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229화 (228/508)

229. 장계취계(將計就計)

홍안개의 다그침에 언양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본 가 비서에는 웬만한 강시들을 제어할 수 있는 부적 제조법이 적혀 있지요.”

“그렇군! 그래서 그 흑도 놈들이 일부러 완전하지 않은 강시를 언가에 풀어둔 거로군!”

이미 홍안개가 알아서 잘난 듯이 추리를 해나가니 언양걸로서는 별로 보탤 것도 없었다.

그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홍안개의 추리력에 감탄하는 척만 했다.

“역시 홍안개 어르신입니다! 그 짧은 내용만으로도 대략의 사정을 간파하셨군요.”

“별로 어려운 문제도 아니지 않소? 이쯤이야.”

언양걸이 치켜세워주자 홍안개가 짐짓 어깨를 쭉 펴고는 겸양을 떨었다.

그러다가 그는 곧 주변의 상황을 다시 한번 파악하고는 얼른 물었다.

“해서 그 비서는 지켜냈소?”

“본 가의 서고는 철저히 방비했습니다. 덕분에 비서는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

“잘하셨소! 언가는 예로부터 강시술이 뛰어났으니, 그런 비서가 흑도 놈들의 손에 들어갔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오. 아주 잘하셨소! 한데 묘한 일이군.”

“무슨 말씀이신지요?”

“흑도 놈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어째서 강시들만 설친단 말이오?”

언뜻 허를 찌르는 질문일 수도 있었지만, 이 또한 남궁천이 예상한 부분이기도 했다.

때문에 언양걸은 당황하지 않고 미리 준비된 대사를 다시 읊었다.

“말씀드렸다시피 강시를 제어하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저 강시들은 적아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해서 놈들이 본 가에 강시를 풀어두고 비서를 탈취하려고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자 몸만 빠져나간 것이지요.”

“그렇군. 그리됐군.”

홍안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착잡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가 문득 고개를 들고 언양걸을 보았다.

“정말 확실하오? 강시를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만?”

“본 가는 오래전부터 강시술을 버리고 백도로 편입했습니다. 한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다시 강시술을 사용하게 되면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흐음.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군.”

홍안개가 고개를 끄덕인다.

언양걸은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사실 이쯤 되면 홍안개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어서 강시들을 제어하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개방도들도 강시들과 섞여서 싸우는 와중에도 저런 고민을 하고 있다니.

‘확실히 백도 무림은 강시에 대한 편견이 상당하구나.’

이렇게 된 이상 두 번째 단계로 접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두 번째 단계는…….

“우아아아악! 비키세요!”

남궁천이 비명처럼 외치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헉!”

“으헉!”

언양걸과 홍안개가 동시에 소리치며 물러났다.

남궁천 뒤로 무려 일곱 구의 강시들이 줄줄이 따라오는 게 아닌가?

팡! 파파팡!

창백한 피부에 시뻘건 눈을 빛내는 강시들이 살기를 풀풀 휘날리면서 남궁천에게 연신 권장을 퍼붓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어어……? 왜 날 따라와!”

홍안개가 발끈해서 소리치며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홍안개를 따라잡은 남궁천이 그의 어깨를 턱 잡고는 반동을 이용해 돌려세웠다.

“살려주십시오!”

얼떨결에 돌아선 홍안개가 강시와 맞대응하면서 쌍장을 내밀었다.

퍼퍼어엉!

“크윽!”

강시가 튕겨 나가고, 홍안개도 튕겨 나갔다.

홍안개는 강시의 무공 수위가 상당하다는 것을 깨닫고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강시가 측면에서 남궁천을 향해 수도를 휘둘러왔다.

“헉!”

남궁천이 기겁을 하며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꼴사나운 나려타곤의 수법이었지만 당장 살고 볼 일이 아니겠는가?

다만 목표물을 잃은 강시의 수도가 그대로 홍안개에게 향하니 난감한 노릇이었다.

“치잇!”

홍안개가 혀를 차면서 얼른 허리를 젖히고는 금나술을 펼쳐 강시의 손목을 낚아챘다.

꽈드득! 빠각!

강시의 손이 꺾이면서 뼈가 부러지는 것만 같은 소리가 울렸다.

강시의 신체가 워낙 강철처럼 단단했기에 손목을 꺾는 것에만도 상당한 공력이 소모됐다.

하나 강시는 아픔 따위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그대로 반대 주먹을 내지르는 게 아닌가?

“헉!”

헛바람을 삼킨 홍안개가 성큼 물러나며 가까스로 피했다.

그의 코앞까지 다다른 주먹에서 기풍이 훅 불어오면서 머리카락이 세차게 휘날렸다.

한 뼘 정도의 차이.

정말이지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절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놈들의 공격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일곱 구의 강시들이 동시에 남궁천을 매섭게 공격하는데, 그때마다 공교롭게도 홍안개가 싸움에 말려드는 것이 아닌가?

사실 남궁천의 입장에서는 강시처럼 조종하기 쉬운 상대도 없었다.

체내의 내공 흐름만 보면 다음 움직임이 자연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었다면 생각에 따라서 공력의 흐름이 급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강시는 매우 정직한 흐름으로만 공격을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초견파공안을 사용할 수 없는 범인들은 강시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두려움의 대상이겠지만.

어쨌거나 남궁천이 강시의 움직임을 최대한 이용해 홍안개를 계속해서 궁지에 몰아넣자, 사정이 점점 급박하게 돌아갔다.

애초에 홍안개는 강시를 힘으로 제압할 생각이었지만, 고통도 두려움도 모르는 강시들을 꺾는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제길! 이 귀찮은 녀석이 나한테 달려들어서는!’

홍안개는 곁눈질로 옆에서 이리저리 구르며 피하는 남궁천을 힐끔거렸다.

정말이지 난리도 아니었다.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강시를 어떻게든 피하면서 몸을 굴리는데, 신기하게도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다만 그 여파로 자신이 자꾸만 싸움에 휘말리니 짜증이 날 뿐.

보아하니 견습생 같은데 매몰차게 몰아낼 수도 없고, 정말이지 성가셔 죽을 지경이다.

이러다가 자칫하면 자신도 목숨을 잃게 생기지 않았나?

결국 가슴 몇 군데에 상처까지 입은 홍안개가 신경질적으로 버럭 외쳤다.

“언가주! 이놈들을 확실히 제어할 수 있소?”

“예? 아, 예! 비서에 적힌 강시술을 이용한다면 가능할 겁니다. 다만…….”

“다만 뭐요? 빨리!”

따당! 땅!

타구봉과 강시의 팔다리가 마구 부딪치면서 어지러운 소리를 울린다.

언가주가 망설이는 척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본 가가 다시 강시술을 쓰게 될 테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오! 당장 이놈들 때문에 귀 가가 멸문하게 생기지 않았소이까!”

그 와중에도 홍안개는 본인이 죽을 것같이 힘들다는 소리는 절대 하지 않았다.

때마침 남궁천이 홍안개와 등을 툭 부딪치더니 소리쳤다.

“안 됩니다! 가주님! 이놈들은 힘으로 제압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세간에서…… 으악!”

남궁천이 돌연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그 바람에 강시의 주먹이 그대로 홍안개의 등을 강타했다.

꽈앙!

“커읍!”

홍안개가 울컥 피를 토하면서 비틀거렸다.

“헉! 괜찮으십니까? 어르신!”

남궁천이 호들갑을 떨며 달려오자, 홍안개가 신경질적으로 손을 뿌리쳤다.

“됐다! 이 정도로 안 죽는다! 어쨌든 빨리 강시술을 써서라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강시술을 쓰면 사파와 다를 게 뭡니까? 어떻게든 정당한 방식으로 놈들을 제압해야 합니다!”

남궁천이 대놓고 반대하자 홍안개는 눈이 뒤집히기 직전이었다.

‘이 미친놈아! 그럼 네가 다 때려잡아 보든가!’

정말이지 속에서 욕지거리가 한 움큼 올라오는 걸 겨우 참고는 말했다.

“갈! 제 한 몸 지키지도 못해 이리저리 구르는 판국에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냐! 언가주! 정의는 무공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람에 있다 하였소! 강시술을 사용해서 정의를 세우고자 한다면 어찌 그걸 사술이라 폄훼할 수 있겠소? 어서 이놈들을 제압하시오!”

“하, 하지만…….”

“어허! 다 죽어야 정신을 차리겠소? 지금 상황이 안 보이시오?”

이제는 홍안개가 안달복달할 지경이었다.

눈앞에 죽음의 그림자가 닥쳤는데 망설이는 꼴이라니!

마침내 홍안개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강시 한 구를 쌍장으로 멀찍이 쳐내고는 소리쳤다.

“이 사람아! 이 기회에 강시들을 거두고 조종까지 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가 아닌가! 왜 이리 답답하게 구는 게야!”

결국 홍안개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이에 남궁천과 언양걸의 표정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기다렸던 말이 드디어 터져 나온 것이다.

남궁천이 강시 한 구를 힘겹게 막으며 불쑥 소리쳤다.

“안 됩니다! 언 가주님! 강시술을 다시 사용하다니요! 그런 사악해 보이는…….”

“닥쳐라!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아!”

“칫, 그럼 어르신이 책임질 겁니까?”

남궁천이 똑바로 쳐다보며 소리치자, 홍안개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자신이 쓰라는데, 무슨 새파랗게 어린 생도 놈이 더 보수적으로 나오다니.

홍안개가 내공까지 실으며 버럭 소리쳤다.

“오냐! 내가 책임진다! 목숨에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이 무슨 쓸데없는 설전이냐! 언 가주! 어서 쓰시오! 나를 믿고!”

드디어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

언양걸은 내심 쾌재를 부르며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언가는 개방의 홍안개 장로님만 믿고 결단을 내리겠습니다! 먼저 서고로 가서 비서를 확인해서 부적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첨부된 부적이라도 있다면 바로 사용하겠습니다! 그때까지만 버텨주십시오!”

말을 마친 언양걸이 훌쩍 몸을 날려 서고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제야 홍안개가 한시름 놓고는 강시들과 싸움에 전념했다.

확실히 강시들의 수준은 무시할 수 없었다.

무공이 강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감정과 고통을 모르니 더욱 소름 끼치는 존재가 아닌가?

‘이 소름 끼치는 것들을 두고도 그리 꽉 막힌 소리라니! 떼잉!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지!’

그렇게 박빙의 상황이 한동안 이어질 때쯤, 기다리고 기다렸던 언양걸이 나타났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됐으니까 어서!”

“예, 어르신!”

언양걸이 재빨리 부적을 날려 보냈다.

쉭쉭쉭쉭!

허공을 가르며 매섭게 날아간 부적이 차례대로 강시들의 이마에 척척 붙기 시작했다.

과연 부적이 붙자마자 강시들은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 버리더니 움직임을 뚝 멈추는 게 아닌가?

“헉, 헉, 헉……!”

“으아…… 살았다……!”

그제야 장내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과 기쁨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졸지에 강시들과 다투었던 거지들도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들로서는 장거리를 이동한 직후 바로 싸움에 가담했기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언양걸이 홍안개에 다가와 척 포권했다.

“어르신의 용단이 있어 오늘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홍안개 어르신! 어르신의 결정이 우리 모두를 살렸습니다!”

언제 온 것인지 팽적호도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그 곁에서 팽수혁이 과장된 손짓으로 말했다.

“아아! 정말. 참으로. 두렵고. 무서운. 강시들. 이었다.”

손발이 오그라들 것만 같은 연기력에 모두의 표정이 뻣뻣하게 굳어서 팽수혁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정말로 혼찌검이 난 홍안개는 팽수혁의 어설픈 연기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잘 해결됐으니 다행이오.”

홍안개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강시들을 찬찬히 살폈다.

“흥, 흑도 놈들이 강시를 쓰다니! 하나 제 발등을 찍은 꼴이 됐군! 앞으로 이것들이 언가를 지켜주는 호신위가 될 것 같구려.”

“어르신의 용단이 아니었다면 감히 생각조차 못했을 겁니다.”

언양걸이 부러 홍안개에게 공을 돌렸다.

“크흠, 뭘 그렇게까지.”

홍안개도 사람인지라 자꾸 주변에서 치켜세워주니 기분이 절로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옆에 선 남궁천을 보고는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끝까지 강시술을 못 쓰게 했던 녀석.

“네놈은 이름이 뭐냐?”

“남궁천입니다.”

“남궁천? 네놈이 바로 그 강호신룡?”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그 강호신룡이죠.”

“그렇군. 그래서 쓸데없이 자존심만 높았던 거군.”

“에이, 말씀이 좀 심하시네요.”

“시끄럽다! 네놈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해가 발생할 뻔했는지 아느냐?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목숨보다 더 귀한 게 무엇이냐? 신념도 결국 목숨을 잃으면 허상에 지나지 않는 법이다.”

“네네, 명심할게요.”

남궁천이 건성으로 대꾸하자, 홍안개가 다시 발끈하려다가 문득 생각난 게 있다는 듯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네가 알아야 할 소식이 있었군.”

“제가 알아야 할 소식이요? 그게 뭐죠?”

다음 순간, 홍안개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흑도인 한 무리가 황산으로 달려갔다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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