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273화 (272/508)

273. 기 싸움

일촉즉발의 상황.

당고륜은 손가락 사이마다 암기를 뽑아 들고 독기를 풀풀 휘날리며 소리쳤다.

“비켜라! 설아, 너 정말 이렇게 나올 것이냐!”

“말씀드렸잖아요. 물러설 것 같으면 나서지도 않았어요.”

“네가 정녕 우리 집안을 말아먹을 작정이구나!”

“그 반대죠. 이미 아버지가 망쳐놓은 것들을 되돌리고자 하는 거예요.”

“당예설!”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없어요! 아버지가 혼내는 소리에 어깨 움츠리며 울던 그 꼬마는 이제 없으니까요!”

당예설이 표독스러운 표정마저 지으며 마주 소리쳤다.

빠드득!

당고륜이 어금니를 갈았다.

그 순간,

쿠구구구궁……!

“……!”

“저……!”

지축이 뒤흔들리면서 벽과 천장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진원지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남궁천이었다.

여전히 시커먼 구체에 둘러싸인 채로 꿈쩍도 하지 않는 남궁천.

하지만 땀은 비 오듯이 흘러내렸고, 이따금 표정이 꿈틀거리다가 눈을 허옇게 까뒤집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시커먼 구체가 요동을 치면서 강맹한 기운을 발산하여 지진을 일으킨다.

구오오오오오!

살이 따가울 정도의 기운이 발산되자, 남궁천의 신형이 허공으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쩌적……!

마침내 연공실 바닥에 금이 가더니 천장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쿠르르릉……!

튼튼하게 생긴 벽에도 균열이 생기면서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연공실 안으로 한 무리의 무인들이 우르르 달려 들어왔다.

장로들이었다.

“가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앞서 남궁검을 마중 나갔던 녹수독인 당우덕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소리쳤다.

그는 사이한 기운을 풀풀 휘날리면서 허공으로 떠오른 남궁천을 보고는 경악했다.

“저, 저게 어찌 된……!”

“장로님! 저 아이를 막아야 합니다. 아니, 죽여야 합니다!”

당고륜이 소리치자 당우덕이 반사적으로 남궁검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남궁검은 검을 앞세운 채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한데 이상한 것은 바로 옆에서 당예설이 나란한 자세로 서 있는 게 아닌가?

“대체 이 무슨……!”

“장로님,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저 아이를 막지 않으면 천마혼에 사로잡힌 괴물이 깨어납니다!”

“천, 천마혼!”

당우덕이 뺨을 부들거리고는 허공으로 떠오른 남궁천을 보았다.

확실히 당장 저 검은 구체가 깨지면서 광기에 사로잡힌 괴물이 튀어나온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그럼 우선 저놈을 제거하고 봅시다!”

당우덕의 말에 다른 장로들도 일제히 암기를 뽑아 들었다.

그러자 남궁검이 사자후를 터뜨렸다.

“누구라도 손가락 하나 까딱했다간 노부가 용서치 않을 터!”

그러잖아도 사이한 기운 때문에 전각이 통째로 흔들리는데, 남궁검의 사자후까지 터지니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었다.

“크읍!”

공력이 심후한 당가의 장로들만 모였음에도 일부 몇 명은 압박을 느낀 것인지 희미한 신음마저 흘렸다.

하나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날 당가의 장로들이 아니었다.

당우덕이 날카롭게 외쳤다.

“남궁검 가주는 어찌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는가! 도움을 구하러 왔으면서 천마혼을 불러 깨우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짓인가!”

그러자 이번엔 당예설이 끼어들며 소리쳤다.

“장로님. 아직 천마혼이 깨어난 게 아닙니다. 기다려 주세요.”

“설아! 너는 도대체 또 왜 그러는 것이냐? 네가 평소에 가주께 불만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이건 지금 선을 넘은 행위……!”

“본 가를 위해섭니다!”

“설아!”

그러자 당고륜이 다시 끼어들며 소리쳤다.

“더 말을 섞을 것도 없습니다! 늦어지기 전에 저 아이를 쳐야 합니다!”

“알겠소, 가주!”

순간 당가의 장로들이 일제히 공력을 극한으로 이끌어냈다.

이에 당예설이 날카롭게 외쳤다.

“적랑단!”

그러자 연공실 밖에서 우렁찬 소리가 일제히 들려왔다.

“단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곧이어 대략 오십 명에 달하는 무인들이 봇물 터지듯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는 게 아닌가?

차차차차차앙!

연공실 안에 수십 명이 모여서 흉흉한 살기를 풀풀 휘날리자 그야말로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공기가 됐다.

당고륜의 눈이 뒤집혔다.

“네가 정녕 아비를 상대로 사투를 벌이겠다는 것이냐!”

“이번엔 아버지가 제 뜻을 받아주세요!”

“당치도 않는 소리!”

“무인은 신념으로 움직인다고 하셨죠. 뭐라 하셔도 이것이 제 신념입니다! 암기를 거두세요!”

“닥쳐라! 더 이상은 네가 딸이어도 봐줄 수가 없다!”

파바바밧!

순간 당고륜의 품에서 암기 수십 자루가 날아갔다.

하지만 당예설은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암기들은 눈속임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늘 기본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신 분이다.

화려하게 몸을 뒤틀어대며 날아오는 암기가 아니라, 가장 정직하고 바르게 날아오는 단 한 자루의 암기가 위험한 법.

파라라라라!

당예설이 소매에서 세침을 쏘아내자 새카만 바늘 떼가 허공을 채운다.

티티티티티티팅!

마치 허공에서 철판에 콩을 볶는 듯한 소리가 울린다.

동시에 당예설을 향해 날아들던 암기들이 사방팔방으로 튕겨 나간다.

그리고 지금!

쒸에에에엑!

공간을 찢어발기듯 한 자루의 암기가 강맹한 속도로 날아든다.

정말이지 빛살과도 같은 속도다.

튕겨 나가는 암기들에 잠깐이라도 넋을 놓았다가는 저 회심의 일격을 놓치고 만다.

“하아아앗!”

당예설이 기합성을 내지르며 그대로 암기를 던졌다.

쉬따아앙!

역시 예상대로다.

언뜻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암기처럼 보였지만, 지척에 다다른 암기가 방향을 틀어 남궁천에게 날아간 것!

미리 경로를 예측한 당예설이 암기를 쳐올리듯 날렸기에 당고륜의 일격이 막혔다.

콰쾅!

서로 다른 방향으로 튕 겨나간 두 자루의 암기가 바닥을 부수며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그것을 신호로 적랑단원 하나가 소리쳤다.

“단주님을 도와라!”

“우와아아앗!”

쉰 명에 달하는 무인들이 일제히 도검을 휘두르며 당가 장로들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하! 이것들이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분이 극에 달한 장로들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촤아아악!

양손이 녹색으로 물들면서 독이 흩뿌려졌다.

동시에 암기들이 마구 날아갔다.

따다다다당!

그래도 무림맹 정예인 적랑단이다. 어지럽게 날아드는 암기를 본능적으로 쳐냈다.

하지만 당가의 장로들 또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고수들.

몇 명의 단원들이 비명과 함께 몸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급소는 당하지 않았지만 부상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난전이 막 펼쳐지기 시작할 때였다.

꽈아아아아앙!

느닷없이 고막이 터져 나갈 정도로 강력한 굉음이 들리더니 천장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닌가?

파파파파팡!

뒤엉켜 싸우던 무인들이 일제히 쌍장을 내지르며 무너지는 지붕을 쳐서 날려 보냈다.

아수라장이 된 순간에도 무인들의 시선은 허공에 편안하게 누워 있는 남궁천에게 향했다.

검은 구체는 깨져 버린 것인지 대신 시커먼 기운이 구름처럼 남궁천을 떠받치고 있었다.

사람이 허공에 뜬 채로 누운 이 기현상에 모두 싸우던 상황마저 잊은 채 입을 딱 벌렸다.

“뭐가 어찌 된 건지…….”

“마기인가……?”

몇 명의 무인들 입에서 신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예설도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남궁천을 올려다보았다.

다음 순간!

슈우우우우우욱!

구름처럼 깔려 있던 시커먼 기운이 피처럼 붉게 변하더니 남궁천의 전신으로 흡수되듯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닌가?

모든 기운을 흡수해 버린 남궁천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쿠당탕……!

“천아!”

남궁검이 얼른 몸을 돌리는 순간, 당고륜이 벼락같이 외치며 암기를 던졌다.

“비키시오!”

쒸에에에엑!

당고륜이 날린 암기 한 자루가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갔다.

당예설이 이번에도 거의 동시에 암기를 날렸다.

그녀는 계속 아버지만 예의주시하고 있었기에 이 순간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쒸에에엑!

두 자루의 암기가 이번에도 허공에서 거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꽈아아앙!

하지만 다음 순간 당예설은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한 자루가 아니야?”

놀랍게도 당고륜이 던진 암기는 두 자루였다.

두 번째 날린 암기가 당예설의 자리에서 볼 때 사각지대에 숨어 있었던 것.

“노부가 목석으로 보이시는가!”

남궁검이 일갈을 터뜨리며 검을 휘둘렀다.

뚜까아아앙!

청명한 금속성과 함께 강맹한 기운을 품은 암기가 다시 튕겨 나갔다. 그것과 동시에 남궁검의 신형도 뒤로 한참이나 미끄러졌다.

츠츠츠츠츳!

그런데…….

“아!”

남궁검과 당예설이 동시에 경악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암기가 세 자루다.

마지막 가장 작은 암기가 앞선 두 자루의 암기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것!

당예설이 소매로 손을 가져가면서도 직감했다.

‘안 돼, 늦었어!’

생각하는 사이에 벌써 가장 작은 암기가 쓰러진 남궁천의 요혈을 향해 날아들었다.

쒸에에에엑!

“안 돼!”

당예설이 소리치는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남궁천에게서 검붉은 기운이 폭사하는 것이 아닌가?

슈콰아아아앙!

놀랍게도 한쪽 연공실 벽이 터져 나갔다.

그리고 흩어지는 안개처럼 서서히 옅어지는 기운.

이윽고 어느새 몸을 일으키고 앉은 남궁천의 모습이 드러났다.

“천아! 괜찮으냐?”

남궁검의 외침에 남궁천이 정신을 차린 것인지 눈동자의 초점이 맞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너진 천장과 벽, 갈라진 바닥, 그리고 빽빽하게 모인 수십 명의 사람.

“여기…… 왜 이렇게 된 거예요?”

그걸 네가 할 소리냐!

당우덕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말을 삼키고는 당고륜을 돌아보았다.

“가주. 어찌 된 거요?”

“끄음. 모르…… 겠습니다. 다만…….”

당고륜의 눈빛이 일순 매서워졌다.

“아직 기회가 남았습니다!”

파바바밧!

말을 뱉는 것과 동시에 당고륜이 다시 한번 회심의 암기술을 발사했다.

쒸쒸쒸에에엑!

세 자루의 암기가 다시 한번 남궁천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궁천이 태연히 손을 뻗더니, 마치 잠자리라도 잡듯이 사뿐히 낚아채는 게 아닌가?

파바밧!

굉장히 빠른 손놀림이었지만, 그 움직임이 지극히 부드러워서 매우 쉬운 동작처럼 착각될 정도였다.

“……!”

당고륜이 놀란 눈을 부릅뜨자, 남궁천이 암기 세 자루를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에이, 이런 거 막 던지고 그러시면 안 되죠. 다치잖아요. 어휴, 날카로운 것 좀 봐. 찔리면 뒈지게 아프겠네.”

뒈지라고 만든 거니까!

당고륜이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키고는 표정을 굳히는데, 남궁천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완전히 일어선 남궁천은 어딘지 또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도 미묘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막상 남궁천이 똑바로 서자 당고륜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분명…….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생각을 떠올린 것인지 당우덕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신음처럼 목소리를 흘렸다.

“가주……?”

“허어…….”

당고륜이 허탈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남궁천이 천마혼에 당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새삼 그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그런 당고륜에게 남궁천이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입매를 씨익 치켜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가주님이 지극 정성으로 만들어주신 마신단 덕분에 오늘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어휴,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아찔하네요. 가주님이 만약 본 가를 돕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셨다면 정말 곤란했을 텐데. 이렇게 마지막까지 배신하지 않고 도와주셔서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이 새끼…… 다 알면서…….

당고륜이 입을 꽉 다물고 남궁천을 노려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