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협력은 개뿔
하북팽가의 혼원벽력신공.
그러잖아도 근골의 장대함이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한 하북팽가다.
그런데 혼원벽력신공을 운기하게 되면 평소보다도 그 근골이 더욱 두껍고 탄탄해진다.
마치 급격한 성장을 한눈에 보는 것만 같다.
남궁천이 희미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보네. 제대로 된 혼원벽력신공을.’
혼원벽력신공은 외공과 실전 위주인 하북팽가의 절기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내공심법이었다.
남궁천이 전생에서 그토록 오랜 기간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까닭도 바로 이 혼원벽력신공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초견파공안을 통해 처음으로 제대로 된 내공심법을 익힌 게 바로 이 혼원벽력신공이었으니까.
사람들은 하북팽가의 무공을 실전과 외공 위주라며 무시하곤 하지만, 혼원벽력신공만큼은 여타의 내공심법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혼원벽력신공을 대성하게 되면 오행의 기운을 동시에 운기하게 되는데, 이때는 그 어떤 고수도 무시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어쨌거나 팽적호는 혼원벽력신공을 대성한 경지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그 기본을 확실히 다진 인물이었다.
일전에 팽수혁이 비무대에서 펼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
어쨌거나 상의가 터져 나가고 거대한 근육을 드러낸 팽적호가 두 눈에서 광휘를 풀풀 휘날렸다.
“남궁천, 너를 인정하마.”
“뭘, 또 새삼스럽게요.”
“이제부터 최선을 다하마.”
“좋습니다. 오세요. 선공은 양보하겠습니다.”
팽적호가 실소를 터뜨렸다.
확실히 재미있는 녀석이면서 미친 녀석이다.
“간다앗!”
파앗!
순간 팽적호의 신형이 쭉쭉 미끄러지며 눈 깜빡할 사이에 남궁천 앞에 다다랐다.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에 장내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엄청나다!”
“팽가가 저렇게 빠를 줄이야!”
“무슨 소리야? 팽가의 무공은 실전 특화야. 전장에서 느려 터져서는 아무것도 못하지!”
쒸아아아앙!
그야말로 세상을 갈라 버릴 것만 같은 도기가 남궁천을 향해 떨어졌다.
혼원보(混元步)에 이은 혼원벽력도의 일도단천(一刀斷天)!
짓푸른 광휘가 남궁천을 양단할 기세로 떨어져 내린다.
남궁천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아직은 토, 금, 화구나.’
즉, 혼원벽력신공을 사용하지만, 오행의 기운 중에 수계와 목계의 기운은 아직 다스리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토, 금, 화의 기운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도신을 타고 도기가 되어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듯 거침이 없다.
하나 남궁천은 서두르지 않았다.
마음은 천천히. 여유롭게.
그러나 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속하게 움직인다.
쉬이이잇!
벽라검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단전에서 솟구친 창벽신공의 공력이 혈맥을 따라 달리면서 벽라검까지 전해졌다.
대환단을 복용하면서 내공이 급격히 상승한 남궁천이었다.
거기에 토금화의 상극을 이루는 기운을 각기 끌어 올려 하나씩 맞부딪쳐갔다.
‘목극토(木剋土)!’
‘화극금(火剋金)!’
‘수극화(水剋火)!’
쩌어어어엉!
이내 도검이 부딪치면서 고막을 찢어발길 듯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크으읏!”
“으윽!”
지켜보던 이들이 저마다 귀를 틀어막으며 휘청거린다.
쫘르르릉!
꽈아아아앙!
남궁천을 뚫고 지나간 일도단천의 위력이 그대로 바닥에 기다란 균열을 일으키면서 등 뒤의 암벽까지 때렸다.
쿠구구구궁!
지진이 따로 없다.
암벽이 당장에라도 무너져 내리면서 가장을 덮칠 것만 같다.
후드드득!
흙먼지와 자갈들이 떨어져 내린다.
순간 연무장에 정적이 일어났다.
“……!”
“남, 남궁천……! 괜찮은 거야?”
윤종승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번만큼은 팽수혁과 유현, 진소홍도 확신할 수 없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궁천에게 떨어진 일도단천의 위력이 그 몸을 뚫고 뒤쪽 암벽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윤종승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남궁천……!’
비록 도신은 막았다지만 도기가 그대로 남궁천을 가르며 지나간 상황이다.
남궁천이 이대로 무사할 리가 없…….
“응?”
웃고 있어?
남궁천이 입매를 비틀며 웃고 있다.
반면 대도를 내려찍은 팽적호는 어금니를 빠득 갈고는 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여어업!”
순간 팽적호가 기합성을 터뜨리더니 그대로 회전하면서 대도를 횡으로 휘둘러왔다.
회류혼원세(回流混元勢)!
단 한 번의 공격이 아닌, 세상을 뒤흔들어 버릴 것만 같은 도격이 연이어진다.
떠엉! 따앙! 쩌어엉!
하지만 남궁천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단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도기가 남궁천을 지나쳐 등 뒤의 암벽을 연신 난자하고 있다.
꽈과과아앙!
쩌르르르르르릉!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저, 저게 어찌……!”
“말도 안 돼!”
저만한 도격을 고스란히 받아낸다면 조금은 움직일 수밖에 없건만, 마치 아이의 주먹질을 담담히 받아내는 어른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졸지에 팽 가주가 오히려 아이처럼 느껴질 정도다.
팽적호 역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어째서 이놈은……!’
마치 허공에 삽질하는 기분이랄까?
때려도, 때려도 그 충격이 전해지지 않는다.
그대로 남궁천의 몸을 지나 뒤로 흘러나가는 느낌이다.
다음 순간, 남궁천이 눈을 가늘게 여몄다.
‘좀 아깝긴 하네.’
만약 자신이 팽 가주의 목숨만은 살려두었더라면, 팽적호는 이보다 훨씬 성장할 수 있었으리라.
쉬이이잇, 쩌어엉!
마지막 일격도 받아낸 남궁천이 그제야 뒤로 미끄러졌다.
촤아아악.
두어 장 정도를 미끄러진 남궁천의 전신에서 수증기 같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팽적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자위를 심하게 꿈틀거렸다.
일도단천에 이은 회류혼원세를 전부 받아냈다.
단 두 초식이지만, 도격은 다섯 번이나 이어졌다.
그럼에도 남궁천은 별로 타격을 입지 않았다.
이게 한낱 견습생 수준이라고?
그게 말이 되나?
피가 끓는다.
분노의 심경은 아니다.
뭐랄까?
흥분에 더 가깝다.
엄청난 녀석을 상대하고 있다는 생각에 무인으로서의 본능이 나오는 것이다.
남궁천이 천천히 벽라검을 내렸다. 그러고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팽적호를 보며 말했다.
“잘 보세요. 뭔가 얻는 게 있으시길.”
순간 벽라검이 푸른 기운으로 휘감겼다.
팽적호는 떨리는 눈동자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도대체 저 아이는……!’
혼원벽력공에 기반한 혼원벽력도는 하북팽가 최고의 절기라고 할 수 있다.
한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내다니!
분명 상대를 때렸는데 허공을 때린 것만 같은 공허함을 느꼈다.
남궁천은 팽적호를 보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어리둥절하겠지.’
만약 상대가 자신이 아니라면 분명 꽤 깊은 내상을 입혔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상대가 자신이었다.
거기에 창벽신공을 상대한 것도 불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창벽신공 특유의 비움으로 모든 기운을 그대로 흘려보낸 탓이다.
쉽게 말해 격산타우(隔山打牛)의 수법을 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산을 때려 소를 친다.
보통 철갑옷을 입은 자에게 내상을 입힐 때 쓰는 방식이다.
철갑은 그대로지만 그 뒤에서 보호를 받는 내장이 터져 나간다.
철갑은 그저 내공을 전달하는 통로의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남궁천은 바로 창벽신공을 이용해서 이렇듯 통로가 된 것이다. 거기에다 상극의 기운을 펼쳐 침투해 오는 내공을 와해시켰으니, 때리고 때릴수록 허공에 삽질하는 기분만 들 수밖에.
물론 모든 무공을 이렇게 무효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마음을 비우는 게 어렵듯이, 무공을 통해 그 어떤 공력도 그대로 흘려보낸다는 것은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러니 일대일의 비무 상황이 아니라면 펼치기도 힘든 방식이다. 또한 지속적으로 펼칠 수도 없다.
공력을 운기해서 몸을 빈 공간처럼 만드는 것은 다른 말로 상대를 제압할 방법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기에.
그래서 이쯤에서 남궁천이 공격을 끊은 것이기도 하다.
‘더 이상 버텼다가는 내상을 입었을지도.’
어쨌거나 이제는 자신이 보여줄 차례.
구오오오오.
남궁천의 전신에서 가공할 만한 기운이 피어오른다.
팽적호가 실눈을 뜨고는 남궁천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가 천천히 오른발을 뒤로 빼며 방어 태세를 취했다.
반면 남궁천은 고요히 운기하면서 벽라검에 모든 공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벽라검이 몸을 떨며 울음을 내지른다.
푸른 기운이 검신을 타고 형형하게 맺혀간다.
이 순간 남궁천은 전생을 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생의 모든 습관을 버렸다.
그리고 오로지 창벽신공의 순수한 기운만으로 운기를 시작했다.
지금은 그저 남궁세가의 남궁천이었다.
우웅. 우우웅. 우웅.
벽라검이 움직일 때마다 미약한 울음을 내지른다.
마치 검신이 두세 개로 갈라졌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듯하다.
팽적호는 칼자루를 꽈악 움켜쥐고는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뭔가 큰 게 올 것이라는 본능의 경고가 머릿속을 울린다.
원을 그리듯 반대 방향으로 각자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
스으읏.
남궁천이 이내 걸음을 멈추고 기수식을 취했다.
팽적호가 지금이라도 달려들어 대도를 휘두른다면 그 큰 것이 오기 전에 막을 수 있으리라.
평소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상대가 기수식을 취하기도 전에 대도를 휘둘러갔을 터.
하나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 않다.
지금 오려는 그 큰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와라! 받아주마!’
팽적호가 대도를 힘주어 움켜잡았다.
그 순간 남궁천의 신형이 날아들었다.
팟!
팽적호가 눈을 치떴다.
남궁천의 신형이 마치 공기처럼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흩어진 남궁천이 바람이 되어 달려드는 것만 같다.
‘이것이 남궁세가의 검!’
놀랍게도 지금 이 순간, 팽적호는 남궁천을 진천랑의 아들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남궁세가였다.
엄청난 속도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면서도 눈앞에 그려지는 남궁천의 모습은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또렷하다.
그만큼 초집중 상태라는 뜻.
지척에 다다른 남궁천이 검을 들어 올린다.
창벽검법 중에서도 공창낙조(空蒼落照)다.
푸른 하늘에서 태양이 떨어진다.
팽적호가 느낀 게 딱 그랬다.
저 푸르름을 뚫고 떨어져 내리는 태양을 받아내는 순간, 세상은 핏빛 노을로 물들어 버리리라.
하나 받지 않을 도리도 없다.
받지 않는다면 전신이 타 죽을 것이 분명하기에.
팽적호는 눈부시게 떨어져 내리는 검을 향해 홀린 듯 도신을 치켜 올렸다.
마침내 도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쩌어어어어엉!
노을빛 기파가 사방으로 불어 나가는 것과 동시에 고막을 찢어발길 것 같은 소음이 터져 나왔다.
와르르르르!
사방의 전각 기왓장 수십 개가 기풍에 날아가며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근방의 몇몇 이들은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도검이 부딪친 곳에서 터져 나오는 기광(氣光)에 몇몇 이들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마침내,
파아아아아앙!
창졸지간 팽적호의 몸이 포탄처럼 튕겨 나가면서 그대로 암벽에 부딪쳤다.
꽈아앙!
쩌저저적……!
암벽에 처박힌 팽적호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균열이 새겨졌다.
“어…….”
“맙소사…….”
지켜보던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리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단 일격!
그것도 근골이 장대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하북팽가를 상대로 단 일격이라니!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남궁천을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