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264화 (263/508)

264. 도궁비견(圖窮匕見)

숨결조차 함부로 내쉴 수 없다.

영단을 제조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

지난 며칠간 공들인 결과가 이제 막 나올 참이었다.

꿀꺽……!

옆에서 지켜보는 당고륜이 마른침을 삼키고는 주먹을 콱 말아 쥐었다. 마찬가지로 그 곁에서 두 눈에 힘을 주며 바라보던 당우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제 마지막 단계…….”

“쉿!”

당고륜이 엄중한 얼굴로 주의를 주었다.

옆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신경 쓰일 만도 하건만 가느다란 쇠 집게로 영단을 집어 든 천독노는 눈알 한 번 굴리지 않았다.

모든 정신을 오로지 집어 든 영단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만약 이번에 실패하면 마신단은 실패나 다름없다.

남은 재료 중 일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쇠 집게가 집어 든 영단이 손바닥만 한 접시 위로 천천히 이동한다.

마침내 접시 중앙에 멈춘 영단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퐁.

붉은 액체 위로 영단이 둥실 떠올랐다.

슈우우우……!

마치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영단이 붉은 액체를 순식간에 빨아들여 간다.

애초에 갈색 빛에 가까웠던 영단은 이제 검붉은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마지막 물기까지 완전히 빨아들인 영단이 제자리에서 한참이나 뱅그르르 돌았다.

이렇게 보니 마치 영단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만 같다.

마침내 영단이 움직임을 멈추자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부릅뜬 눈만 끔뻑였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자는 당고륜이었다.

“끝났소……?”

천독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끝났네.”

“후우우.”

당고륜이 그제야 참았던 숨을 잔뜩 토해냈다.

드디어 천마신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세상에 사천당가에서 천마신단을 만드는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으랴?

어찌 보면 이것으로 사천당가는 또 하나의 역사를 쓴 셈.

당고륜이 고무된 감정을 추스르고는 얼른 당우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서 목함을 가져오너라!”

“예, 아버지!”

당우기가 재빨리 달려가 특별 제작한 목함을 가져왔다. 목함뿐만 아니라 안쪽에 곱게 깔린 융단까지 특별히 영단 보관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당고륜이 조심스럽게 마신단을 집어 들어 목함으로 옮기고는 덮개를 닫았다.

놀랍게도 약재실을 가득 메우고 있던 약향이 그것만으로도 많이 사라졌다.

당고륜이 포권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간 정말 고생 많으셨소. 천독노 선배가 아니었으면 본 가로서는 애를 먹었을 겁니다.”

사실 애를 먹는 정도가 아니라, 제조 자체가 불가능했으리라.

천독노가 피식 조소를 짓고는 손을 저었다.

“인사치레는 접어두고. 약조나 잘 지키시게. 설마하니 대 사천당가가 이 늙은이를 놀려 먹진 않겠지?”

“하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사천당가는 신의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클클. 나도 독인이지만, 독을 다루는 놈들치고 겉과 속이 한결같은 인간이 잘 없어서 말일세.”

“하면 선배께서도 다른 뜻을 품고 계십니까?”

“무슨 소리! 같은 독인끼리는 뒤통수를 치지 않아!”

“마찬가집니다.”

당고륜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천독노 역시 희미하게 웃었다.

허공에서 얽혀드는 두 사람의 시선에는 비슷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내가 널 믿을까 보냐?’

‘영감, 입에 침이나 바르시오.’

어쨌거나 일단의 목표가 완성되었으니 한고비는 넘긴 셈.

천독노가 늘어지도록 기지개를 켰다.

“으읏차! 이젠 난 숙소로 돌아가서 떠날 채비를 하겠네.”

“벌써 떠나시려고요? 좀 더 쉬시지요?”

“됐네. 여기 머물러 봐야 무슨 좋은 꼴을 보겠나? 낄낄. 나하고 어울리지 않는 곳일세. 그나저나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나?”

“뭡니까?”

“대체 그 마신단은 얻다 쓰려고 그러나?”

“흐음.”

당고륜이 침음을 흘리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정녕 궁금하신 겁니까?”

“쯧, 아서라. 이 바닥에서 호기심은 명줄 값이지. 마신단으로 뭘 하든 내 알 바 아니지. 그저 쌍두오독이나 확실히 내놓길 바라네.”

“숙소에서 쉬고 계시면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천독노가 당고륜의 배웅을 받으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당고륜이 이독당 출입구까지 배웅하고 들어가자, 이번에는 당가의 무인들이 과도한 친절을 베풀며 천독노를 안내했다.

‘허! 이것들이 날 우습게 여기는군.’

평소에는 별채와 이독당을 드나들 때 관심도 없던 것들이 갑자기 물고기 떼처럼 모여들어 과한 친절을 베푼다?

이것이 감시가 아니면 뭐겠나?

노골적인 견제에 기분이 상한 천독노가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빈정거렸다.

“당가가 너무 넓어서 길이라도 잃을까 걱정되는 건가?”

“오랫동안 고생하신 만큼 숙소까지 편히 모시려는 것일 뿐입니다.”

“클클클. 당가 무인들이 이렇게 예의 바를 줄은 또 몰랐군. 차라리 날 업고 가지 그러나?”

“…….”

당황한 무인을 거들떠도 보지 않은 천독노가 그렇게 숙소를 향해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 * *

그 시각 이독당 안으로 들어선 당고륜은 당우기를 만나 신신당부하고 있었다.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한다.”

“걱정 마시라니까요.”

“맹주님의 명이다. 네가 실패하면 본 가는 맹과 아주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

“알고 있습니다. 누님이 패전만 하지 않았어도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텐데 말이죠.”

“너는 이 지경이 되어서도 네 누이를 깎아내리기 급급하냐?”

당고륜이 한숨을 내쉬자, 당우기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저 사실을 말씀드렸을 뿐이에요. 만약 누님이 승전 소식만 가지고 돌아왔어도 본 가가 이렇게 궁지에 몰렸겠어요?”

“됐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앞으로의 일이 네 손에 달렸다는 것을 명심해라.”

“물론이죠. 저만 믿으세요. 제가 본 가의 위상을 확실히 드높이겠습니다!”

당우기가 당차게 대답했지만, 당고륜은 내심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직접 마신단을 들고 맹주를 찾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나 자신은 이곳에 남아 천독노를 사로잡아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고 있었다.

일의 경중으로 따지자면 마신단을 전하는 일이 더 중요하지만, 난이도는 천독노를 사로잡는 게 훨씬 어렵다.

게다가 남궁천을 처리하는 일까지 겸한다면 역시 자신이 가장에 남아야만 했다.

당고륜이 마음을 굳히고는 당우기에게 목함을 내밀었다.

조금 전 마신단을 넣었던 그 목함이었다.

“자, 여기 있다. 맹주께 잘 전해드려라.”

“예, 아버지. 소자, 임무 마치고 금의환향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건 이리 내놓아라.”

“예, 여기 있습니다.”

당우기가 또 다른 목함을 내밀었다.

당고륜이 내민 목함과 똑같이 생겼는데, 덮개를 열어보니 영단의 색상까지 완전히 흡사했다.

나란히 두고 보면 어떤 게 마신단인지 헷갈릴 정도로 닮아 있었다.

당고륜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구분하기 어렵겠군.’

글로 본 완성된 마신단의 모양을 최대한 비슷하게 흉내 낸 것이었다.

하나 마신단과는 전혀 다른 효력을 가진 단환.

복용하는 순간 일각 이내에 모든 내력을 녹여 버리는 무서운 독단이다.

당우기의 입가에 야비한 미소가 걸렸다.

“크크크. 남궁천이 이걸 복용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네요.”

“그런 건 내게 맡기고 너는 맡은 일이나 확실히 해라.”

“알았으니까 잔소리 좀 그만하세요, 아버지.”

“이만 가보아라. 다른 곳은 들르지 말고 곧장 맹주께…….”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당고륜의 말을 자르며 대꾸한 당우기가 몸을 돌리고는 이독당의 가장 안쪽으로 걸어갔다. 수납장 한편에 구멍이 파여 있었는데, 그곳에 손가락을 넣고 공력을 주입하니, 벽 전체가 스르릉 소리를 내며 회전했다.

바로 직계 가주만 알고 있다는 비상통로였다.

물론, 이걸로 끝이 아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방이 나타나고 거기에서 다시 또 숨겨진 기관 장치를 작동시켜야 비로소 비상통로가 나타나게 된다.

이중 삼중으로 보안이 유지되기 때문에 직계가 아닌 이상 알 수가 없는 곳.

그럼에도 오래전, 당가에 구금된 무림공적이 이곳을 이용해 탈출한 적이 있어서 더욱 철저하게 보완해두었다.

당고륜은 당우기가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마음을 다잡으며 돌아섰다.

‘그래, 녀석이 제 누이에 비해 다소 부족할 뿐. 그리 못난 녀석은 아니니 믿어보자.’

걸음을 옮기는 당고륜의 표정은 이제 야차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젠 늙은 도둑을 잡을 차례인가?”

그의 전신에서 은은한 독기가 휘날렸다.

* * *

“드르르렁…… 쿠울……! 드르르렁…… 쿠울……!”

창문마다 닫혀서 공기가 드나들 틈도 없을 것 같은 실내에서 천독노가 코를 골며 단잠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끼익……!

아주 희미한 소리와 함께 창문이 비스듬히 열리면서 노을빛이 스며들었다.

그럼에도 천독노는 미동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드르르렁…… 쿠울……!”

잠시 후 시커먼 그림자가 열린 창틈으로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그는 주변을 재빨리 훑어보고는 혼곤한 잠에 빠져 있는 천독노를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잠시 후 그가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자, 다섯 명의 무인들이 연이어 숙소 안으로 들어섰다.

슬금슬금.

마치 거미가 움직이듯 천천히 이동한 무인들이 검집째로 천독노의 몸을 툭 건드렸다.

하지만 천독노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몇 번을 더 찌르고 나서야 무인들이 서로를 보며 눈짓했다.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얕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완전히 곯아떨어졌군.”

“취면무연독(醉眠無煙毒)에 당했으니 그럴 만하죠.”

취면무연독이란 무색무취의 수면독이었는데, 한 번 중독되면 사흘간은 깨어날 수 없다고 알려진 것이었다.

“주제에 독인이라고 사천당가를 우습게 여기더니 꼴좋군.”

“뇌옥으로 옮기죠?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네요.”

“이래서 사람이 방심을 해선 안 되는 거다. 사파 제일의 독인이라고? 사파가 다 죽었나 보다.”

“낄낄낄.”

당가의 무인들이 이죽거리며 천독노에게 다가갔다.

무인 둘이 천독노의 상체와 하체를 막 들어 올리려고 할 때였다.

세상모르고 잠든 줄 알았던 천독노가 돌연 눈을 부릅뜨는 게 아닌가?

“그래, 이래서 사람이 방심을 해선 안 되는 거지. 안 그러냐? 애송이들아?”

“억!”

깜짝 놀란 무인 둘이 얼른 천독노를 놓고 물러나다가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을 느끼며 풀썩 쓰러졌다.

“이런 젠장!”

다른 네 명의 무인들이 저마다 품에서 암기를 꺼내 손가락에 끼워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전신에서 힘이 쭉 빠지면서 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제길……! 이게 어떻게 된……?”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시야에서 흐물거리는 천독노가 입매를 비틀며 말했다.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네놈들이 좆된 거지. 누가 그러더군. 사천당가의 식객이면 피독주 정도는 입에 물고 있는 법이라고. 킬킬킬.”

네 명의 무인들이 비실비실 쓰러지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우릴…… 제압한다고…… 당가를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쉿. 그만 자라. 병신들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천독노가 뒷짐을 지고는 숙소 문을 박차고 나왔다.

다음 순간, 그가 눈살을 구기고는 중얼거렸다.

“으음. 좀 많긴 하네. 염병.”

어느새 포위한 것인지 수십 명의 당가 무인들이 천독노가 머물던 별채를 부채꼴 모양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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