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272화 (271/508)

272. 기 싸움

짜르르르릉!

장창과 검이 부딪치면서 천둥처럼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남궁천은 그대로 몸을 회전하면서 검을 휘둘러 갔다.

따앙!

다시 한번 검신과 장창이 부딪치자 불꽃이 터진다.

파바바밧!

따다다다앙!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공방전.

쉬에에엑!

마침내 남궁천이 내지른 검이 천마의 심장을 노렸다.

하지만 천마는 미리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이 몸을 옆으로 비틀며 가볍게 피해냈다.

피츗!

앞섶을 길게 찢어내며 지나친 검신!

쒜에에엑!

이번엔 천마가 휘두른 장창이 남궁천의 목을 노렸다.

파바밧!

반사적으로 물러나며 몸을 눕히자 창날이 턱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면서 지나간다.

만약 남궁천에게 수염이 있었더라면 깔끔하게 잘려 나갔으리라.

정말이지 한 끗 차이의 승부다.

만약 제삼자가 이 싸움을 본다면 기가 막히게 운이 좋다고 여기리라.

하나 조금 더 싸움을 지켜본다면 간발의 차이가 결코 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공방은 계속해서 한 끗 차.

어느 한순간 삐끗하면 목숨이 날아간다.

쒸에에엑!

뚜까앙!

청명한 금속성에 이어 천마가 휘청거린다.

남궁천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천마의 틈으로 파고들었다.

타다닷!

전광석화와 같은 몸놀림으로 날아간 남궁천이 이윽고 검을 곧게 내찔러 천마의 가슴을 꿰뚫었다.

퍼억!

“커억!”

천마가 피를 토해내며 비명을 터뜨렸다. 가슴을 내찌른 검신은 등을 뚫고 튀어나왔다.

천마가 손을 들어 검신을 콱 틀어쥐었다.

“클클클. 과연 훌륭해. 아주 마음에 들어.”

“패자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남궁천이 무심히 중얼거리자, 천마가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패자? 누가 패자라고 하더냐? 크하하하!”

그 순간 천마의 존재가 시뻘건 핏덩이로 변하더니 일순간 뭉개지듯 녹아내리는 것이 아닌가?

촤아아아아!

한 바가지의 피가 되어 흘러내린 천마는 온데간데없어졌다.

대신 이미 쓰러져 목숨을 잃은 줄 알았던 주면의 시신들이 관절을 기이하게 꺾으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보면 볼수록 탐나는 녀석이다.”

“너는 나의 염원과도 같은 존재.”

“네가 나를 만난 것은 운명이다.”

“운명을 받아들여라.”

놀랍게도 살아 움직이는 시체들이 저마다 천마의 목소리로 말을 뱉는 게 아닌가?

삐걱거리며 움직이던 시체들은 어느새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점점 변하더니 이내 외형까지 바뀌기 시작했다.

자박자박.

짧은 다리를 옮겨서 다가오는 아이는 진천랑의 어린 시절 모습이었다.

아직은 앳된 느낌이 남아 있지만 눈빛만큼은 매서운 아이.

아마 남궁천이 팽 가주를 처음 죽였을 때쯤이리라.

그 곁에는 청년 진천랑이 있었고, 또 그 옆에는 언젠가 천라지망에 빠져 피투성이가 되어 겨우 살아남았을 때의 모습이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진천랑이 나타나서 남궁천을 에워쌌다.

자신의 과거를 시대별로 마주하는 느낌이란 정말이지 기묘했다.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칠 수밖에.

하나 그것이야말로 천마가 원하는 것.

남궁천이 심호흡을 한 차례 하고는 싸늘한 눈길로 수많은 진천랑을 둘러보았다.

“가지가지 하는구나.”

“아들. 너의 죽음은 예정된 운명이었다.”

수많은 진천랑 중 하나가 불쑥 말을 꺼냈다.

외모로 모아서는 아마도 남궁선과 헤어질 때쯤의 진천랑이리라.

남궁선이 곁을 떠나고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던 시기가 있었다.

유독 눈 밑으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데다 삶의 의미를 잃은 것만 같은 저 표정.

저렇게 무기력함에 장악당했던 시기에도 살육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더 남궁선을 보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결국 다시 보지 못하고 그녀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지만.

아, 안 된다.

상념에 빠지면 심기가 흐트러지게 된다.

이 또한 천마가 저리 지저분하게 나오는 이유다.

남궁천이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진천랑을 보면서 싸늘하게 읊조렸다.

“천마도 별것 없군. 이렇게 지저분한 짓을 하다니. 그렇게 자신이 없나?”

“크하하하!”

“흐흐흐흐!”

“후후후후!”

수많은 진천랑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나이가 제법 지긋한 진천랑이 말했다.

“이 지저분한 세상에서 깨끗한 걸 찾다니. 아직도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했구나.”

“어울리지 않는 훈계질은 때려치우고 다 덤벼. 죄다 죽여줄 테니. 나도 한번 보고 싶네. 수많은 나를 죽이고 나면 어떤 내가 남아 있을지.”

“그럼 어디 한 번 놀아보자꾸나!”

파바바밧!

수많은 진천랑이 동시에 하늘을 덮을 듯 날아올랐다.

저마다 도검창을 휘두르며 벌떼처럼 날아든다.

남궁천의 입매가 히죽 치켜 올라갔다.

오히려 잘 됐다.

이렇게 마음 놓고 살육을 즐기던 때가 언제던가?

이곳이 자신의 내면세계든, 천마의 세계든 상관없다.

마음껏 죽이고 도륙해도 무관한 곳이 아니던가?

언젠가 대살성은 만들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 명을 죽인 자가 또 한 명을 죽이고, 다시 또 한 명을 죽이고.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나면 눈빛이 변하게 되고 생명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이윽고 혈향만 맡아도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살육의 본능이 깨어나는 것이다.

남궁천은 그 말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때론 자신이 정말 대살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으니까.

하나 그렇게 진짜 맹목적인 살육을 벌인다면 세상에 지는 것이 아니던가?

해서 제 목숨이 위험하지 않는 한 살육은 삼갔다.

하지만 이곳은?

뭐든 허용되는 세계.

오히려 천마에게 고마워할 판이다.

대살성이 아닌데도 대살성이 되었는데, 대살성 짓을 못 하는 자신을 풀어준 셈이니까.

이게 뭔 소리야? 도대체.

아무튼!

즐길 시간이다!

파바바밧!

샤샤샤샥!

남궁천이 종횡무진 진천랑 사이를 내달린다.

폭죽이 터지듯 형형색색의 빛줄기가 남궁천을 향해 쏟아져 들어온다.

색안의 단계에 들어선 남궁천이 초견파공안으로 바라보는 광경이다.

이렇게 오색찬란한 빛줄기 속에서 광무를 추었던 게 언제였던가?

아마 죽기 전이 마지막이었지?

햇수로 따진다면 그리 오래전도 아닌데, 전생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아주 오래된 기억 같다.

파파파팟!

츄츄츄츄아악!

검신이 살아서 움직인다. 남궁천은 그저 검신에 몸을 내맡길 뿐.

의지는 검에 빼앗긴 상태다.

무아지경 속에서 흐르는 검은 언제나 깔끔하다.

일검에 빛줄기 하나가 스러진다. 다시 일검을 휘두르면 혈화가 피어나며 목숨 하나가 스러진다.

그런데 이 사라지는 목숨 하나가 묘한 쾌감을 안겨준다. 동시에 아련한 슬픔도 준다.

그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진천랑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증오했던가? 아니면 인정하고 받아들였던가?’

무아지경 속에서 검을 휘두르다 보니 어느 순간 다시 나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온다.

한 가지 일에 미치다 보면 자신을 잊게 되고, 자신을 잊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을 되찾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면서 도를 터득하는 나란 남자.

만약 이곳이 내면세계라면 이 많은 진천랑을 죽였을 때 자살하게 되는 걸까?

하여튼 생각을 복잡하게 만드는 이 천마라는 새끼, 영 정이 안 간다.

그렇게 수많은 진천랑을 베어가던 남궁천이 바닥에 검을 푹 박아 넣고는 검신을 축으로 삼아 회전하며 발길질을 퍼부었다.

퍼퍼퍼퍼퍼퍽!

상대의 공력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며 내지른 발길질이었기에 하나같이 급소로 날아갔다.

“크아악!”

“으아악!”

천마치고는 꼴사납게 비명이나 지르다니.

체통머리가 없구나.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달려드는 진천랑의 목을 가차 없이 베어냈다.

슈컥!

섬뜩한 파육음에 이어 진천랑의 머리가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그 와중에도 목이 잘린 진천랑 즉, 천마는 히죽 웃고 있었다.

툭, 데굴데굴……!

“흐흐흐!”

잘려 나간 머리가 웃는다.

“내 머리통이 잘린 채로 웃는 모습이 영 보기 싫은데.”

콰직!

남궁천이 발을 들어 올리고는 무심히 머리통을 짓밟았다.

머리가 무참히 터져 나가며 피와 뇌수가 흘렀다.

짝짝짝!

어느새 또 나타난 것인지, 시체 더미 위에 앉은 진천랑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남궁천이 눈살을 여미고는 불사의 진천랑을 바라보았다.

“재미있냐?”

“몹시.”

“미안하게도 그 재미는 여기까지.”

시큰둥하게 말을 뱉은 남궁천이 일순 빛살처럼 날아갔다.

쒸이이이익!

혈풍을 가르며 날아간 남궁천이 그대로 날아오르며 진천랑의 상반신을 덮쳐갔다.

퍼억!

콰다아앙!

진천랑의 모습을 한 천마는 여전히 약 올리듯 입매를 비틀고는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뒈져라!”

남궁천이 일갈을 터뜨리는 것과 동시에 검신을 거꾸로 쥐고는 그대로 내리꽂았다.

아니, 내리꽂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진천랑의 얼굴이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것 같더니 어느새 남궁천의 얼굴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그 시기의 남궁천이었다.

유약하고 힘없는 모습.

“아버지…….”

“너, 이 새끼……!”

목소리를 흘려내던 남궁천이 흠칫거리고는 검신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어느새 남궁천은 전생의 진천랑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 이 지경이 되어서도 저를 죽이려고 하시나요?”

남궁천의 검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신의 얼굴을 대할 때보다 몇 배의 정신적 충격이 전해졌다.

살아서 움직이며 말을 하는 아들을 아비로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아들 남궁천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 때문에 그토록 힘든 인생을 살았는데, 어째서 아버지는 지금 저를 죽이려고 하나요!”

“아들아.”

진천랑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흘리자, 남궁천이 울음에 찬 표정으로 대꾸한다.

“변명을 하실 건가요?”

“아니.”

“……?”

“천마, 이 새끼야. 내가 네 아비가 되었으니 말 잘 들어라.”

“……?”

“네 할아버지.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셨지.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를 완전히 죽여야 한다고.”

“무슨 말씀을……?”

“너도 온전한 천마혼은 아니겠지. 기껏해야 마신단의 힘을 빌려 존재하는 잔상 같은 존재가 아니더냐? 나를 상대하려면 진짜가 나타나도 될까 말까라고. 이래 봬도 한때 천하대살성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버지이이이익!”

순간 절규하듯 외치는 남궁천의 외형이 다시 뭉그러지더니 이번에는 맹주의 간악한 표정이 되었다.

“킬킬킬. 아들도 통하지 않는다? 역시 대살성답구먼. 이젠 아주 천하대살성이라는 것을 인정하는구나.”

“천마 새끼야. 원래 다시 태어나는 것은 나를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되거든. 우리 아버지가 그 말씀을 하셨을 때는 비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죽었더니, 정말 다시 태어나게 되더라. 그것이 내 아들의 염원인지 뭔지는 몰라도 말이다.”

“뭔 소리를 하는 것이냐? 대살성아.”

“닥치고 마저 들어. 지금 이 세계는 결국 나의 내면이겠지. 그렇다면 역시 네놈은 날 죽이지 못해. 나를 가둬서 서서히 미친놈으로 만들겠지만, 네놈 역시 형체가 없는 이상 절대로 죽지 않을 터. 그렇다면…… 나로서는 우리 아버지 말을 한 번 더 믿어봐야 하지 않겠느냐? 나를 죽일 수 있는 건 결국 나라는 것을!”

“이 멍청한 녀석! 대체 무슨 말을 하는……!”

맹주가 앙칼지게 소리쳤지만, 남궁천은 벼락같이 검을 내리찍었다.

푸우욱!

맹주의 눈이 커졌다.

곧장 내리친 검신이 남궁천의 심장을 뚫고 등 뒤로 튀어나온 게 아닌가?

스스로 가슴을 찌른 남궁천이 입가에 피를 흘리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천마야. 네가 졌어, 병신아.”

쿠우웅!

육중한 소리와 함께 남궁천이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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