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당가의 손님
“응애애. 응애응애. 으애앵.”
관도를 따라 부지런히 달리는 마차 안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기야, 착하지? 우쭈쭈.”
어설프게 아기를 안아 든 남궁천이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어르고 달랬지만 소용이 없었다.
잠깐 울음을 그치는가 싶다가도 곧 작은 주먹을 꽉 말아 쥐고는 목청껏 울어젖혔다.
“응애애애! 응애응애!”
덕분에 남궁천은 진땀을 빼야 했다. 지켜보던 남궁검이 혀를 찼다.
“그러게 왜 아기를 깨웠느냐?”
아니, 영감도 동의했잖아!
사실 처음에는 아기가 너무 순하게 잠만 자서 문제였다.
어색한 침묵을 깨워줄 고마운 존재가 쿨쿨 잠만 자고 있으니 분위기 전환에 전혀 도움이 안 된 탓이다.
그래서 한번 깨워본 건데…… 이렇게 고막이 찢어지도록 울어 젖힐 줄이야.
“옳지, 옳지. 착하지. 까꿍! 오로로 까꿍!”
남궁천이 온갖 애를 다 쓰며 아기를 달랬지만 울음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남궁검이 다시 혀를 끌끌 찼다.
“그리 아이를 달래지 못해서야.”
“뭐, 제가 애를 키워본 적이 있어야 알죠.”
남궁천이 부루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 새끼도 직접 키워보지 못했는데.’
우는 아기를 보고 있자니, 문득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이 사무친다.
남궁검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고로 아이를 무조건 오냐오냐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남궁검이 남궁천을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이리 내보아라.”
남궁천이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남궁검에게 조심스레 건네주었다.
아기를 안아 든 남궁검이 세상 온화한 눈길로 내려다본다.
‘오오, 눈빛부터 다르군. 저 얼음장 같은 영감이 저런 눈빛을 할 줄이야. 과연 연륜이라는 건가?’
남궁검이 남궁천을 힐끗 보더니 곧 아기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이야, 많이 힘든 것이냐?”
“가주님. 아직 젖도 못 뗀 아기가 대답을 하겠습니까?”
“쯧쯧. 굳이 말을 해야 아는 게 아니다. 때론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법이다. 너는 이 세상의 어미들이 아기에게 말을 거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아…….”
“때론 백 마디 말보다 검을 맞대어야만 알 수 있듯이,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할 수 있는 법.”
어…… 뭔가 비유가 이상하다고, 영감.
남궁천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남궁검이 심각한 표정으로 우는 아기를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기는 지금 배가 고픈 것이로구나.”
“오, 일리가 있네요! 그러고 보니 어젯밤부터 굶었을 테니까요.”
“많이 힘들 테지. 하나 삶이란 원래 힘든 법.”
남궁검이 착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더니 아기를 향해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아이야, 그만 울음을 그치거라. 세상은 험난하단다. 조만간 마을에 도착하면 네게 젖동냥이라도 해서 먹일 테니 잠시만 참아라.”
남궁검이 시종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하니 아기가 놀랍게도 울음을 그칠…… 리가 없었다.
“으애애애앵! 응애응애애애!”
어쩐지 더욱 큰 소리로 울어대는 아기.
남궁검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나직이 읊조렸다.
“그만 울음을 그치라고 하였다.”
“응애애애! 응애응애!”
“정녕 내 말이 말 같지 않으냐?”
“으애애애애앵!”
“좋은 말 할 때…… 그치거라. 아이야.”
남궁검의 눈빛이 어느새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남궁천이 왠지 불안한 눈빛으로 남궁검을 응시했다.
‘왠지…… 말려야 할 것 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어댔고, 급기야 남궁검이 오른 손을 슬쩍 들어 올렸다.
“오냐, 너도 고집이 있다는 거로군. 하면 이 할아비도…….”
순간 남궁천이 기겁을 하며 얼른 아기를 뺏어 들었다.
“아니,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아기를 죽이시려고요?”
“이리 내놓아라. 그 아이는 아직 세상의 험난함을 모른다.”
“모르는 게 당연하죠. 일단 제가 달래볼게요.”
“자고로 아이는 오냐오냐 키워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벌써부터 어른의 말을 거역하고 있지 않으냐? 내가 알아듣게 타일러야겠다.”
‘퍽이나 알아듣겠습니다!’
남궁천이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말귀도 못 알아듣는 아기예요. 저도 설마 이런 식으로 키우신 겁니까?”
“너는 내가……!”
남궁검이 말을 꺼내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외손자를 한 번이라도 안아본 적이 있긴 하던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째서 그리 모질게 굴었는지 모르겠다.
대살성의 자식이라서?
어미의 목숨을 앗아간 녀석이라고 여겨서?
모르겠다.
세월이 흐르니 원인 모를 감정만이 남았고, 기억은 지워져 버렸다. 씁쓸한 표정을 짓는 남궁검의 귀에 남궁천의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조금 울어도 되잖아요, 할아버지.”
“으음? 뭐라고 했느냐?”
“조금 울어도 된다고요. 아직 세상을 모르니까요. 나중엔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날이 올 텐데. 지금은 좀 울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남궁천이 창밖을 물끄러미 보며 중얼거렸다.
어딘지 우수에 찬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남궁검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구나. 한데 그 말을 하고 나서 날 뭐라고 불렀느냐?”
“뭐가요? 기억이 안 나는데요?”
“내가 뭘 들었는데.”
“생각이 안 난다니까요.”
남궁천의 대답에 추임새라도 넣듯이 아기의 울음이 더욱 커졌다.
‘차라리 이게 낫네.’
그때였다.
갑자기 남궁천과 남궁검의 눈매가 일순 서늘해졌다.
남궁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놈들이 많이 늦었네요.”
“그러게 말이다. 이제 사천 땅에 들어선 것 같은데.”
다음 순간 남궁검이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찰나,
쒜에엑!
푸푹!
화살 한 대가 마차를 뚫고 간발의 차이로 남궁검의 머리를 스친 뒤에 남궁천 얼굴 옆에 박혔다.
바로 곁에 틀어박혀서 부르르 떠는 화살을 보면서 남궁천이 헛웃음을 지었다.
“와아, 지금 혼자 살겠다고 피하신 거예요?”
“내 너를 믿고 있었다.”
“아니, 믿긴 무슨……!”
그때였다.
“까르르륵!”
자지러지게 울던 아기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게 아닌가?
마차 벽에 박힌 채 부르르 떠는 화살의 모습이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굴러가는 낙엽에도 웃을 나이라지만, 이 긴급한 상황에서 손발을 놀려대며 저리 웃다니.
남궁검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 될성부른 떡잎이로다.”
그 순간 마차가 덜컹거리더니 기우뚱거리며 크게 흔들렸다. 그 바람에 아기의 몸이 붕 떠오르는 걸 남궁천이 잽싸게 낚아채며 안아 들었다.
“까르르륵! 까르르!”
아기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어댔다. 그와는 반대로 밖에서는 두려움에 찬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 가주님……!”
“알고 있다. 저들은 우리를 노리는 것이니, 걱정 말고 잠시 피신하도록.”
“예, 알겠습니다요.”
마부가 어디론가 달려간 것인지 더 이상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숲을 관통하는 관도 복판에 우뚝 멈춘 마차.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아기의 웃음소리만 들려온다.
침묵이 길었던 것일까?
실컷 웃은 아기는 잠시 눈을 말똥말똥 뜨고서 옹알이를 하더니 이내 콧잔등을 씰룩이며 울어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흐응. 흑…… 으앵.”
그 울음소리가 신호라도 된 듯 천장에서 시퍼런 장검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곧장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파밧!
일순간 손을 뻗어 검지와 중지로 검신을 잡은 남궁천.
간발의 차이로 멈춘 검봉이 아기의 코끝을 스치며 흔들렸다.
조금만 깊었어도 아기의 짧은 인생은 여기서 마감했으리라.
뚜깡!
남궁천이 강령신공을 운기하면서 검신을 부러뜨리자, 아기가 또 좋다고 웃어댔다.
“까르르르륵!”
남궁검이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아기가 웃으니 좋구나.”
다음 순간,
푸푸푸푸푹!
천장에서 수십 개의 도검이 튀어나왔지만, 남궁검이 쌍장을 위로 뻗으며 튕겨냈다.
퍼퍼퍼어엉!
천장이 통째로 뜯겨 날아가면서 급습하던 살수들이 비명과 함께 떨어져 나갔다.
“크아악!”
“아아악!”
곧이어 마차 바닥에서도 검신이 솟구쳐 올라왔다.
푸푸푸푹!
남궁천이 얼른 아기를 안아 들고는 바닥을 차는 것과 동시에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마치 돌개바람처럼 회전하며 날아올랐다가 바닥에 부드럽게 착지하니, 아기가 숨넘어갈 듯 웃어댔다.
“까르르륵. 까륵까륵……!”
하아, 이 새끼 즐기는 것 같은데?
남궁천이 헛웃음을 짓는 사이, 사방에서 도검이 날아들었다.
“뒈져엇!”
“하앗!”
아기를 안은 채로 얼른 몸을 눕힌 남궁천이 그대로 발을 뻗으며 도검을 걷어찼다.
차차차차창!
꽃이 만개하듯 허공에서 교차한 도검이 활짝 열리며 튕겨 나간다.
아기를 안아 든 남궁천이 그대로 무한보를 펼치면서 적의 품으로 쾌속하게 날아갔다.
푸욱!
벽라검이 살수의 심장을 뚫자 혈화가 피어난다. 그와 동시에 아기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살검 일격에 피분수가 터지고 아기는 까르르 웃어대고.
‘뭐, 이것도 나쁘진 않네.’
이런 기묘한 조화는 신선한 경험이랄까?
욕설과 기합성, 그리고 피비린내와 신음만 난무하는 현장에서 천진한 아기의 웃음소리라.
그렇게 남궁천과 아기는 살겁을 즐기는 한 쌍이 되어 화려하게 검무를 추었다.
한데 이 묘한 광경이 살수들에게는 묘한 공포심으로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아기의 웃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살수 하나가 반드시 죽어나가질 않는가?
푹!
“까르륵!”
푸푹!
“꺄항, 까르륵!”
남궁천이 종횡무진 활약하며 살검을 펼치는데, 마침 살수라는 직업이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덩치의 거구가 대부를 휘둘러 왔다.
“이여어업!”
막아내기가 여의치 않은 남궁천이 얼른 남궁검에게 아기를 던졌다.
“할아버지! 받으세요!”
“오냐!”
남궁검이 얼른 몸을 날리고는 허공에서 아기를 받아냈다. 그와 동시에 몸을 빠르게 회전하면서 사방으로 검을 뿌렸다.
촤촤촤촤촤촤악!
“꺄하하항, 까르르륵!”
아기의 웃음소리가 자지러지게 들려오는 가운데 살수들의 비명이 뒤섞였다.
“크아아악!”
“으아악!”
츠츠츳!
바닥에 착지한 남궁검이 한 손으로는 아기를 안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검을 앞세웠다.
마침 대부 사내를 튕겨낸 남궁천도 훌쩍 몸을 물려서 남궁검에게 다가와 등을 맞댔다.
“후우. 그 녀석, 우리보다 더 즐기는 것 같죠?”
“아무렴 어떠냐? 즐거우면 된 거다.”
“뭐, 그렇긴 하죠.”
남궁천이 검을 고쳐 잡고는 씨익 입매를 비틀었다.
남궁검이 서늘한 눈길로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사상자들이 주변에 한가득 널브러져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적의 머릿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수풀을 헤집으며 살수들이 계속 충원되고 있었다.
남궁천이 표정을 굳히고는 말했다.
“이것들이 아주 작정을 한 모양이네요.”
“약이 바짝 올랐을 테지. 게다가 우리가 사천 땅으로 들어섰으니 조바심도 났을 테고.”
“아기는 좀 어때요?”
“이 녀석이야 뭐 신났…… 응? 으음…….”
남궁검이 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와 동시에 주변으로 은밀하면서도 확실하게 퍼져 나가는 향기.
“이런 씨벌, 이게 무슨 냄새야?”
마침 살수 몇 명이 똥내를 맡고 후다닥 물러났다.
남궁천도 코를 막고 슬쩍 멀어진다.
남궁검이 남궁천을 돌아보았다.
“너마저…….”
“죄송합니다.”
“뒷수습은 네가 해야 한다.”
“일, 일단 그 문제는 저놈들부터 처리하고 결정하시죠.”
남궁천의 눈길이 누렇게 변색되어 가는 포대로 향했다.
‘새끼, 많이도 쌌네. 먹은 것도 없으면서.’
남궁검이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고는 포위한 살수들을 훑었다.
“이곳이 사천 땅이라는 것을 모르진 않을 텐데. 뒷감당을 어이 하려고.”
그러자 살수 중 한 명이 비소를 지었다.
“영감, 사천 땅이 뭐가 어떻다는 거야? 살수가 지역 가리며 설치는 것 봤어?”
남궁검과 살수의 시선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얽히는 그 순간,
“클클클. 그 말은 그냥 넘기기 어렵겠군. 사천 땅을 우습게 보면 안 되지.”
숲을 가로지르는 관도 끝에서 노인 한 명이 자박자박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거리가 꽤 먼 곳임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목소리는 바로 곁에서 들리는 것처럼 가까운 느낌이었다.
‘저 영감은……?’
남궁천의 생각 끝에 남궁검이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가에서 마중을 나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