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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공검제-246화 (245/508)

246. 이건 아니잖아!

그날 이후 남궁천은 연공실에서 두문불출하며 수련에만 집중했다.

매일같이 체력 훈련을 하고, 공력을 운기하여 혈맥을 단단하게 다졌다.

어찌나 몰입했는지 일과가 끝나면 땀에 흠뻑 젖어서 정신없이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마신단의 기운은 거칠고 강맹할 것이 분명했기에 미리 몸을 만들어두겠다는 의도였다.

그릇이 좋아야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지 않겠나?

특히 강령신공을 바탕으로 운기조식에 집중했다.

진주언가에서 강령신공의 운공법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에 그 묘리는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한데 여기에 무엇이든 포용할 수 있는 창벽공의 묘리가 더해지니 강령신공도 남궁천의 의도대로 그 성질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확실히 창벽공은 신통하단 말이지.’

처음 서고에서 창벽공을 발견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까지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뜻이 어렵고 모호해서 한 번 익혀보고 싶다는 호기심에 더 가까웠다.

몸에 좋은 약이 쓰듯이 고강한 무공일수록 깨닫기 어려운 법이 아니던가?

한데 창벽공은 그 오의가 너무나 단순하여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였다.

원래 세상 진리가 단순하지 않던가?

하나 그 단순함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결국 창벽공을 완전히 깨우치고 난 남궁천은 먼 산을 보며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았던가?

“결국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어쨌거나 창벽공은 어지간한 기운의 공력을 담아낼 수 있는 특징이 있었다.

그 포용력이 그야말로 제왕의 기운을 풍긴다고나 할까? 게다가 초견파공안을 익힌 남궁천으로서는 창벽공이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어쨌거나 오늘도 남궁천은 강령신공을 운기하면서 체내의 혈맥을 단단하게 만든 다음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슈우우우우우.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일렁이다가 이내 남궁천의 전신으로 흡수되듯 사라졌다.

날씨가 제법 선선한데도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게다가 탁기가 섞이면서 땀이 배출되니 그 색이 구정물처럼 탁했다.

‘냄새도 고약하네. 얼른 씻고 자야겠어.’

자리를 털고 일어난 남궁천이 연공실 문을 열고 막 나서려고 할 때였다.

마침 연공실로 들어오려던 남궁검과 마주치면서 멈칫거렸다.

“어? 가주님 오셨습니까?”

“그래. 여태껏 운공을 하고 있었던 것이냐?”

“예, 아무래도 몸을 만들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옳은 말이다. 그런데…….”

남궁검이 말을 하다 말고 코를 씰룩인다.

남궁천이야 본인의 몸에서 흐르는 땀내가 그저 그렇게 느껴지겠지만, 탁기가 스며든 땀 냄새는 그야말로 지독했다.

어지간해서는 표정의 변화가 없는 남궁검조차 숨이라도 참는 것인지 안면 근육을 꿈틀거리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왜 그러시지? 따라 오라는 건가?’

남궁천이 아무 생각 없이 걸음을 내딛자, 남궁검이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척!

“응? 왜 그러세요?”

“거기 있거라. 지금 너와 나는 이 정도가 적당한 거리구나.”

갑자기 이 영감이 왜 이래?

남궁천이 멈춰 서서 눈을 멀뚱멀뚱 뜨자 남궁검이 슬쩍 고개를 돌리더니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는 말했다.

“성과는 좀 있느냐?”

“예,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강령신공을 바탕으로 운기하면서 혈맥을 단단하게 다지는 중이에요.”

“하나 창벽공으로 품은 강령신공은 또 그 결이 다를 테지.”

“그렇죠. 최대한 마공에 적응할 수 있는 몸이 되도록 다지는 중입니다.”

한마디로 텃밭의 성질을 바꾸는 중이다. 곧 재배 작물이 바뀔 테니 텃밭의 환경도 그에 맞게 가꾸는 것이다.

문제는 기존의 작물도 잘 키우면서 텃밭의 일부만을 다른 환경으로 가꾸는 작업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자칫하면 이도 저도 아닌 땅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래도 초견파공안을 가진 남궁천이라면 남들보다 훨씬 수월한 조건이다.

그러한 사실을 이젠 남궁검도 잘 알고 있었다.

“초견파공안이 네게 큰 재능이지만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영감, 잔소리는.

새삼스러운 말에 남궁천이 내심 웃어넘겼다.

생각해 보면 남궁검은 잔소리와 거리가 먼 사람이지 않던가?

그저 묵묵히 지켜나 보고 이따금씩 충고를 하거나 경고를 하는 정도였다.

한데 요즘 들어서는 부쩍 잔소리처럼 느껴지는 말을 자주 한다.

그만큼 애정이 생겼다는 뜻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었다는 뜻인가?’

실없는 생각을 하며 실소를 머금자, 남궁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묻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영감이 눈치는 빨라가지고는.

남궁천이 얼른 시치미를 떼자 남궁검도 더는 추궁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너도 이미 그러고 있는 것 같지만, 초견파공안은 당분간 밖으로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겠습니다. 그런데 마신단은 완성이 됐나요?”

이 시각에 자신을 일부러 찾아온 걸 보면 어느 정도 결과가 나왔다는 뜻이리라.

남궁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잖아도 그 일로 네게 할 말이 있어서 왔다.”

“말씀 듣겠습니다.”

“본 가의 수완으로는 마신단을 제조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

“일의 특성상 비밀 유지가 관건이라 최대한 본 가에서 해결하려고 했다만, 아무래도 결과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 현재는 제조를 중단한 상태인가요?”

“그렇다. 배분과 배율이 자세히 나와 있지만 그것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부분도 있을 테지.”

남궁천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남궁세가는 세력이 약해지면서 의약당 같은 곳을 일찌감치 정리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수준 높은 의원이 가장에 머물고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너도 알겠지만 마신단은 일반인에게 영단이라기보단 독단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제조하기가 훨씬 까다롭다는구나.”

“그렇군요. 그럼 외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겠군요.”

“생각해 둔 곳이라도 있느냐?”

남궁검의 질문에 남궁천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사실 만날 수만 있다면 천독노에게 부탁하는 게 가장 편할 것이다.

하나 문제는 천독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

워낙 여기저기 쏘다니는 데다 천독노 역시 무림공적이다.

남궁세가 소가주가 무림공적을 사사로이 만나러 다닌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좋을 게 없을 터.

그렇다면 역시 한 곳뿐이다.

바로 사천당가.

독에 관해서만큼은 명실상부 천하제일을 논하는 곳.

한참의 침묵이 흐른 후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는 사천당가…….”

“제 생각에는 사천당가…….”

두 사람이 서로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남궁검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지. 사천당가라면 확실히 제조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비밀 유지가 가능할 것인가입니다.”

“그래도 모용세가에 비하면 사천당가가 무림맹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지.”

“최근 새로운 독을 제조하느라 여념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남궁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중원 각지에서 온갖 종류의 독과 약초를 긁어모은다고 하는군. 아마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약초를 구한다면 지금 당가로 가야 할 것이야.”

“그건 아니죠. 우리에게 마신단의 재료가 있으니.”

남궁천이 농담처럼 말하자, 남궁검의 싸늘한 얼굴에도 언뜻 희미한 웃음이 스쳤다.

“그도 그렇구나.”

“어쨌거나 그런 상황이라면 더욱 우리 제안이 솔깃할 수는 있겠군요.”

하지만 사천당가는 역시 무림맹 소속의 세가다.

과연 그들이 남궁세가와 손을 잡고 무림맹을 등질 수 있을까?

어쨌든 직접 가서 부딪쳐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

중요한 건 어떻게든 마신단을 만들어 복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극약이 될지 극독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판을 뒤집을 만한 중요한 열쇠가 되리라.

결심을 굳힌 남궁천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사천당가를 말이냐?”

“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솥은 올려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언제 갈 생각이냐?”

“쇠뿔도 단김에 빼지요. 내일 떠나겠습니다.”

어지간하면 남궁천의 의견을 들어주던 남궁검도 이번만큼은 쉬이 대답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뒷짐을 지고선 한참이나 허공을 올려다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당 가주는 감당하기 쉬운 자가 아니다. 시원시원한 성격처럼 보이지만, 독기 또한 대단한 자다. 독과 암기를 다루는 가문의 특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

“물론이죠.”

남궁천은 내심 웃었다.

사천당가야말로 전생에 가장 많이 손을 섞어봤던 자들 중 하나가 아니던가?

정말이지 도망자로서는 가장 마주치기 싫은 무인이 바로 사천당가였다.

차라리 가까이 와서 칼부림하는 것들은 잡아 죽이면 그만이다.

한데 이 사천당가 놈들은 전부 멀찍이 떨어져서 암기를 날리거나, 몰래 음식에 독을 타거나, 심지어 공기 중에도 독을 흩날려 보낸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네.’

그런 자들이니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지난번 칠대세가회에서 나쁘지 않은 인상을 받았지만, 그 또한 당 가주의 처세술의 일환일 것이다.

그는 맹주와 모용세가가 친밀하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떠오르는 남궁세가를 의식한 것이다.

‘확실히 만만한 자는 아니지.’

* * *

이른 아침에 일어난 남궁천은 복성을 시켜 황산윤가로 기별을 보냈다.

마을 어귀 언덕에서 만나 윤종승과 함께 사천당가로 떠날 생각이었다.

원래 혼자 갈 생각이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정 중에 짐꾼도 있으면 좋을 것 같고, 이런저런 잡심부름을 시키기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윤 공자님이 며칠 전에 먼저 맹으로 떠나셨답니다. 견습생으로 복귀하려고요.”

“뭐?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응? 공자님한테 말해야 하는 거였어요?”

“아, 뭐. 그건 아니지.”

“헤헤. 확실히 공자님 많이 변하셨네요. 요즘 너무 보기 좋습니다요.”

“시답잖은 소리.”

그나저나 윤종승이 먼저 맹으로 돌아가다니.

‘이놈이 그새 또 잔머리를 돌리네. 저번에도 그러더니…….’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나중에 만나면 알아듣게끔 잘 타일러 줘야지.

그렇다고 창응대를 또 끌고 갈 수는 없었다. 지난번 습격으로 타격이 커서 재충원을 하고 정비를 끝내긴 했지만, 아직 조직력이 완전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천당가를 방문하면서 창응대를 우르르 끌고 들어가면 좋아할 사람이 없으리라.

결국 창응대는 이곳에 남아서 다시 조직력을 갖추는 데 힘쓰기로 했다.

결국 마을 어귀까지 따라오겠다는 복성을 겨우 달래고서는 남궁천이 세가를 나섰다.

“복성아. 마침 가주님이 안 계시니 네가 대신 전해라.”

“예, 공자님.”

“복성아. 지난번에는 네가 남궁세가를 구했다.”

사뭇 진지한 말투에 복성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공자님…….”

“그럼 간다.”

“예! 공자님, 몸 살피십시오!”

복성은 남궁천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는 장원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마을 어귀에 다다랐는데 저만치 남궁검이 뒷짐을 지고 선 모습이 보였다.

남궁천이 피식 웃었다.

‘저 솔직하지 못한 영감이 또 배웅까지 나왔군.’

“왔느냐?”

남궁검이 뭔가를 쑥 내밀었다. 꽤나 묵직한 것이 각종 생필품을 비롯하여 노잣돈까지 들어 있는 듯했다.

남궁천이 손사래를 쳤다.

“에이, 괜찮습니다.”

“괜찮긴. 들어라.”

“에헤이, 넣어두세요. 넣어두세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남궁검이 사뭇 진지하게 되묻자 그제야 남궁천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얼떨결에 꾸러미를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할 것 없다.”

“……?”

“이번엔 나도 함께 갈 것이다.”

“…….”

“…….”

“예에에엑?”

남궁천이 화들짝 놀라서 소리치자, 남궁검이 눈살을 슬쩍 구긴다.

“문제 있느냐?”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럼 올라라. 저기 마차에 짐 싣도록 하고.”

“아…….”

맙소사! 이 딱딱한 영감과 단둘이 동행한다고?

저 보기만 해도 갑갑한 마차에 마주 앉아서?

사천에 도착하면 돌이 되어 있는 것 아냐?

벌써부터 어색함에 숨이 막힐 듯하다.

아, 이건 정말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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