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226화 (225/508)

226. 장계취계(將計就計)

꽈앙!

언양걸의 일권에 응축된 기가 터지면서 벽력탄이 터지는 것만 같은 소리가 울린다.

“크익! 저자를 죽여라!”

“언가주를 죽여엇!”

흑도인들이 이를 갈며 눈에 불을 뿜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언양걸은 아랑곳하지 않고 적들을 향해 돌진했다.

“오냐, 어디 덤벼보아라!”

깡! 타앙! 팅!

놀랍게도 언양걸은 날아드는 도검을 맨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그 바람에 그의 상체는 걸레조각처럼 너덜너덜했다.

그럼에도 도검에 당한 상처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따금씩 내공이 심후한 자가 언양걸의 팔뚝에 깊은 자상을 남기기도 했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언가는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부지런히 언가권을 펼쳤다.

꽈앙! 꽝!

언가권에 얻어맞은 흑도인들은 저마다 옷자락이 터져 나가면서 끈 떨어진 연처럼 날아가 버렸다.

대체로 일격에 내장이 진탕이 되어서는 피를 토하고 죽거나 그대로 의식을 잃기 일쑤였다.

그만큼 언가권은 강했다.

‘과연 강령신공이 향상되면서 언가권을 펼치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다!’

언양걸은 불끈 쥔 두 주먹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이게 모두 남궁천 덕분이었다.

남궁천이 알려준 실마리 덕분에 언양걸은 강령신공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고, 그에 맞춰 언가권도 더 강맹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한 게 아쉬웠다.

조금 더 일찍 그 실마리를 풀었더라면 언양걸은 강령신공을 대성할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만 해도 큰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언양걸이 흑도인 하나의 머리통을 박살 내고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망루에서 내려다본 언가장의 상황은 대혼돈 그 자체였다.

가신들이 모여 수련을 하고 웃고 떠들던 곳에서는 욕설과 비명이 난무했고, 연신 칼부림이 일어나면서 시체가 쌓여가고 있었다.

밥을 먹는 곳도 싸움터였고, 잠을 자는 곳도 싸움터로 변했다.

가장 안온해야 할 저택이 벌집을 들쑤셔놓은 것처럼 난리통이 되어 버렸다.

거기에 부서지고 무너진 전각과 불타고 있는 전각까지.

더구나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아 언가장의 무인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어가고 있어 더욱 안타까웠다.

제아무리 강령신공을 발전시켰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적들이 한꺼번에 밀려들면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한차례 큰 파도를 막아냈다고 생각하면 그다음 더 큰 파도가 밀려오니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었다.

“아아! 언가의 역사가 내 대에서 끊어지는구나.”

언양걸은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자, 언호량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이 극에 달하면 통한다더니 어디선가 문득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아버지!”

처음에는 지쳐서 환청이 들린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언호량의 목소리가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아버지! 남궁천이 남긴 글을 가지고 왔습니다아아!”

‘남궁천’이라는 말에 언양걸이 흠칫거리고는 돌아섰다.

아들이 달려오는데도 남궁천이라는 이름이 더 반가운 게 기이할 노릇이긴 했다.

마침 자신을 향해 몸을 던져오는 흑도인을 언가권으로 쳐서 날려 버린 언양걸이 망루로 올라오는 아들을 보았다.

그 뒤를 견습생들과 팽적호가 따르고 있었다. 견습생들은 처절한 사투를 벌였던 것인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남궁천이 남긴 글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언양걸이 아들을 붙들고 다그쳐 묻자, 팽적호가 나서며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남궁천이 이걸 우리 아들에게 남겼소. 상황이 어려워졌을 때를 대비해서 남긴 것 같았소.”

“어디 봅시다!”

언양걸이 팽적호의 손에 들린 종이를 빼앗다시피 가져가서 읽었다.

사용하시죠, 그거. 저는 찬성입니다. 살고 볼 일 아니겠습니까?

언양걸이 눈썹을 찌푸리고는 흠칫거렸다.

팽적호와 팽수혁은 마른침을 삼키고는 언양걸의 반응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들로서는 언양걸이 이 글의 의미를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언양걸도 영문 모를 표정을 짓는다면 그야말로 낭패였다.

다행히 언양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대신 어두운 표정으로 팽적호를 보았다.

“이걸 정말로 팽수혁에게 준 겁니까?”

“그렇소. 무슨 뜻인지 아시겠소? 대체 여기서 말하는 그게 뭐요?”

“이상하군. 왜 우리 아들에게 주지 않고 네게 준 것이지?”

팽수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녀석이 가끔 덤벙대긴 합니다. 아마 둘 다 덩치가 크고 용맹하니까 잠깐 착각했을지도 모르죠.”

“그게 착각할 만한 일인가?”

“음. 보통은 그렇지 않지만, 그 녀석은 원래 좀 이상한 놈이니까요.”

팽수혁의 대꾸에 팽적호가 다그치듯 물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여기서 말하는 ‘그게’ 뭐냐는 거요! 정말로 그걸 사용하면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거요?”

“흐음.”

어쩐 일인지 언양걸은 침음만 흘린 채 쉽게 대꾸를 하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언호량이 조바심이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아버지!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아시면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분명 반응으로 보아서는 언양걸이 뭔가를 아는 것 같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쉽게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가장이 쑥대밭이 되고 있으니 언호량은 애가 탈 지경이었다.

“아버지! 어서……!”

“진정해라. 이건 쉽게 결정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양걸이 짐짓 날카로운 목소리를 꺼내자 언호량도 더 이상은 재촉하지 못하고 말을 삼켰다.

팽적호가 표정을 굳히고는 물었다.

“언가주! 대체 그게 뭔데 그러오? 뭔지 모르겠으나 언가의 멸문을 막는 것보다 중할 수는 없지 않겠소?”

“끄음. 그건 그렇소만…….”

“언가주! 그렇다면 어서 사용합시다! 이대로면 언가는 물론 본 가도 멸문지화를 면하기 어렵소!”

그러자 언양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면 팽 가주께서도 찬성하시는 거요?”

“그러니까 대체 그게 뭐요? 뭐가 됐든 이미 본 가와 언가는 한배를 탄 상황이오! 언가의 몰락이 곧 팽가의 몰락이고, 언가의 구원이 곧 팽가의 구원이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옆의 우물을 두고 바닷물을 길어올 수는 없는 법 아니겠소? 그게 뭐가 됐든 사용해 봅시다!”

팽적호가 단호하게 말하자 언양걸이 결심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날 따라오시오! 량이는 가서 네 어머니를 데리고 암벽 창고로 오너라!”

“예, 아버지!”

언호량이 떠나고 언양걸이 앞장서자 망루에 있던 이들이 모두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물론 가장을 이동하는 동안에도 적들이 수없이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지만, 언양걸과 팽적호의 무력만으로도 충분히 길을 뚫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암벽 아래까지 다다른 그가 육중한 철문 앞에 멈춰 섰다. 마침 언호량이 어머니 양숙정을 데리고 막 도착했다.

양숙정 역시 일신에 상당한 무예를 지니고 있었기에 치열한 전투를 치르다가 온 상황이었다.

양숙정이 언양걸에게 다가갔다.

“당신, 무사하셨군요!”

“나는 괜찮소. 그보다 부인,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소.”

“알고 있어요. 그나마 팽가 무인들이 있어서 본 가에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양숙정이 팽적호를 의식한 듯 말하자, 팽적호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답례했다.

“옳은 말이오. 하나 이대로면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거요.”

“이제 어쩌죠?”

“이걸 남궁천이 남겼소.”

양숙정이 종이에 적힌 글을 보더니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당신은 정말 그걸 사용할 생각인가요?”

“부인 생각은 어떻소?”

“글쎄요. 자칫하면 지금껏 본 가가 쌓아올린 명성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나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소?”

“그건 그렇지만…….”

“게다가 남궁천이 찬성했소. 그리고 여기 팽 가주도 찬성했소.”

이쯤 되자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여긴 팽적호가 얼른 나서며 물었다.

“이제 말씀해 주시지요! 도대체 그게 뭔지!”

“하긴. 팽 가주께서는 아직 그게 뭔지도 모르고 계시지. 그렇다면 직접 보고 결정하시오. 백문이 불여일견일 테니.”

언양걸이 양 부인과 눈을 마주치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결심을 굳힌 모양이었다.

그대로 돌아선 언양걸이 품에서 현철로 만들어진 열쇠를 자물쇠에 넣어 돌렸다.

그 과정을 본 팽적호가 내심 호기심을 품으며 지켜보았다.

‘도대체 이 낡은 창고에 뭐가 있다는 건가? 엄청난 화력의 벽력탄이라도 들었나?’

만약 그렇다면 묘수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감이 없지 않다.

벽력탄을 사용하면 다수의 적을 섬멸하기엔 좋겠지만, 이미 상대가 가장 깊숙이 침투한 상황이었다.

자칫 언가장이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지 않겠나?

철컥!

마침내 문이 열리자 언양걸이 주변을 힐끔 살피고는 얼른 안으로 들어섰다.

다른 이들도 차례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팽적호는 철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서늘한 기운을 느끼고는 괜히 팔뚝을 쓰다듬었다.

암벽 안을 깎아서 만든 창고였기 때문인지 바깥과 공기가 완전히 달랐다.

그렇게 서늘한 기운을 느끼며 계단을 따라 한참 내려가자 빛이 새어 나왔다.

곧이어 나타난 철문을 다시 열고 들어서니 놀라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헉!”

“으헉!”

팽적호는 물론 함께 온 견습생들과 언호량도 대경실색하면서 물러났다.

놀랍게도 지하 창고에 가득 차 있는 것은 뻣뻣하게 굳은 시신들이었다. 특별한 약품으로 처리한 것인지 코가 매울 정도로 진한 약향을 풍기고 있었다.

“이, 이건……!”

“언가가 예로부터 강시술을 사용했다는 건 잘 알고 있을 거요.”

“하나 강시술은 일찌감치 폐하지 않았소? 그래서 백도 무림에 편승한 거고!”

“그렇소. 하나 강시술은 본 가의 오랜 전통이오. 그리 하루아침에 없애 버릴 수 있는 성질이 아니외다.”

“그, 그런……!”

“물론 우리는 이걸 처음부터 쓸 생각이 없었소. 오늘 같은 날을 대비한 것일 뿐이외다. 어찌 안 것인지 남궁천은 이걸 두고 말하는 것 같소.”

“끄음…….”

팽적호가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침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이 창고에 빽빽하게 들어찬 강시들이 합세한다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으리라.

하나 그랬다간 언가가 다시 사악한 강시술에 손을 댔다는 오명을 들으며 무림맹에서 배척당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인 상황.

언양걸이 돌연 팔짱을 척 끼더니 한 걸음 물러났다.

“나는 팽 가주의 의견에 따르겠소. 팽가는 본 가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백도 무림에 속하지 않았소이까? 그러니 본 가가 강시술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판단한다면 멸문지화를 당할지언정 쓰지 않겠소.”

“여보!”

“아버지!”

순간 양 부인과 언호량이 동시에 소리쳤지만, 언양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팽적호는 난감한 표정이 되어 강시들을 보았다.

‘언가주가 교묘하게 날 끌어들였구나. 이리 되면 언가가 강시들을 풀어도 본 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겠지.’

그야말로 이제는 좋든 싫든, 한배를 탄 셈이 됐다.

순간 팽적호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아……! 어쩌면 그래서 남궁천이 수혁이에게 그 종이를 남긴 것인가?’

만약 언호량에게 그 종이를 주었다면 애초에 모든 결정을 언가주가 내렸을 것이다.

하나 팽수혁에게 전함으로써 이젠 자신도 이 결정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아닌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팽가와 언가는 이제 같은 운명이리라.

‘남궁천, 너는 참으로 영악하다. 하지만 그 대담함이 마음에 드는구나!’

팽적호가 피식 웃고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용합시다! 언 가주! 일단은 살고 봐야지요!”

“알겠소!”

언양걸이 마침내 힘주어 대답했다.

* * *

류난이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무슨 소린지? 그래서 뭘 줬다는 거냐?”

남궁천이 씨익 웃었다.

“뭐 거기까지 알 건 없고. 이제 곧 당신들은 다 뒈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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