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339화 (338/508)

339. 건드리면 안 되는 것들

일전에 흑무련이 진주언가를 공격했을 때, 산동악가 무인들의 몸에 폭멸고독을 심어서 활용한 적이 있었다.

당시 대부분 생포한 무인들을 그렇게 소모했지만, 산동악가의 차남인 악굉만큼은 만약을 대비해 남겨두었던 것이다.

여신우가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만신창이가 된 악굉을 보고는 눈살을 푹 찡그렸다.

“너…… 무슨 실험을 한다고 그 녀석을 달라더니. 그저 고문만 한 거 아니냐?”

“에이, 무슨 그런 서운한 말을. 나는 제대로 실험하고 있었다고. 단지 이 녀석이 아니라, 다른 녀석으로.”

“다른 녀석으로?”

여신우가 눈살을 더욱 구기자, 지강이 헤실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파 놈들과 싸울 때는 본 련의 특기를 십분 발휘해야 하지 않겠어? 우리 같은 사파가 마교에게도 뒤지지 않는 게 하나 있잖아?”

“사술 말인가?”

“바로 그거지. 폭멸고독과 사술을 이용해서 좀 더 구체적인 명령에 복종할 수 있도록 했지.”

“하면 실험을 했다는 건 폭멸고를 두고 한 말이군.”

“맞아. 우선은 술법과 폭멸고의 상성이 잘 맞아야 할 테니까.”

그러자 류난이 관심을 보이며 끼어들었다.

“호오. 그래서 결과는 성공했나?”

“제가 누굽니까?”

지강이 어깨를 쭉 펴고는 묻자, 류난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본 련의 총군사, 만학수사 지강 님이시지.”

“련주, 그 녀석 너무 띄워주지 마. 정신 못 차린다.”

“시끄러워!”

여신우의 말에 지강이 발끈해서 소리치고는 류난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저 녀석이 패력궁의 미끼 역할을 해줄 겁니다.”

지강이 턱짓으로 악굉을 가리켰다.

악굉은 상처투성이의 얼굴이었지만 눈빛만큼은 표독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지강이 흑립 사내를 돌아보며 말했다.

“폭멸고 가져오세요.”

그러자 여신우가 눈살을 구겼다.

“지금 여기서 하려고?”

“그럼? 그러려고 온 건데.”

흑립의 사내는 곧 악굉의 마혈을 점하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그가 찬바람과 함께 돌아와서는 집게와 작은 목함을 건네주었다.

지강이 탁자 위에 목함을 두고는 덮개를 열자, 애벌레처럼 생긴 벌레 한 마리가 연신 몸통을 비틀며 꾸물거렸다.

“쯧…….”

폭멸고를 본 여신우가 눈살을 잔뜩 찡그리고는 혀를 찼다.

지강이 재미있다는 듯 여신우를 보며 놀렸다.

“우리 부련주님은 징그러운 걸 무서워하시지?”

“닥쳐라. 하찮은 벌레 따위를 보고 가소로웠을 뿐.”

“아아, 그러시구나. 그럼…….”

지강이 어딘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더니 꿈틀거리는 폭멸고를 집게로 집어 들고는 여신우에게 훅 들이밀었다.

순간 여신우가 자리에서 튕기듯 물러나면서 양손에 공력을 불어넣었다.

파바밧!

후우우웅!

그 바람에 사방으로 기풍이 훅 불어 나갔다.

지강이 배를 잡고 뒹굴었다.

“하하하! 너무 가소로워서 팔짝팔짝 뛸 지경인가 봅니다? 낄낄.”

“너…….”

여신우가 뺨을 부들거리는데, 이번에도 류난이 부드럽게 웃으며 두 사람을 말렸다.

“자자, 진정하고 앉으라고. 군사도 장난은 그쯤 해. 그러다가 폭멸고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엇, 그럼 안 되죠. 이게 얼마나 비싼 녀석인데.”

지강이 짐짓 어깨를 으쓱이고는 고분고분 돌아섰다.

“흐읍!”

지강과 눈이 마주친 악굉이 불길한 예감에 두 눈을 부릅뜨고는 헛바람을 삼켰다.

“후욱, 후욱, 후욱!”

지강이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몸부림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마혈이 짚인 탓에 뒤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지강이 특유의 고운 미소를 지으며 해맑은 소리로 말했다.

“자아, 괜찮아요. 느낌이 조금 이상할 뿐이야. 잠깐만 참으면 돼.”

“으읍! 으으으읍!”

악굉이 재갈을 문 채로 답답한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지강은 아랑곳하지 않고 꿈틀거리는 폭멸고를 악굉의 인중으로 가져갔다.

“으으읍! 으으으읍!”

“자자, 괜찮아. 조금 징그러워서 그렇지 심하게 아픈 건 아니니까.”

마침내 인중에 닿은 폭멸고가 연신 꿈틀거리면서 악굉의 콧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악굉의 눈이 뒤집히면서 답답한 신음이 더욱 커졌다.

“으으으읍! 으으으으으읍!”

그러거나 말거나 폭멸고는 부지런히 악굉의 콧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잠시 후 폭멸고가 모습을 완전히 감추자, 미간을 지나 이마 사이가 꾸물거리며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지강이 그제야 악굉의 입에서 재갈을 풀어주었다.

“그그극……! 그르르르륵……!”

눈을 허옇게 까뒤집은 악굉이 전신을 부르르 떨면서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류난이 이맛살을 슬쩍 구겼다.

“저러다 죽는 건 아니겠지?”

“정말 재수가 없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껏 성공률은 구 할이 넘습니다.”

“다행이군. 그런데 원래 폭멸고는 하단전에 밀어 넣는 것 아니었어?”

“예, 그런데 이번에 개발한 방법은 상단전으로 바로 보내는 겁니다. 그편이 암시가 잘 통하거든요.”

류난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여신우가 중얼거렸다.

“련주, 저놈이 사파의 총군사답지 않다는 말은 취소할게. 이제 보니 아주 지독하고 악랄한 총군사다워.”

“어? 뭡니까? 우리 부련주님, 설마 이 정도에 쫄았어요? 나 원, 쪽팔려서.”

지강이 어깨를 으쓱이며 얄미운 표정을 지었다.

여신우의 이마에 핏대가 살짝 솟았지만, 곧 눈을 지그시 감으며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류난이 박수를 짝짝 치며 일어났다.

“자, 그럼 이제 준비는 어지간히 된 것 같으니 슬슬 일어나자고.”

* * *

마침내 결승의 날이 밝았다.

무림맹 대연무장에는 역대급으로 많은 인원이 들어찼다.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지난 무연회와 마찬가지로 대연무장에 들어가지 못한 양민들이 바깥까지 포진해서 자리를 깔고 앉을 정도였다.

돈을 받고 비무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해 주는 이들도 생겼다.

강호는 물론 일반인들조차 이번 비무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는지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남궁천은 대기실에 앉아서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기실 벽에는 매화나무 한 그루가 양각되어 있었다. 매화가 흩날리면서 바람결을 따라 자유롭게 떠다닌다.

어찌나 생생하게 양각이 되어 있는지 꽃잎이 그대로 날아와 남궁천의 코끝을 스치는 것만 같다.

‘제법이네.’

유현이 자신을 찾아와서 조언을 구했을 때, 그는 칼같이 잘라서 대답했다.

유현이 이길 수는 없다고.

한데 유현은 그사이에 또 발전했다.

도를 완전히 깨우치진 못했을지라도, 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것만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패력궁에게는 손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졌지만.

“스으읍, 후우우우.”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면서 운기행공을 하니 단전에서 창벽기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초견파공안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창벽기공이다.

이번 비무에서는 병장기의 구애를 받지 않고 싸워야 한다. 거리가 벌어져 있을 때는 닥치는 대로 모든 병장기를 활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가까이 붙었을 때는 벽라검을 사용한다.

“후우우우.”

긴 숨을 토해내며 남궁천이 진기를 갈무리했다.

잠시 후 대기실 문이 열리면서 견습생들이 들어왔다.

“오, 천하의 남궁천도 긴장하는구나.”

팽수혁이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남궁천이 피식 웃었다.

“긴장은 무슨.”

“에이, 사람이 솔직해야지.”

“뭐, 적당히 긴장하는 것도 좋은 거지.”

“기분은 어때?”

“괜찮다. 너희들은 왜 온 거냐?”

“그야 당연히 응원해 주러 온 거지.”

“응원이라.”

남궁천이 다시 낯선 감정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팽수혁이 이맛살을 푹 구기며 말했다.

“이럴 때 보면 평생 한 번도 사람 사귄 적이 없는 녀석 같다니까. 뭐, 호구였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렸을 땐 윤종승하고 친했다며?”

“시답잖은 소리는 그만하고. 준비는 잘했어?”

남궁천의 질문에 팽수혁이 다른 견습생들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우리야 뭐 늘 준비 완료지.”

“그런데 남궁 소협이 말씀하신 게 정말입니까?”

유현이 조심스럽게 나서며 물었다.

남궁천이 유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류난의 방식이니까. 우린 그걸 역이용하는 거고.”

이번엔 진소홍이 나섰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확실히 여론은 굳어지겠네.”

“강호에 이런 말이 있지. 진정 죽이고 싶은 원수가 있다면, 먼저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라.”

“그렇다고 맹주가 정말 친구로 인정하진 않겠지만.”

“사람들은 속일 수 있지.”

남궁천의 말에 견습생들이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윤종승이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린 확실히 할 테니, 너도 패력궁을 상대로 잘 버텨줘.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져버리면 모든 게 끝이니까.”

“내가 질 것 같아?”

남궁천이 입매를 비틀며 묻자, 윤종승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 넌 지옥에서도 살아남을 놈 같긴 하지.’

물론 그 속내도 삼키고는 헤실헤실 웃었다.

“걱정은 안 해.”

“그래, 내 걱정일랑 말고 너희들이나 각자의 일을 잘하도록.”

팽수혁이 호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다. 너도 걱정하지 마라. 하여튼 이 녀석이랑 엮이면 재미있는 일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난다니까.”

마침 밖에서 안내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무 참가자는 이제 입장해야 합니다!”

견습생들이 모두 남궁천을 돌아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흔들리지 않는 신뢰가 가득했다.

‘이것이 동료의 믿음인가?’

평생 동료라고는 가진 적이 없던 남궁천이었다.

대체로 억압과 강요로 굴복을 시켰을지언정 아무 대가 없는 믿음을 산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쩐지 진소홍의 눈빛이 조금 흔들린다. 낌새를 챈 남궁천이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음…… 아마 잘못된 정보일 것 같긴 한데…….”

“그런데?”

“우리 상회 정보단에서 악굉을 봤다는 얘기가 돌고 있어서.”

“악굉?”

남궁천은 물론, 다른 견습생들도 미간을 찌푸리고는 진소홍을 돌아보았다.

악굉은 그들에게도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름이었기에.

지난번 언가장에서 사투를 벌일 때, 폭멸고독을 품고 달려들던 언가 무인들을 활로 쏴서 죽이지 않았던가?

그들을 이끌고 팽가로 지원을 오던 사람이 바로 진주언가 차남인 악굉으로 밝혀졌었다.

생사가 불명확했지만 당연히 전투 중에 사망한 것으로 여겼는데…….

“확실한 정보야?”

팽수혁이 얼른 다그쳤다.

견습생들 중에서도 산동악가에 마음의 빚을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이 바로 그였으니까.

진소홍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확실한 건 아니고. 단원 중 한 명이 목격했다는데…….”

“어디서? 여기서?”

“응. 아마 잘못 본 게 아닐까?”

진소홍이 남궁천을 보며 물었다.

다른 견습생들도 남궁천을 돌아보았다.

어느샌가 그들은 이런 사소한 것까지 남궁천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남궁천이라고 알 리가 없음에도, 이상하게 남궁천이 뭐라도 말해주길 바랐다.

마침내 남궁천의 입이 열렸다.

“우선 계획을 조금 변경하자. 너희들은 내가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 악굉을 찾아보도록 해.”

“알겠다.”

팽수혁이 다부진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때 다시 밖에서 입장을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궁천이 걸음을 옮겼다.

“그럼 나는 먼저 간다.”

“잠깐만! 악굉을 찾으면? 그땐 어떻게 해?”

남궁천이 멈칫거리고는 냉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죽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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