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내가 주인이다.
‘어떻게든 이 지옥에서 빠져나가겠어!’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모두가 목내이들에게 정신이 빠져 있을 때!
지금이라면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남궁천, 너부터 죽여주마!’
아니, 그 전에 유현부터 찢어 죽여야 하나?
아무튼!
탓!
철운이 바닥을 차는 순간이었다.
슈우우욱, 쿠우웅!
“어……?”
철운이 주춤거리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왕……!”
목내이 왕이 하필이면 철운 앞을 가로막으며 선 것이다.
‘아니, 왜 하필 많고 많은 놈들 놔두고 내 앞에……!’
그야 당연한 이유였다.
모두가 갑자기 일어난 지진으로 멈춰 있을 때 철운만이 유일하게 움직였으니까.
“치잇!”
철운이 바닥을 차며 튕기듯 물러나려는 순간이었다.
촤르르륵!
콱!
그의 목에 연결되어 있던 쇠사슬을 목내이가 움켜쥐었다.
“커억!”
“그르르르…….”
“안, 안 돼애애앳!”
촤아아아악!
철커덩!
눈 깜빡할 사이에 목내이가 쇠사슬을 잡아당겼고, 철운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그 무자비한 공격에 흑도인들마저 해쓱한 표정이 됐다.
“이런 니미럴……!”
쿠구구구궁……!
그 와중에도 바닥이 진동하고 천장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팽수혁이 버럭 소리쳤다.
“제기랄! 저 가마우지 새끼가 무슨 짓을 했기에 왕릉이 무너지는 거야?”
“아무래도 왕릉 전체가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
유현의 말에 팽수혁이 재차 소리쳤다.
“저 왕인지 지랄인지가 떡하니 막고 있는데 어떻게 나가……!”
슈우우우욱, 쿠우우웅!
순간 장내의 사람들이 눈을 부릅떴다.
천장에서 떨어진 커다란 바윗덩이가 왕을 그대로 깔아뭉갠 것이다.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남궁천이었다.
“지금이다! 뛰엇!”
그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손우곤을 비롯한 창응대가 바닥을 차며 달려 나갔다.
“뭐 하고 있어? 안 뛰엇?”
남궁천이 멍하니 선 백무극의 목덜미를 잡고는 냅다 출구를 향해 집어 던졌다.
“빨리 뛰라고!”
“아, 알았어! 간다고 인마!”
남궁천이 발길질을 하려는데, 팽수혁이 간발의 차로 먼저 내달렸다.
그러는 사이 달려드는 목내이를 향해 남궁천이 벽라검을 휘둘러 갔다.
“에라이, 지긋지긋한 것들아!”
스카앙! 쩌엉! 쩡!
그야말로 현란한 검술이었다.
어지럽게 달려드는 목내이들 사이를 바람처럼 누비면서 검격을 펼친다.
목내이들이 휘두르는 검은 벽라검을 스치면서 그대로 바닥에 작렬하거나 허공을 가를 뿐이다.
어쩌다가 벽라검과 부딪쳐도 남궁천의 교묘한 보법 때문에 적은 힘으로 강한 반동을 주는 방식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실전형 무공.
“꺼져엇!”
슈아아악!
콰지익!
마침내 허공을 가르며 떨어진 벽라검이 목내이의 몸을 세로로 갈라 버렸다.
지칠 줄 모르고 달려들던 목내이도 몸이 좌우로 갈라져 버리자 더 이상은 덤비지 못한 채 쓰러졌다.
때마침 한옆에서 목내이 하나를 가까스로 물리친 흑선자가 휙 돌아서며 소리쳤다.
“우리도 달립시다!”
그가 출구로 막 몸을 날리는데, 남궁천이 그 앞을 막아서면서 냅다 발을 내지르는 게 아닌가?
“어딜 새치기하려고!”
공교롭게도 남궁천의 발이 향한 곳은 이번에도 가랑이 사이!
‘이런, 젠장! 거긴 안 돼! 또……!’
흑선자의 시선이 남궁천의 발끝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상황!
퍼억!
“꺼윽……! 제, 제기랄…… 터졌……?”
입에 거품을 문 흑선자가 그 자리에 고꾸라지자, 남궁천이 미련 없이 돌아서더니 냅다 출구로 달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쿠웅!
마침 목내이 하나가 또 무너진 바위에 깔렸다. 녀석을 상대하던 옥소공자가 얼른 달려와 흑선자를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끄윽……! 머, 먼저 가시오…….”
급소를 맞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흑선자가 옥소공자를 떠밀었다.
하지만 옥소공자는 흑선자를 부축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냥 갈 수야 없지요. 책임질 사람이 필요한데…….’
그가 속내를 갈무리하는 사이, 마침 저만치 쓰러져 있던 적노파파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쿠구구웅!
아슬아슬한 차이로 바윗덩이 하나가 그녀 눈앞에 떨어지면서 박살 났다.
“이게 어떻게 된……?”
“적노! 어서 여길 빠져나가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왕릉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데 흑선 도장은 왜 그 모양인 게야?”
“그 생도에게 당했습니다.”
옥소공자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하자, 적노파파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나참, 또 당하다니.”
그때였다.
“크르르르르.”
어디선가 짐승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너진 바윗덩이 아래에서 목내이 왕이 꿈틀거리는 게 아닌가?
녀석의 무위는 일찌감치 확인한 터였다.
옥소공자와 적노파파가 순간 시선을 교환하고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파밧!
두 사람이 무너진 바윗덩이를 세차게 밟고는 계단을 따라 경공을 펼치며 내달렸다.
“크으아아아아!”
콰콰아아앙!
마침내 바윗덩이를 부수고 일어난 목내이 왕이 거칠게 포효했다. 그 때문인지 왕릉이 무너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쿠구구구궁! 쿵쿵!
“달려라! 빨리 달려! 저 녀석이 쫓아온다!”
“달리고 있습니다!”
옥소공자와 적노파파를 바짝 뒤쫓는 목내이들! 그중에는 당연히 왕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길! 이대로는 따라잡히겠어! 먼저 가게!”
“어쩌시려고요?”
“무너뜨려야지!”
“그럼 왕릉이 더 빨리 무너질 겁니다. 우리도 같이 묻힐 수 있습니다.”
“어차피 죽기 살기 아니더냐!”
촤아악!
달리기를 멈춘 적노파파가 양손가락을 활짝 펼치면서 돌아섰다.
“크어어어어!”
목내이 왕과 그 부하로 보이는 목내이들이 거의 네 발로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흥! 네놈들은 원래 있어야 할 곳에서 썩어가거라!”
콰가가가가각!
적노파파가 십지혈공의 마지막 초식인 난세지열(亂世指裂)을 펼쳤다.
순간 허공에 수십 가닥의 붉은 거미줄이 펼쳐진다.
다음 순간,
쩌르르르르릉!
쿠구구구구구궁!
고막을 찢어발길 것만 같은 굉음이 일어나면서 계단 통로가 빠른 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을 쏘냐!”
적노파파가 그대로 몸을 돌려 떨어져 내리는 돌덩이를 쳐내며 내달렸다.
* * *
쿠구구구궁……!
“우아악! 계단이 갈라지고 있다!”
“뭐해? 빨리 뛰엇!”
“다 죽는다아아아!”
창응대와 생도들이 기를 쓰며 내달렸다.
천장에서는 어지간한 사람보다 큰 바윗덩이가 연신 떨어져 내렸고, 계단은 쩍쩍 균열이 생기더니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달리던 남궁천이 뒤처진 팽수혁의 등을 슬쩍 떠밀었다.
“빨리!”
“으헉!”
등이 떠밀린 팽수혁이 허공을 도약하면서 날듯이 앞장서기 시작했다.
‘뭐, 뭐야? 등을 슬쩍 떠민 걸로 이렇게……?’
정말이지 인정하기 싫지만 남궁천은 보면 볼수록 괴물이 아닌가?
남궁천은 그렇게 백무극과 유현도 차례로 떠밀면서 창응대 뒤까지 바짝 따라붙었다.
“달려라! 달려! 내 물건에 흠집이라도 생기면 다 뒈지는 거야앗!”
“히이익!”
창응대원들이 등 뒤에서 느껴지는 모종의 살기에 기겁을 하며 경공을 펼쳤다.
꽈르르르르릉……!
고막을 터뜨려 버릴 것만 같은 천둥이 울리는 순간, 마침내 저만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출구다아앗!”
“가자아앗!”
“살았다앗!”
창응대원들과 생도들이 젖 빨던 힘까지 짜내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머리 위로 떨어지는 돌덩이를 온몸으로 맞으며 오로지 경공에만 집중했다.
마침내 제일 앞장섰던 손우곤이 동혈 밖으로 튀어나갔고, 그 뒤를 이어 창응대와 생도들이 차례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본격적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동혈!
쿠콰콰콰콰아아앙!
희뿌연 먼지를 잔뜩 토해내면서 계단으로 이루어진 인공 동혈이 마침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헉, 헉, 헉……!”
“크헉, 헉. 우웩!”
백무극과 유현, 그리고 팽수혁이 저마다 대자로 널브러진 채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정말이지 살면서 이토록 숨 막히도록 뛰어본 적이 있었을까?
너무 뛰었더니 헛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다.
팽수혁이 호흡을 가다듬고는 몸을 일으켰다.
“어우, 진짜 죽는 줄 알았네. 헉, 헉……!”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그 흑도인들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이군요. 후우.”
유현의 말에 옆에서 멍하니 앉아 있던 백무극이 무심히 중얼거렸다.
“남궁천도 없다.”
“예?”
“저기 안에 남궁천 있다.”
“……!”
그제야 창응대와 생도들이 흠칫거리고는 무너진 바닥을 바라보았다.
“주군! 주구우운!”
“이럴 수가! 주구우운!”
손우곤과 차무진, 그리고 창응대원들이 일제히 무너진 바닥을 보면서 소리쳤다.
손우곤이 부하들을 향해 명령했다.
“파라! 다시 파! 주군을 꺼내야 한다!”
“존명!”
창응대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맨손으로 땅바닥을 파내기 시작했다.
공력을 담은 손으로 거칠게 파곤 있었지만, 바닥 자체가 단단한 바윗덩이로 이루어진 곳이라 쉽게 파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함부로 장력을 퍼부을 수도 없는 노릇.
혹여나 지하에 몸을 지킬 만한 공간이 있다면 그마저 무너뜨려서는 안 되기에.
생도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굳은 표정으로 창응대를 지켜보았다.
“그 녀석이…… 정말 못 빠져나왔다고? 그 괴물 같은 놈이?”
팽수혁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창응대를 지켜보았다.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어차피 대답을 바란 질문도 아니었다.
“대주님…… 틀렸습니다. 이 정도로 무너졌다면…… 가망이 없습니다.”
“무슨 소리냐?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주군은 그렇게 쉽게……!”
“대주! 정신 차리십시오! 여기서 어물쩍거리면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우리 등에 있는 게 뭔지 잊으셨습니까? 마단곡의 영단입니다! 누가 또 우릴 노릴지 모릅니다. 빨리 이동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대주! 주군의 뜻을 이어야 합니다. 이 큰 바윗덩이를 언제 다 옮길 수 있단 말입니까? 불가능합니다.”
“제길!”
콰아앙!
손우곤이 주먹으로 거칠게 바닥을 때렸다.
“어쩔 수 없구나. 그럼…….”
그때였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을…… 해라…….”
“응? 방금 목소리가……?”
“예? 무슨 목소리…….”
“쉿!”
손우곤이 주의를 주자, 아니나 다를까 어디선가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새끼들…… 아주 지랄을 해라…….”
“헉! 이 목소리는……?”
“엇! 저기! 저깁니다!”
마침 창응대 박창수가 가리킨 곳에 갈라진 바닥 사이로 손이 쑥 올라와 있는 게 아닌가?
“허억!”
놀란 손우곤이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는데, 손바닥이 바닥을 턱 짚더니 이내 바닥을 부수며 그림자가 휙 솟구치는 게 아닌가?
콰아앙!
처억!
후두둑……!
바닥에 착지한 자는 다름 아닌 남궁천!
그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부리부리한 눈으로 창응대원들을 노려보았다.
“이 새끼들, 듣자 듣자 하니까 은근히 바란 것 같더라?”
“절, 절대! 그럴 리가요!”
“그런데 땅은 왜 엉뚱한 곳을 파고 지랄이실까?”
“그, 그건 워낙 급박하다 보니 어디에 묻혀 계신지도 알 수가 없고…….”
“그리고 뭐? 무진이 이리 와. 가망이 없어? 내 뜻을 이어야 하니까 난 죽든 말든 포기하자고오오?”
“주, 주군! 오, 오햅니다…… 저는 정말로 주군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
“이리 안 와? 내 물건을 너희들 마음대로 들고 튀는 게 내 뜻이더냐? 어라? 너 거기 딱 안 서?”
“우아아악! 주구우운!”
차무진이 동혈을 달릴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냅다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