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293화 (292/508)

293. 내 돈

콰자앙!

귀왕객잔 정문이 그대로 떨어져 나가면서 청랑단원 하나가 거리까지 튕겨져 나와 뒹굴었다.

쿠당탕탕!

“크윽……!”

신음을 흘리던 청랑단원이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다가 그대로 다시 엎어졌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어째서…… 한낱 견습생들 주제에……!’

팽수혁과 유현의 무공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어지간한 청랑단원들과 겨루었을 때 결코 밀릴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리 후기지수라지만 그래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단원들을 이리 쉽게 가지고 놀 줄이야?

게다가 자신들 사이에는 가장 연장자인 조장도 포함되어 있지 않던가?

조장 정도의 자리에 오르려면 최소 절정에 한 발짝 정도 걸치고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팽수혁과 유현은 조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적어도 그 두 사람은 조장보다 더 뛰어난 무공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윤종승이라는 견습생은 조장과 비슷한 정도일까?

“쯧쯧…….”

혀를 차는 소리에 다시 고개를 들어 보니 팽수혁이 팔짱을 낀 채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괜찮소?”

“크읍……!”

“아아, 또 때리려는 건 아니니까 걱정 마시고. 난 나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취미는 없거든.”

“……!”

“내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나보다 더한 괴물이 눈이 뒤집힐 것 같아서 말이오.”

유현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청랑단원도 그 뜻을 알아듣고는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유현은 손속이 매서웠다.

그가 든 검에는 자비가 없는 것 같았다.

검로 하나하나가 치명상을 노리고 있었다.

화려하고 유려한 검술에 비해 그토록 잔인한 심정이라니.

“언뜻 이해되지 않는 부조화라고…… 나도 생각하오. 이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데. 하필 우리가 사귄 친구가…… 그러니까 그 도롱뇽 말이오. 그 도롱뇽 새끼가 원체 성격이 지랄 같아서 저 도장을 그리 만들어 버렸소. 좋은 걸 배워야지 하필 그런 걸 배워서는. 으음…… 다시 생각해 보니 좋은 점이 없구나.”

남궁천이 들었다면 길길이 날뛸 소리를 태연하게 중얼거린 팽수혁이 턱짓을 했다.

“알아들었으면 그만 가시오. 뭐, 억울하면 윗대가리에게 말해서 더 센 사람을 끌고 오시든가? 말리진 않겠소. 나도 내가 어디까지인지 시험해 보고 싶어서 말이오. 그 도롱뇽 새끼는 워낙 비정상이어서 가늠이 안 되거든.”

“미친놈들.”

“맞소. 우린 그놈 따라 미친 것 같소.”

그때였다.

“으헉!”

“저, 저리 가! 오지 마!”

나머지 청랑단원들이 부서진 문틈에서 뒷걸음질을 치며 나타났다.

눈가에 피를 흘리는 사내, 어깨가 탈골된 자, 다리를 저는 사내까지. 다양한 몰골로 나타난 청랑단원들이 얼른 바닥에 쓰러져 있던 동료를 부축해 일으키더니 그 길로 달아났다.

그제야 유현이 정문을 통해 피가 뚝뚝 흐르는 매화검을 들고 나타났다.

촤아아악!

검신을 한 차례 휘둘러 피를 털어낸 유현이 검집에 검을 갈무리했다.

철컥!

“살려 보내도 괜찮을까요?”

“허얼. 그럼 죽이게?”

“후환을 없애려면 그편이 나을 것 같은데…….”

“유현 도장. 도대체 어쩌다 이리 된 거야? 이게 다 그 도롱뇽 새끼 때문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다. 아무것도 아냐. 어쨌거나 큰일 날 소리 좀 하지 말라고. 아무리 저놈들이 먼저 잘못을 저질렀다지만, 견습생이 청랑단원을 죽이면 일이 복잡해져. 생각 없이 단순한 놈들이나 할 짓이라고.”

“지금 저 욕하신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니고.”

뜨끔한 팽수혁이 얼른 손사래를 쳤다.

하여튼 성격도 어딘지 조금씩 변한 것 같은 유현이었다.

그렇게 청랑단원을 쫓아낸 두 사람이 객잔 안으로 들어가자, 윤종승이 아수라장이 된 탁자와 의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커흠. 고맙다.”

귀왕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욕쟁이 설정이라더니 인사하는 태도도 뻣뻣하기 짝이 없다.

“맹원으로서 당연히 나서야 할 일이었을 뿐이오.”

“한데 그분 친구라고?”

“그분이라면 누구?”

“도롱…… 아니, 강호신룡 말일세.”

“그렇소만.”

“허허, 그렇군. 그래서 그렇게 발끈한 거였군.”

“주인장은 그 녀석과는 어떤 관계인지……?”

“아, 그분은 우리 은인일세. 그래서 우린 그분을 따르고 있지.”

“아…… 남궁천이 은인이라니. 희한한 경우도 다 있구려.”

“뭐, 세상 살다 보면 이상한 일이 많다네. 아무튼 저놈들이 이대로 물러가서 다행이지만, 나중에 다시 찾아오면 좀 곤란해질 수 있네. 그러니 어서 여길 떠나게.”

“괜찮소. 그러라고 보내준 거라서.”

“그러라고 보내줬다고?”

“그렇소. 어차피 판이 커져 봐야 부담이 되는 건 청랑단이오. 부끄러운 짓을 하다가 견습생 몇 명에게 계도당한 게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할 테니까. 이곳에 목격자도 많으니 함부로 할 순 없을 거요.”

“오오오! 자네는 지능이 아주 높은 부류군?”

“음?”

난생처음 듣는 말에 팽수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현과 윤종승도 서로 바라보면서 피식 웃었다.

잠깐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팽수혁이 조금 붉어진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커흠! 뭐, 가아끔은 그런 소리도 듣소. 가아끔은.”

“과연! 자네의 지계에 크게 감복했네! 내 오늘 자네들에게는 특별히 음식을 공짜로 제공해 주지!”

“오오, 고맙소!”

“얘들아, 뭣들 하느냐? 어서 술과 음식을 내오너라!”

“형님이 요리를 하셔야 음식을 내오죠.”

“아, 그렇군. 잠시만 기다리시게!”

귀왕이 주방으로 달려가자, 유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팽 소협의 지계가 뛰어나다기보단 저쪽이 좀 지능이 모자란 쪽이 아닌…… 읍. 읍읍……!”

어느새 다가온 윤종승이 유현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여튼 유현 도장은 갑자기 사람이 변해서 은근히 손이 간다니까.’

그렇게 세 사람은 귀왕이 대접해주는 음식을 공짜로 먹었다.

잠시 있자니 진소홍도 도착했다. 그녀는 앞서 있었던 이야기를 대략 전해 듣고는 같이 흥분해서 청랑단을 욕했다.

그렇게 네 사람은 권커니 잣거니 하며 술잔도 기울였다.

해가 저물고 달이 떠올랐다.

우려와 달리 아직까지는 청랑단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마침 귀왕이 네 사람에게 다가왔다.

“어때? 다들 맛있게 처먹었나?”

“하하! 훌륭했소. 그런데 그 욕쟁이 설정은 어쩌다가 생각하신 거요?”

“뭐, 일부러 한 건 아니고. 우리 말투가 원래 그렇다.”

“그렇군.”

“혹시라도 청랑단이 올까 봐 여태 남은 거면 돌아가도 될 것 같네. 아직 오지 않는 걸 보니 아무 일 없이 넘어갈 모양일세.”

“그러게 말이오. 좀 아쉬운 생각도 들지만 우리도 이만 돌아가지.”

팽수혁의 말에 다른 생도들이 슬금슬금 자리에서 엉덩이를 뗐다.

그렇게 네 사람이 자리를 뜨려고 할 때였다.

콰당!

겨우 다시 달아놓은 정문이 벌컥 열리면서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다행히 문짝이 부서지진 않았지만, 객잔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정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덩치가 제법 크고 탄탄한 근육질이 옷으로도 가릴 수 없는 사내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험상궂은 표정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눈빛만 마주쳐도 주눅이 들 것 같은 인물.

그가 바로 청랑단 부단주 최팔이었다.

“주인장 있는가!”

최팔이 소리치자 객잔 내부의 물건들이 다르르 떠는 소리를 내질렀다.

공력이 실린 사자후였던 것.

윤종승이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올 것이 왔군.”

“역시 후환을 없애려면 그냥 그때 죽였어야…….”

제발 그 입 좀 다물라고!

윤종승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고는 가만히 손으로 유현의 말만 제지했다.

귀왕이 표정을 굳히고는 최팔에게 다가갔다. 견습생들도 귀왕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어쨌거나 자기들이 저지른 짓이니 책임을 지기 위해서.

최팔이 귀왕을 보고는 눈썹을 성큼 치켜 올렸다.

“뭐야? 주인장이야?”

“그렇다.”

“그렇다? 이 새끼가 감히…….”

“닥쳐라! 이 객잔의 설정이다! 그리고 너도 반말하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가 있느냐?”

귀왕 역시 공력을 실어 대꾸하자 최팔이 어이 상실한 얼굴로 눈만 끔뻑였다.

“어이, 주인장. 요즘 장사가 너무 잘 되니까 미쳐 돌았어? 내가 누군지는 아는 거냐?”

“시끄럽다. 네가 누구든 내 밥을 처먹으러 왔거나, 아니면 잘못 찾아온 거겠지.”

“너 죽이려고 왔는데?”

“청랑단이 지금 객잔 주인을 겁박하는 것인가!”

귀왕이 다시 소리치자, 최팔이 피식 웃더니 손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문밖에서 대기하던 청랑단원 여섯 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 모두 앞서 객잔을 방문했다가 팽수혁과 유현에게 당해 부상을 입은 자들이었다.

“우리 애들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그럼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화가 안 날까? 이건 정당방위지.”

“미친 소리도 작작해라. 손님이 아니면 썩 나가!”

“손님이면?”

“뭣이?”

“이거 안 되겠군. 여기서 제일 좋은 방으로 안내해. 주인장.”

“그게 무슨…….”

“손님이 아니면 썩 나가라고 하지 않았나? 이제 손님이 되었으니까 그 지랄 같은 설정이든 뭐든 안내나 하란 말이다.”

최팔이 품에서 금전을 두둑하게 꺼내더니 휙 집어 던졌다. 얼떨결에 그걸 받아 든 귀왕이 어금니를 꾹 씹다가 피식 웃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군.”

“안 된다니? 돈을 냈는데 뭐가 문젠가?”

“이미 예약이 되어 있어서.”

“내가 그놈보다 더 줄 테니 예약 취소하고 안내해라.”

“불가다.”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최팔이 단전에서 뜨끈한 공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후우우웅!

그의 전신에서 후끈한 기풍이 불어나가자 장삼 자락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과연 부단주인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데?’

귀왕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허리춤의 식칼에 손을 올렸다.

그간 귀왕도 발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주방에서 매일같이 검기를 이용해서 요리를 해왔다. 귀왕객잔의 요리가 맛있는 비결이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같이 요리를 하다 보니 무공의 길이 보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참에 시험해 보고 싶은 맘도 있었다.

한데…….

‘어림 반 푼 어치도 없겠군.’

최팔은 강하다.

앞서 왔던 조장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그런 기분은 팽수혁과 유현도 같이 느꼈다.

‘만만치가 않겠군.’

‘꽤 버거운 고수다.’

두 사람이 생각을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성큼 나섰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말했다.

“그만하시오. 저들에게 손을 댄 건 우리요.”

“으응? 자네들은 견습생인가?”

“그렇소.”

“후후.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자네들이 어찌 우리 단원에게 손을 댄단 말인가?”

“흐음. 그래도 부끄러운 줄은 알아서 거기까지 보고를 하지 않은 모양이군.”

팽수혁이 자초지종을 대략이나마 전했다.

그러자 묵묵히 듣던 최팔이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된 건가? 하면 자네들도 그냥 넘어갈 순 없겠군.”

“무력을 쓸 생각이라면 나갑시다. 나가서 비무를 하든 뭘 하든 합시다. 여긴 다른 사람도 많은 데다 장사하는 데 피해가 될 수 있으니.”

“비무? 하하하하! 자네들과 내가 비무? 도대체 무슨 자신감들이지?”

“…….”

“뭐, 아무래도 좋다. 어디 좋을 대로 해보지. 거리에서 처맞는 것도 그 나이에는 낭만이겠지.”

최팔이 싸늘하게 말을 뱉더니 휙 돌아섰다.

그의 전신에서는 모종의 살기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지켜보던 진소홍도 사람에게 다가가 걱정했다.

“정말 괜찮겠어? 나도 도울게.”

“괜찮아요. 진 소저. 괜히 이 일에 끼어들지 마세요.”

유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그런데 최팔이 막 정문 손잡이를 잡으려고 할 때였다.

돌연 문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남궁천의 목소리였다.

“귀왕! 내가 돌아왔다!”

다음 순간 문짝이 떨어져 나갈 듯 열리면서 그대로 최팔을 쳐냈다.

쾅!

슈우우우욱, 쿠당탕탕!

눈 깜빡할 사이에 포탄처럼 튕겨 나간 최팔이 이 층으로 오르는 계단까지 굴러가서 아무렇게나 구겨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저마다 입을 쩍 벌렸다.

어지간히 큰 충격이었는지, 최팔은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있었다.

“공, 공, 공…… 자님?”

귀왕이 뻣뻣하게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자, 문을 열고 들어온 남궁천이 이맛살을 푹 찡그리며 저만치 쓰러진 최팔을 보았다.

“쟤는 또 뭐야? 아니, 그러게 왜 입구를 막아서고 지랄이야? 지랄이.”

태연한 그 태도에 귀왕이 이때다 싶었는지 얼른 고자질을 했다.

“저자가 공자님의 방을 달라고 떼를 썼습니다요!”

“뭐? 그래? 그렇단 말이지.”

소매를 걷어붙이는 남궁천의 입가에 소름 끼치도록 으스스한 미소가 걸렸다.

남궁천이 곧 쓰러진 최팔에게 거침없이 걸어갔다.

“어어……?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냐?”

윤종승이 불안한 눈길로 남궁천을 응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퍼억! 퍽!

곧 끔찍한 소리가 객잔 내부에 울리기 시작했다.

윤종승이 해쓱한 표정으로 유현을 돌아보았다.

‘이제 보니 유현은 참 귀여운 거였구나. 바르게 컸네. 바르게 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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