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 내 돈
유환객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남궁천에 대한 정보는 대략 파악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망나니 같은 성격.
어디로 튈지 모르니 주의해야 한다고.
하나 유환객은 그 정보를 보고 피식 웃어버렸다.
‘이런 것도 정보라고 물어오다니. 멍청한 무림맹 새끼들.’
정말이지 한심한 정보라고 생각했다.
남궁천은 이제 약관을 채운 나이다.
한마디로 그간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는 뜻이다.
길가에 선 장승을 보고도 날을 세우고 시비를 걸 나이가 아니던가?
어디 남궁천만 망나니 같을까?
세상에 망나니 같은 십 대를 다 불러 모은다면, 무한의 동호를 가득 채우고도 넘치리라.
그러니 그건 정보라고 할 수도 없다.
그저 십 대의 특징일 뿐.
그런데…….
‘내가 그 정보의 무게를 간과했군.’
지금 눈앞에서 이죽거리는 남궁천은 확실히 어디로 튈지 모를 모난 돌 같았다.
그런데 그 모난 돌이 튀어 날아간 방향이 하필 정곡을 찔렀다.
우연인가? 아니면 계산된 건가?
어느 쪽이든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강호에서 생존률을 따지고 보면 분명 운이라는 게 크게 작용하니까.
유환객은 타고난 운을 많이 믿는 편이었다.
‘어쨌거나 이야기의 흐름이 대뜸 그쪽으로 튈 줄이야.’
당황해선 안 된다.
이런 녀석들의 특징이 말꼬투리를 낚아채고 괴롭히는 거니까. 거기에 휘말리는 순간 없는 실수도 만들어내는 법.
유환객이 차갑게 웃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갑자기 왜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는가?”
“뭐, 나름 합리적인 추론이랄까요?”
“합리적인 추론?”
“아까도 말했듯이 지속적으로 날 관찰했잖아요? 보통 그건 살수들의 자세죠. 물어뜯을 먹잇감을 빤히 노려보며 기회만 엿보는 맹수처럼. 아저씨가 딱 그랬거든요. 눈빛부터가 뭐랄까…… 재수가 없다고 해야 하나?”
이 새끼가…….
유환객은 욕지거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걸 참았다.
그래, 이 녀석은 아직 반항기 가득한 청춘이 아닌가?
이해를 하자.
서두를 건 없다.
“하나 자네는 청랑단 부단주를 개 패듯 패지 않았나? 약관의 청년이 그런 과감한 짓을 벌이는데 자네 말대로 누가 그걸 보지 않겠나? 나 아닌 누구라도 빤히 쳐다봤을 걸세.”
“아까는 안 봤다며.”
“그러니까 그땐 자네가 워낙 추궁을 하니…….”
“어쨌든 그래서 대답은요?”
“무슨 대답 말인가?”
“날 죽이러 온 거냐고 물었잖아요.”
“…….”
또 그 이야기.
도대체 이 녀석의 대화는 어떤 의식을 흐름을 거치는 건가?
유환객이 내심 치미는 짜증을 숨기고는 나직이 물었다.
“아니라고 하면 믿긴 할 텐가?”
“이봐, 이봐. 역시 또 대답을 피하네. 이게 딱 거짓말하는 놈들의 특징이거든! 질문을 질문으로 응대한다든가!”
아, 이 새끼를 그냥 죽일까?
지금이라면 출수만 조금 빨리 해도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정말이지 유환객은 엄청난 갈등을 겪는 중이었다.
그 바람에 그의 단전에서는 공력이 마구 들끓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신체 변화는 남궁천의 초견파공안에 의해 고스란히 잡히고 있었다.
피식.
남궁천이 내심 웃었다.
‘아주 안달이 나셨군.’
남궁천이 유환객을 보며 이죽거렸다.
“제 말이 틀렸어요? 아니라면 아니라고 해보시든가?”
“아니다. 됐느냐?”
유환객의 차분한 말투가 조금 거칠어졌다.
남궁천의 도발적인 말투도 더 거칠어졌다.
“안 됐어요.”
“…….”
유환객이 끌어 올린 공력이 혈맥을 따라 이동하더니 상단전 쪽으로 치달렸다.
남궁천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게 나오신단 말씀이지.’
공력이 출수할 손으로 뻗지 않고 상단전으로 치달린 것은 하나의 경우다.
유환객의 특기인 환술을 쓰겠다는 뜻이다.
남궁천이 환술에 당한 틈을 타서 이 자리를 벗어나거나, 아니면 찰나지간 살수를 뻗어오거나.
‘어느 쪽이든 뜻대로 되게 할 순 없지.’
남궁천이 생각하는 사이, 유환객이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네 입으로 아니라고 하라며?”
“에이, 진작 했어야죠. 지금은 늦었어요.”
뭐야? 이 새끼야? 지금 장난해?
정말이지 입 밖으로 말이 그대로 튀어나갈 뻔했다.
‘참자. 지금 참지 못하면 실패할지도 모른다. 여간 약은 놈이 아니니 신중을 기해야지.’
유환객이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남궁천이 입매를 슬쩍 말아 올렸다.
‘너와 나는 악연이 분명한 모양이다. 전생에 날 죽이려다가 뒈지도록 처맞고 달아났으면, 다신 내 눈에 띄질 말았어야지.’
세상엔 이렇게 운이 있다가도 없는 놈이 있다.
그러고 보면 결국 이 또한 욕심이 과해서 생긴 결과니, 욕심이 지나치면 운도 달아난다는 이치인가?
‘이렇게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고.’
마침 유환객이 눈을 부라리며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럼 어찌해야 믿을 텐가?”
남궁천이 유환객을 빤히 보다가 품에서 추혈검을 꺼내 척 올려두었다.
“자결하시죠.”
“……!”
유환객은 물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정말 억울하면 죽음으로 결백을 증명하잖아요?”
뭐, 인마? 아니, 아직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뭔 결백을 증명해? 미친놈아!
정말이지 자칫 발작적으로 화를 낼 뻔했다.
유환객이 끙 앓는 소리를 흘렸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한 차례 하고는 남궁천을 빤히 보았다.
“후우. 거절하지. 애초에 자네 전제가 틀려먹었으니까.”
“이봐, 이봐! 날 죽이러 온 게 맞잖아!”
“마음대로 생각해! 도대체 날 왜 이렇게 몰아가는지 모르겠군!”
“내가 가끔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거든요.”
“뭐?”
생뚱맞은 소리에 유환객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환각술을 쓴 게 아닌지 살폈다.
한데 분명 환각술을 쓰진 않았다.
그런데도 죽은 진천랑이 보인다고?
이놈 진짜 미친 건가?
“대살성이 보인단 말이냐?”
“오, 우리 아버지를 아세요?”
“네 아비를 모르는 강호인이 세상에 있겠느냐?”
“하긴 우리 아버지가 좀 유명하시죠.”
좋은 쪽이 아니라고!
유환객이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남궁천이 태연히 말을 이었다.
“아무튼 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요. 아저씨가 아버지를 죽이려고 찾아온 적이 있다고.”
“뭐, 뭣?”
“그런데 아버지한테 뒈지도록 처맞고 울면서 달아났다고요.”
“울진 않았어!”
유환객이 발끈해서 소리치자, 남궁천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뒈지게 처맞기만 한 걸로.”
“이익……!”
“아무튼 그러니 제게도 조심하라네요. 조건만 맞으면 못 하는 게 없는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요.”
“이 새끼가…….”
“아, 제가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
이쯤 되자 유환객도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가 정색을 하고는 목소리를 무겁게 깔았다.
“어이, 애송이. 지금 장난하는 거냐?”
“그럴 리가요. 진짜 아버지 말씀을 전했을 뿐인데. 아버지를 보여 드릴까요?”
“네 아버지를 내게 보여준다고?”
“그럼요. 바로 보여 드릴 수 있어요.”
순간 유환객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설마 이 새끼도 환술을 쓰나?’
그렇다면 자신보다 잘할 리가 없다.
‘차라리 잘된 건가? 환술을 쓴 직후라면 단숨에 출수해서 죽여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속내를 감춘 유환객이 슬금슬금 공력을 끌어 올리며 입매를 비틀었다.
“어디 한번 보여줘 봐라. 네 아버지를.”
“음. 알겠어요. 일단 제 눈을 잘 보셔야 해요.”
“오냐.”
“더 가까이.”
“이렇게……?”
“더, 더, 더.”
“됐냐?”
이제 유환객의 얼굴이 남궁천의 얼굴과 닿을 만큼 바짝 가까워졌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한 뼘 정도의 거리를 둔 채 마주 응시했다.
유환객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물었다.
“네 아버지는?”
그 순간 남궁천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나다, 이 새끼야.”
“……?”
“유환객, 이 개새끼야. 그렇게 처맞고도 날 또 찾아와? 죽을 자리 찾아다니는 게 네놈 특기더냐?”
“너, 너 이 미친…… 이게 무슨 개 같은 짓이야!”
파밧!
유환객이 재빨리 품에서 단도를 꺼내 반월을 그리며 휘둘러 왔다.
하나 남궁천이 먼저 책상 위에 둔 추혈검을 집어 들며 직선으로 내질렀다.
쒸이잇, 푸욱!
“커억!”
졸지에 목에 구멍이 뚫린 유환객이 끅끅거리며 비틀거렸다. 곧이어 목에서 검을 뽑아낸 남궁천이 가슴과 단전에 연이어 단검을 틀어박았다.
푹! 푹!
“끄으악!”
마침내 유환객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가 바닥에 쓰러지며 부들부들 떨었다.
순식간에 요혈을 전부 내찌른 남궁천이 무심한 표정으로 다가갔다.
유환객은 그 순간 보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며 쪼그려 앉는 남궁천의 얼굴이 완벽하게 진천랑으로 변하는 것을.
마치 자신이 사용한 환술처럼.
바로 앞에 쪼그려 앉은 남궁천이 오늘 얻은 깨달음을 인심 좋게 나누었다.
“새겨들어라. 욕심이 과하면 운도 달아나는 법이다.”
“진천…… 랑……!”
유환객이 부들부들 떠는 손을 들어 올리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남궁천이 추혈검을 뽑아 들고는 일어섰다.
‘이렇게 쓰레기 하나 치웠네.’
남궁천은 객잔의 모든 사람이 대경실색한 것도 무시한 채 견습생들에게 걸어갔다.
물론 견습생들 역시 갑자기 일어난 일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 *
“방은 마음에 드십니까요?”
귀왕이 헤실헤실 웃으며 손을 맞비볐다.
남궁천이 객실을 대충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이야.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하면 아까 말씀드린 건 어찌……?”
귀왕이 한껏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남궁천을 본다.
“뭘?”
“아…… 그러니까 그 지분에 관한 것 말입니다요. 헤헤. 사실 오늘만 해도 시체 처리 비용과 부서진 물건들에 대한 수리 비용 등 자잘하게 나가는 게 참 많은지라…… 흐흐흐. 주인님이 저희가 고생하는 걸 조금이나마 헤아려 주신다면 지분을 좀…….”
“닥쳐라.”
“예……?”
“닥치라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몸으로 깨닫게 해줘?”
“즉시 닥치겠습니다.”
“그래. 개들만 읽는 책이 있다.”
“개들이 책을 읽어요?”
“그래. 원래 사서삼경은 사서삼경이 아니야. 이상하지 않냐?”
“뭐가 이상한 건지…….”
“앞은 사서인데 뒤는 왜 삼경이냐고? 사서사경이어야 짝이 맞잖아.”
“듣고 보니 그렇네요.”
“실은 여기에 하나가 빠진 거다. 그건 개들만 읽는 책이라서 포함이 되지 않은 거다.”
“오오! 그런 거군요.”
“그래. 바로 견경(犬經)이라는 거지.”
“개들이 책을 읽을 줄은 몰랐습니다요.”
“멍청한 놈.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堂狗風月)’는 말도 못 들었냐?”
“아……! 그러고 보니!”
“그래, 그때가 되면 견공들이 견경을 읽기 시작한다.”
“오오, 놀라운 사실입니다!”
“거기 첫 줄에 뭐라고 적혔는지 알아?”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남궁천이 다시 힘껏 귀왕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따악!
“크윽!”
귀왕이 뒤통수를 움켜쥐고는 눈물을 찔끔 흘리는데, 남궁천이 실눈을 뜨고는 말했다.
“네 주인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
“…….”
“뭐? 지분? 지부우운?”
“죄, 죄송합니다.”
“내 돈이야, 이 새끼야.”
“명심하겠습니다!”
귀왕이 고개를 푹 숙였다.
육시럴 놈.
어쩐지 개소리를 성의껏 늘어놓는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