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173화 (173/508)

172. 가마우지 낚시

“흐음. 어디로 가는 게 좋겠소?”

흑선자가 웅장한 석문을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에게 던진 질문인지는 스스로도 모른다.

그냥 아무라도 의견을 내보라는 뜻. 어차피 답을 아는 자가 없을 테니.

“자고로 왕릉이면 역시 왕의 문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소?”

적상방주 요충은 왕이 양각된 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적노파파가 코웃음을 친다.

“흥! 그리 쉬울 것 같으면 문을 두 개로 나눌 필요도 없었을 테지.”

“하하. 적노께서는 애초에 여기가 마단곡이라는 생각만 하시오? 여긴 마단곡 이전에 왕릉이었던 곳이오.”

“그게 무슨 상관이란 거지?”

“마교가 영단을 숨기려면 당연히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숨겼을 거란 말이외다. 그럼 왕릉에서 어디가 가장 접근하기 어렵겠소? 도굴꾼이 가장 들어가고 싶지만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 어디겠느냐는 말이오.”

“왕의 관이 묻힌 곳이란 말이군.”

“그렇소. 이곳을 왕궁처럼 지었을 테니, 그렇게 본다면 역시 왕의 처소가 가장 진입하기 어려울 것 아니겠소? 하면 영단도 그곳에 모아두었을 터.”

“하나 자네는 이곳이 마단곡이라는 생각을 아예 안 하는 모양이군.”

“뭐요?”

“마교주가 자네처럼 생각할 자를 의식하지 않았을까? 여기까지 기어 들어온 자라면 전부 왕의 처소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을까?”

“끄음. 그렇다고 해도…… 하면 적노께서는 왕비전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요?”

“그런 말은 한 적 없다. 그리 단순하게 판단할 일이 아니란 뜻일 뿐이지.”

요충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고집을 꺾고는 다른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두 분은 어찌 생각하시오?”

“확실히 단순하게 생각하면 왕의 처소가 마단곡일 테지. 하나 마교주의 입장에서는 한 번 꼬아서 생각할 수도 있겠어.”

흑선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옥소공자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자칫 제 꾀에 제가 속아 넘어갈 까봐 걱정입니다. 우선은 상식적으로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상식적이라 하면…… 역시 왕이 처소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번엔 딱히 반대하는 자가 없었다.

오히려 요충이 불안한 표정을 비쳤다.

“그러다가 혹시라도 왕비의 처소에 마단곡이 있다면…… 역시 인원을 나누는 게 좋지 않겠소?”

“하면 요 방주께서 왕비의 처소로 가시겠소?”

“끄음.”

요충이 침음을 흘리고는 먼 산을 보자, 흑선자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인원을 나눈다고 해봐야 요 방주만 따로 가게 될 텐데. 그걸 원치는 않으실 테고.”

“크흠. 알겠소. 갑시다. 왕의 처소로.”

요충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더니 거대한 석문 앞에 멈춰 섰다. 그 뒤를 세 명의 흑도인들이 따랐다.

요충이 양손을 육중한 석문에 대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하아앗!”

우렁찬 기합성과 함께 석문에 힘이 가해졌다.

우우우우웅!

공력이 발출되면서 석문이 공명하며 떨어댔다.

드드드드……!

석문이 진동하기 시작하니 가장자리에서 먼지가 풀썩풀썩 일어난다. 바로 뒤에 서 있던 흑도인들이 주변을 훑어보았다. 적상방의 정예 무인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요충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진동을 일으키면서도 꿈쩍하지 않는 석문.

“이여어어업!”

요충이 다시 한번 기합성을 끌어 올렸다.

드드드드드드……!

역시나 석문이 꿈쩍하지 않는다.

이제 요충의 얼굴은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뒤에서 지켜보던 흑선자가 헛웃음을 짓더니 요충에게 다가갔다.

“요 방주. 너무 애쓸 것 없소. 내가 해보리다.”

“아직…… 전력을 다하진…… 않았소!”

“허어, 시간이 없소.”

“아직…… 내가 힘을…… 아끼고 있다니까…….”

자존심이 상한 요충은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결국 흑선자가 냉소를 짓고는 옆으로 다가섰다.

“알겠소. 하면 시간을 절약할 겸 내가 돕겠소.”

“그러시오.”

“이여어어어업!”

흑선자가 내공을 끌어 올리면서 쌍장을 내질렀다.

퍼어엉!

순간 그의 장삼이 크게 부풀어 오르면서 시커먼 기운이 석문을 확 덮쳐갔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아까보다 더 강한 진동이 울린다.

구구구구구……!

석문을 중심으로 공동 전체에 내공이 공명하면서 고막을 저릿하게 울려댄다.

하지만…….

“사내들이 되고서 저리 힘이 약해서야. 쯧쯧.”

적노파파가 뒷짐을 진 채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석문이 꿈쩍도 하지 않기에.

결국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흑선자와 요충이 거의 탈진할 지경이 되어서야 물러났다.

“헉, 헉, 허억……!”

“젠장…… 어째서 문이…….”

“공자! 왜 도와주지 않는 건가?”

흑선자가 짜증스럽게 돌아보며 힐난하자, 옥소공자가 희미하게 웃으며 주변을 살폈다.

“두 분이 힘을 합해도 열 수 없다면…… 애초에 힘으로는 열 수 없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교묘한 대답에 흑선자가 더는 따지지 못하고 어깨를 들먹이며 씨근거렸다.

두 사람을 힐난하던 적노파파도 침음을 흘리며 턱을 괴곤 생각에 잠겼다.

“이상하군. 애초에 열 수 없도록 만들어진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으니 왕비 문을 열고 들어갑시다.”

“잠시만요.”

한참 동안 석문을 바라보던 옥소공자가 한옆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곳에는 쇠사슬이 축 늘어져 있었는데, 석문 귀퉁이에 붙어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기가 어려웠다.

철커덩!

쇠사슬을 잡아당기니 거친 소리가 울렸다.

옥소공자가 손에 공력을 불어넣고 다시 쇠사슬을 잡아당기자 문 너머에서 뭔가가 마찰을 일으키듯 소리를 울린다.

그그그그긍……!

흑도인들의 낯빛에 화색이 돌았다.

“오오, 빗장이 있던 것이었나?”

“과연! 그러니 온 힘을 다해도 열리지가 않았던 거로군!”

흑선자와 요충이 고개를 끄덕이며 석문을 빤히 보았다.

옥소공자가 계속 쇠사슬을 잡아당기자 석문 너머의 빗장이 완전히 올라간 것인지 ‘철커덩!’ 하는 소리가 다시 울렸다.

곧이어,

구구구구궁……!

육중한 석문이 저절로 스르르 밀려나면서 열리기 시작했다.

“오오오!”

요충이 반색하며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옥소공자가 빙그레 웃으며 돌아섰다.

“약간 경사가 진 데다 석문 중심을 무겁게 만들어서 저절로 열리도록 했군요.”

“과연. 이리 간단한 것을 몰랐다니. 냉철한 관찰력에 감복했소, 공자.”

“별말씀을.”

옥소공자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흑도인들이 열린 문틈을 통해서 들어가자 과연 왕궁의 복도를 거니는 것처럼 장엄한 광경이 펼쳐졌다.

좌우로 양각된 병사들이 그들을 말없이 주시했고, 천장에는 값비싼 야명주가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실제 고대 왕궁을 방문한 것만 같은 느낌.

하나 그들은 곧 허망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막상 안으로 들어와서 보니 왕의 문과 왕비의 문이 같은 복도로 이어져 있는 게 아닌가?

“젠장! 괜히 쓸데없이 고민해서 시간만 보냈군.”

“알고 보면 쓸데없는 고민만 하는 게 또 우리 인생이겠지요.”

옥소공자가 빙그레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흑도인들이 복도 끝까지 다다르니 다시 육중한 석문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요충이 아까처럼 쇠사슬을 발견하고는 성큼성큼 걸어가자, 흑선자가 얼른 나서서 주의를 주었다.

“이제부터는 조심해야 할 거요. 궁으로 들어온 셈이니 어떤 기관 장치가 작동할지 알 수 없소.”

“으음. 그렇군.”

쇠사슬을 잡아당기려던 요충이 멈칫거리고는 수하 중 한 명에게 눈짓을 했다.

결국 수하가 얼른 달려가서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차르르륵!

그 순간,

퓨퓨퓨퓨퓨퓩!

“크억!”

쇠사슬이 연결된 천장에서 갑자기 세침 수백 개가 쏟아져 내리는 게 아닌가?

졸지에 당한 수하가 신음을 터뜨리고는 쓰러지자 흑도인들이 대번 병장기를 빼들고 주변을 경계했다.

다행히 그 이상의 기관 장치는 없는 듯했다.

“칫, 다음!”

요충이 다시 지시를 내리자, 적상방 정예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렸다.

“어서!”

요충이 다시 눈을 부라리자, 수하 중 한 명이 용맹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가 천장을 힐끔 보고는 얼른 쇠사슬을 잡아당기며 물러났다.

촤르르르르!

퓨퓨퓨퓨퓨퓩!

이번에도 세침이 발사됐는데 다행히 재빠르게 물러난 후여서 쓰러진 시체만 덮쳤다.

그그그그긍……!

천천히 열리는 육중한 석문!

“긴장들 하시게.”

적노파파가 두 손을 붉게 물들이며 기수식을 취했다.

열린 문 안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으므로.

저마다 마른침을 삼키고 비상시를 대비하는데, 마침내 열린 문을 통해서 안쪽 풍경이 드러났다.

“헉!”

“엇!”

흑도인들이 저마다 깜짝 놀라서는 움찔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석문 뒤쪽은 광활한 공간이었는데, 웬 사람들이 빽빽하게 밀집해 있는 게 아닌가?

도검창을 쥐고 오와 열을 갖춰 서 있는 무사들.

적상방 정예 중 몇몇은 공력을 발출하며 곧장 튀어나가려고 했다.

“잠깐!”

얼른 제지를 한 흑선자가 눈을 가늘게 여미고는 빽빽하게 도열한 상대들을 보았다.

“강시……?”

마치 죽은 사람처럼 움직임이 없다.

어림잡아도 오백은 될 것 같다.

요충이 다시 정예들을 향해 턱짓을 했다.

“확인해 보아라.”

“복명!”

대답을 한 정예들이 얼른 달려가서 너른 공간에 도열한 수백 명의 병사들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흑선자와 적노파파, 옥소공자는 여차하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예 중 한 명이 돌아와서 보고했다.

“토병(土兵)입니다!”

“토병?”

“예, 틀림없습니다.”

그제야 요충을 비롯한 흑도인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토병이라지만 워낙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기에 그들은 영락없는 사람일 거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하긴 이런 곳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이토록 정교한 토병이라니. 놀랍소.”

“당장 살아서 움직인다 해도 놀라지 않을 정도군요.”

흑도인들이 토병들 사이를 지나가며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흑선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진나라 시황제의 황릉에는 일만 명의 토병이 지키고 있다던데…… 여길 보니 정말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군.”

“일만 명은 과장이겠지요. 한 천 명쯤이면 모를까?”

요충이 툴툴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수백 명의 토병들 사이사이를 지나가며 대화를 나눌 때였다.

“음?”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낀 옥소공자가 미간을 구기고는 옆을 돌아보았다.

‘이상하네. 원래 이 자세였나?’

마침 앞서 걷던 요충이 멈춰 선 옥소공자를 돌아보며 소리쳐 물었다.

“공자, 왜 그러시오?”

“아, 아닙니다. 혹시 이 토병들 처음부터 검파에 손을 얹고 있었던가요?”

“흐음. 글쎄올시다. 뭐, 지금 보니 그렇겠지요. 설마 스스로 움직이기라도 했겠소?”

“하긴. 왠지 처음엔 차렷 자세로 있었던 것 같아서요. 제가 과민한 것일 테지요.”

옥소공자가 사람 좋은 미소를 그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는 그 순간 바로 옆에 있던 병사의 눈알이 옆으로 스르륵 굴러간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흑도인들이 도열한 병사들 사이로 중앙쯤 다다랐을 때였다.

툭!

“어이쿠.”

적상방 정예 중 한 명이 무심코 토병과 어깨를 부딪치면서 비틀거렸다.

그런데 뒤로 넘어갈 줄 알았던 토병이 순간 걸음을 내디디며 균형을 잡는 것이 아닌가?

탁!

“어……?”

흠칫거린 정예 무인이 고개를 들어 토병과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슈컥!

눈 깜빡할 사이에 토병이 녹슨 검을 뽑아 들더니 그대로 정예 무인의 목을 쳐서 날렸다.

툭, 데굴데굴……!

츄아아아아!

순간 머리를 잃은 정예 무인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