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177화 (177/508)

176. 내가 주인이다

“이 무슨!”

“조심햇!”

콰콰콰콰아앙!

갑자기 날아든 관 덮개가 생도들이 휘두른 병장기에 박살이 나면서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와 동시에 관 속에 있던 목내이들이 병장기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우아아악!”

“목, 목내이가 움직인닷!”

생도들이 기겁을 하며 물러나자, 그나마 강호 경험이 풍부한 창응대원들이 나서면서 공격을 막아냈다.

까가가앙! 쩡! 쩌저엉!

흑도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십의 목내이들이 관에서 쏟아져 나오면서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가리지 않고 공격을 퍼부어댔기에.

“제기랄! 이게 뭔……!”

“일단 저놈들을 처리합시다!”

요충이 소리치고는 얼른 도를 뽑아 들고 휘둘렀다.

쑤카아앙!

하지만 목내이들은 앞서 조우했던 토병들과 차원이 달랐다.

토병들은 어딘지 움직임이 어색했다면, 목내이들은 마치 살아 있는 강호 고수처럼 유연하고 힘 있는 움직임을 보였다.

쩌엉!

목내이와 도검을 부딪친 요충이 버럭 외쳤다.

“환혼대법에 이용된 혼들이 보통이 아닌 것 같소이다! 어쩌면 이놈들……!”

“안식을 취하지 못한 마교 장로들인 모양이군!”

흑선자의 대꾸에 장내가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나 생도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안식을 취하지 못했다는 건…….”

“영혼을 시체에 봉인했다는 말이겠군요.”

“그럼 강시란 말인가?”

팽수혁이 중얼거리자 유현이 고개를 젓는다.

“그러기엔 시신의 훼손 상태가 심합니다. 아마도 마교 장로의 혼을 저 목내이들에게 옮겨둔 것이겠지요.”

“허! 같은 마교도끼리 그런 짓을 한다고?”

“천마를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아먹을 마교도일 테니까요.”

유현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현의 말대로 목내이들의 무공 수준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게다가 뼈마디밖에 보이지 않는 목내이들의 신체는 마치 현철로 만들어진 것처럼이나 단단했다.

흑도인들이 마음껏 자르고 쑤셔대던 토병과는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제기랄! 하나같이 고수들이군! 이대로면…… 헉!”

순간 목내이 하나가 요충의 급소를 노리면서 빠른 속도로 파고들었다.

“방주님!”

찰나지간 하나밖에 남지 않은 정예 수하가 요충을 막아서며 칼을 휘둘렀다.

슈카아아앙!

금속성이 터지면서 불꽃이 일어난다.

동시에 정예 수하의 검이 부러져나갔다.

깡, 푸욱!

“커억!”

요충은 수하의 등을 뚫고 튀어나온 검봉을 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너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겠다!”

그가 심장이 꿰뚫린 수하의 등을 발로 걷어찼다.

퍼억!

수하가 앞으로 엎어지면서 그대로 목내이를 덮치자, 요충이 재빨리 몸을 날려 칼을 휘둘렀다.

서컥!

츄아아아아!

수하의 목과 목내의 목을 동시에 잘라 버린 것.

쿠쿠우웅!

목내이와 수하가 동시에 쓰러지면서 큰 소리를 울렸다.

마침 옆에서 목내이 하나의 갈비뼈에 손가락을 박아 넣던 적노파파가 냉소를 지었다.

“목내이 하나 처리하겠다고 수하까지 죽이다니. 비정하기 짝이 없군.”

“적노. 함부로 지껄이지 마쇼.”

요충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힐끔 돌아보자, 적노파파가 목내이의 갈비뼈를 뚝 부러뜨리면서 뒤로 훌쩍 물러났다.

촤아악!

미끄러지듯 멈춰 선 그녀가 여전히 냉소를 지우지 않은 채 대꾸했다.

“내가 틀린 말 했나? 토병들과 싸울 때도 수하들을 희생시키더니.”

“내 수하가 아니었으면 여태 살아 있지도 못했을 당신이……!”

버럭 소리치던 요충이 얼른 허리를 젖히며 날아들던 창을 피했다.

약이 바짝 올랐지만 지금은 적노파파와 말다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제길! 두고 봅시다!”

“그때까지 살아나 계시게.”

“흥!”

까가가강!

창이 현란한 속도로 요충의 요혈 곳곳을 내질러왔다.

요충이 칼춤을 추듯 몸을 휘돌리면서 막아냈다.

불꽃이 터지고 요란한 소리가 변주곡을 연주하듯 울린다.

적노파파는 여전히 그녀 특기인 십지혈공(十指血功)으로 목내이들을 상대했고, 흑선자는 검으로, 옥소공자는 부채를 휘두르며 싸웠다.

남궁천과 창응대, 그리고 생도들도 마찬가지.

이 아수라장을 지켜보던 철운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안 돼. 이대로는……! 저들은 죽지 않는 괴물들이야!’

그의 말은 정확했다.

요충이 마침 목내이의 창을 왼손으로 잡아 옆구리에 끼고는 오른손으로 도를 휘두를 때였다.

카아아앙!

목내이가 그대로 팔을 들어 막아내는 것이 아닌가?

보통 사람이라면 뼈째 잘려 나갔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목내이의 뼈는 멀쩡하기만 했다.

‘제길, 도대체 시신에 뭔 짓을 했기에……!’

그 순간!

푸욱!

섬뜩한 파육음이 고막을 파고든다. 아니, 이건 고막으로 들린 소리가 아니다. 온몸으로 전해진 감각이다.

“어……?”

요충이 멍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숙여 보니 왼쪽 가슴을 뚫고 검첨이 튀어나와 있다.

‘이게 왜……?’

분명 배후에는 아무것도 없었을 텐데?

비틀거리면서 중심을 잃는데 듣기 싫은 적노파파의 잔소리가 고막을 들쑤신다.

“이런 멍청한! 그때까지 살기나 하라니깐! 도대체 도움이 안 되는군!”

순식간에 날아든 적노파파가 요충의 등을 찌른 목내이의 어깨를 움켜잡더니 휙 집어 던졌다.

콰자앙!

그제야 요충은 자신의 등을 찌른 목내이가 목을 잃은 녀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조금 전 수하와 함께 목을 날려 버린 그 녀석이었다.

목을 잘랐는데도 죽지 않은 것이다.

아니, 이미 죽어 있으니 그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건가?

“제길…… 쿨럭!”

욕지거리를 내뱉고 싶어도 자꾸만 핏물이 올라와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쯧…… 남길 말이 있는가?”

적노파파가 냉담한 표정으로 쓰러진 요충을 바라본다.

요충이 피식 웃고는 마지막 말을 뱉어냈다.

“살아남기나 하쇼.”

“자네는 마지막까지 버르장머리가 없군.”

요충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눈동자는 빛을 잃은 후였다.

혀를 찬 적노파파가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한쪽에서는 흑도인들이, 다른 한쪽에서는 생도들과 창응대가 정신없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어쩌다 보니 연합전선이 펼쳐진 것처럼 보인다.

하나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자들이다.

‘흐음. 어린것들이 보통이 넘는군.’

확실히 생도라고 우습게 볼 수준이 아니다.

어지간한 중소문파의 정예 수준은 되는 듯하다.

하긴 무연회에서 팔 강에 든 생도들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그렇지.

강호 경험이 일천한 녀석들이라면 이런 기막힌 상황에서 공포에 질려 손발이 어지러워질 만도 한데. 잘도 버티는 중이다.

이건 우연으로 되는 게 아니다.

실력이 좋아서 되는 것도 아니다.

경험이 풍부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존재가 필요하다.

그리고 저들 중 구심점 역할을 하는 존재는…….

“저 아이인가?”

그녀의 시선이 남궁천에게 향한다.

과연 남궁천은 남다르다.

흑선자를 단숨에 제압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단지 방심한 틈을 노린 비열한 짓이 아니었다.

녀석은 그럴 만한 실력이 있다.

두어 구의 목내이가 동시에 달려드는데도 교묘하게 보법을 밟아서 유연하게 피한다.

보고 있자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직은 내공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도 않은데 움직임을 워낙 효율적으로 가져가니 쉽게 지치질 않는다.

‘저 아이가 우승자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자신의 눈이 틀림없다면.

‘무엇보다 저 기묘한 신법이 보통이 넘는구나.’

정통적인 경신법과 다르다.

실전에서 구르고 구른 신법 같다고나 할까?

한 걸음 한 걸음이 실전적인 묘리로 가득 차 있다.

도대체 저 나이에 어떻게?

마치 움직임만 보면 평생 천라지망을 따돌리며 도망만 다녀본 자 같지 않은가?

저토록 현란한 신법을 펼치는 자는 지금껏 본 적이 없다.

아니, 딱 한 명 있군.

무림공적 제일호였던 진천랑.

천하대살성.

그러고 보니 남궁세가에 그자의 아들이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저 아이였던가?

‘피는 못 속이는군.’

하나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창응대의 등짝에 하나씩 들쳐 멘 상자들.

‘저기에 영단이 들어 있을 터!’

적노파파가 바닥을 차며 몸을 휙 날리는 순간이었다.

콰콰콰콰아앙!

돌연 단상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더니 시커먼 그림자가 불쑥 올라오는 게 아닌가?

쿠우웅!

육중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착지한 목내이는 주변에서 달려들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피부가 훨씬 덜 썩었고, 비교적 선명한 눈알까지 보존된 상태. 그러다 보니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는 그 눈빛이 흡사 살아 있는 자를 보는 것만 같다.

거기에 머리에 쓰고 있는 금관!

실질적으로 이 무덤의 주인인 고대 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아!”

왕이 허리를 꺾으며 사자후를 터뜨리자 왕의 처소가 통째로 쩌렁쩌렁 울린다.

“크윽!”

“으윽!”

사투를 벌이던 사람들이 저마다 신음을 터뜨리며 비틀거렸다. 얼른 내공을 끌어 올려 청각을 보호했지만 내상을 입어 피를 토하는 자도 적지 않았다.

“조, 조심!”

흑선자가 버럭 소리쳤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진 왕이 어느새 적노파파 앞에 다다라서는 눈을 가늘게 뜨는 게 아닌가?

꿀꺽!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을 것 같던 적노파파도 흉흉한 몰골의 목내이 왕을 코앞에서 대면하자 긴장이 됐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너덜너덜한 살갗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가히 소름이 끼칠 정도로 괴이하다.

“칫, 어딜!”

적노파파가 붉게 달아오른 손을 재빨리 내질렀다. 손가락 하나하나에서 검붉은 기운이 폭사한다.

슈우우욱, 푸욱!

‘됐다!’

적노파파의 다섯 손가락이 목내이 왕의 목덜미에 박혀들었다.

그런데…….

’왕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대신 썩어서 구멍이 난 뺨을 씰룩이면서 손을 불쑥 뻗어오더니 적노파파의 턱을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팍!

“커읍!”

목내이가 적노파파의 턱을 움켜쥔 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허공으로 떠오른 적노파파를 보면서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갔다.

‘적노파파를 저리 쉽게……!’

흑선자가 몸을 가늘게 떨었다.

적노파파는 자신이 전력을 다해도 이길 자신이 없는 노고수다.

한데 목내이 왕은 그런 적노파파를 한 손으로 제압하고 있다.

“죽은 부교주에게 환혼대법이라도 쓴 걸까요?”

옥소공자가 쓴웃음을 짓는다.

‘제길, 너는 웃음이 나오냐?’

흑선자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차는 순간,

슈우우욱, 꽈다아앙!

한 쪽 구석으로 포탄처럼 날아간 적노파파가 아무렇게나 구겨지며 쓰러졌다.

“쿠아아아아!”

목내이 왕이 다시 허리를 꺾어들고 포효했다.

“젠장, 저놈의 소리 좀!”

“크윽! 고막이……!”

흑도인들은 물론 창응대와 생도들도 귀를 틀어막으며 주춤거렸다.

아수라장이 된 상황을 지켜보던 철운이 슬금슬금 물러나다가 한쪽 벽에 걸린 촛대를 휙 낚아챘다.

‘지금이라도!’

그가 순간 촛대를 아래로 꺾어 버리자, 갑자기 바닥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우웅!

곧이어 사방팔방에 금이 쩍쩍 가더니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처럼 공동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긍……!

그리고 철운이 서 있는 곳 바로 옆. 벽인 줄만 알았던 공간이 옆으로 밀려나면서 계단이 드러났다.

철운의 표정에 비장함이 실렸다.

“살아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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