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338화 (337/508)

338. 건드리면 안 되는 것들

촤라라라라!

청명한 하늘에 눈꽃이 흩날린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놓고 있다간 온몸에 구멍이 뚫려 목숨을 잃고 말리라.

하늘을 수놓은 눈꽃은 진짜 눈이 아니다.

느릿하게 흩날리는 것 같다가도 일순간 삭풍에 휩쓸리듯 빠르게 내리꽂힌다.

그렇다.

만천화우.

당가의 최고 비전절기다.

타타타타타탓!

철판에 콩을 볶는 소리가 울리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암기가 사람 모양 과녁에 박혀 들었다.

동시에 남궁천은 몸을 회전하며 소매에 들어 있던 비수를 뿌렸다.

쒸에에에엑!

직선으로 곧게 날아간 암기가 그대로 사람 모양 과녁의 이마를 뚫었다.

타앙!

과녁의 이마가 산산조각 나면서 터졌다.

누군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절로 등골이 서늘해지리라.

조금 전 남궁천의 비수는 사천당가주 당고륜의 특기를 그대로 흉내낸 것이었다.

아주 기본적인 암기술.

오히려 절기인 만천화우가 눈속임 용이고, 기본에 충실하여 던진 비수가 회심의 일격이 되는!

하지만 남궁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타닷!

바닥을 차고 날아오른 남궁천이 일순 손을 뿌리자, 은잠사에 엮인 비도가 빠르게 날아갔다.

쒸에에에엑!

콰각!

암벽에 박힌 비도를 끌어당기자, 남궁천의 신형이 번개 같은 속도로 내려섰다.

쉬이이이잇, 퍽!

정으로 암벽을 찍으면서 그대로 물러났다.

동시에 은잠사를 끌어당기자 암벽에 박혀 있던 비도가 뽑혀 나오면서 크게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쒸이이이잉!

매서운 삭풍을 이끌며 회전한 비도가 그대로 암벽을 가로로 찢어낸다.

사악! 사악! 사아악!

단단한 바위를 가르는데 마치 사과를 썰 듯이 매끄러운 소리만이 울린다.

휘리리릭, 탁!

공중에서 제비를 돈 남궁천이 마침내 바닥에 착지하면서 긴 호흡을 내쉬었다.

“후우우우우.”

다음 순간.

쿠르르르릉. 쿠쿠쿵!

암벽이 무너지면서 먼지를 풀썩 일으켰다.

누가 봐도 놀라운 광경이지만 남궁천은 썩 만족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가 손에 들린 유성추를 보았다.

오늘 이른 아침, 진소홍으로부터 빌린 것이었다.

“아직 섬세함이 좀 부족하군.”

남궁천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만약 조금 더 섬세하게 기를 다루었다면, 비도가 암벽을 가를 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암벽이 사과 썰리듯 갈라지는 게 아니라, 두부가 썰리듯 흔적조차 없었을 것이다.

남궁천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돌아섰다.

마침 신룡 객잔 후원으로 남궁검과 남궁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궁천이 정중한 태도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흐음. 수련 중이었느냐?”

남궁검의 질문에 남궁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인 만큼.”

“확실히 패력궁은 위험한 자지. 천아, 무리할 필요는 없다.”

“무리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만 있던 남궁화가 슬쩍 나섰다.

“지금까지도 너는 엄청난 걸 해냈어. 힘들 땐 잠시 호흡을 고를 시간도 필요한 법이지. 절대 무리하지 마.”

“감사합니다, 이모님.”

남궁천이 빙그레 웃었다.

힘들 땐 잠시 멈춰도 좋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던가?

아니, 전생에는 그런 말을 듣는다고 해도 무시했을 터다.

멈춤은 곧 죽음이니까.

한데 이렇게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 주는 누군가 있다는 게 새삼스럽다.

하지만 역시 나쁘지 않은 기분.

주변을 훑어본 남궁검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검을 사용하지 않았구나.”

“예, 암기와 유성추를 사용했습니다.”

“만천화우까지.”

“맞습니다.”

“괜찮겠느냐? 당가에서 불쾌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일전에 사천에 들렀을 때, 당 가주에게 따로 말해두었습니다. 어차피 제가 초견파공안을 지녔다는 건 이제 천하가 알게 된 상황입니다. 차라리 당가의 양해를 구하고 떳떳하게 쓴다는 걸 보여주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숨길 수는 없을 테니까요.”

“하긴. 당가도 뭘 어쩌지는 못할 테지. 하나 초견파공안이 공개된 이상 많은 이들의 견제를 받게 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남궁천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모르겠나?

그것에 관해서는 다른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생은 전개가 다르지.’

전생에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뭣도 모른 채 당해 버렸다.

그러나 이번 생은 아니다.

지난번과 다른 기반을 쌓았다.

우군을 만들어두었고, 여론에 휩쓸리지 않을 상황을 지금껏 마련했다.

그러기 위해서 이 길고 긴 과정을 견뎌왔던 게 아니던가?

복수에만 눈이 멀었더라면, 당장 무공만 갈고닦아서 맹주를 찾아가 목을 땄을 거다.

하나 이번 생은 그렇게 단순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아들의 인생을 대신 살고 있다.

어째서 환생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자신으로서는 아들과 아내의 안배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남궁세가를 무시한 채 행동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기반을 닦은 것이다.

학관을 나간 것 또한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때가 됐다.

초견파공안은 재능과 같은 것.

재능이란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는 법이다.

괜히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더 이상 모함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공개하는 게 낫다.

강호신룡의 초견파공안.

이미 사람들은 무림맹에 큰 희망이 나타났다는 식으로 떠들고 있었다.

그간 남궁천의 행적 때문이다.

비록 천하대살성의 아들이지만, 남궁세가의 후손이며 의협심 투철한 강호신룡.

그게 현재 남궁천의 존재감이었다.

남궁화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다가 슬쩍 나섰다.

“활을 쓰는 건 어때?”

“활은 일단 거추장스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패력궁보다 잘 쓸 자신이 없어서요.”

남궁천은 일전에 여신우의 구슬을 통해 보았던 광경을 떠올렸다.

예상대로 유현은 맥없이 당하고 말았다. 패력궁은 과연 궁신이라는 표현이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유현이 찾아와서 조언을 구했을 때, 남궁천은 주저 없이 말했다.

“도를 깨우치면 네가 이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할 테니, 이번엔 네가 진다. 마음을 비우고 배우는 자세로 임해라.”

실제로 유현은 자신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그런 만큼 지난 비무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남궁천이 잠시 상념에 빠져 있을 때, 남궁검이 입을 열었다.

“하면 검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냐?”

“아닙니다. 당연히 창벽공을 기본 바탕으로 둘 겁니다. 다만 암기술이 보조를 이룰 겁니다.”

“그렇구나. 나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네가 다치지 않는 것이다. 그 부분만은 약속해라.”

“명심하겠습니다, 할아버지.”

“좋다. 그럼 가자꾸나. 오늘 같이 식사나 하자.”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남궁검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돌아보자, 남궁천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본 가의 명성을 드높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 * *

무한 인근의 낡은 폐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류난과 여신우가 마주 앉아 있었다.

류난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호오, 남궁천이 그런 식으로 나왔단 말이지?”

여신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련주, 그 녀석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글쎄. 그건 어떨지.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녀석이 보통의 후기지수와는 좀 다르다는 말이지.”

“제 아비의 피를 물려받아서 그런가?”

“제 아비든 어미든 어느 쪽도 무시할 수 없지. 하나는 천하대살성, 또 다른 한쪽은 천하제일룡.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힌 조합이긴 해.”

“어쨌거나 우리는 계획대로 진행하는 거고?”

“당연히.”

류난이 싱긋 웃고는 탁자에 놓인 술병을 들었다. 한 모금의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만 같다.

류난이 여신우에게 술병을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이제 약관을 채운 아이. 부모의 재능을 물려받아서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아마 세상이 제 뜻대로만 움직인다고 생각하겠지. 그 정도의 자신감을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야. 자네가 누구보다 잘 알 텐데?”

피식.

여신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

자신도 한때 그런 생각을 하던 시기가 있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뭐든 계획대로 착착 진행될 수 있다고 믿던 시기.

하나 세상은 온통 함정투성이었다.

그야말로 안갯속에서 가시밭길을 걷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그런 인생을 깨닫기엔 남궁천이 너무 어리다.

“그러니 우리가 알려줘야지.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그런데 이 잘난 총군사가 아직도 안 오고 있잖아?”

여신우가 입술을 비죽이자, 류난이 부드럽게 웃었다.

“말이 지쳤을 거야. 지금쯤이면 도착할 때가 됐을 텐데…….”

“이것 봐. 높은 신분은 못 될 팔자라니까.”

여신우가 웃으며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류난이 말을 마치자마자 문밖에서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문이 벌컥 열리더니 총군사 지강이 팔뚝을 쓰다듬으며 나타났다.

“으으으! 추워! 아니, 이렇게 추운데 왜 모닥불도 안 피우고 있어요?”

몸을 부르르 떤 지강이 부루퉁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여신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련주.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 저런 걸 총군사로 써도 되는지.”

“저, 저, 저런 거라니! 사람을 보고! 부련주는 생명 경시 사상이 지나치다고!”

“추위에 부들부들 떠는 꼴을 하면서 흑무련 총군사라니. 나 원 쪽팔려서. 누가 저렇게 물렁한 녀석을 흑무련의 두뇌로 보겠어?”

“하! 밖에 눈발 휘날리는 것 안 보여? 이런 날씨가 추운 건 당연한 거지!”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자, 류난이 껄껄 웃으며 말렸다.

“자자, 두 사람 그만하고. 총군사도 얼른 여기 좀 앉지.”

“칫, 부련주는 할 일 다 하고 여기 있는 거랍니까?”

“응. 이미 남궁천을 만나고 왔어.”

“그래서 뭐랍니까?”

“남궁천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이 성공했을 때는 다섯 배의 금액을 요구했다더군.”

“확실히 어리네요.”

“패기 하나는 남달라.”

“패기와 객기는 한 끗 차이죠.”

“그래서 이 기회에 총군사가 객기 좀 가르쳐 주라고.”

“그래야죠. 다른 특이사항은요?”

이번엔 류난이 대답 대신 여신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직 거기까지는 대화를 이어가지 않은 상태였기에.

여신우가 잠시 침음을 흘리다가 말을 뱉었다.

“패력궁.”

“패력궁이면 남궁천의 결승 상대군요.”

“맞아. 패력궁이 생각보다 복병이 될 수 있겠어. 무위가 남다르더군.”

“남궁천을 만나면서 패력궁의 비무도 본 거야?”

“옥안영오를 통해서 봤지.”

“호오, 그 까마귀가 도움이 될 때도 다 있네.”

여신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흘깃 째려보았지만, 지강은 어깨만 으쓱이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패력궁이 우리 련주님보다도 강할 것 같아?”

“어쩌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강이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다가 류난의 제지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류난이 입매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이거 자존심 상하는데?”

“어쩔 수 없어. 사실이니까.”

“하면 남궁천보다 강하겠군.”

“지금이라면 아마도.”

여신우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류난이 침잠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패력궁이 우리에게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건가?”

“충분히.”

여신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강이 불쑥 끼어들었다.

“괜찮습니다.”

류난과 여신우가 그를 돌아보았다.

지강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제가 누굽니까? 흑무련 총군사이자 만학수사 지강 아니겠습니까?”

“잘난 척은 그만하고 대책을 말해 봐.”

여신우가 빈정거리자, 지강이 한 번 노려보고는 말을 이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준비한 게 있거든요.”

“뭔데?”

이번에도 여신우가 묻자, 지강은 대답 대신 허공을 향해 말했다.

“끌고 오세요.”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흑립을 눌러쓴 사내가 만신창이가 된 청년을 질질 끌고 와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쿠당탕탕!

“크윽!”

신음을 흘리며 한쪽 구석에 처박힌 청년.

류난과 여신우가 눈살을 슬쩍 구기고 바라보자, 지강이 자박자박 걸어가서 청년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들어 올렸다.

“구면이죠? 산동악가의 차남 악굉입니다. 왜 지난번 진주언가를 칠 때 빼뒀던 녀석 있잖아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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