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221화 (220/508)

221. 이상한 낌새들

쒸에에엑!

어둠을 찢어발기며 날아가는 화살!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그 화살을 바라보았다.

푸욱!

“커억!”

심장이 꿰뚫린 악가 무인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가 천천히 제자리에 뚝 멈춰 서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꽈아아아앙!

무시무시한 폭음과 함께 악가 무인의 전신이 인육파편이 되어 터져 나가는 게 아닌가?

“허억!”

“맙소사!”

언가장의 무인들이 입을 딱 벌리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단지 화살에 맞았을 뿐인데 사람의 몸이 저리 폭발해 버리다니. 뿐만 아니라 인육파편이 흩어진 그 자리에서 독무가 안개처럼 번지는 게 아닌가?

“이럴 수가…….”

언양걸이 신음처럼 중얼거리자 남궁천이 활을 궁수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폭멸고를 복용시킨 겁니다.”

“어찌 저런……!”

언양걸이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흑도 무인들이 악독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저렇게 지독할 줄은 몰랐다.

언양걸이 주먹을 콱 틀어쥐고는 돌아섰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자네가 이번에도 언가를 구했네.”

이쯤 되면 남궁천은 진주언가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남궁천이 여기에 없었다면?

그래서 저 악가 무인을 안으로 들였다면?

언가장은 그날로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다.

멸문지화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으리라.

간담이 서늘하다.

언양걸이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물었다.

“한데 자네는 그걸 어찌 알았나?”

“이미 황학루에서 저들은 같은 방식을 사용했거든요. 그러니 이번에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게 아니면 굳이 악가 무인을 살려둘 필요가 없었겠죠. 전령으로 쓸 이유도 없고요.”

“하긴.”

언양걸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천은 어둠 속의 횃불을 빤히 노려보았다.

‘류난…….’

그래도 한때 술자리도 같이 즐기던 사이였다. 제법 말이 잘 통해서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다.

한데 이렇게 만날 줄이야.

그때였다.

“아앗! 또, 또 옵니다!”

누군가 소리쳤다.

남궁천과 언양걸이 동시에 눈살을 여미고는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몇 개의 그림자가 이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으아악! 쏘, 쏘지 마!”

“살, 살려줘! 제발!”

“언가주! 살려주십시오!”

모두 악가 무인들이었다.

그들 모두 처절한 표정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궁수들이 시위를 한껏 잡아당겼다가도 입을 척 벌리고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언양걸 역시 흠칫거리고는 주먹만 꼭 말아 쥐었다.

옆에서 남궁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했다.

“쏴야 합니다.”

“……!”

“모두 폭멸고를 복용한 자들입니다.”

남궁천이 최대한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을 꺼냈다.

언양걸이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알고 있다.

이미 앞서 보지 않았나?

심장을 꿰뚫렸던 악가 무인이 독무를 퍼뜨리며 죽던 광경을.

하지만…… 자신에게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달려오는 자들이다.

심지어 적도 아니고, 아군이다.

더욱이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서 길을 나섰던 자들이 아닌가?

한데 그런 자들을 이젠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하다니!

‘정말이지 지독하게 악랄한 것들이구나!’

언양걸이 어금니를 빠득 가는 동안에도 악가 무인들을 연신 울부짖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언가주! 우리는 귀 가문을 돕기 위해 왔습니다! 부디 우리를 살려주십시오!”

“제발 쏘지 마세요! 살려주세요!”

시위를 팽팽하게 잡아당긴 궁수들은 등골을 타고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달려오는 악가 무인들의 그 처절한 목소리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든다.

횃불을 들고 달려오는 이들의 눈동자에는 절망과 간절함이 차 있었다.

궁수들은 하나같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하나 악가 무인들은 그럴 수 없었다. 이미 흑도인의 사술에 당해서 언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도록 세뇌된 상황이다.

혹여 사술에서 깨어난다고 해도 돌아갈 곳이 없다.

뒤돌아서는 순간 어차피 흑도인들의 화살받이가 되고 말 테니.

이제는 상당히 지척까지 다다랐다.

“살려주시오!”

“부탁입니다!”

악가 무인의 아우성에 궁수장이 소리쳐 부른다.

“가주님! 명령을!”

“끄음. 쏴라.”

무겁고 나직한 명령이 떨어지자, 궁수들이 이윽고 시위를 놓았다.

패패패패패애앵!

쒸쒸쒸쒜에에엑!

시커먼 화살 떼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푸푸푸푹!

“컥!”

“끄윽!”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던 악가 무인들이 하나둘 쓰러지더니 이내 무릎을 꿇고는 전율했다.

“이리…… 죽을 수는……!”

“악 가주가 우릴……!”

다음 순간,

꽝! 꽈꽈앙…… 꽈아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악가 무인들의 전신이 난잡하게 터져 나간다. 동시에 진녹색의 독무가 밤의 허공으로 흩어져갔다.

만약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독무가 언가장에도 스며들었으리라.

제대로 된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언가장의 무인들은 착잡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사기가 절로 떨어지고 있었다.

남궁천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궁수들과 언가 무인들을 돌아보았다.

‘과연 쉽지 않은 녀석이야.’

이것이 류난이다.

사람의 심리를 들었다가 놓았다가.

아주 제멋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사내.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먼 길을 달려온 지원군을 직접 죽이게 만들다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아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버렸다.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으리라.

큰 싸움을 앞두고 생각이 복잡해지면 당연히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진심으로 고마워할 겁니다.”

“……?”

남궁천이 불쑥 뱉은 말에 언양걸이 흠칫거리고는 돌아보았다.

남궁천이 피투성이가 된 전방을 보며 묵묵히 말을 이었다.

“저들은 세뇌를 당해서 언가로 달려오는 중이었습니다. 겉으론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그것 역시 사술에 당한 탓이지요. 그들도 알고 있었을 거예요. 언가에서도 어쩔 수가 없다는 걸. 그렇다면 치욕스럽게 죽느니, 깔끔하게 죽길 원했을 겁니다.”

“…….”

“만약 저들이 언가로 들어와 자폭해 버리면 불명예스러운 죽음이 됐겠죠. 하지만 그 전에 활을 쏴서 깔끔하게 죽게 됐어요. 폭멸고 때문에 죽는 순간이 그리 고통스럽지도 않았을 거고요. 오히려 화살을 맞는 순간 내심으로는 감사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잔정에 이끌려 그릇된 판단을 하지 않고, 명예로운 죽음을 준 것에.”

어둠 속에서 남궁천의 말이 잔잔하게 흘렀다.

하나 그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묘한 자책감에 빠져 있던 궁수들이 순간 힘주어 활을 잡았다.

생각을 바꾸면 상황도 다르게 인식되는 법.

남궁천이 말을 이었다.

“전쟁 중에는 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적은 흑무련이에요. 이곳에 달려오다가 죽은 악가 무인들을 죽인 건 여러분이 아닙니다. 바로 흑무련 놈들이 죽인 거죠. 이제 저들은 오히려 죽음으로 적들의 공격을 조금 늦추어 주었습니다. 폭멸고독이 공기 중에 퍼져 있으니 잠시나마 시간을 벌어준 겁니다. 어쩌면 그것이 진정 악가 무인들이 바란 건지도 모릅니다.”

잠시 말을 끊고 사람들을 훑어본 남궁천이 다시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여러분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으니, 이제 복수를 할 차롑니다. 지금은 무림맹조차 이곳에서 일어나는 전투를 외면하고 있지만, 오늘 이후로 이 전투는 모든 이의 머릿속에 영원히 기억될 겁니다! 진주의 영웅들로! 언가와 팽가가 모든 이의 가슴에 아로새겨질 겁니다!”

“……!”

언양걸과 궁수들이 벅차오르는 심정으로 남궁천을 돌아보았다.

남궁천의 목소리에는 묘한 힘이 실려 있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 모두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바닥으로 꺼져가던 사기가 다시 불을 지핀 듯 뜨겁게 일어났다.

언양걸은 대번 무인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걸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조차도 남궁천의 일장연설에 마음이 동하지 않았나?

사실 악가 무인들이 정말 죽기를 바란 것인지, 아니면 살기를 바란 것인지 모른다.

중요한 건 지금 아군이 남궁천의 말에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수장으로서 이럴 때 나서야 하리라.

언양걸이 굳은 표정으로 내공을 실어 소리쳤다.

“모두 들었다시피 이제 우리에게는 천명이 내려졌다! 죽은 이들에 대한 복수를! 그리고 강호에 언가와 팽가가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고, 누구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어라!”

“우와아아아아아!”

언가장에서 천지가 격동할 만큼 큰 함성이 치솟았다.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쭈뼛 전율이 일어난다.

언양걸은 다시 한번 감탄한 표정으로 남궁천을 돌아보았다.

‘확실히 대단하구나! 말 몇 마디로 이렇게 분위기를 바꿀 줄이야! 남궁천, 자네는 두 가문의 은인이자 영웅이다!’

언양걸이 결의를 다진 표정으로 저 멀리 어둠 속 횃불을 노려보았다.

‘와라! 얼마든지 받아주마!’

* * *

폭음에 이어 아스라이 들려오는 함성 소리에 류난이 이맛살을 슬쩍 구기더니 이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불을 지핀 셈이 된 건가?”

“아군을 죽여 놓고 사기를 끌어 올리다니. 미친놈이군요.”

옆의 수하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리자, 류난이 피식 웃었다.

“그게 아니면 난놈이거나.”

“……?”

“어쨌든 군중의 심리를 좌지우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어쩌면 생각보다 까다로운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어.”

그러자 흑의인들 사이에서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곡주…… 아니, 련주님! 걱정 마십시오! 저를 보내주시면 언가와 팽가는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지 못할 겁니다!”

검은 철갑을 착용한 그는 큼직한 낭아봉을 들고 있었는데, 그 크기가 웬만한 어린아이만 했다.

두 손으로 들기도 무거울 것 같은 낭아봉을 마치 젓가락처럼 가볍게 흔드는 모습이 가히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류난이 그를 돌아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정말이지 살인적인 미소라는 말은 이럴 때 하는 것이리라. 그의 웃음은 어딘지 모든 경계심을 산산이 흩어 버리는 묘한 힘이 있었다.

“철나한(鐵羅漢). 자신 있나?”

“물론입니다! 속하, 명만 내려주신다면 목숨을 바쳐 적을 궤멸시키고 오겠습니다!”

류난이 듬직한 표정으로 철나한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는 염려 섞인 표정으로 고민에 잠겼다.

“철나한은 믿음직하지. 하지만 이번 싸움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걱정이다. 혹여 그대를 잃는다면 나는 슬픔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류난의 표정이 벌써 반쯤 슬픔에 잠겨들자, 그를 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아릿하게 저려오는 듯했다.

철나한이 울컥하는 마음으로 소리쳤다.

“속하, 무슨 일이 있어도 련주님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철나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에게 실망하지 않는다. 다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 목숨을 걸고 그대의 뜻을 이어갈 뿐.”

“영광입니다!”

“철나한.”

“명받겠습니다!”

철나한이 한쪽 무릎을 쿵 꿇으면서 포권했다.

류난이 언가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얼마나 필요한가?”

“나한대와 흑운대면 충분합니다!”

류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명했다.

“나한대와 흑운대를 이끌고 적을 섬멸하라. 단, 진천랑의 아들은 살려두되 여의치 않다면 죽여도 좋다. 상황을 지켜보면서 추가 지원을 보내겠다.”

“복명!”

철나한이 벌떡 일어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나한대, 흑운대!”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흑의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나한대는 철나한과 마찬가지로 검은 철갑을 두르고 있었고, 흑운대는 가벼운 흑의 경장 차림이었다.

두 조직이 앞에 도열하자, 철나한이 돌아서며 소리쳤다.

“가자! 박쥐 같은 언가 놈들과 겉멋만 잔뜩 든 팽가에게 흑무련의 무서움을 보여주어라!”

“와아아아아아!”

다음 순간 철나한을 비롯한 두 조직이 함성과 함께 언가장을 향해 돌진했다.

* * *

“옵니다!”

언가 무인 하나가 소리치자,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마침내!’

언양걸이 주먹을 꽉 쥐고는 돌아섰다.

“남궁 소협! 잘 부탁…… 응?”

그가 흠칫거리고는 남궁천을 보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어딘지 광기 서린 미소를 짓는 남궁천.

어…… 상태가 왜 저래?

잔뜩 상기된 얼굴로 묘한 흥분에 사로잡힌 모습이지 않나?

사실 남궁천은 전율하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떼로 달려드는 저 불나방들!

아, 얼마 만이던가?

저 단전에서 피어오르는 숱한 빛줄기를 보라.

아름답지 않은가?

불나방의 최후는 처참하지만, 그 열정만큼은 찬란한 색으로 아름답게 빛난다.

“흐흐흐흐!”

모처럼 전생의 향수에 젖어든 남궁천이 안면 근육을 꿈틀대며 이상한 웃음을 흘렸다.

남궁천이 씨익 웃으며 돌아본다.

“가주님.”

“으, 으응?”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겠죠?”

‘뭐, 뭐야? 이 새끼. 왜 아까부터 이상한 표정으로…… 무, 무섭…….’

언양걸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남궁천이 바닥을 차더니 훌쩍 날아갔다.

‘잠깐, 날, 날아가? 어디로?’

순간 언양걸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어어엇! 남궁 소협! 어딜 가나! 이건 방어전이란 말일세! 어서 돌아…….”

하지만 이미 흥이 솟은 남궁천은 달려드는 불나방들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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