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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공검제-288화 (287/508)

288. 내 돈

‘이래서야 본 가를 재건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

남궁효가 시름에 잠긴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공사 현장을 보았다.

아직도 완공되지 못한 전각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두어 명만 남은 인부들도 남궁효에게 대충 인사를 건네고는 발길을 돌렸다.

남궁세가가 전성기였던 시절을 떠올리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태도다.

하나 이제는 인부들조차도 남궁세가의 금정각주를 보고도 데면데면 한다.

그렇다고 성큼 나서서 한마디 따끔하게 이를 수도 없다.

저들을 움직이는 힘은 결국 돈이다.

그 돈이 부족해서 인부들을 절반 이상 감원시키지 않았던가?

자연히 공사는 늦어지고 돈은 더 오랫동안 들어갈 수밖에 없다.

‘너무 서둘렀던 건가?’

남궁천이 부활하면서 남궁세가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문을 몰락하게 만든 원흉이라 여겼던 아이가 갑자기 강호신룡으로 추앙받더니 남궁세가를 다시금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비록 소가주가 되는 과정에서 다소간의 마찰이 있었지만, 남궁천은 그 모든 시험을 잘 넘겼다.

거기에 마단곡 영단까지 찾아와서 수뇌 인사들이 영단을 복용해 내공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이쯤 되니 남궁천을 지지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문제는 바로 그 마단곡이다.

마교 놈들이 어찌 눈치를 채고는 남궁세가를 침입해 장원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다.

한창 확장 공사를 하던 와중에 당한 일인지라 피해 규모가 막심했다.

게다가 수많은 희생자의 장례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조금 불어나던 돈이 빠르게 소진되어 갔다. 정말이지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라더니.

‘그게 아니었어.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지만, 없다가 있긴 힘든 거였어.’

재기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싶었는데, 너무나 빠르게 소진됐다.

물론 남궁세가가 희생자들의 장례를 모르쇠하고 확장 공사에만 전념했다면 조금 상황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나 그건 남궁세가의 방식이 아니다.

분타의 지원금을 받았지만 역시나 보수를 하고 피해를 입은 윤가와 가르고 나니 남는 게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무림맹에서 지원을 해주겠다고 선언한 것도 아니고.

“하아. 산 넘어 산이라더니. 과연 본 가에도 볕들 날이 있으려나?”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 문득 옆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 한숨만 내쉬어서는 들어올 복도 나가고 만다.”

“아…… 누님 오셨습니까?”

남궁효가 남궁설희를 돌아보며 고개를 조아렸다.

남궁설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남궁효의 몰골을 한 차례 훑었다.

“어찌 그리 시름 잠긴 표정인가? 자금이 많이 부족한 것이더냐?”

“사실 재정 상태가 많이 좋지 않습니다.”

“흐음. 얼마나?”

“조금 있으면 빚을 지게 될 것 같습니다.”

“혹시 금왕…….”

말을 꺼내던 남궁설희가 입을 다물었다.

남궁효 역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했지만 굳이 캐묻진 않았다.

아마도 금왕의 도움을 받으면 어떻겠냐고 물어보려던 것이리라.

남궁천에게 금왕의 명패가 있으니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하나 그 역시 남궁세가의 방식은 아니다.

힘이 있어야 돈이 붙고, 돈이 있어야 권력을 부를 수 있다. 권력이 생기면 다시 돈이 붙게 마련이고, 또 힘이 생기는 법이다.

한데 이렇게 금왕에게 의지만 해서는 결국 그 자금도 끊기고 말리라.

금왕이 남궁천에게 명패를 건네준 것은 어디까지나 선심이 아니다. 명백한 투자.

바로 장사꾼의 셈법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지금 재정 상태가 어떤가?”

“이제 삼만 냥 정도 남았습니다.”

“인건비를 포함하면 얼마나 버티겠나?”

“보름 정도 버틸 듯합니다.”

“확장 공사를 너무 성급하게 진행한 게 아닌가 싶구나.”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그게 뭐지?”

남궁설희의 물음에 남궁효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마단곡입니다.”

“마단곡? 그게 어째서 방법이 되는…… 혹시 마단곡의 영단을 매각하자는 것이냐?”

남궁설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의 눈빛에는 모종의 안타까움과 아련한 노기가 섞여 있었다. 그 말로 형용하기 힘든 기분을 남궁효도 느끼고 있었다.

“강호에 내놓으면 필시 거액을 받을 겁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남궁설희의 목소리가 칼날처럼 섬뜩하다.

남궁효가 저도 모르게 자라목을 움츠리며 대꾸했다.

“워낙 길이 없다 보니 생각이 거기까지 가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안 될 말! 어찌 집안의 어른으로서 그런 망발을 할 수 있는가! 천이가 벌어온 것을 지켜주고 불리지는 못할망정, 어른으로서 그것을 까먹을 궁리를 하다니.”

“죄송합니다, 누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남궁효가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남궁설희도 그 심정을 이해는 한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의 근심은 알겠네. 하나 우리는 더 이상 천이에게 짐이 될 순 없어. 이젠 그 아이에게 짐이 아니라, 힘이 되어야 할 차례네.”

“옳은 말씀입니다.”

“그간 우리는 그 아이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네. 하나 정말 가문이 기운 것은 우리의 그런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아이가 당가에서 마신단 복용에 성공했다는 소식도 왔으니 조금만 더 버텨보세. 그 아이가 오면…….”

말을 이어가던 남궁설희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힘이 되는 어른이 되자더니, 정작 본인도 남궁천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남궁천이 오면 뭐라도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편 남궁천이 새삼 대견하단 생각도 든다.

도대체 언제부터 자신이 이토록 남궁천을 의지했던가?

우습게도 이젠 먼 길을 떠난 가주보다 소가주가 더 보고 싶을 지경이다.

‘오라버니. 오라버니의 결정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군요.’

그 대쪽같던 남궁검이 남궁천을 인정했을 때, 자신도 그것을 받아들였어야 했건만. 이래서 가주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남궁설희가 결심을 굳히듯 다부진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부턴 우리가 그 아이를 지켜주고 보호한다. 가문의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더냐?”

“누님 말씀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남궁효도 굳은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남궁설희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어찌 보면 우리 중에서 표가 제일 나은 녀석일지도 모르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남궁효가 쓴웃음을 지었다.

남궁표는 지금 장원에 없었다.

중상으로 앓아누워 있다가 정신이 들자마자 돈을 벌어오겠다며 떠났기에.

한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마침 등 뒤에서 남궁표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누님. 지금 제 얘기 하고 계셨지요? 그새 제가 보고 싶었습니까?”

남궁효와 남궁설희가 반색하며 돌아보자, 한쪽 눈에 검은 안대를 착용한 남궁표가 멋쩍은 웃음을 그리며 서 있었다.

“표야, 왔구나!”

“예, 제가 돌아왔습니다, 누님. 아직 여기 계셨군요?”

“본 가가 이 지경이니 쉬이 발이 떨어지지 않더구나.”

“그렇군요. 혹시 가주님과 소가주로부터는 기별이 있었습니까?”

“있었다. 네가 돈을 벌어오겠다며 떠난 사이에 우리 소가주가 또 일을 냈더구나.”

“설마…… 그럼 마신단을 복용하는 것에 진짜 성공한 겁니까?”

“그렇다.”

“크하하하핫! 정말 그놈은 난 놈입니다! 본 가에 그런 거물이 태어날 줄이야! 누가 선이 아들 아니랄까 봐 아주 엄청난 걸 해내는군요! 정말 대단한 녀석입니다! 하하하핫!”

남궁표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자 남궁설희가 짐짓 눈을 가늘게 뜨고는 흘겨보았다.

“언제는 절대로 소가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길길이 날뛰더니?”

“엇, 누, 누님은 왜 지나간 이야기를 꺼내십니까? 거참…….”

“훗. 농이다. 그래, 너는 좀 어땠느냐? 성과가 좀 있었더냐?”

남궁설희가 조금은 기대에 찬 눈으로 물었다.

하나 그녀 곁에 선 남궁효는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일전에 자신도 돈을 구해보겠다며 떠나지 않았던가?

하나 금정각주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기울어 버린 남궁세가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그때보다 남궁세가의 명성이 조금 더 올라왔겠지만, 역시 아직은 어려울 터.

일백 냥의 돈도 구하기 어려웠으리라.

남궁효가 슬그머니 나서며 사촌 누이를 말렸다.

“누님, 너무 그러시면 표가 부담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허허.”

“흐음. 그렇겠군. 나는 그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니 너는 개의치 말아라.”

“아닙니다, 누님. 제가 얼마를 벌어왔을 것 같습니까?”

의외로 남궁표의 당당한 태도에 남궁설희와 남궁효가 서로를 번갈아 보았다.

남궁설희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주 당당하게 말하는 걸 보니 아예 공치고 돌아온 건 아닌 모양이구나.”

“하하. 맞춰 보십시오, 누님.”

“으음. 오천 냥 이상이더냐?”

“하하하하! 누님! 저 남궁푭니다. 남궁세가 남궁표! 오천 냥이라니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그리 수완이 없어 보입니까?”

“커험, 험!”

남궁효가 불편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자, 남궁표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아, 효 형님을 의식해서 한 말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때와 지금은 본 가의 위상이 꽤 다르더라고요.”

“그래도 무림맹의 견제가 남았을 텐데.”

“그건 그랬습니다. 정말 그 생각만 하면 열불이 터져서…….”

남궁표가 씨근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저는 맹주가 그런 줄도 모르고 그저 콩고물만 떨어지길 바라고 있었으니.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할 지경입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지. 어쨌거나 얼마를 벌어왔느냐? 일만 냥이 넘느냐?”

“물론이죠.”

그러자 이번엔 남궁효가 조금 기대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오만…… 냥?”

오만 냥만 되어도 앞으로 한 달은 숨통이 트일 것이다.

남궁효가 손가락을 들어 까딱거렸다.

“더. 더.”

“맙소사, 십, 십만……?”

“훗. 더.”

“오오, 누님!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이젠 살이 떨릴 지경입니다!”

“침착하게. 자네는 금정각주가 아닌가? 고작 십만 냥에 그리 떨어서야 앞으로 어찌 큰돈을 굴리겠나?”

“예, 누님. 후우, 후우.”

심호흡을 하던 남궁효가 다시 남궁표에게 말했다.

“십오 만?”

“거참, 형님은 금정각주면서 그리 담이 작소? 더 쓰시오. 팍팍!”

“오, 신령님이시여! 설, 설마 삼십만 냥이라도 벌어온 것인가?”

“하하하하! 형님, 누님. 놀라지 마십시오. 이 표가 무려 사십만 냥을 벌어왔습니다!”

“헉!”

“대단하구나!”

남궁효와 남궁설희가 동시에 탄성을 내질렀다.

사십만 냥이라니.

하면 인부도 더 보충하고 공사 기간도 조금은 단축할 수 있으리라.

어차피 재료는 모두 구비된 상태이니 인건비만 갖추면 된다.

정말이지 남궁효는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남궁설희가 남궁표의 어깨를 토닥였다.

“장하구나. 정말 장하다. 네가 큰일을 해냈구나!”

“하하. 별말씀을요. 천이가 돌아오면 좀 놀라 주려나요?”

“아암! 놀라다마다! 사십만 냥이 어디 뉘 집 애 이름이더냐? 범인은 평생 구경도 못 해볼 큰돈이다. 아주 훌륭하다.”

남궁효도 옆에서 거들었다.

“누님 말씀대로네. 아무리 본 가의 위상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아직은 맹의 견제까지 받는 입장에서 돈을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을 텐데. 참으로 대단하이.”

“별말씀을요. 천이가 해낸 일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죠.”

“그건 그 아이가 특이한 것이고. 허허. 어쨌거나 이번엔 천이도 기뻐할 걸세.”

“하면 공사는 마무리될 수 있겠습니까?”

“간당간당하지만 인건비는 어찌 될 것 같네. 이후 유지비가 걱정이긴 하나, 그땐 또 방법이 생기지 않겠나?”

“다행입니다.”

남궁표가 세상 뿌듯한 표정으로 가슴을 폈다.

그때 마침 복성이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숨을 토해내는 것과 동시에 소리쳤다.

“마, 마님! 가주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소가주도 함께 돌아왔습니다!”

“오오! 마침 잘됐구나! 어서 가보자!”

남궁설희가 앞장서서 두 사람과 함께 정문으로 달려갔다.

과연 그곳에서는 남궁검과 남궁천이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들어오고 있었다.

“오라버니!”

“형님!”

세 사람이 달려가자, 남궁검이 예의 그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사지를 다녀온 것도 아닌데 뭘 그리 호들갑인가?”

“반가워서 그렇지요.”

“오라버니가 없는 사이 표가 돈도 벌어왔습니다.”

“호오? 표가?”

남궁검이 기특한 시선을 담아 돌아보자, 남궁표가 어깨를 으쓱였다.

‘형님, 속이나 썩이던 제가 아닙니다. 저도 한다면 하는 놈이다, 이겁니다! 훗. 듣고 놀라지나 마십시오.’

남궁검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가주도 돈을 벌어왔다네.”

“오오! 얼맙니까?”

역시나 바로 반응한 사람은 금정각주였다.

남궁검이 잠깐 기억을 더듬다가 중얼거렸다.

“그게 얼마였더라? 사백만 냥이던가?”

“…….”

“…….”

꼬로록…….

침묵 끝에 금정각주 남궁효가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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