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 초대받지 않은 자들
남궁검의 시선이 관중석을 더듬는 사이, 비무대에서는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쩌정! 따앙!
금속성이 연신 거칠게 울린다.
파바바밧!
빠른 발놀림에 먼지가 풀썩 일어난다.
까라라라랑!
정신없이 쏟아붓는 검격을 하나도 남김없이 받아친다.
‘이런 빌어먹을!’
조춘이 내심 혀를 차며 짜증을 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분명 자신과 적면도는 쉴 틈도 없이 공격을 해대고 있었다.
지금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지만 공격을 멈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기도 하다.
적면도보다 먼저 지친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기에.
모르긴 해도 적면도 역시 지금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기분이리라.
‘남궁천…… 이놈은 진짜 괴물인가? 강호신룡이 허명은 아닌 건 확실하군!’
당연히 어느 정도 재능은 있으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유환객 하승신도 이 녀석에게 당했으니 한가락 하는 녀석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래서 적면도와 차륜전을 치르기로 한 것이다.
적면도와 성격은 서로 맞지 않아도 무공의 상성이 제법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만약 조금이라도 방심했다면 적면도와 손을 잡을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버틸 줄이야.
아니, 오히려 이쪽이 밀리는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고…… 정말 밀릴 수야 없지!’
어금니를 뿌득 간 조춘이 단전에서 내공을 더욱 끌어 올렸다.
파파팡!
연이어 바닥을 차면서 남궁천의 빈틈을 향해 짓쳐들었다.
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남궁천을 몰아붙이던 적면도가 성큼 물러났다.
“흐아아앗!”
분노에 가까운 기합성이 터지면서 검첨이 그대로 남궁천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쉬땅!
하지만 이번에도 튕겨 나간다.
예상했던 바다.
때문에 조춘은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뒤틀면서 검을 횡으로 베어 들어갔다.
평소 그의 검술을 생각하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춘의 검술은 직선 위주였다. 마치 군대에서 배우는 실용 검술처럼 오로지 효율성만 극한으로 따진 검술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몸을 회전하면서 횡으로 긋는 동작은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느낌이 나쁘지 않다!’
검을 휘둘러가는 조춘의 입매가 희미하게 치켜 올라간다.
지긋지긋한 공격 끝에 마침내 변화가 일어날 것만 같다.
‘저기다!’
조춘의 시야에 남궁천의 뒷목이 분명히 들어왔다.
모든 정신을 오로지 한곳에 집중했다.
세상의 모든 기운이 남궁천의 뒷목을 향해 쇄도하는 것만 같다.
아마 일격에 목이 잘려 나가고 말리라!
‘끝이다, 남궁천!’
누구보다 먼저 비무대회에서 싸우겠다고 나서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쩌어어엉!
고막을 터뜨릴 것만 같은 금속성에 이어 조춘의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이, 이익……! 이 개새끼야!”
거침없는 욕설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자신의 검을 막은 자는 이번에도 적면도였던 것이다.
이쯤 되니 적면도가 남몰래 남궁천과 손을 잡은 게 아닌지 의심될 지경이다.
“개새끼라니! 뒈지고 싶나!”
“뭐? 이 병신 새끼가 내 공격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서 뭐가 어쩌고 어째?”
“누가 누굴 방해해? 네놈이야말로 내 회심의 일격을 방해한 게 아니냐!”
적면도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친다.
조춘은 정말이지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도대체 이게 몇 번째인가?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노렸다고 생각하면 어김없이 적면도가 나타나서 검을 막는다.
한 번 의심이 싹트기 시작하자 점점 확신으로 번져간다.
차앙!
도를 튕겨낸 조춘이 적면도를 노려보면서 이를 갈았다.
“어이, 적면!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미쳤어?”
“이 새끼가…… 미친 건 네놈이 아니냐? 지금 날 뭐라고 부르는 거야?”
적면도가 눈알을 희번덕인다.
비무 도중에 자신의 별호를 정확히 짚어서 부를 줄은 생각도 못 했기에.
조춘이 피식 조소를 지었다.
“왜? 겁나나? 네 진짜 정체가 탄로 날까 봐? 그럼 처음부터 제대로 협조를 했어야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네놈이야말로 정신 차려라. 지금 저놈 앞에서 놀아나서 엄한 곳에 분풀이하지 말고!”
적면도가 마주 으르렁대자, 두 사람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휘몰아쳤다.
마침 한옆에 서 있던 남궁천이 귀를 후비며 말했다.
“거, 다 큰 어른끼리 애 앞에서 싸우지 맙시다.”
“너 이 새끼…….”
“아, 싸울 거면 빨리 끝내던가? 주둥이만 나불거려 봐야 시간만 흐르잖아.”
조춘이 검을 쥔 채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남궁천을 노려본 채로 적면도에게 말했다.
“방해할 생각이 없다면 빠져 있어. 지금부터는 나 혼자 잡겠다.”
“병신이 뭐라는 거야? 둘이 덤벼도 헤매는 판에 자존심을 왜 세워?”
“자존심이 아니라 네놈이 방해되니까 그런다.”
“야이 병신 조 대주야. 그건 저놈 실력이 우리보다 나으니까 그런 거지!”
확실히 조춘보다는 적면도가 조금 더 무위가 높은 걸까?
적면도는 남궁천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하지만 조춘은 인정하지 못했다.
“미친놈. 찌그러져 있어라.”
파앗!
말을 마친 조춘이 다시 화살 같은 속도로 남궁천에게 날아갔다.
‘뭐? 강호신룡이 우리보다 낫다고? 미친……!’
그래 봐야 신룡이다. 성룡이 아닌 소룡이다.
지금껏 강호를 뒤흔들 것처럼 등장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소룡이 얼마나 많은가?
떡잎은 떡잎일 뿐이다.
자라기 전에는 그 떡잎이 어떤 나무가 될지 알 수 없다.
제아무리 떡잎이 좋아도 척박한 땅에서 모진 환경이 계속되면 결국 시들어 죽고 마는 법이다.
“뒈져라, 남궁천!”
이성을 잃은 조춘이 거친 말까지 쏟아내며 검을 퍼부었다.
검신이 화살 떼처럼 날아든다.
조춘의 검은 나름 중검에 속했는데도 검격이 가벼워 보인다.
따다다당! 따당!
하나 남궁천은 검신 하나하나를 그대로 쳐낸다.
더 놀라운 것은 검봉을 검봉으로 곧장 찔러서 쳐낸다는 것이다.
호흡이나 자세가 흐트러지지도 않는다.
손을 섞을수록 질려가는 느낌이다.
“야이 병신 조 대주야. 그건 저놈이 우리보다 나으니까 그런 거지!”
조금 전 적면도가 외친 소리가 귓가에 다시 쟁쟁 울리는 것만 같다.
조춘의 눈동자가 점점 커진다.
‘정말…… 정말 이놈이 우리보다 나은 거라고?’
정말이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시간이 흐를수록 좌절감이 커져 간다.
‘더 빠르게! 더! 더!’
슈슈슈슈슈슉!
이제는 자신이 휘두른 검이 눈에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혼이 빨려 나갈 정도로 쾌검을 구사하다 보니 어깨부터 일절 감각이 전해지지 않는다.
무아지경의 전조 단계다.
하나 완전한 무아지경 속에서 검아일체를 이루기에는 감정의 폭이 너무 크다.
마치 커다란 암벽 앞에서 몸부림을 치는 기분이랄까?
한낱 견습생에게 이런 기분을 느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와아아아아! 대단하다, 남궁천!”
“역시 강호신룡이다! 엄청난 쾌검을 모두 막아내는구나!”
“지금 검봉과 검봉이 일직선으로 부딪치고 있어! 진짜 대단해!”
사람들의 환호성이 점점 더 격하게 차오른다.
조춘은 이제 의식마저 점점 흐릿해져갔다.
팔의 감각은 사라진 지 오래다.
‘만약 여기서 의식을 잃게 되면 나는 끝인 건가?’
그런 생각이 아득히 밀려오는데, 마침 성난 고함 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야이, 병신 조 대주 새끼야! 비켜어어엇!”
아득해져 가던 정신이 돌아오는 것과 동시에 눈앞에서 해일처럼 밀려오는 도기를 보았다.
콰아아아아아아!
시뻘건 도기를 품은 칼날이 죽일 듯이 날아들고 있었다.
“커헙!”
딱히 피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저 살기 위해서 무릎을 굽히며 그대로 넘어갔다.
콰당!
본의 아니게 나려타곤의 수법으로 바닥을 엉망진창으로 굴렀다.
그리고 그사이를 파고든 적면도의 칼날이 남궁천의 옆구리에 깊이 박혔다.
푸욱!
조춘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졌다.
‘먹, 먹혔어?’
딱히 차륜전을 쓸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맹목적으로 밀어붙인 속공 끝에 우연히 적면도가 끼어들면서 무거운 칼을 먹인 것이다.
남궁천은 옆구리 쪽을 쥔 채로 몸을 잔뜩 숙이고 있었다.
칼을 휘두른 적면도는 초겨울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헉……!”
“…….”
“남궁천. 네놈에게 악감정은 없다. 원망은 하지 마라.”
적면도의 말이 비무대에 잔잔하게 울린다.
함성을 내지르던 관중들도 호흡마저 멈추고는 남궁천을 지켜보았다.
남궁표는 아예 뒷목을 쥐고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남궁화가 남궁검을 슬쩍 돌아보았다.
“아버지. 그거죠?”
“그래, 그거 같다.”
남궁검의 말에 남궁표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게 뭡니까?”
“보면 안다.”
남궁검의 말에 남궁표가 혼미해지는 정신을 겨우 붙들며 시선을 돌렸다.
“소가주……! 자네는 절대 이런 곳에서 쓰러지면 안 돼!”
남궁표가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한편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남궁천을 노려보던 조춘이 얼른 몸을 일으키고는 기합성을 터뜨리며 달려왔다.
“이여어어업! 남궁처어어언! 끝이다!”
검기가 폭사하면서 남궁천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모습을 본 몇몇 관중들은 단말마의 비명을 터뜨릴 정도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까앙!
남궁천의 오른손이 번쩍 치솟으면서 벽라검이 그대로 조춘의 검을 튕겨내는 게 아닌가?
“……!”
조춘이 돌처럼 굳어서 남궁천을 보았다.
“거, 너무들 하시네. 아직 앞날이 창창한 애한테 대놓고 뒈지라는 둥, 끝이라는 둥. 그러고도 존경받는 어른이 될 수 있겠어?”
“……!”
이번에 놀란 사람은 적면도였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더듬거렸다.
“어, 어찌……? 맨손으로 내 칼을……?”
분명 옆구리를 베었다고 생각한 칼날이 남궁천의 왼손에 굳게 잡혀 있는 게 아닌가?
아무리 공력을 실었다지만 도기까지 머금은 도신을 맨손으로 낚아채다니?
이 정도면 초절정을 넘은 절대 고수급이 아닌가?
말도 안 된다.
한낱 약관에 지나지 않은 청년이 절대 고수급이라고?
조춘과 적면도가 아연실색하는 사이, 관중석에서는 하늘이 떨릴 정도로 함성이 차올랐다.
“우와아아앗! 대단하다! 남궁천이 칼을 맨손으로 잡았어!”
“역시 강호신룡이다! 네가 주인공이다!”
“강호신룡은 무림맹의 자랑이다!”
“강호신룡! 우승해라! 적랑단주가 되어라! 너는 차기 맹주감이다!”
모두가 환호하는 와중에도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이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맹주님, 저건 도대체…….”
옆에 선 총관이 허리를 숙이며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무공을 익히긴 했어도 양생술 정도에 지나지 않았기에 조예가 그리 깊진 않았다.
그런 그를 이해시켜 주듯 맹주 묵천악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했다.
“맨손이 아닐세.”
“예? 하면…….”
“손에 기물을 착용한 것 같군. 어쩌면 제 어미가 사용하던 신룡갑일지도 모르지.”
“아……! 그렇다면 규율 위반으로 실격 처리하는 건 어떻습니까?”
“아니. 놔두세. 우리 목표는 남궁천의 실격이 아니라, 놈의 죽음이야. 이만큼 규율에 관대하다는 걸 보여주어야 앞으로 일어날 일에도 당위성이 생기지 않겠나? 그러니 지금은 마음껏 설치도록 놔두세. 아직 우리에겐 남은 패가 많으니.”
묵천악의 시커먼 눈동자가 더욱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