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328화 (327/508)

328. 운명에 맞서는 놈들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자욱한 연무가 관중들의 시야를 가린 사이, 은밀한 움직임 속에서 피 튀기는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파파파팟!

쉬쉬쉬쉭!

연무 낀 관중석 사이사이에 숨어든 무림공적들.

그리고 그들과 혈투를 벌이는 창응대와 살곡의 살수들.

누구보다 종횡무진하며 무림공적들을 상대하는 이는 바로 남궁검이었다.

푸욱!

“크억!”

명치를 뚫고 들어간 검신이 등으로 튀어나오자, 무림공적 제삼십육호 음풍노괴(陰風老怪)가 피 섞인 침을 걸쭉하게 늘어뜨리며 고꾸라졌다.

쿠웅!

피에 젖은 시신이 바로 옆에서 뒹굴고 있음에도 어딘지 광기에 젖은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다들 시야를 가린 연무에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거나, 그저 들떠서 함성을 지르거나, 단지 이 떠들썩한 잔치 분위기를 마냥 즐기는 자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바로 앞도 제대로 보기 힘든 연무 탓에 옆 사람이 쓰러진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쨌거나 음풍노괴를 일격에 제압한 남궁검은 고개를 들어 귀빈석이 있는 방향을 보았다.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지금쯤 맹주도 저 어디쯤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리라.

‘맹주. 이제 본 가는 더 이상 세상이 움직이는 대로 휩쓸리지 않을 걸세. 때론 운명을 거스를 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소가주가 알려주었다네.’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삐잉!

가느다란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남궁검이 얼른 몸을 뒤틀자, 연이어 세침 몇 개가 날아든다.

삐비비잉!

파라라라!

장삼자락을 펄럭이며 남궁검이 돌개바람처럼 날아올랐다.

그의 몸을 간발의 차로 스친 세침이 애꿎은 민초들의 몸에 틀어박혔다.

“헉!”

“큭!”

단말마의 비명을 터뜨린 관중들 몇몇이 그대로 몸이 굳으면서 쓰러졌다.

‘무고한 사람이 다치든 말든 세침을 날리다니!’

남궁검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가 곧장 경신법을 펼쳐 바람처럼 달려갔다.

쉬쉬쉬쉭!

“우악!”

“어엇!”

무언가에 떠밀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흔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궁검은 사람들 사이를 헤집으며 빠르게 내달렸다.

삐비잉!

몇 사람이 가볍게 다치는 걸 의식했다간 수많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느 순간 다시 예리한 소리와 함께 세침이 날아들었다.

삐비비비잉!

휘리리리릭!

이번엔 날아드는 세침을 장삼으로 휘어 감듯 품으로 갈무리했다.

파파앙!

공력을 운기해서 팔 안쪽에 가두었다가 일시에 터뜨려 내니, 품에서 진공 상태로 머물러 있던 세침들이 일시에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적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쒸에에엑!

‘비도!’

남궁검이 미간을 슬쩍 좁혔다.

두 자루의 비도가 춤을 추듯 날아든다.

마치 산새 두 마리가 서로 뒤엉켜 날면서 장난을 치는 것만 같다. 이런 류의 비도술을 구사하는 사람은 한 명이다.

‘봉황비도(鳳凰飛刀) 옥가려구나!’

옥가려는 비도술의 여제로 불리는데, 돈만 주면 뭐든 하는 여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무림공적 제십칠호.

남궁검이 얼른 기운을 운기하면서 검을 뽑아 들었다.

슈카앙!

그야말로 압축된 공기가 터져 나가 듯 경쾌한 발검술.

그에게 날아들던 비도가 그대로 되돌아갔다.

뚜까앙!

옥가려도 자신에게 되돌아온 비도에 깜짝 놀란 것인지 기의 흐트러짐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비도를 튕겨서 날아온 방향 그대로 되돌려 보내는 것은 무척이나 고난도의 기술이었다.

파바밧!

순간 남궁검이 천리호정(千里戶庭)을 펼치면서 질풍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팟!

어느 순간 그의 몸이 붕 떠오르더니 앞 사람의 머리를 밟고 새처럼 날아올랐다.

“어……?”

머리를 밟힌 관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자네, 왜 그래?”

“아니, 뭔가 내 머리를 밟은 것 같은데?”

“하하. 그게 뭔 소리야? 서 있는 자네 머리를 누가 밟는다는 거야?”

“흐음. 기분 탓인가?”

관중이 괜히 정수리를 쓰다듬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한편 관중의 머리를 차고 깃털처럼 가볍게 솟구쳐 오른 남궁검이 대번 수십 명을 건너뛰며 날아가자, 역시나 연무를 찢으며 대여섯 자루의 비도가 날아들었다.

쒸잉! 쒸쒸쒸쒸에엥!

금빛 비도가 춤을 추며 날아든다.

대부분의 비도는 어두운 색깔이다.

당연히 암습에 용이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한데 봉황비도 옥가려가 부리는 비도는 대체로 밝고 화려하다.

그것이 그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날아드는 비도만 봐도 공포에 질려 이성이 마비되도록 만든다는 게 목적이다.

‘하나 그것도 상대를 가렸어야지!’

남궁검이 냉엄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쒸이이익!

따다다당!

거침없이 날아들던 비도가 속수무책으로 튕겨 날아간다.

마침내 남궁검의 시야에 비도를 날린 여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남궁검을 확인하자마자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필 남궁 가주라니!’

자신의 공격이 튕겼을 때, 상대의 무공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남궁검일 줄은 몰랐다.

제일 까다로운 상대인 셈.

그래도 한 번은 손을 섞어보고 싶은 상대이기도 했다.

그녀가 품에서 비도 두 자루를 더 꺼내 들고는 남궁검과 부딪칠 것을 대비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척에 내려선 남궁검은 그녀가 자세를 잡을 틈도 없이 바람처럼 달려와 목젖에 검을 겨눴다.

척!

“봉황비도가 이 번잡한 곳엔 어인 일인가?”

남궁검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옥가려는 어딘지 고혹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흐으응. 멋지셔라. 남궁 가주님은 연세를 드셔도 남성미가 흘러넘치는군요.”

콧소리까지 흘리며 교태스러운 표정까지 짓는 옥가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남궁검은 실눈을 뜨고는 대꾸했다.

“천박한 것.”

“아아, 고귀하신 우리 남궁 가주님의 품에 안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

삐비비이잉!

순간 옥가려의 전신에서 세침이 사방으로 뻗어갔다.

남궁검이 반사적으로 물러나며 검을 휘둘렀다.

타타타타타탕!

마치 철판에 콩을 볶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한데 근처에 있던 관중들 몇 명이 세침에 맞고 소리 소문 없이 쓰러졌다.

남궁검이 미간을 팍 구겼다.

“고얀!”

상대가 생명을 경시하는 무림공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대책이 없을 줄은 몰랐다.

“잔인하군! 자네는 맹주가 고용한 게 아니었던가?”

“흐응. 맞아요.”

“하면 맹주가 이런 일까지 바라진 않을 터인데?”

“호호. 가주님도 차암. 이미 무림공적으로 낙인찍힌 마당에 잃을 게 뭐가 있나요? 우리 같은 무림공적 나부랭이들은 오늘만 산답니다. 그러니까 나와 함께 몸이나 섞으실 생각은 없나요!”

쒸쒸에엑!

이번에도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양손에서 비도가 날아갔다.

하지만 남궁검도 예상했던 바였기에 침착하게 창궁무애검법 중 회류천기(回流天氣) 초식으로 응대했다.

앞서 남궁검이 세침을 품 안에 가두어 둘 때와 같은 원리를 지닌 초식이었다.

쉬리리리릭!

남궁검의 검신이 빠르게 회전하며 원을 그리자 과연 날아들던 두 자루의 비도가 허공에 멈춘 채로 둥실 떠올랐다.

그 기이한 광경에 옥가려도 놀란 눈치였다.

하나 감탄만 하고 있을 순 없는 상황.

“하아. 나도 저렇게 남궁 가주님의 품에 안길 수만 있다면!”

옥가려가 바닥을 차며 곧장 남궁검에게 날아갔다.

쉬쉬이잇!

그녀의 별호가 봉황비도라지만 시종일관 비도만 다루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배수(소매치기) 출신인 그녀는 누구보다도 단도를 잘 다루었다.

스스슥! 샤샷!

마치 귀신처럼 신형이 흐려지면서 남궁검의 품을 파고든 옥가려!

한 손에 들린 단도가 일순 남궁검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흥!”

뚜깡!

남궁검이 휘두른 검신에 비도가 튕겨 날아갔다.

불꽃이 번쩍 터지는 사이, 옥가려는 옷깃을 풀어헤쳤다.

하얀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뭇 남성의 눈을 홀린다.

자고로 남자란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그 생각뿐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금껏 그녀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종종 이렇게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고비를 넘기곤 했다.

그렇게 심기를 흔들어놓고 단도를 횡으로 그어 가는데…….

‘이런 목석 같은 사람...!’

자신을 보는 남궁검의 눈빛이 뱀 같지 않은가?

얼음으로 만든 칼날 같다.

옥가려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수가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궁검의 무정한 손길이 독사처럼 뻗어 나오면서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콰득!

“크윽!”

옥가려가 이맛살을 잔뜩 구기고는 남궁검을 노려보았다.

“큭……! 역시…… 듣던 대로 얼음장 같은 영감……!”

“나를 알면서도 무모한 짓을 벌인 건가?”

말을 마친 남궁검이 빛살 같은 손놀림으로 점혈했다.

탁탁탁!

“……!”

이쯤 되니 옥가려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사실 그녀가 진짜로 노린 것은 지금부터였다.

순간적으로 공력을 끌어 올려 전신에 장착한 독침을 격발할 생각이었다.

한데 혈맥을 차단당하고 마혈까지 짚이니 더 이상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

절망감에 휩싸인 옥가려에게 남궁검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자네, 본 가가 한때 세상의 외면을 받았다고 해서 노부를 너무 얕잡아 본 게 아닌가?”

“남궁 가주. 이런다고 소가주를 지킬 수 있을 것 같나요?”

“후후. 틀렸네.”

“......?”

“소가주는 지킬 필요가 없는 아이일세. 그 녀석이 나보다 더 강하니까.”

“……!”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옥가려가 눈을 퉁방울처럼 부릅떴다.

하나 남궁검의 손에는 자비가 실리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하겠다면 저승에서 지켜보게나.”

“잠……!”

우둑!

남궁검의 손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그는 축 늘어진 옥가려를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고는 돌아섰다. 남궁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냉혹해 보였다.

여전히 대연무장은 연무로 자욱했다.

비무대 쪽을 바라보던 남궁검이 굳은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조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자리로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어딘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

백무극이었다.

“죽었네.”

쓰러진 옥가려를 보며 중얼거린 그가 다시 다른 사람처럼 비웃음을 짓는다.

“약해 빠진 년이 설치다가 뒈진 모양인데?”

그러자 백무극이 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조금 전에 여기서 남궁검 가주를 봤어. 이 여자가 약한 게 아니라, 남궁검 가주가 강한 거겠지.”

“그래서? 쫄았냐? 병신아? 지금이라도 얼른 맹주 말을 들으라니까! 오랜만에 피 맛 좀 보자고!”

“마음이 안 내킨다.”

“이 병신, 또 쫄았네.”

“남궁천은 내게 유일하게 안식을 준 녀석이야.”

“얻어터지고도 좋다면서 웃는 변태 새끼.”

“그때만큼은 네가 조용해지니까.”

“아, 그래서? 맹주 말을 거역하겠다는 거야? 지금?”

“너 싸우면 무조건 좋아하잖아?”

“그렇지.”

“그럼 싸우기만 하면 되는 것 아냐?”

“그건…… 뭐, 그렇지?”

“그럼 상대를 바꿔보는 건?”

“상대를 바꿔?”

“더 재미있는 상대로.”

백무극의 표정에 모처럼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 누군가 백무극의 뒤통수를 차지게 후려쳤다.

따악!

백무극이 무심히 돌아보니 십육 강에서 남궁천과 비무를 하기로 했던 광마도귀가 눈알을 부라렸다.

“이 새끼야! 너 우리 편 아니야? 어제 맹주가 얘기하는 걸 옆에서 같이 들었으면서 뭐 하고 있어?”

“…….”

“뭐야? 이 새끼. 벙어리였어?”

광마도귀가 눈썹을 성큼 치켜올리는데, 백무극이 싸늘하게 웃었다.

“어때? 이 녀석은?”

“뭐, 인마?”

광마도귀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돌연 백무극의 표정이 어딘지 야비하게 바뀌더니 낄낄거린다.

“오오, 이 녀석도 좋아. 킬킬킬.”

자문자답하는 백무극을 보면서 광마도귀가 눈살을 잔뜩 찌푸릴 때,

콰악!

“컥!”

순간 백무극이 광마도귀의 목을 움켜쥐더니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는 게 아닌가?

콰자악!

순식간에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광마도귀는 그 자리에서 뇌수까지 흘리며 즉사하고 말았다.

백무극이 얼굴에 묻은 핏물을 소매로 닦아냈다. 흥분한 것인지 입매가 파르르 떨렸다.

“확실히 번번이 우릴 무시하는 맹주, 그 영감탱이 뒤통수를 치는 게 더 재미있을지도. 이제 설쳐보자고, 무극아. 킬킬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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