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가마우지 낚시
슈캉! 퍽! 퍽썩!
“크잇! 물러서지 말고 끝까지 막아랏!”
거대한 석문 앞에 선 요충이 지칠 줄도 모르고 달려드는 토병에 맞서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벌써 정예 수하들 중 절반이 죽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고는 외쳤다.
“빨리 문 좀 열라니까!”
“제기랄! 사슬이 끊어져 버린 걸 어쩌란 말이냐!”
흑선자가 버럭 외쳤다.
상황이 급박해지니 서로에 대한 존중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젠장, 이러다 다 죽겠군!”
“힘을 모아 문을 밀어볼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럼 누가 이놈들을 막아낸단 말이냐?”
옥소공자의 의견에 적노파파가 짜증스레 대꾸한다.
정말이지 이대로 가다간 토병들에게 깔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방진을 구축해서 토병들을 상대하며 간신히 석문까지 다다랐는데, 하필이면 쇠사슬을 잡아당기자 툭 끊어지고 만 것이다.
낙담할 새도 없이 수백의 토병들이 쉴 새 없이 달려들었다.
요충과 정예 무인들 그리고 옥소공자와 적노파파가 토병들을 막았다. 그러는 동안 흑선자가 내공을 끌어 올려 석문을 밀었으나 역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타아앙!
“제길! 글렀어! 어떻게든 해야겠는데…….”
흑선자가 석문을 주먹으로 치고는 낙담한 채로 중얼거렸다.
촤아아악!
요충이 칼을 휘둘러 토병의 머리를 날려 버리고는 뒤를 휙 돌아보았다.
“일단 이놈들을 막다가 셋을 세면 동시에 문을 때리는 게 어떻겠소?”
“끄음. 그것도 방법이 되겠군.”
“찬성입니다.”
“해보지.”
흑도인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요충이 칼을 휘둘러 토병의 가슴을 베어 버리고는 소리쳤다.
“하나! 두울……!”
팍! 퍼억!
저마다 병장기를 크게 휘둘러 토병들을 물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셋!”
파바바밧!
퍼퍼펑! 쩌엉! 쾅!
동시에 석문으로 달려간 흑도인들이 일시에 공력을 퍼부었다.
쿠구구구궁……!
천지가 격동하듯 엄청난 진동이 일어나면서 공동 천장에서도 흙먼지가 떨어져 내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토병들이 잠시 주춤거렸으나 곧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달려들기 시작한다.
“다시!”
이번엔 흑선자가 소리쳤다.
“하나, 두울! 셋!”
파바바바밧!
퍼퍼퍼퍼퍼펑! 콰앙! 쩌정!
거대한 석문이 몸살을 앓을 듯 소리를 내지르며 부르르 떨어댄다.
꾸구웅……!
마침내 석문이 살짝 열리면서 미세한 틈이 생겨났다.
“통, 통한다!”
요충이 주먹을 불끈 쥐고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번 일격에 모든 걸 쏟아붓자고! 어차피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죄다 뒈지는 것이니!”
“좋소!”
“그럼…… 하나, 둘, 셋!”
파바바밧!
쩌저저저정! 콰아아앙!
석문에 장력이 작렬하자 고막이 터질 것처럼 시끄러운 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마침내 빗장이 부러진 것인지 석문이 활짝 열렸다.
터엉!
어찌나 세게 열렸는지 벽에 부딪친 석문이 그 반동으로 다시 닫혔다가 열렸다.
“돼, 됐다! 안으로!”
“어서! 서둘러라!”
흑도인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적상방 정예 무인 몇 명은 여전히 남아서 밀려드는 토병들을 막느라 급급했다.
요충이 얼른 안으로 들어선 다음 소리쳤다.
“문을 닫아라!”
“방주님, 아직 들어오지 못한 자들이…….”
“어쩔 수 없다! 문을 닫아!”
“복명!”
수하들이 얼른 문을 닫으려고 하자, 밀려드는 토병을 막아내던 정예들이 소리쳤다.
“엇! 기다려주십시오!”
“너희들의 희생을 잊지 않으마.”
“방주님! 안 됩……!”
하나 요충은 가차 없이 석문을 닫아 버렸다.
순간 흑선자가 부러진 빗장을 들고 훌쩍 날아올랐다.
파라라락!
덜컹!
부러진 빗장을 다시 채워 넣은 흑선자가 바닥에 사뿐히 착지했다.
“후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소.”
“이 지독한 마교 새끼들. 저 토병들을 병기로 만들려고 수백 명의 혼을 붙들어두다니!”
“어쨌든 이제 살아서 다행입니다. 계속 가시지요.”
옥소공자가 차분하게 대꾸하자, 적노파파가 코웃음을 쳤다.
“아직은 살아 있지만, 앞으로 어찌될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지. 이제 또 뭐가 튀어나올지 어찌 알겠나?”
그녀가 눈앞에 펼쳐진 어두컴컴한 복도를 응시했다.
확실히 불길한 기운이 가득 풍겨지는 복도다.
어디선가 창이 날아들거나 어느 순간 갑자기 화염에 휩싸여도 이상하지 않을.
그러고 보니…….
“어째 점점 더워지는 것 같지 않소?”
“갑자기 공력을 쏟아냈으니 더울 만도 하지.”
흑선자가 손부채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하나 옥소공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벽에 손을 대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또 시험에 빠진 모양입니다.”
“시험이라니?”
“단순히 공력 소모로 더운 게 아닌 것 같습니다. 확실히 바닥과 벽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뭐야?”
요충이 얼른 달려가서 측벽에 손을 댔다.
후끈후끈.
확실히 체온보다 온도가 높다.
“이런 젠장! 이젠 구워죽일 작정이냐!”
요충이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훔치며 연신 씨근거렸다.
“이거 어쩌면 우리가 길을 잘못 든 게 아닐까 싶군요.”
“어차피 왕과 왕비의 문이 하나로 연결되는데 길을 잘못 들다니?”
“더 아래쪽일 수도 있겠지요.”
“아래쪽이라면……!”
흑선자가 흠칫거리고는 옥소공자를 돌아보았다. 옥소공자가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예, 어쩌면 그 생도들이 진짜 입구로 들어갔을지도요. 뭐,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입니다만.”
그러자 요충이 버럭 소리쳤다.
“그럼 안 되지! 행여나 그놈들이 먼저 마단곡에 다다르면 닭 쫓다가 지붕 쳐다보는 꼴밖에 더 되겠는가!”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
“만에 하나라도 있어선 안 될 일일세! 어서 가자! 더 뜨거워지기 전에!”
“잠깐……!”
하지만 벌써 요충의 부하들이 먼저 후다닥 달려 나갔다.
앞서 어물쩍거리다가 토병들에게 매장당한 동료들을 보았기에 더욱 거침이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다.
키이잉!
양쪽 측벽에서 울린 소리 같았는데, 무심코 달리던 정예 무인들이 우뚝 멈춰 섰다.
곧이어,
쉬이이잉!
서걱! 서걱! 서걱……!
목과 배와 무릎이 삼등분되면서 쓰러지는 정예들!
마치 빛줄기가 갈라 버린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뭔가에 썰려서 토막이 나 버렸다.
퍼퍼퍽, 촤촤아악!
한낱 고깃덩이로 변해 버린 정예들이 복도에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그 자리에 멈춰 선 요충이 두 눈만 끔뻑였다.
“뭐, 뭐야? 도대체 뭐에 당한 거야?”
“아무래도 은잠사 같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고 복도를 빤히 바라보던 옥소공자가 읊조리듯 말했다.
요충이 눈썹을 성큼 치켜 올렸다.
“은잠사라니?”
“복도를 가로지르는 은잠사가 양쪽 측벽에 연결되어 있는 것 같군요. 사람이 지나가면 기관이 작동하면서 팽팽하게 당겨진 은잠사가 빠르게 이동하는 거죠. 그러고는 사람을 고깃덩이처럼 썰어 버리는 겁니다. 거미줄만큼이나 가늘어서 눈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군요. 더구나 이렇게 어두워서야.”
“으아아! 이 마교도 개새끼들! 진짜 대가리를 부수고 싶구나!”
벌써 수하를 몇이나 잃었나?
이제 남은 정예 수하는 겨우 둘 뿐이다.
옥소공자가 쓴웃음을 지으며 일어났다.
“이거 꽤 까다롭게 됐네요. 은잠사가 어디에서 어떻게 우리를 지나치며 썰어 버릴지 알 수가 없으니. 어쩌면 상하로 움직이는 은잠사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도 계속 여기 머물 수는 없는 노릇. 은잠사는 공력으로 끊어 버리거나 막아낼 수 있지만, 초열지옥에서는 공력도 무소용이지. 이젠 발바닥이 뜨거워지고 있어.”
적노파파가 날카롭게 중얼거리고는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다른 이들도 각오를 다진 듯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굽혀 뒈지는 것보다야 낫겠지. 부딪쳐 보자고!”
* * *
“와아. 대박이다. 이게 다 얼마야?”
팽수혁이 순수하게 감탄하면서 왕의 처소를 둘러보았다.
백무극과 유현도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생경한 풍경에 넋을 놓고 구경했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처럼 휘황찬란했다.
팽수혁이 측벽에 세워진 금빛 관에 다가가서는 덮개를 옆으로 슬쩍 밀었다.
“여기에 보물이…… 으허어억!”
화들짝 놀란 팽수혁이 뒤로 물러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의 기대와 달리 금빛 관 안에는 보물이 아니라 다 썩어가는 목내이(木乃伊: 미라)가 들어 있었던 것.
다만 약품 처리를 어떻게 한 것인지 썩는 냄새는 풍기지 않았다. 오히려 은은하게 좋은 향기마저 나는 듯했다.
마침 철운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거, 아무거나 만지지 마시오! 여기가 마단곡이라는 걸 잊었소? 기관 장치가 어디서 어찌 작용할 줄 알고!”
“커흠. 조심하지. 아니, 그런데 왜 성질을 내고 지랄이야? 인질 주제에!”
“흥!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성질 부리는 게 뭐가 어때서!”
철운이 팽수혁의 눈길을 피하고는 단상 위의 관으로 다가갔다.
그가 관 덮개를 한 차례 훑어보더니 덮개 아래쪽의 구멍으로 손가락을 쑥 집어넣고 공력을 발출했다.
퉁!
팽팽한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
생도들이 흠칫거리고는 괜히 주변을 살폈다.
또 어디선가 기관이 작동하는 건 아닌지 의심한 탓이다.
때마침 어디선가 요란한 충격음과 진동이 연이어 들려왔다.
구웅! 구우웅……!
“뭐,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그러자 철운이 냉소를 지으며 답했다.
“쫄 것 없소이다. 어차피 길을 잘못 든 자들이 죽어가는 소리니까.”
“길을 잘못 든 자라니? 혹시…….”
“위쪽 다른 길로 누군가 들어선 모양이군. 여기까지 살아서 들어오긴 힘들 거요.”
“아…….”
그제야 생도들은 도중에 만났던 흑도인들이 떠올랐다.
어쨌거나 그렇게 몇 가지 조치를 취한 철운이 마침내 덮개를 열었다.
스르르르릉!
묵직한 덮개가 밀려나자 그 안에 빼곡하게 채워진 영단 상자가 드러났다.
덮개만 열었을 뿐인데도 청아한 향이 왕의 처소에 가득 채워지는 듯했다.
정말이지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맑아지는 듯하다.
“오오, 드디어!”
“대단하군. 이게 마단곡에 보관된 영단인가?”
“내가 이런 걸 보다니.”
생도들이 저마다 모여들어 감탄을 터뜨렸다.
철운이 다시 관을 이리저리 만지자, 이내 관 전체가 스르릉 소리를 내며 밀려났다.
그러자 단상 아래쪽에도 커다란 공간이 나타났다.
그 안에는 관에 든 것보다 더 많은 상자들이 놓여 있었다.
“이제 됐소?”
철운이 진득한 아쉬움을 담고 말하자, 남궁천이 입매를 비틀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수고했어. 얘들아, 챙겨!”
“좋았어! 맡겨만 두라고!”
팽수혁이 소매를 걷고 성큼 나서려는데, 남궁천이 어깨를 움켜잡았다.
탁!
“응? 왜?”
“어디서 개수작이야?”
“챙기라며?”
“너 말고. 어디서 굴러 들어온 주제에 내 물건에 욕심을 내?”
“그럼 누구보고 챙기라는 거야?”
그 순간 천장에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생도들은 물론 철운도 깜짝 놀라서 후다닥 물러났다.
“웨, 웬 놈들……?”
그들은 바로 창응대였다.
창응대주 손우곤이 남궁천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물건 확보하겠습니다, 주군!”
“그래, 하나씩 짊어지라고.”
“존명!”
그렇게 창응대원들이 상자를 하나씩 짊어지기 시작하자, 생도들과 철운이 멍한 표정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다만 철운은 내심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들을 응시하며 속으로 뇌까렸다.
‘흥! 절대 고분고분 죽어주진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