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197화 (196/508)

196. 태풍에 맞설 용기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를 때마다 황학이 내려와 춤을 추었다는 곳.

물론 이곳에 누각을 처음 세운 사람은 삼국 시대의 손권이지만, 기가 막힌 절경으로 다양한 전설이 내려오는 황학루.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일부가 파괴되어 볼품없던 황학루를 약 이십 년 전에 현재의 루주가 재건하여 주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후 황학루에는 다시 많은 사람이 찾아와 칭찬했는데, 루주는 원래부터 황학이 노닐던 주점의 터를 뜻에 맞게 이용했을 뿐이라며 대답했다고.

어쨌거나 오늘도 황학루 주변은 여느 때처럼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다만 그 분위기가 여느 때와는 사뭇 다르다. 어딘지 엄정한 기운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무질서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칼같이 각이 잡혀 주변을 경계하는 자들이 언뜻언뜻 보인다.

차려입은 무복 또한 각양각색이었는데 저마다 소속에 대한 자부심과 의기양양함이 표정에서 묻어나온다.

바로 칠대세가에 속한 무인들이다.

그리고 무림맹원도 몇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무인들만 득실거리는 것은 아니다.

무한의 명소인 데다 돈 좀 쓴다는 양민들은 황학루를 심심찮게 찾았으니까.

여느 때처럼 별생각 없이 황학루를 찾은 사람들은 유달리 북적거리는 무인들을 보며 나직이 수군거렸다.

“뭔 일이래? 왜 이렇게 무인들이 많아?”

“오늘 황학루에서 칠대세가회가 열린다더군.”

“아아, 그게 오늘이었나? 그럼 맹주님도 오시려나?”

“아마 온다고 들었던 것 같네.”

“맹주님이 오신다면 단순한 정기회합 이상의 의미겠는데?”

“요즘 흑도 무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돌더라고. 아마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까?”

“그렇구먼.”

그렇게 두런거리는 사이 마침 한쪽에서 또 다른 무리가 황학루 인근을 가리키며 술렁거렸다.

“엇, 저기 모용세가다!”

“오오, 보기만 해도 위용이 엄청나군.”

“한데 모용신 단주는 오지 않았네?”

“청랑단은 지금 바쁘니까 차남이 대신 온 모양인데? 무연회 팔 강까지 올랐던 그 모용강이군.”

그들이 힐끔거리는 곳에서는 반듯한 미남의 중년인이 들어서고 있었는데, 바로 모용세가주 모용환이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아비만큼이나 딱딱한 표정으로 나란히 걷는 모용강이 있었다.

“소가주를 대신한 자리다. 처신을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모용강이 대꾸했지만, 모용환은 영 미덥지 못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연히 무연회 우승을 할 줄 알았던 둘째 아들이 팔 강 문턱도 넘지 못하고 돌아섰으니 실망이 클 수밖에.

모용환이 냉랭한 표정으로 혀를 차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쯧쯧. 네 형의 반만 따라갔어도.”

빠직.

모용강이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지금 무슨 말을 한들 아버지 귀에는 들어가지도 않을 것임을 잘 알기에.

마침 또 한쪽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천당가주 당고륜과 산동악가주 악현이 인파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악현 곁에는 장남인 악후가 함께 있었고, 당고륜 곁에는 당우기가 함께 있었다.

모용환이 두 사람을 맞이하며 포권했다.

“두 분 어서들 오시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모용 가주께서도 예까지 오느라 고생하셨소.”

“오랜만에 두 분을 뵙습니다.”

당고륜과 악현이 차례로 인사를 건넸다.

당고륜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왕 입구에서 다 같이 만났으니 다른 이들도 기다렸다가 함께 들어가는 게 어떻소?”

“그럽시다.”

모용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악현도 내색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모용환이 당고륜을 힐끔거리고는 말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칠대세가회에 남궁가를 부른 게 내키지 않소이다.”

노골적인 불만이었다.

남궁세가를 칠대세가회에 초청하자고 제안한 것은 바로 당고륜이었다. 내부에서도 찬반 논란이 있긴 했으나, 결국 남궁세가를 부르기로 결정을 내린 것.

물론 모용환은 강하게 반대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

“남궁가는 백도 무림을 배신한 가문이외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희미해지기 마련이라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는 법.”

“하나 대살성은 이미 죽지 않았소? 게다가 남궁가의 소가주가 무연회 우승을 했다고 하니 시류를 따르는 게 좋다고 생각했소. 무연회 우승도 놓친 우리끼리 회의를 열어 봐야 세간에서는 코웃음 치지 않겠소? 마침 우리 아이들이 딱 무연회에 참가한 해였으니까.”

당고륜이 슬쩍 당우기와 모용강을 바라보았다.

당우기는 불퉁한 표정이었고, 모용강은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에 모용환이 엄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모용강을 질타했다.

“너는 대체 뭐 하는 녀석이기에 준결승에도 들지 못해 이런 망신을 사느냐?”

“죄송합니다, 아버지.”

모용강이 고개를 숙이고 사죄하자, 당고륜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너무 나무라진 마시오. 우리 애는 팔 강에도 들지 못했소. 올해 무연회 수준이 높았다고 생각합시다.”

“아버지! 그건 제가 운이 나빠서……!”

“그만해라. 말하지 않았더냐? 운 또한 실력이다. 그 악운이 닿지 않을 만큼 네 실력이 월등했다면 됐을 일이다.”

“끄응.”

당우기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당고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아들내미라고 하나 있는 녀석이 어찌 이 모양인지. 제 누나 반만 닮았어도. 쯧쯧.”

모용환이 냉랭하게 웃었다.

어느 집안이나 근심 걱정은 거기서 거긴가 보다.

“아무튼 남궁가가 칠대세가회에 참석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요.”

그러자 한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불쑥 말을 걸어왔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겁니다. 남궁가를 매번 불러서는 절대 안 되지요. 사람이 낄 곳에 끼어야지요. 올해는 남궁천이라는 그 아이가 궁금해서 저도 찬성했지만, 다음은 없을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돌아간 곳에는 칠대세가에 속한 나머지 가주들이 모여 있었다.

황보세가주 황보칠, 낙양조가주 조검명, 그리고 백리세가주 백리영산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온 황보승과 조강민, 백리향이 조금 떨어진 곳에 모여 있었다.

당고륜이 희미하게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다들 오셨구려. 한데 제갈세가주는 아직이오?”

“아, 제갈세가주는 총군사님과 회담이 있어 오늘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구려.”

시기가 시기인지라 당고륜도 서운하게 생각하진 않는 듯했다.

다만 모용환은 가주들을 한 차례 훑어보고는 냉랭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칠대세가가 다 모였는데, 남궁가는 아직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군.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그러자 조검명이 어딘지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게 아닐 겁니다.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미 와서 기다린다?”

모용환이 눈을 가늘게 뜨자, 조검명이 입매를 비틀더니 나직이 속삭였다.

“모용 가주님 말씀처럼 남궁가가 감히 칠대세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일부러 모임 시간을 한 시진 이르게 알렸지요.”

“한 시진이나 이르게?”

“감히 칠대세가와 한자리에 있게 될 영광인데 그 정도는 일찍 와서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지금 저 위에 남궁세가주가 이미 와 있단 말이오?”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겠지요.”

조검명이 씨익 웃는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당우기가 불쑥 끼어들며 입을 연다.

“그거 참 쌤통이네요. 킬킬.”

하지만 당고륜이 얼른 엄한 눈짓으로 아들을 나무라고는 혀를 찼다.

“괜한 짓을 하셨소. 그래도 칠대세가회에 초청한 것인데 그런 유치한 장난이라니.”

“예, 유치하지만 바로 그런 게 사람 속을 뒤집어놓지요.”

확실히 조검명은 야비함이 몸에 밴 자다.

오늘날 낙양조가가 명성을 얻은 것은 이런 야비한 처세술이 한몫했다.

예를 들어 비무 일정을 잡아놓고 일부러 늦게 나가서 상대방의 심기를 어지럽혀 놓거나, 일대일의 비무임에도 수하들을 끌고 가서 합격술을 펼치는 등의 방식이었다.

해서 조검명은 절대 사람 많은 곳에서는 비무하지 않는다는 말이 떠돌았다.

어쨌거나 그런 조검명이 지금 남궁세가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천재로 칭송받던 자신의 아들 조강민이 남궁천에게 얻어터져 무연회에도 참석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눈이 뒤집히는 줄 알았다.

한데 이번에 이렇게라도 남궁 가주에게 엿을 먹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초청에 찬성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남궁가에 직접 초청의 뜻을 전달하는 것도 바로 조검명이 맡았고.

백리영산이 껄껄 웃었다.

“그거 참 재미있구려. 그 칼날 같은 영감이 지금 황학루 꼭대기에서 한 시진이나 우릴 기다리고 있단 말이지요? 하하하!”

“뭐, 혹시라도 한마디 하면 전령의 실수였다고 하면 되지요.”

“그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면 좀팽이가 되는 거고, 용서하자니 등신 취급이구먼. 하하!”

“그 정도 신고식은 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오늘 조 가주 덕분에 재미있는 구경을 할 수 있겠소.”

백리영산이 기분 좋게 웃으며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옅은 웃음을 지었다.

다만 그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웃지 않는 자가 있었는데, 바로 모용강이었다.

‘그럼 남궁 가주와 남궁천이 지금 저 위에서 한 시진을 기다리고 있다는 건가? 어째 불안한데…….’

남궁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대쪽같은 성품이라는 건 이따금씩 전해 들은 기억이 있다.

하나 남궁천이라면 어디로 튈지 모를 모난 돌이 아닌가?

마침 모용환이 앞장서서 돌아섰다.

“자, 그럼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들어갑시다.”

“예, 들어가시지요. 우리 남궁 가주께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테니.”

조검명의 말에 가주들이 툴툴 웃으며 뒤를 따랐다. 그렇게 칠대세가 가주들이 최상층으로 오르기 직전이었다.

갑자기 점소이가 다가와 모용환 앞을 가로막는 게 아닌가?

“뭐지?”

모용환의 입에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감히 자신 앞을 가로막다니.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점소이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아이고, 죄송합니다요, 나리. 그런데 위층에는 올라가실 수 없습니다요.”

“뭐라?”

“이미 만석이라서 말입니다.”

점소이의 말에 모용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만석이라니?”

그러자 뒤에서 듣고 있던 조검명이 불쑥 나서며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이냐? 본 회가 오래전에 예약을 해두었는데! 누가 감히 그 자리를 차지한단 말인가!”

“하, 하지만 취소를 하셨으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요. 사정을 헤아려주십시오.”

“취소라고? 누가 취소를 한단 말이더냐?”

“그야 지금 위층에 계신 분이시지요. 귀 회의 참석자가 취소했으니 저희들로서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이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비켜라!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

조검명이 점소이를 떠밀면서 계단을 따라 성큼성큼 올라갔다.

다른 가주들도 그 뒤를 빠른 걸음으로 따랐다.

마침내 최상승까지 오른 조검명은 두 눈을 커다랗게 부릅뜨고 말았다.

“아니…… 이게 다 뭐야?”

황학루 최상층에서 때아닌 술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술잔을 높이 들고 소리치는 자는 다름 아닌 남궁천이었다.

“자, 다들 수고 많았다! 축배를 들자! 남궁세가를 위하여!”

“남궁세가를 위하여!”

저마다 소리치며 잔을 드는 자들은 다름 아닌 창응대원들.

조검명이 입을 쩍 벌리고 그 광경을 황망하게 바라보는데, 마침 남궁천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어? 누구세요?”

뒤늦게 정신이 돌아온 조검명이 기가 막혀서 그 말을 따라 했다.

“누구세요……?”

“예, 누구세요? 여기 올라오시면 안 되는데.”

“저, 저, 미친……! 그러는 네놈은 누구냐?”

“거, 초면에 예의가 너무 없으시네. 남궁세가 소가주 남궁천입니다만. 그쪽은?”

그쪽이라니. 하!

‘저 새파랗게 어린놈이 감히 나를 뭐로 보고……!’

“나는 낙양에서 온 조검명이다! 도대체 네놈은 어째서 칠대세가회 예약석에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단 말이냐! 남궁 가주는 어디 계신가!”

그러자 남궁천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답한다.

“칠대세가회? 그거 취소된 것 아니었어요?”

“취소가 왜 돼? 아무도 취소한 사람이 없는데!”

“아, 한 시진이나 지나도록 안 나타나기에 당연히 취소인 줄 알았지요.”

“아니, 뭐 이런……!”

“그럼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늦긴 누가 늦어! 원래 이 시간이었다.”

“아닌데. 분명히 한 시진 전이라고 했는데.”

“전령이 실수를 한 모양이겠지.”

“이런.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럼 지금도 늦진 않았으니 이리 와서 앉으시죠. 시장하실 텐데 먹다 남긴 거라도 괜찮으시다면 조금 들고요.”

남궁천이 먹다 남긴 닭고기 접시를 들어 올리고는 히죽 웃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모용강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어 버렸다.

‘그래, 저게 남궁천이지.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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