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174화 (174/508)

173. 가마우지 낚시

“우아아아앗!”

“움, 움직였다! 토병이 살아 있다!”

“으어어억!”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정예 무인들이 우왕좌왕거리자 요충이 버럭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헉!”

요충이 헛바람을 삼키고는 물러나다가 등 뒤의 누군가와 툭 부딪쳤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얼른 몸을 굴려서 피했다.

콰콰아앙!

놀랍게도 토병이 자신을 공격해 오는 것이 아닌가?

“토, 토병이 어째서……?”

“제길! 이것들 움직이는 놈들이오! 다들 조심하시오!”

“토병이 살아서 움직이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거요?”

불평에 가까운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당장 맹공을 퍼부어대는 토병이 수백 명이었다.

캉! 까가앙!

“다들 집중해라! 토병과 싸워서 살아남지 못하면 여기가 무덤이 된다!”

요충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자신을 향해 창을 내지르는 토병의 팔을 잘라냈다.

퍼억!

토병의 팔이 떨어져 나가자 그대로 흙가루처럼 퍼진다.

그 모습을 본 요충이 이를 뿌득 갈았다.

“도대체 이게 뭔 조화란 말인가!”

마침 토병 하나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잡아 뜯어 버린 적노파파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에 마곡단이 있다는 걸 잊은 건 아닐 테지?”

“아……!”

“애초에 토병이었어도 마교도 놈들이면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지!”

퍽! 퍼퍽!

적노파파가 이를 갈며 연이어 칼날 같은 손가락을 내질렀다.

열 손가락이 토병의 가슴과 배에 푹푹 파묻힌다.

하나 토병은 고통을 느끼는 대신 적노파파를 무심히 바라보다가 주먹을 내지른다.

슈우우욱!

“한낱 인형 따위가!”

촤촤아아악!

적노파파의 열 손가락이 사선으로 갈라지면서 토병의 몸이 갈가리 찢어져 나갔다.

퍼썩……!

그대로 모래성처럼 무너진 토병 사이로 싯누런 한지가 드러났다.

“과연…… 환혼부(喚魂符)인가?”

“환혼부라니! 이 악랄한 마교도 놈들이 환혼대법을 썼구나!”

연신 칼을 휘두르는 요충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환혼대법은 한마디로 죽은 이의 혼을 인형 따위의 몸으로 소환하는 마교의 대법이었다.

달려드는 토병들을 부채로 연신 베어내던 옥소공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오래전 실전된 줄 알았는데…… 역시 마교가 환혼대법을 숨기고 있었던 거군요.”

“흥! 그래 봐야 이젠 망해 버린 마교 놈들이니 더 이상 이런 악랄한 짓은 못하겠지!”

“그나저나 이렇게 한복판에서 싸우다간 우리가 먼저 지쳐 떨어질 겁니다. 일단은 방진을 구축해서 천천히 이동하는 게 어떨까요?”

“제길! 정말이지 징글징글하게 많군! 공자의 말대로 방진을 구축합시다!”

흑도인들이 천천히 움직이면서 서로를 등지고 기본적인 방진을 구축했다.

“천천히 돌아가면서 길을 열도록 합시다! 안 그랬다간 흙더미에 깔려 죽겠소!”

“명령질이 몸에 밴 모양이군. 자네 역할이나 잘 하게. 괜히 대가리에 구멍 나서 민폐 끼치지 말고.”

적노파파의 날 선 반응에 요충이 차갑게 웃어 버리고는 칼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오냐, 달려들어라! 본좌가 영혼의 안식을 주마!”

* * *

슈슈슈슉!

생도들 머리 위로 세침 수백 개가 스쳐 갔다.

팽수혁이 고개를 들려고 하자, 철운이 나직이 외쳤다.

“아직이오!”

“끄응.”

팽수혁이 다시 바짝 엎드리자, 아니나 다를까 측벽에서 장창 수십 자루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스카카카캉!

스스스슥……!

만약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더라면 머리에 구멍 두어 개가 뚫렸으리라.

“이제 됐소.”

철운이 말을 뱉고 나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른 생도들도 그제야 일어서면서 몸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제길, 귀찮네. 여기로 가면 안전한 것 아니었어? 무슨 기관 장치가 이렇게 많아?”

팽수혁이 볼멘소리를 내뱉자 철운이 힐끔거리고는 말했다.

“그나마 이쪽이 안전한 길이오. 지금쯤 위쪽에서는 난리가 났을 거요.”

“무슨 난리?”

“지금쯤 토병들과 목숨 걸고 싸우고 있을 거요.”

“토병?”

팽수혁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철운은 더 이상의 설명을 생략했다.

남궁천이 팽수혁 등을 툭 치며 지나갔다.

“자자, 가자고. 그래도 길잡이가 있으니 편하잖아? 뭐, 가끔 열리지도 않는 문을 열어보겠다고 낑낑거리는 바보가 있어서 재미도 있고.”

“야, 야! 그건 저 새끼가 좀 더 일찍 말했으면……!”

“딱 봐도 알겠더구만. 쇠사슬 잡아당기면 문이 열릴 거라는 걸.”

남궁천이 어깨를 으쓱이며 걸어가자, 팽수혁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연신 씨근거렸다.

“쳇! 진작 말했으면 내가 그렇게 힘을 뺐겠어? 솔직히 백무극, 너도 몰랐지? 안 그래?”

“쇠사슬 잡아당기려고 했다.”

“거짓말 하지 마!”

“진짜다.”

백무극이 무심하게 대꾸하고는 지나가자, 팽수혁이 괜히 철운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따악!

“크윽! 뭐, 뭐요?”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내가 석문을 열겠다고 나설 때 미리 말했어야지.”

“흥! 누가 알았겠소? 옆에 쇠사슬이 보란 듯이 늘어져 있는데, 그걸 무식하게 힘으로 열겠다고 낑낑거릴 줄!”

“뭐, 뭐 이 새끼야? 너도 내가 만만해 보이냐?”

팽수혁이 느닷없이 쇠사슬을 낚아채서 잡아당기자, 목이 조인 철운이 컥컥거리며 바닥을 굴렀다.

뒤늦게 유현이 나서서 말렸다.

“이러다 죽겠습니다.”

“비켜! 어차피 저 새끼가 별로 하는 일도 없잖아? 죽여 버리겠어!”

“진정하세요.”

유현이 부드럽게 웃으며 달래자, 팽수혁이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철운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따악!

“크윽!”

“도대체 왕의 처소는 언제 나와? 무슨 무덤이 이렇게 넓어!”

“거, 거의 다 왔소.”

철운이 숨을 몰아쉬며 내심 이를 갈았다.

‘이 개 같은 놈들이……! 대체 내가 어쩌다가 이런 생도 놈들에게 잡혀서는……!’

그의 시선이 힐끔 남궁천에게로 향한다.

모든 게 저 남궁천 때문이다.

저놈만큼은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다. 뭔가 모를 위화감이 느껴진달까?

분명 어린 생도인데도 노회한 경험을 가진 강호 고수의 풍모가 느껴진다.

마침 눈이 마주친 남궁천이 쇠사슬을 툭툭 잡아당긴다.

“뭐하고 있어? 안 일어나고?”

“이제 계단만 오르면 끝이오.”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겨우 몸을 일으킨 철운이 비척거리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남궁천은 여전히 주위를 둘러보면서 그 뒤를 따랐다.

확실히 왕릉은 넓고 깊었다.

만약 가마우지 전략을 쓰지 않았더라면 이 복잡한 길을 다 꿰뚫고 왕의 처소까지 진입하기가 꽤나 어려웠으리라.

그러고 보면 적재적소에 나타나준 가마우지가 고마울 뿐이다.

“고맙다, 가마우지야.”

새삼 감사 인사를 하자, 철운이 불신 가득한 눈으로 휙 돌아본다.

“뭐, 뭐요?”

“뭐가?”

“왜 갑자기 그런 말을…….”

“새끼가 고맙단 말을 해줘도 지랄이네.”

“그러니까 그게 이상하잖소! 혹시…… 왕의 처소에 도착하면 날 죽이려는 거요?”

음? 그러고 보니 거기까진 생각을 해보지 않았네.

남궁천이 고민하는 듯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자, 철운이 해쓱한 표정으로 외쳤다.

“어찌 그럴 수가 있소! 나는 당신들을 안전하게 안내했는데!”

“왜 호들갑이야? 아직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그러지 않고서야 갑자기 고맙니 어쩌니 하는 말을 할 리가 없잖소!”

“이 새끼가 내 순수한 마음을 그딴 식으로 매도하네. 솔직히 말하면 도착하고 나서 너를 어찌할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네 말을 듣고 나니 좀 고민이 되네.”

“그런…….”

철운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갔다.

남궁천이 쇠사슬을 잡아당기며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그만 노려보고 어서 걸어. 가마우지가 사냥을 안 하면 죽일 수밖에.”

“어차피 사냥하고 나서도 토사구팽할 거잖소!”

“그건 개새끼고. 너는 가마우지잖아.”

“그거나, 그거나!”

“다르지. 개는 네 발 달린 짐승이고, 가마우지는 날개 달린 새인데.”

“그걸 지금 말이라고…….”

“자자, 시끄럽고. 걸어라. 여기서 목 찢어지기 싫으면.”

“……!”

철운이 어금니를 뿌득 갈았지만 더는 따지지 못하고 계단을 올랐다.

남궁천이 다시 그 뒤를 따르자, 유현이 조용히 다가섰다.

“확실히 문제가 되겠습니다.”

“응? 뭐가?”

“왕의 처소에 도착하면 저자를 살릴지 말지에 대해서요.”

“으음. 그래도 충실한 가마우지니까 죽이기엔 좀 미안한데.”

“하지만 화근이 될 수 있으니 제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

남궁천이 입을 딱 벌리고 유현을 다시 보았다.

“너 진짜 무서운 녀석이구나?”

“예? 아, 전 그저…… 위험을 피하고자…….”

“소오름. 지금까지 도인의 풍모를 풍기던 모습은 다 가짜였던 거야? 대박. 소오오름.”

남궁천이 몸을 부르르 떨며 걸어가자, 그 뒷모습을 유현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침 백무극이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간다.

“독한 녀석.”

“네가 우리 편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팽수혁마저 나직이 중얼거리며 지나간다.

‘또 나만…… 쓰레기 된 거야?’

그렇게 생도들이 계속 계단을 올라가자 마침내 다시 커다란 공동이 나타났다.

앞서 걷던 철운이 공동 복판을 지나는 순간 느닷없이 버럭 소리쳤다.

“전방 세침!”

파바밧!

생도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바닥에 바짝 엎드린다.

찰나,

타다닷!

“엇!”

철운이 갑자기 후다닥 달려 나가는 게 아닌가?

쇠사슬을 놓친 남궁천이 잠깐 어리둥절하다가 곧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벌떡 일어났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을 봤나? 감히 날 속여?”

“으아아아! 어차피 날 죽일 것 아니냐?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철운이 필사적으로 달아났지만, 사슬에 목이 묶인 상태로 남궁천의 경공술을 당해내기란 애초에 무리였다.

허공을 붕 가로지른 남궁천이 그대로 철운의 등을 차서 날려 버렸다.

퍼억!

쿠당탕탕!

바닥을 한참이나 구른 철운이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다가와 쇠사슬을 쥔 남궁천이 공력을 불어넣으며 바짝 잡아당겼다.

숨이 턱턱 막히고 살갗이 당장에라도 찢어질 것처럼 따가웠다.

“끄으윽……!”

“어디서 개수작이야? 뒈지고 싶어?”

“컥,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발악이라도 해봐야 할 것 아니오!”

“유현! 너 때문에 가마우지가 말을 안 듣잖아!”

“끄음. 하면 죽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면 어떨지요? 가령 이런 식으로 나오면 목을 아주 천천히 찢어서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거나…….”

“…….”

“…….”

생도들이 저마다 입을 딱 벌리고 바라보자, 유현도 이젠 체념한 듯 어깨를 으쓱였다.

철운이 눈물을 흘리며 쌍욕을 퍼부었다.

“너 이 개새끼! 화산파 아니지? 네가 제일 독한 새끼야! 내 죽어도 원혼이 되어서 널…….”

따악!

남궁천이 철운의 뒤통수를 후려치고는 으르렁거렸다.

“지랄하지 말고 문이나 열어.”

“크윽.”

철운이 어쩔 수 없이 앞으로 걸어가 석문의 사슬을 잡아당겼다.

촤르르륵. 철컹!

마침내 문 반대편에서 빗장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육중한 석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드러나는 왕의 처소!

생도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우와아!”

“전부 금인가?”

왕의 처소는 온통 금칠이었다.

금빛 촛대와 벽을 둘러싼 금빛 관, 금빛 단상과 곳곳을 장식한 금빛 조형물들.

그리고 처소 복판에 놓인 휘황찬란한 관!

남궁천이 씨익 웃었다.

“찾았다. 마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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