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322화 (321/508)

322. 올가미

맹주가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지금 자신을 바라보는 남궁천의 저 눈빛은 명백한 도발이었다.

남궁천은 지금 동료를 이용해서 자신을 일부러 자극하고 있다.

‘감히…… 감히! 나를 그런 눈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

남궁천은 천하대살성의 아들이다.

잠재적인 위험인자다.

많은 사람에게 핍박을 받아야 마땅하고, 무림맹을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되어 사라져야 할 운명을 타고난 녀석이 아닌가?

한데 감히 이 땅의 주인인 자신을 도발해?

한낱 거름 주제에!

치솟은 공력이 상단전으로 몰리니 관자놀이의 태양혈이 툭 불거져 나왔다.

어찌나 주먹을 세게 말아 쥐었는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맺힐 정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궁천은 끝까지 맹주를 응시했다.

이제 와서 아닌 척할 생각도 없다.

자신이 노려본다고 한들, 맹주가 자신을 두 번 죽일 수는 없지 않겠나?

오히려 지금은 맹주를 몰아붙일 때다.

‘늙은 구렁이. 너도 느껴보아라. 아주 천천히……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고 했다. 내가 천둥벌거숭이처럼 처음부터 분개해서 미쳐 날뛰었다면 너의 바람대로 모든 게 흘러갔을 테지. 하나 나는 그 정도로 하수가 아냐.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맹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평생을 숨죽여 지내다가 이제 와서 발악한들 네놈 따위가 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남궁천의 입매가 더욱 말려 올라갔다.

‘어떨지 두고 보라고. 하류 인생들이나 복수를 서두르고, 성급히 이를 드러내지. 하지만 맹수는 으르렁거리지 않는다. 천천히 기회를 보고 단숨에 물어뜯는 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궁천이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사냥을 즐기지. 이젠 당신이 당할 차례야. 불안에 떨고 또 떨어라. 내가 간다, 맹주!’

그 웃음을 마주한 맹주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꼈다.

때마침 한 관중이 남궁천 앞을 지나치면서 잠시 시야가 가려졌다.

하지만 관중이 지나갔을 때는 이미 남궁천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감쪽같이 사라져서 맹주는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의 상상이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흥!”

맹주가 차갑게 코웃음을 치자 옆에 서 있던 총관이 고개를 조아리며 물었다.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닐세.”

“하면 승자 선포를 하겠습니다.”

“당연한 걸 왜 묻나?”

“…….”

맹주는 자신이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손을 저었다.

“진행하게. 좀 쉬고 싶군.”

“알겠습니다.”

총관이 승자를 알리자, 환호성이 다시금 들려왔다.

맹주는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로 이마를 매만졌다.

기분이 나쁘다.

조금 전 남궁천과 시선을 마주했기 때문일까?

괜히 불안한 기분이 뱃속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도대체 왜?

어째서 저딴 애송이에게!

콰악!

묵천악이 태사의를 거칠게 움켜잡았다.

콰작!

결국 태사의 한쪽 귀퉁이가 무참히 부서졌다.

손바닥 안에서 바스러지는 파편 소리가 들린다.

후두두둑.

가루가 되어 떨어지는 파편들.

맹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조금 전 남궁천이 서 있던 자리를 노려보았다.

‘웃기지 마라. 너는 내 사냥감이다! 너의 발악이 결코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너의 도발은 절대 나를 불안하게 만들 수 없다!’

휙!

바람처럼 몸을 돌린 맹주가 성큼성큼 걸어서 귀빈석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총관이 가만히 지켜보았다.

* * *

그날 맹주전.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던 묵천악이 문득 기척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들어오게.”

“예, 맹주님.”

공손한 목소리로 답하며 들어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총관이었다.

묵천악은 총관을 힐끔 보고는 곧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빛만큼이나 시린 바람이 창가에서 스며들었다.

“어찌 됐나?”

“죄송합니다. 아직 흉수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서두르겠습니다.”

애초에 총관이 들어설 때부터 낯빛을 보고 짐작한 바였다.

하나 끝내 치미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했다.

“도대체 수맹당은 뭐 하는 건가?”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다.

남궁천을 제거하는 일이 마음처럼 진행되지 않는 가운데, 수맹당 염라단 소속 삼 대주가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무림맹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이 무한에서!

다행히 서둘러 수습을 했기에 망정이지, 자칫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질 뻔하지 않았나?

총관이 고개를 조아리며 물었다.

“남문 근처에서 벌어진 일이니, 남문각주를 문책해 보는 것은 어떨지요?”

“남문각주를?”

“예, 당시 남문각에서 근무 중이었습니다.”

“흐음.”

묵천악이 침음을 흘렸다.

남문각주 패력궁 천무류.

자신과 비슷한 연배인 그는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출세에 욕심이 없는 자다.

더 좋은 자리를 준다고 해도 한직인 남문각에 머물러 시간을 보내는 자.

하지만 역시…… 남문각주를 다루는 것은 쉽지 않다.

그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맹주도 파악하기 힘들 정도다.

괜히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격이 될 수도 있고.

“그리 따진다면 수맹당주부터 문책할 일이겠지. 지금 이 문제는 염라단에서 일어난 일이니, 염라단주부터 다그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묵천악이 식어버린 차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거칠게 잔을 내려놓았다.

총관이 슬쩍 눈살을 찌푸렸지만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너무 과민하신 상태구나.’

평소 보기 힘든 모습이다.

묵천악은 매사 차분한 편이었다.

한데 오늘 비무가 끝난 후부터 내내 저런 상태다.

어째서일까?

오히려 남궁천의 비무가 끝났을 때는 더 담담해 보였는데. 그간의 비무 중에서도 오늘이 가장 시시하게 끝난 셈인데.

‘맹주께선 오늘 비무에서 다른 걸 보신 걸 테지.’

그게 무엇인지 자신은 짐작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그 때문에 지금 맹주의 심기가 불편한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묵천악이 조금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남궁천의 다음 상대는 누군가?”

“무림공적 제십팔호 광마도귀(狂魔刀鬼)입니다.”

“광마도귀라.”

확실히 광마도귀는 용서할 수 없는 무림공적이다.

광마도귀가 익힌 독문무공은 그 예리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닷새에 한 번은 무조건 살인을 저질러야 하는 특성이 있다.

그의 무자비한 칼질에 희생당한 아녀자와 아이들도 셀 수 없을 지경이다.

반드시 제거해야만 할 무림공적.

하지만 그런 자라도 남궁천을 없애주기만 한다면 살생부에서 지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안 돼.”

“예?”

묵천악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광마도귀로는 안 된다.”

“하면……?”

“기권시켜라.”

“맹주님, 광마도귀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무위를 지닌…….”

순간 맹주가 전에 없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총관을 쏘아보았다.

총관이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지금 상황을 보고도 모르겠나? 남궁천은 이미 초절정의 경지를 넘어섰어. 광마도귀 역시 그 정도는 되겠지만, 이젠 비등비등한 패를 꺼낼 때가 아니다.”

“알겠습니다. 광마도귀에게 기권하라고 이르겠습니다. 만약 반발하면…….”

“죽여도 된다. 어차피 무자비한 살인광에 쓰레기 같은 녀석이니까.”

“예, 맹주님.”

묵천악은 크게 숨을 한 번 내쉬고는 다시 창가를 보았다.

“하면 남궁천의 팔 강전 상대는 누가 되겠는가?”

“천뇌당의 예측에 따르면 남궁천의 팔 강 상대는 모용신 단주입니다.”

“모용신이라. 그때가 좋겠군.”

“하면 그때 준비한 것을 시도할까요?”

의미심장한 질문에 묵천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게. 자잘한 시도는 통하지 않는다. 내 생각보다 남궁천 그 아이는 훨씬 미친 녀석이야. 마치 대살성이 환생이라도 한 것 같단 말이지. 모용신 단주와 비무할 때를 노리게. 비무 대회에서 손을 쓸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하면 절반을 투입하도록 하겠습니다.”

‘남궁천 죽이기’에 참가한 자들 절반을 가리킨 말이었다.

조금 과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정도는 해야 맹주에게 만족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데 아니었다.

맹주가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총관을 노려보았다.

“자네 지금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겐가?”

“예?”

“방금 말하지 않았나? 아직도 남궁천 그 아이가 만만해 보이는가?”

“그건 아닙니다만…… 하면 칠 할 정도를 투입할까요?”

“전부 투입하게.”

“예? 그럼 남는 자원이…….”

“그래도 비선향이 남아 있지.”

“하지만…… 알겠습니다.”

뭐라 반박을 하려던 총관이 곧 수긍하고 말았다.

맹주의 표정을 보니 그 어떠한 말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맹주님, 저는 맹주님을 오랫동안 모셔왔습니다. 맹주님은 지금보다 더 지독한 궁지에 빠졌을 때도 잘 헤쳐 나오신 분입니다. 너무 초조해하지 않으셨으면…….”

“누가 초조하다고 그러나?”

“……죄송합니다.”

총관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맹주가 흔들린다.

사냥을 하는 입장인데도 마치 뭔가에 쫓기는 자처럼 보인다.

묵천악이 차를 마시려다가 잔이 빈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거칠게 내려두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자네가 남문각주를 한 번 만나보게.”

“패력궁…… 말씀이십니까?”

“하면 내가 모르는 남문각주가 또 있는가?”

“…….”

“그자가 무슨 생각으로 본 대회에 참가한 것인지. 정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오도록.”

“만약 원하는 게 있다면 어찌하면 될까요?”

“들어줘야지. 대신 우리가 원하는 것도 알려줘야겠지.”

모종의 거래를 하라는 뜻.

총관의 눈빛이 반짝였다.

역시 맹주는 맹주다.

궁지에 몰린 상황처럼 보이지만, 이럴 때 그는 더욱 예리해진다.

패력궁까지 이용할 생각을 할 줄이야.

총관이 허리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게.”

축객령이 내려졌다.

고개 숙인 총관이 쓴웃음을 흘렸다.

자신을 이렇게 대한 적은 지금껏 거의 없었다.

그만큼 맹주가 불안감에 휩싸였다는 방증이리라.

하나 자신이 해줄 것은 없다.

그 역시 맹주가 움직일 장기 말에 지나지 않을 테니.

“그럼.”

총관이 고개를 더욱 깊이 숙이고는 돌아 나왔다.

* * *

무한의 어느 한적한 길목.

무림맹 총관은 총총걸음으로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그의 걸음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기에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자가 없었다.

골목 깊숙이 들어가자 이제는 오가는 행인조차 보이지 않았다.

총관은 자연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어느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누군가 보았다면 마치 제 집을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총관은 좁은 안마당을 지나 전각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전각 안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바깥에서 볼 때는 평범하면서도 아담한 집이었지만, 안을 보니 도저히 사람이 살던 곳 같지 않았다.

하나 그곳에도 사람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었군.”

“…….”

총관이 말없이 어둠만 직시했다.

이윽고 노인 한 명이 달빛이 스며드는 자리로 걸어왔다.

놀랍게도 그는 며칠 전 남문 근처에서 염라단 삼 대주를 죽인 그 노인이었다.

그가 누런 이를 드러내어 히죽 웃으며 총관에게 말했다.

“나이가 드니 걸음도 무거워지셨나? 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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