이 짐승처럼 울부짖자, 팽수혁이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나를 원망해라, 악굉. 네 원수는 반드시 내가 갚아주마.”

다음 순간 팽수혁이 혈염도를 내지르려는데,

“거기 누구냐!”

느닷없이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더니 무인 둘이 달려오는 게 아닌가?

모두가 악굉에게 모든 신경을 쏟고 있다 보니 차마 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다.

이쪽으로 달려오는 무인들은 염라단 소속의 맹원이었다. 하필 대연무장을 중심으로 순찰하던 중 견습생들을 발견한 것이다.

“아하하. 고생하십니다! 저희들은 무림맹 견습생들인데 별일 아닙니다!”

윤종승이 얼른 나서며 두 사람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를 챈 염라단원들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비켜라.”

“에이, 그러지 마시고 저희들끼리 조금 다툰 거니까 그냥 넘어가 주시면…….”

차차아앙!

순간 염라단원 둘이 검을 뽑아 들자 윤종승이 헛바람을 삼키며 물러났다.

“흐익!”

“좋은 말 할 때 물러서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른 무인 하나가 입에 피리를 넣고는 불었다.

삐이이익!

한 번의 피리 소리는 인근에 있는 무인들을 불러 모으는 신호.

조만간 이곳으로 무인들이 십여 명 정도 모이리라.

염라단원 한 명이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팽수혁을 한쪽으로 떠밀었다.

“물러나 있어!”

“조심하십시오. 그 녀석은 지금…….”

“시끄러워!”

염라단원이 눈알을 부라리며 살기마저 뿜어댔다. 그도 그럴 것이 염라단원의 눈에는 견습생들이 한 생도를 둘러싸고 괴롭히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마침 다른 염라단원이 얼른 악굉의 상태를 살피더니 미간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조장님, 이 녀석 상태가 좀 이상합니다.”

“왜 그래? 상처가 있나?”

“그건 아닌데 점혈을 당해서 움직일 수는 없는 상태입니다.”

“그럼 마혈부터 풀어줘.”

“안 돼요!”

순간 팽수혁이 버럭 소리치자, 염라단 조장이 눈알을 부라렸다.

“이 새끼가 뭘 잘했다고 지금 큰소리야! 뇌옥에 갇혀서 콩밥 먹고 싶어?”

“그게 아니라 저 녀석은 지금 맹주님을 노리는…….”

그때였다.

“크아아아!”

염라단원이 마혈을 풀어주자마자 악굉이 괴성을 내지르더니 벌떡 일어나는 게 아닌가?

“어엇!”

“비켜라! 이 괴물들아!”

악굉이 그대로 염라단원에게 달려들더니 창을 뺏어 들고는 전광석화처럼 휘둘렀다.

서걱!

피츗, 츄아아아아!

순식간에 목이 절반이나 찢어진 염라단원이 그대로 바닥에 쿵 쓰러지면서 경련을 일으켰다.

“뭐, 뭐야? 이거!”

그제야 조장도 뭐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는 피리를 입으로 가져가 세차게 불었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삐이이익!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세 번 울렸다.

비상상황을 알리는 소리!

이제 모든 염라단원들이 곧 이곳으로 집합하리라.

하지만 창을 쥔 악굉의 움직임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렸다.

휘리리릭!

“헉!”

바람처럼 날아든 악굉이 그대로 조장의 목을 다리로 죄더니, 창으로 벽을 찍고는 팽이처럼 팽그르르 도는 게 아닌가?

쿠당탕!

그대로 튕겨 나가듯 쓰러진 조장이 입에 거품을 물고는 쓰러졌다.

“이런 젠장! 악괴에에엥!”

팽수혁이 고함을 내지르며 그대로 태도를 휘둘러갔다.

부우우우웅!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지만, 악굉은 그대로 창을 지지대 삼아 훌쩍 뛰어오르더니 팽수혁의 턱을 발로 걷어찼다.

퍼억!

“크억!”

그대로 나동그라진 팽수혁을 사뿐히 타 넘은 악굉이 관중석 출입구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일련의 동작이 그야말로 물이 흐르듯 매끄럽고 신속했다.

“어엇! 쫓아야 해!”

“어서!”

견습생들이 곧장 악굉의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한편 바닥에 쓰러졌던 팽수혁이 몸을 일으킬 때쯤엔 저만치 염라단원들이 떼를 지어 달려오고 있었다.

팽수혁이 피 섞인 침을 탁 뱉었다.

“제길, 조졌네.”

곧이어 그가 관중석 쪽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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