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331화 (330/508)

331. 운명에 맞서는 놈들

퍼퍼퍽!

폭렬갑을 착용한 윤종승이 일장을 뻗어내자 세 번의 폭발이 연이어 일어났다.

“크억!”

몸이 튕겨 나간 최팔이 균형을 잃고 허우적거리는데, 이번엔 왼편에서 유현이 날아들었다.

약이 바짝 오른 최팔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애송이들이!”

하지만 그가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아래쪽에서 섬광이 솟구쳐 올라왔다.

서걱!

“응……?”

섬뜩한 파육음에 이어 칼을 든 자신의 손이 허공으로 솟구치는 게 아닌가?

“끄아아아압!”

잘려 나간 손목을 보면서 최팔이 몸을 뒤틀자, 이번엔 진소홍의 유성추가 날아들더니 그의 몸을 휘리릭 감아버렸다.

“끄으으읍! 이 개새끼들이!”

“그러게 왜 정당한 비무 대회에서 비열한 짓을 합니까!”

버럭 소리치며 날아오른 자는 다름 아닌 팽수혁.

팽수혁이 그대로 혜성처럼 떨어지며 태도를 내려찍었다.

서컹!

어찌나 강맹하게 내려찍었는지 도신이 그대로 바닥에 반 자 정도나 박혀 들어갔다.

“끄륵……!”

최팔이 입에 거품을 물더니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는 그대로 쿵 쓰러졌다.

아마 다음에 눈을 뜰 때면 한쪽 팔이 잘려 나가고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되리라.

팽수혁이 도신을 한 번 휘둘러 피를 털어내는데, 마침 연무 너머로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유현이 연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맹주가 뒷정리를 하는 모양이네요.”

“우리도 서두르자. 여기 있어 봐야 좋을 건 없을 테니.”

팽수혁의 말에 다른 견습생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달렸다.

연무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견습생들이 얼른 가장자리로 달려가서 난간 위로 솟구쳐 올라 관중석에 착지했다.

마침 관중석 곳곳에서 비명과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악! 여, 여기 사람이 죽었다!”

“여기도 다친 사람이 있어! 아니, 죽은 건가?”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야말로 아수라장.

견습생들이 반사적으로 금왕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남궁검을 비롯한 남궁세가 사람들은 이미 손을 쓰고 돌아온 것인지 태연한 태도로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때 다시 누군가 소리쳤다.

“어엇! 비무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디? 엇, 저게 뭐야? 남궁천이 지금 청랑단주를 붙잡은 것 같은데?”

견습생들도 일제히 비무대를 바라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남궁천이 압도적인데?”

윤종승의 말에 팽수혁과 유현도 마른침을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들은 남궁천이 맥없이 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남궁천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다.

“저 녀석…… 청랑단주쯤은 애초에 적수가 아니었던 거야.”

“남궁 소협은 정말 대단하군요.”

팽수혁의 말에 유현이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한편 모용신의 목을 틀어쥔 남궁천이 무심한 듯 물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피식.

모용신이 웃었다.

이 웃음의 의미를 자신도 모르겠다.

단지 자신의 마지막이 남궁천의 손에 붙들린 채로 결정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 초견파공안이군.”

모용신의 입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남궁천이 입매를 비틀었다.

“그래서?”

“그렇군. 진짜군.”

이제야 모든 게 이해된다.

맹주님이 어째서 이 녀석을 그토록 견제했던 것인지.

대살성의 아들 남궁천.

이 녀석은 초견파공안을 대물림받았다. 하면 천살성인들 물려받지 않았겠나?

이래서 피는 못 속인다는 건가?

모용신이 희미한 목소리를 이어갔다.

“역시 네놈은 아비와 같은 운명을 타고난 거였어.”

“이실직고하는 건가? 아버지가 대살성이 아니라, 단지 초견파공안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것을.”

“글쎄. 나는 거기까지 모른다. 하지만 네 아비가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건 사실이지. 그리고 넌 그 아비처럼 초견파공안에 천살성을 물려받았을 것이고.”

“…….”

“후후. 왜? 사실을 직시하니까 회의감이 밀려드는가?”

모용신이 눈꼬리를 휘며 웃자, 남궁천이 무감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전혀.”

“……?”

“그저…… 말로 안 통하는 새끼는 줘 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뭐……?”

슈우우우욱, 쿠다아앙!

순간 남궁천이 그대로 모용신의 머리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어찌나 세게 부딪쳤는지 대리석 파편이 깨져서 튀어 오를 정도다. 만약 무공을 익히지 않은 범인이었다면 산산이 깨진 것은 머리가 되었으리라.

“우아아아! 무지막지한 힘이다!”

“맙소사! 강호신룡이 청랑단주를 그대로 꽂아 버렸어!”

“너무 압도적인데?”

사람들이 열광하는 소리가 들린다.

남궁천은 착 가라앉은 눈길로 쓰러진 모용신을 보더니 벽라검을 검집에 넣어버렸다.

철컥!

“뭐지? 끝난 건가?”

“모용 단주가 못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관중들이 웅성거리며 비무대를 보다가 귀빈석 난간을 올려다보았다.

총관이 깃발을 흔들면 이번 비무는 여기서 끝이리라.

총관이 깃대를 잡아당기려고 할 때였다.

“크읍, 남궁처어어언!”

모용신이 벼락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언제 이동한 것인지 남궁천이 발을 들어 그대로 모용신의 정수리를 밟아버리는 게 아닌가?

쿠웅!

그대로 대리석 바닥에 머리가 짓눌려진 모용신.

이번엔 이마가 깨진 것인지 피가 흥건하게 퍼져 나간다.

이제 관중들은 입을 딱 벌린 채 미동조차 하지 못했다.

압도적인 격차.

강호신룡이 저 정도로 강했던가?

청랑단주는 그래도 초절정 고수가 아닌가?

물론 초절정의 영역에서도 격차가 있게 마련이라지만, 저건 너무 심하지 않나?

마치 어른이 아이를 데리고 노는 것만 같다.

관중들 중 무공을 익힌 자들은 침음을 흘리며 의문을 표했다.

“이해가 안 되는군. 아무리 강호신룡이 초절정의 경지라지만 너무 격차가 심한데…….”

“내 생각도 그렇네. 이래서야 공력의 흐름을 빤히 읽고 미리 대처하는 것 같지 않은가?”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군.”

한편 모용신의 머리를 으깨듯 짓밟은 남궁천이 그대로 모용신의 가슴에 올라타더니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퍼억! 퍽! 퍽!

“크읍! 억!”

퍽! 퍽!

공력이 실린 주먹이 쉴 새 없이 내려꽂히자 모용신은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다.

남궁천이 주먹을 휘두르면서 읊조렸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퍼억!

“대살성이든 아니든 그게 중요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퍼억!

“너희들은 그저 희생양이 필요했을 테지.”

빠악!

마지막으로 주먹을 휘두르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모용신이 의식을 잃고 널브러졌다.

끝이었다.

많은 사람의 기대를 받은 비무가 일방적인 구타로 끝나고 말았다.

모두들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입만 척 벌리고 있었다.

남궁천이 몸을 일으키고는 귀빈석 쪽을 보았다.

깃대를 잡은 총관이 몸을 가늘게 떨었다.

‘이렇게 압도적일 줄이야.’

맹주의 안배가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데 너무 일방적이지 않나?

아무리 천하제일룡의 자식이라지만 어찌 저렇게까지 강하단 말인가?

무공이 나이를 초월한 것만 같다.

옆에 선 맹주가 무거운 목소리를 흘렸다.

“뭐 하는가? 끝내시게.”

“예? 아, 예!”

총관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는 깃발을 흔들었다.

펄럭!

비무가 끝났다.

남궁천 승!

그런데 환호성을 내지르는 사람이 없다.

너무나 충격적인 결과에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그때 누군가 버럭 소리쳤다.

“청랑단주! 이게 무슨 꼴이냐? 젊은 나이에 단주가 되어서 타고난 천재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일방적이라니! 인맥으로 단주가 되었던 것 아니냐?”

느닷없는 도발이었다.

그런데 그 도발을 예견이나 했다는 듯 남궁천이 고개를 숙이고 슬쩍 웃었다.

그렇다.

지금 외친 사람은 다름 아닌 불명회원.

이것 역시 남궁천의 안배였다.

마지막 일격을 날릴 때 주먹에 실은 공력을 경감시켰다. 계산대로라면 지금쯤 모용신의 의식이 돌아오고 있을 것이다.

마침 또 다른 불명회원이 불쑥 외친다.

“맞아! 청랑단주는 너무 맥없이 쓰러졌다! 이건 승부 조작이다! 무림맹이 강호신룡을 띄워주기 위해서 승부를 조작하고 있다!”

“뭐야? 그럼 그렇지! 어쩐지 너무 일방적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폭죽을 터뜨려 시야를 가리지 않나?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니까!”

“내가 무공을 익혀서 연무가 흐려질 때쯤 안력을 높여 보니까 비무대 근처에서 싸우는 인간들이 있던데? 그건 또 뭐지?”

“이번 비무는 뭔가 수상하다! 주최측은 해명해라! 청랑단주 모용신은 쓰러진 척하지 말고 일어나라! 승부 조작은 무효다!”

이제는 불명회원들이 나서지 않아도 관중들이 알아서 불을 지피기 시작한다.

이윽고 관중들의 웅성임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참다못한 맹주가 난간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다들 멈추시오.”

나직하지만 공력이 담긴 소리가 관중들 한 명 한 명의 귀에 또렷이 박혀 들었다.

묵천악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관중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본 맹은 이 비무에 일절 개입한 것이 없소. 연무가 자욱한 와중에 비무대 근처에서 벌어진 싸움은 흥분한 관중 몇 명이 무단으로 대연무장으로 뛰어내려 본 맹이 나서서 제압했을 뿐이오. 또한 관중석에서 일어난 사고는 앞으로 맹이 철저히 조사하도록 하겠소. 그러니 근거 없는 추측으로 본 맹을 모함하는 자가 있다면 맹주로서 좌시하지 않을…….”

“어엇! 모용신 단주가 일어난다!”

마침 누군가 맹주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그 바람에 묵천악도 말을 끊고 비무대를 볼 수밖에 없었다.

과연 모용신이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모용신은 남궁천을 가리키며 외쳤다.

“남궁천은 초견파공안을 사용하고 있소! 승부 조작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순간 관중석이 다시 한번 술렁였다.

“초견파공안이라니? 그럼 대살성의 재능을 물려받은 건가?”

“아니, 그게 대물림되는 재능이었어?”

“혹시 모르잖아?”

“그럼 뭐 어때? 대단한 재능을 가졌으니 오히려 맹에서 키워줘야 할 인재지!”

“그러게 말이야. 남궁천은 대살성도 아니니까 말이야.”

관중들의 반응이 예상과 다르자, 모용신은 당황한 얼굴로 비틀거렸다.

‘이 멍청한 것들아! 대살성의 자식이 초견파공안만 물려받았겠느냐? 당연히 천살성 기질도 물려받았을 것이 아니냔 말이다!’

모용신이 어금니를 뿌득 갈고는 남궁천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감히 내 앞에서 등을 보이는 것인가? 좋다, 내 오늘 널 죽이지 못한다면 너의 진면목이라도 모조리 까발려 주마!’

팟!

순간 모용신이 바닥을 차며 남궁천의 배후를 노리고 날아갔다.

“어엇! 청랑단주가 기습한다!”

“뭐, 뭐야? 이제 와서!”

하지만 모용신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의식을 잃은 동안 이미 비무가 종료되었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이 남궁천이 만들어놓은 함정이라는 것도.

흑연검이 남궁천의 뒷목을 찌르려는 순간,

스슷!

신기루처럼 사라진 남궁천이 바로 옆에 나타나더니 아까처럼 목을 쥐고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슈우우우우욱, 꽈다앙!

순식간에 장외까지 날아간 남궁천이 모용신을 벽면에 밀어붙였다.

다음 순간 남궁천이 허리춤에서 벽라검을 뽑아 들었다.

‘이쯤이면 생사결로도 충분한 명분이 된 셈!’

애초에 모용신을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다만 비무 중에 죽이게 되면 여러모로 말이 나올 수 있었다. 맹주가 분명히 그렇게 만들 테니까.

해서 일부러 이런 상황을 연출했다.

이미 승패가 결정된 상황에서 이성을 잃은 청랑단주가 남궁천을 기습하다가 되레 사망하면?

누구도 남궁천에게 손가락질하지 않으리라.

“잘 가라.”

남궁천이 탁한 음성을 흘리고는 벽라검을 그대로 내질러 갔다.

쒸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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