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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공검제-241화 (240/508)

241. 늦었어, 이 새끼야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퍽! 촤악!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윤첨산이 흑의인들을 향해 쉼 없이 검을 휘둘렀다.

핏방울이 튀어 오르고, 비명이 솟구친다. 하나 적의 머릿수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쩌자고 여길 와서는! 내가 미쳐도 제대로 미친 게지!”

촤아아악!

마침 흑의인 하나를 일도양단한 그가 비틀거리며 벽에 등을 기댔다.

“헉, 헉, 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더니.

도대체 뭐에 홀려서 그 복성이란 시종 놈의 말을 들은 것일까?

평소 같았으면 남궁가가 망하든 말든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남궁가가 망한 후에 황산윤가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지 벼르고 있었을 터.

물론, 복성은 남궁가의 몰락 이후엔 황산윤가마저 위험해질 거라고 했지만, 콧방귀도 뀌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하필 그놈이 아들 종승을 들먹이는 바람에 마음이 움직여 버렸다.

남궁천을 떠올리는 순간, 어쩌면 정말로 아들이 호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 이후로는 본능에 따랐다.

지금 떠오르는 남궁가와 척을 지는 것보다는 손을 잡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한데 직접 와 보니…….

“이건 뭐, 그냥 무덤을 찾아서 들어온 꼴이군! 내 인생 최대의 실수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 다시 흑의인 하나가 빛살처럼 날아들었다.

“뒈져랏!”

도대체 오늘 몇 번이나 이런 소리를 듣는지 모르겠다. ‘뒈져라’는 소리는 흑의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어쩌면 저 ‘뒈져라’는 소리에 세뇌가 걸려서 정말 뒈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나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지.

그래도 칼 들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는 발악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나?

“흐아아앗!”

쩌까앙!

윤첨산이 마음먹고 휘두른 검신이 마침내 손바닥을 찢으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아……!’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 윤첨산은 얼른 등을 뒤로 젖혀 벽의 반동을 이용해 그대로 맨손을 뻗어갔다.

“받아라앗!”

기합성을 대신한 일갈을 터뜨리며 윤첨산이 그대로 일장을 내질렀다.

뻐어어억!

뼈마디에 가해지는 충격을 느끼면서 윤첨산은 자신의 혁련장이 제대로 적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슈우우우욱, 콰다앙!

포탄처럼 날아간 흑의인이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는 벽에 처박혀 그대로 절명했다.

“훅, 훅, 훅……!”

가쁜 숨을 내쉰 윤첨산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마지막 일격으로 나쁘지 않군.’

무인으로 살다 보면 한 번씩 죽음을 가정해 보게 된다.

늘 검을 옆구리에 차고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기 위해 연마하는 게 바로 무인 아니던가?

그 상해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상해가 깊으면 깊을수록 죽음도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한 번씩 죽는 순간을 떠올려보곤 한다.

그럴 때 자신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죽을 것인가?

대개의 무인들은 이왕 죽을 바엔 절대고수와 한번 시원하게 겨루다가 죽길 바랄 것이다.

하나 윤첨산은…….

‘쯧, 그래도 안방에서 늙어 죽길 바랐건만.’

뭐, 그건 물 건너갔을지라도 지금 흑의인에게 먹인 최후의 일격은 나쁘지 않았다.

무인으로서 긍지를 가질 만한 일격이었다.

그럼 됐다.

문득 막내아들 종승이 보고 싶어진다.

‘아들아, 네가 언젠간 이 아비의 복수를 해다오.’

첫째 아들은 무림맹에서 잘 적응하고 있을 테니 걱정할 게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는데 마침 또 한 명의 흑의인이 날아들었다.

이젠 무기도 없고 손바닥도 욱신거려서 대항할 힘이 없다.

윤첨산이 희미하게 웃었다.

‘남궁천. 내가 이리 너희 가문을 위해 희생했으니, 반드시 그 은혜를 갚아야 할 것이다.’

마침내 지척까지 날아든 흑의인이 소리친다.

“뒈져랏!”

저럴 줄 알았다.

아마 지금 자신이 죽는 건 저 반복된 세뇌와 같은 말 때문이리라.

그렇게 흑의인의 칼이 심장을 파고드는데…….

뻐어어억!

느닷없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흑의인의 목이 픽 꺾이면서 튕겨 날아가는 게 아닌가?

쿠당탕탕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뒹구는 흑의인이 이내 걸레 조각처럼 축 널브러졌다.

윤첨산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갑자기 나타난 구원자를 보았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구원자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 윤종승이었다.

“종, 종승아!”

“예, 아버지! 제가 왔습니다!”

“종승아! 정녕 네가 여길……!”

“남궁천을 따라왔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아버지가 여기 계셨군요!”

“안 그러면 네가 호구…….”

“예?”

“아, 아니. 같은 황산의 가문인데 어찌 이웃의 어려움을 모른 척할 수 있겠느냐? 내 위험하다는 건 진즉 알고 있었지만 강호의 도리를 생각해서 도와주러 온 것이다.”

“아버지…….”

“그래, 이 아비의 의협심에 감동했다는 건 알고 있…….”

“제발 죽지 마세요. 그냥 전 아버지 그대로의 모습도 좋으니까요.”

“으응? 그게 무슨…….”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잖아요.”

“커험! 흠! 이 아비의 본심을 네가 그리도 모르…….”

“하지만 아버지는…….”

“시, 시끄럽구나! 너는 어찌 지냈느냐?”

“아……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왔으니까 안심하세요.”

“너희들 몇 명이 왔다고 해서 달라질 상황이 아니다. 너라도 어서 몸을 빼내고 도망쳐라.”

“아, 지금은 아버지 같으시네요. 다행입니다.”

“아니, 그 무슨!”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어요. 저는 남궁천과 함께 싸울 겁니다.”

“아들아, 이 지경이 된 걸 보면서도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이미 남궁가는…….”

그때였다.

남궁천의 목소리가 하늘을 떨쳐 울렸다.

“다들 동작 그만!”

공력이 담긴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칼부림을 하던 무인들이 일제히 주춤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흑의인들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떠올랐고, 남궁세가 무인들의 표정에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가주님이시다!”

“소가주님이 오셨다!”

어느새 남궁천은 남궁세가에서도 꽤나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남궁천은 그런 남궁세가 무인들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뭐, 이것도 나쁘지 않네.’

전생에는 늘 환영받지 못하는 몸이었다.

어딜 가더라도 경계 대상이었고, 칼부림의 대상일 뿐이었다.

한데 이렇게 자신의 등장만으로도 열렬히 환영하는 자들이 있으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심청원 담벼락에 올라선 남궁천이 손에 든 세 개의 머리통을 안마당으로 휙 던졌다.

투두둑, 데구르르.

아무렇게나 굴러간 머리통이 하필이면 혈우대주와 혈영대주 앞에 멈췄다.

그들은 마교 장로와 혈영신마 그리고 흑천마객의 머리를 확인하고는 돌처럼 굳어 버렸다.

“주, 주군이……!”

“어, 어찌 이런……?”

그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돌아보자, 남궁천이 무심한 표정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내가 지금 기분이 매우 나빠. 그래서 저 머리통 세 개를 직접 잘랐는데, 그걸로도 분이 안 풀리네. 맘 같아서는 너희 같은 잡놈들을 다 쓸어버리고 싶지만, 그럼 너희들도 기를 쓰고 덤벼들겠지? 그럼 서로 피해가 커질 테고. 내 말이 맞아? 틀려?”

“…….”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할 말이 뭐냐?”

혈우대주가 으르렁대자 남궁천이 그를 빤히 보다가 저벅저벅 걸어갔다.

“뭐? 어쩌라……!”

짜악!

순간 혈우대주의 뺨이 휙 돌아갔다. 공력이 담긴 손찌검인 데다 강령신단을 복용해서 몸이 강철처럼 단단해진 남궁천이었다.

때문에 혈우대주는 정말이지 눈이 핑 돌 지경이었다.

순간 곁에 있던 혈영대주가 화들짝 놀라며 검을 앞세웠다.

차아앙!

“이 미친 새끼가 뒈지고 싶어서 환장한 거냐!”

“에이, 뒈지고 싶어서 환장한 놈이 세상에 어디 있어? 아니, 있나? 너 같은 놈들인가?”

“뭐라?”

“말했잖아. 난 지금 기분이 엿 같거든. 마음 같아서는 너희 잔챙이들도 다 쓸어버리고 싶은데 대가리 수가 너무 많아. 그래서 본 가도 피해를 입을 것 같단 말이지. 그러니 서로 합리적으로 결정하자고. 살길을 열어줄 테니 뒈지기 싫으면 꺼지란 말이야. 어때?”

“닥쳐라!”

순간 혈영대주가 일갈을 터뜨리더니 남궁천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러왔다.

한데 남궁천은 막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담담하게 서 있는 게 아닌가?

‘미친놈이군! 이 상황에 방심이라니!’

내심 조소를 지은 혈영대주가 그대로 남궁천의 목에 일검을 작렬시켰다.

쩌까아앙!

한데 검신을 타고 전해지는 이 감각과 소리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이래서야 살이 아니라 쇳덩이를 때린 것 같지 않은가?

아닌 게 아니라, 남궁천의 목은 얕은 상처만 났을 뿐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이 무슨……? 도검불침지체?’

하나 그건 말도 안 된다.

아직 약관도 지나지 않은 무림맹 견습생이 도검불침지체라니!

사실 남궁천은 강령신단을 복용한 데다 진주언가에서 본 강령신공까지 응용했기에 이런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남궁천이 혈영대주를 물끄러미 보았다.

“네가 먼저 때렸으니까, 이제 내 차례지?”

“헉……!”

혈영대주가 귀신이라도 본 표정으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스르르릉.

남궁천이 벽라검을 뽑아내자, 조금 전 따귀를 얻어맞은 혈우대주가 이를 빠득 갈고는 나서려고 했다.

하나 남궁천이 먼저 싸늘한 눈길을 던졌다.

“동작 그만. 한 발자국만 움직이면 너도 뒈지는 거야.”

어디 동네 파락호나 내뱉을 것 같은 말투인데도 혈우대주는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순간 남궁천은 그야말로 사신과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저게 과연 견습생이 뿜어낼 기운인가?

그야말로 진득한 죽음의 기운.

명문정파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기운이 남궁천의 전신에서 풀풀 휘날린다.

“끄음…….”

혈우대주가 주춤거리는 사이 혈영대주가 발작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였다.

“이익! 개수작질을 하고선!”

쒸아아악!

혈영대주가 휘두른 검신이 남궁천의 목을 다시 치려는 순간!

콰득!

남궁천이 부지불식간에 검신을 맨손으로 낚아챘다.

‘이 말도 안 되는!’

혈영대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사실 지금의 남궁천은 기운이 넘치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백령단의 기운을 복용했기 때문이다.

남궁천이 손에 힘을 주자 혈영대주의 검신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다가 이내 뚝 부러지는 게 아닌가?

곧이어 남궁천이 부러진 검신을 그대로 혈영대주의 목에 박아 넣었다.

푹!

“커억!”

목을 움켜쥔 혈영대주가 힘없이 무너지자 남궁천이 싸늘한 시선을 모두에게 던졌다.

“어떻게? 다들 한 번 뒈져봐? 그래도 내가 명문정파의 후예답게 기회를 준다잖아?”

“흥! 그래, 뒈져보자!”

다음 순간 흑의인들 사이에서 또 한 명이 번개처럼 날아왔다.

그는 바로 흑천마객의 직속 수하인 흑천대주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

남궁천이 무심한 눈길로 손을 뻗더니 날아드는 칼을 붙들었다.

콰드드득!

“크읏!”

곧이어 남궁천이 그대로 흑천대주의 뺨을 올려붙였다.

짜아악!

“커억!”

“꼭 똥인지 장인지 먹어봐야 알지?”

짜악!

“크윽!”

“잘못했어? 안 했어?”

짜악!

“으윽!”

남궁천의 손찌검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럼에도 주위를 에워싼 흑의인들은 주춤거리기만 할 뿐 섣불리 끼어들질 못했다.

그건 남궁천 특유의 기운 때문이었다.

수십 년 동안 도망만 다닌 자가 본능적으로 익힌 압도적 기운.

한 놈을 집중적으로 패는 동안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그 살벌한 기운.

이럴 때 느끼는 쾌감이란.

‘아, 이러면 진짜 대살성 같은데…….’

남궁천이 얼른 분위기에 휩쓸리는 기분을 떨쳐내려고 할 때, 흑천대주가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자…… 자못…… 해씁니다…….”

“잘못했어?”

“예…….”

남궁천이 잠시 바라보다가 손바닥을 휘둘렀다.

“늦었어, 이 새끼야.”

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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