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 늦었어, 이 새끼야
“소, 소변이라니!”
곰보 노인은 뱃속에서부터 울화가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다.
살다 살다 자신의 바지에 오줌을 싸는 새끼를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나 내공 대결 중이니 섣불리 돌아서서 따지지도 못하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놈의 수작에 놀아나면 안 된다! 참자, 참아!’
하나 마음이 진정되다가도 엉덩이에서부터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이 뜨뜻한 감각을 느끼고 있노라면…….
‘저, 쳐 죽일……!’
불쑥불쑥 격노가 치밀면서 살심이 피어난다. 물론 그때마다 공력이 요동을 치면서 심중이 흔들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치잇, 쿨럭!”
혀를 찬 곰보 노인이 순간 기침을 하자 한 줄기 선혈이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걸 본 남궁천이 인상을 푹 찡그렸다.
“아…… 더러워. 침도 흘리고, 피도 흘리고.”
“네 이놈! 네놈이 싼 오줌은 깨끗하더냐!”
“거참, 생리현상을 가지고 왜 그러세요? 사람이 오줌 안 싸고 살 수 있나? 침이랑 피는 안 흘려도 살 수 있지만.”
“이익……! 그 무슨 궤변을……!”
곰보 노인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남궁천을 노려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남궁천의 멱살을 쥐고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저 약 올리듯 이죽거리는 입매며 빈정대는 눈빛.
“후우우우웁!”
침착해야 한다.
괜히 놈의 술수에 휘말려서 이성을 잃어봐야 좋을 것이 없다.
일단 저도 살고 싶으면 내공 대결에 섣불리 끼어들지는 못할 테고.
‘오냐, 이 대결만 끝나면 네놈의 뼈와 살을 발라주마!’
어금니를 까득 간 곰보 노인이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잠시 도발에 넘어가서 미약하게나마 내상을 입었지만, 이미 이 공력 대결은 곰보 노인에게 한참이나 유리한 상황이었다.
확실히 산전수전을 겪은 노장답게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하자 불길 같은 공력이 뻗어 나가면서 검신을 타고 남궁검에게까지 들이닥쳤다.
“흐읍!”
남궁검이 헛바람을 삼키면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는 검신을 타고 체내까지 스며 드는 공력에 대항하느라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
동시에 서로 맞닿은 검봉이 어긋나지 않도록 온 신경을 집중했다.
보통 공력 대결은 장력으로 승부하지만, 이번에는 서로 내찌른 검이 맞닿으면서 이루어진 경우였다.
만약 어느 한 사람이라도 삐끗하게 되면 검봉이 살을 꿰뚫을 상황.
“끄음……!”
남궁검이 희미한 신음을 흘리면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검파를 쥔 손이 가늘게 떨려왔다.
‘위험하군.’
버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한 남궁검이 곁눈질로 남궁천을 슬쩍 보았다.
그가 최대한 집중을 유지하면서도 말을 흘려냈다.
“잘 들어라. 너는 이제부터 나 대신 본 가를 이끌어…….”
“말씀하지 마세요.”
“으응?”
남궁검이 다시 곁눈질로 돌아보자, 남궁천이 남궁검 뒤로 저벅저벅 다가갔다.
“집중하셔야죠. 대화는 나중에 하고요.”
아니, 지금 유언을 남기려는 건데?
남궁검이 다시 입을 열려다가 흠칫거렸다.
남궁천의 행동이 영 수상쩍었기에.
그가 설마 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뭘 하려는 것이냐? 내공 대결 중인데 자칫 네가 끼어들면 우리 모두…….”
“저만 믿으세요.”
“믿으라니 대체…….”
남궁검이 흠칫거리다가 이내 어이없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그래, 어디 한 번 마음대로 해보아라.”
“……!”
그 광경을 본 곰보 노인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아니, 저것들이 쌍으로 미쳤나?
감히 공력 대결 중에 끼어들겠다고? 그리고 그걸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
체내에 흐르는 공력을 두 눈으로 훤히 들여다보지 않는 한, 내공 대결에 섣불리 끼어드는 것은 자멸이 되고 만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흥! 아예 동귀어진을 각오하겠다는 건가!’
그렇다 해도 참으로 바보 같지 않은가?
자신이야 내상을 좀 입는다고 해도 저 둘은 목숨을 걸어야 할 터다. 가주와 소가주가 자칫 남궁세가의 대를 끊을 수도 있는 짓을 하겠다니?
‘멍청하고 무모하구나. 차라리 잘 됐다. 저놈이 끼어들면 내가 부상을 좀 입을지라도 한꺼번에 둘을 처리할 수도 있겠으니!’
곰보 노인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남궁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 초견파공안을 이용해 공력의 흐름을 살폈다.
공력이 체내에서 혈액이나 물처럼 흐르는 것 같지만, 무인의 경우 이를 조절하기 때문에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특히나 지금처럼 내공 대결을 펼치고 있을 때는 빈틈이라는 것이 무조건 생기게 마련.
남궁천은 그 빈틈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는 독맥의 신주혈(身柱穴)에서 찰나간 내공의 흐름이 끊기는 것을 발견했다.
‘찾았다!’
남궁천이 양손을 쭉 뻗어 남궁검의 신주혈로 공력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절대로 공력이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합류한다!’
스스스슷……!
남궁천이 불어넣은 공력이 자연스럽게 남궁검의 공력과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남궁천은 점점 더 기운을 강하게 불어넣었다.
순간 남궁검이 두 눈을 번쩍 떴다.
메마른 땅에 쏟아지던 단비가 조금씩 거세지더니 폭우가 되는 느낌이랄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곰보 노인의 공력이 거친 화마가 되어서 바싹 말라붙은 논바닥을 휩쓸고 있었다.
그렇게 전신의 요혈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는데 갑자기 등에서부터 흘러 들어온 공력이 폭우를 뿌리는 게 아닌가?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던 곰보 노인의 기운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했다.
당연한 이치였다.
화계의 기운을 수계로 막아냈으니 제아무리 곰보 노인이 막대한 공력을 쏟아부어도 힘을 잃을 수밖에.
‘크읍!’
뜻대로 풀리지 않자 곰보 노인이 두 눈을 부릅뜨고는 더욱 공력을 끌어올렸다.
하나 이미 상극을 이룬 기운이 양만 많아진다고 해서 전세가 역전될 수는 없는 법.
남궁천이 쏟아부은 수계의 기운이 거침없이 뻗어가면서 이윽고 검신을 타고 곰보 노인의 체내까지 흘러갔다.
‘큭! 어, 어찌 이럴 수가!’
남궁천의 기운은 곰보 노인의 기운을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폭포수 같은 공력이 전신의 요혈을 들쑤시니 곰보 노인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크으읍!”
곰보 노인은 치미는 욕지기를 눌러 참으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젠 말 한마디도 아껴야 할 만큼 집중력이 필요한 상황!
곰보 노인이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는 단전에서 뽑아 올린 내공을 다스렸다.
‘이해할 수가 없군! 어째서 이리도 자연스럽고도 치밀하게……!’
그야말로 귀신처럼 파고드는 공력이 아닌가? 마치 남궁천이 모든 공력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다.
물론 남궁천은 실제로 그랬지만, 곰보 노인이 그러한 사실을 알 까닭이 없었다.
마침내 거대한 해일이 된 공력이 곰보 노인의 요혈을 하나씩 장악하더니 단전까지 침투하는 게 아닌가?
급히 모든 공력을 단전으로 불러들여 최후의 방어선을 펼쳤다.
하나 남궁천은 마치 수십만의 군대를 거느린 사령관처럼 공력을 자유롭게 조절하고 있었다.
단전이라는 거성을 무너뜨리지 못하자, 남궁천은 공력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여 전신 요혈로 보내 버렸다.
‘이런……!’
곰보 노인은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남궁천이라는 저 아이는 마치 자신의 몸을 제 것처럼 다루지 않는가?
다급해진 곰보 노인이 단전에 머물던 공력을 전신의 요혈로 다시 뿜어냈다.
상대의 기운이 수계에 속한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얼른 그 상극인 토계(土系)의 기운을 발산했다.
하나 남궁천은 그것마저 귀신처럼 알아채고 목계(木系)의 기운을 지원병으로 보냈다.
정말이지 환장할 노릇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쟁터는 남궁검의 몸속이었는데, 이제는 곰보 노인의 몸속이 전쟁터가 되어 쑥대밭이 되는 중이 아닌가?
요혈을 보호하고자 하면 단전을 공격해 오고, 단전을 지키고자 하면 요혈이 위험해진다.
잘 훈련된 대군이 오합지졸의 산적과 싸우는 느낌이랄까?
‘지독한 놈이로다! 결국 하나를 버려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요혈을 버려야 한다.
치명상을 입게 될 테지만 단전을 폐하게 되면 죽느니만 못할 테니!
결심을 굳힌 곰보 노인이 모든 공력을 다시 단전에 집중했다.
그러자 남궁천이 기다렸다는 듯이 공력을 움직여 곧장 거궐혈(巨闕穴)을 때렸다.
퍼억!
순간 곰보 노인의 명치께가 불룩 튀어나오더니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곰보 노인이 비틀거리며 물러나서는 시커먼 핏덩이를 토해냈다.
“크어억! 쿠웨에에엑!”
이 정도의 부상은 각오하고 있었던지라 곰보 노인은 얼른 물러나며 다시 자세를 고쳐잡았다.
남궁천이 그런 노인을 보며 히죽 웃었다.
“생각보다 잘 버티네요.”
“너, 넌……! 어떻게 공력의 흐름을 훤히 들여다 본 것처럼……!”
말을 꺼내던 곰보 노인이 흠칫거리고는 눈을 부릅떴다.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남궁천! 천하대살성의 피를 이은 자.
천하대살성은 초견파공안이라는 재능을 가졌다고 알려지지 않았던가?
“설마 네놈도……?”
그 재능이 대물림되는 건 아니라고 들었지만, 혹시 그랬다면?
곰보 노인이 흔들리는 눈으로 남궁천을 보았다.
남궁천이 싸늘하게 웃으며 벽라검을 어깨에 척 걸쳤다.
“이거…… 아무래도 뭘 아는 눈치라서 살려서 보내줄 순 없게 됐네.”
“정, 정녕 네놈이 초견파공안을……!”
이쯤 되자 남궁검도 조금 놀란 눈치로 남궁천을 보았다.
그는 그제야 모든 상황을 납득했다.
‘역시 그렇군. 천이가 초견파공안이었구나.’
최근 그런 의심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따금씩 보여주는 남궁천의 행동에서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하나 초견파공안이 그리 흔한 재능도 아니고, 대물림되는 것도 아니다 보니 곧 머릿속에서 지우곤 했다.
한데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남궁검도 곰보 노인과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남궁천이 저벅저벅 걸어가자, 곰보 노인이 그 발걸음에 맞춰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상대가 초견파공안이라는 걸 알게 되니 오히려 더욱 위축된다.
마치 발가벗겨진 기분이랄까?
뭘 어떤 식으로 대응하든 이미 남궁천이 눈치챌 거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곰보 노인이 슬금슬금 물러나니, 남궁천이 눈살을 여미며 물었다.
“설마 달아날 생각은 아니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물건은 챙겨가야지.”
“노옴……! 네놈이 대살성의 피를 이었구나.”
“뭘, 또 새삼스레.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오늘의 실패가 결코 네놈의 성공이 아니다. 오늘부로 네놈은 만인의 공적이 될 것이다!”
“나 그거 되게 듣기 싫어하는 말인데.”
“네놈이 듣기 싫든 아니든 무관하게 너는 그리될 것이다!”
말을 마친 곰보 노인이 일순간 공력을 발바닥으로 내려 보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빠른 움직임이었다.
마침내 용천혈에 공력이 폭발하려는 순간!
‘이런, 니미럴……!’
그의 눈에 아침 공기를 찢으며 날아드는 벽라검이 보였다. 남궁천의 손을 떠난 벽라검은 그대로 곰보 노인의 가슴을 노리고 있었다.
이 일련의 과정이 무척 느리게 보였지만, 곰보 노인은 어떠한 대응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반응은 더욱 느렸기에.
이미 공력을 상당히 소모한 데다 내상까지 입었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
마침내 벽라검이 그대로 심장을 찢으며 등으로 튀어나왔다.
푸욱!
“커억!”
곰보 노인이 두 눈을 부릅뜨고는 바위처럼 굳었다.
털썩!
곰보 노인이 무릎을 꿇자 남궁천이 저벅저벅 다가와서는 벽라검의 검파를 쥐었다.
“그러게 왜 다 늙어서 욕심을 부려? 추하게.”
“끄윽……! 나 하나를 죽인다고 해서…… 남궁가의 운명이 달라질 거라고…….”
“시끄럽고. 바지에 오줌이나 지리는 영감이 그런 말 해봐야 전혀 위협적이지가 않아.”
“크읍……! 그, 그건 네놈이……!”
“다 늙어서 냄새나게 꼴이 이게 뭐야?”
“네놈들은 앞으로…… 더 큰 시련을 겪게 될…….”
“글쎄, 바지에 오줌 지린 영감이 하는 말은 위협적이지가 않다니까.”
“끄으윽! 그건 네놈이 싼……!”
“이봐, 영감. 지금 그게 중요해?”
“……!”
“어차피 진실은 승자의 것이야. 누구라도 본 가를 건드리면 오줌 지리고 나한테 뒈지는 거야. 알겠어?”
“…….”
곰보 노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꿇어앉은 그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생기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