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가마우지 낚시
철운이 퉁퉁 부은 얼굴로 남궁천을 올려다보았다.
‘미친놈인가……?’
확실히 어둠 속에서 유독 빛나는 두 눈을 보면 광기로 번들거리는 것만 같다.
“알, 알겠으니 이 손 좀 놔주시오.”
“싫은데?”
“끄으으읍!”
남궁천이 손에 힘을 주자 철운이 치미는 고통에 신음을 터뜨렸다.
남궁천이 철운을 절벽 가장자리로 질질 끌고 갔다.
“역시 잘못 생각했어. 그냥 뒈지도록 놔둘걸. 내가 마음이 약해서 구해줬더니…… 이딴 식으로 나와? 역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니까.”
남궁천이 당장에라도 낭떠러지로 밀어 버릴 듯하자 철운이 남궁천의 손을 잡고 매달리며 소리쳤다.
“잠, 잠깐! 살려주시오! 잘못했소! 잘려주시오!”
“싫다고 했지? 잘 가라. 다음 생에는 부디 선행만 베풀고.”
“잠, 잠까아아안! 알고 있소! 내가 알고 있소!”
그제야 남궁천이 멈칫거리고는 철운을 노려보았다.
“안다니, 뭘?”
꿀꺽……!
철운이 마른침을 삼키고는 다른 생도들도 훑어보았다.
분명 생도들뿐이다.
비량이라는 작자는 보이지 않는다.
기감을 펼쳐도 다른 이가 있는지 잘 느낄 수가 없다.
‘애들뿐이라면…… 어떻게든 빈틈을 찾을 수 있겠지.’
우려했던 비량은 없지만 일이 좀 꼬이긴 했다.
자신이 들어서는 순간, 누가 안에 머물든 전부 낭떠러지로 떨어져 추락해서 죽거나, 가짜 입구로 들어가서 개고생만 하다가 죽으리라 생각했다.
한데 이런 곳에 생도들이 살아남아 있을 줄이야.
게다가 남궁천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고강한 무공 실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하나 아직은 어린 생도다.
강호 경험이 부족하리라.
적당한 말로 어르고 달래서 속이면 분명 기회가 올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철운이 심호흡을 하고는 말했다.
“내가 여기서 나갈 방법을 알고 있소.”
“그게 아닐 텐데. 확실히 말해. 나갈 방법을 아는 거야? 들어갈 방법을 아는 거야?”
철운의 눈빛이 흠칫 떨렸다.
‘역시 알고 있구나. 여기가 마단곡이라는 것을!’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거짓말로 둘러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괜히 어설프게 거짓말을 하는 것보단 진실을 말하고 속내를 감추는 게 나으리라.
“들어갈 방법을 알고 있소.”
“어디를?”
“왕의 처소.”
“거기에 뭐가 있는데?”
다 알면서 물어보는구나.
철운이 내심 코웃음을 치고는 대꾸했다.
“마단곡을 찾는 것 아니었소?”
그제야 남궁천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살려줄 가치가 있지.”
남궁천의 말에 팽수혁이 얼른 달려왔다.
“잠깐. 이 녀석이 언제 우리 뒤통수를 노릴지 모르는데 무작정 살려주면 어떡해?”
“그래도 이 녀석이 길을 알아. 기관 장치를 피할 수 있겠지.”
“이놈이 우리를 함정에 빠트릴 수도 있잖아?”
팽수혁의 말에 듣고만 있던 유현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하면 가마우지 전략은 어떨지요?”
“가마우지 전략이라니?”
팽수혁이 돌아보자, 유현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남궁 소협께서 예전에 가마우지 관련하여 말씀하신 걸 듣고 떠올랐습니다.”
유현이 한옆에 떨어져 있는 쇠사슬을 들고는 돌아왔다.
“이 검은 사슬은 현철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어지간해서는 끊을 수 없을 겁니다. 이걸 저자의 목에 채우고 앞장서게 하는 겁니다. 혹시나 기관장치가 작동하면 제일 먼저 저자가 죽을 수밖에 없도록.”
확실히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목줄을 채우고 손까지 묶어두면 허튼 생각은 하기 어려우리라.
유현은 그간 실전을 치르면서 나름 성격이 변했다. 특히 오늘 자신 때문에 비량이 부상 입은 걸 보고는 완전히 마음을 바꿔 먹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런 유현의 입에서 예상 밖의 말이 계속 흘러나왔다.
“만약 허튼짓을 한다 싶으면 곧바로 죽이기도 좋을 겁니다. 사슬에 공력을 불어넣어 세게 잡아당기기만 해도 목이 찢어져 나갈 테니까요. 먹이는 가마우지가 잡고, 취하는 건 어부가 되는 거죠.”
“…….”
“…….”
이야기를 듣는 철운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팽수혁과 백무극, 그리고 남궁천도 눈살을 구기고는 유현을 돌아보았다.
유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들 그러십니까?”
“너…… 생각하는 게 완전…… 악질이구나?”
남궁천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대꾸하자 유현이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
“예? 아, 아니. 이건 실전이니까 감정보다는 냉정하게…….”
“와아, 다시 봤어! 겉으로는 온화한 척하고 속으로 이렇게 독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그, 그런……! 하지만 이건 실전이니까…… 팽 소협, 뭐라고 말씀 좀 해주세요.”
하지만 팽수혁은 어느새 저만치 떨어져서 경계하는 눈초리로 말했다.
“와아, 무섭다. 나도 유현 도장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목을 찢어 버리라니…….”
아니, 이 사람들이 왜 갑자기 온순한 척이야! 나만 쓰레기야?
물론 유현의 제안을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정말 좋은 전략으로 여기고 있었다.
다만 그런 잔인한 말들이 늘 온화하고 살검도 제대로 펼치지 않던 유현의 입에서 흘러나오니 적응이 안 되는 것일 뿐이었다.
남궁천이 한 손으로 쇠사슬을 받아 들고는 철운의 목에 감으면서 말했다.
“난 유현 도장이 목을 찢어내서 죽이라고 할 땐 온몸에 소름 돋았어.”
태연히 목에 사슬 감으면서 할 소립니까!
철운이 내심 치미는 욕지거리를 참으며 속을 바글바글 끓였다.
쇠사슬이 풀리지 않도록 목에 감은 남궁천이 그제야 깍지 낀 손을 놓고는 물러나며 잡아당겼다.
“큭!”
팽팽하게 줄이 잡아당겨지자 철운이 목을 쥐며 괴로워했다.
“어어? 손 내려. 그 손 올라가면 알지? 아까 유현 도장 말하는 거 들었지? 목이 찢어져서 너덜너덜해진 부위에서 막 피가 철철 나고 머리와 몸이 따로 놀게 될 거라고.”
“크윽!”
철운이 분한 마음을 가누면서 손을 내렸다.
그 역시 생도들이 이렇게까지 악독하게 손을 쓸 줄은 몰랐다. 강호 경험이 부족하여 허술할 줄 알았건만.
요즘 애들 무섭다더니…….
’남궁천이 사슬을 쥐고는 말했다.
“자, 가마우지야. 앞장서라.”
* * *
촤촤아악!
묵직한 검이 떨어지면서 운경을 향해 달려들던 흑산채 무인 하나가 사선으로 몸이 갈라졌다.
철퍼덕!
상하반신이 대각선으로 갈라진 사내는 이제 고깃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우으……!”
“저 괴물 같은 새끼……!”
흑산채 무인들이 주춤거리며 운경으로부터 거리를 뒀다.
연무 속에서 생도를 만났을 때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운이 나빠서 고수와 맞닥뜨리는 것보단 이런 생도를 마음껏 요리하는 게 더 쉬울 테니까.
한데 생도의 수준이 너무 높다.
‘저 새끼 정말 생도 맞아?’
‘한낱 생도 주제에 손속이 어찌 저리도 잔인한가!’
운경은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흑산채 무인들을 보았다.
그가 천천히 물러서면서 암벽이 있는 쪽으로 물러섰다.
적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적어도 등 뒤에 적을 둬서는 안 된다.
암벽을 완전히 등진 운경이 싸늘한 웃음을 그리며 읊조렸다.
“선배님들, 뭐 하십니까? 들어오시지요.”
“애송아, 몇 명 죽였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그렇소. 연막탄 때문에 도무지 눈에 뵈는 게 없소. 그러니 들어오라고.”
“이익……!”
“자, 드루와, 드루와.”
운경이 한 손은 검을 쥐고, 다른 한 손을 까딱거리며 도발했다.
흑산채 무인들이 서로를 번갈아 보다가 일순 동시에 치달려왔다.
“죽어라앗!”
“건방진 놈!”
파박!
쒸에에엑!
도끼 한 자루가 연무를 가르고, 장창이 공기를 찢어발긴다. 그 뒤를 이어 구절곤과 태도가 거침없이 날아든다.
순간 운경이 몸을 돌리는가 싶더니 암벽을 발로 차며 그 반동을 이용해 맞부딪쳐갔다.
“흐아아앗!”
기합성이 터지면서 운경의 손에서 무극검이 펼쳐졌다.
쏴아아아앙!
검기가 횡으로 발출되면서 날아들던 적 네 명이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무극검의 제삼초 쇄월검파다.
“크아아악!”
“으아악!”
도끼를 들고 제일 먼저 달려들었던 사내는 상하반신이 완전히 나뉘어 즉사했고, 나머지 세 명은 배와 가슴이 절반 이상 찢어져 바닥에 널브러졌다.
재기가 불가능한 상태.
하나 쓰러진 자를 돌아볼 틈 따위는 없다.
“뒈져어엇!”
타다다닷!
연무를 뚫으며 한 인영이 번개처럼 날아오른다.
그는 지금껏 흑산채 무인들의 싸움을 지켜보기만 하던 삼봉파 삼봉대주였다.
그러잖아도 남궁천에게 안면이 밟히면서 굴욕을 느낀 그가 운경을 베고 자존심을 회복하려던 참이었다.
과연 일개 조직을 이끄는 대주답게 민첩한 몸놀림.
하나 운경은 서두르지 않았다. 뒤로 훌쩍 물러나는 대신 검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동시에 방어에 뛰어난 심법인 태을신공을 운기하면서 태을검법을 펼쳤다.
쉬이이잇, 쩌어엉!
“크읏!”
검로가 막힌 삼봉대주가 뒤로 튕기듯 물러나는 틈을 이용해서 운경이 다시 벽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받아보시오!”
쑤아아아앙!
검기가 발출되면서 운경이 휘두른 무극태절 초식이 적의 이마를 쪼갤 듯 떨어진다.
“헙!”
쩌저엉!
간신히 검을 들어 막은 삼봉대주는 전신이 저릿하게 울리는 걸 느끼면서 비틀비틀 물러났다.
하나 운경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부족하다. 아직 부족해!’
지금 이 순간 운경은 팽수혁을 떠올리고 있었다.
팽수혁은 분명 휴관기 동안 성장해 있었다.
자신도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닌데, 팽수혁의 성장은 자신을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만약 비무 대회가 지금 열리고, 이제 팽수혁과 맞붙는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이 질 수도 있을 것 같은 위기감이 든다.
‘더 강해져야 한다! 더!’
종남의 중검은 팽가의 패도에 결코 질 수 없다!
순간 운경이 몸을 살짝 띄우더니 낙수파암 초식을 펼쳤다.
쑤우웅! 꽝! 꽈앙!
“크읍!”
삼봉대주가 신음을 삼키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을 막아내는 기분이다.
처음에는 가볍다 느꼈는데, 연이어지는 충격파에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 것만 같다.
그야말로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만 같다.
쩌엉!
‘그, 그만……!’
쩌카앙!
마침내 운경의 검이 삼봉대주의 검을 부러뜨리면서 그대로 내리꽂혔다.
삼봉대주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이마로 떨어지는 검신을 보며 죽음을 직감했다.
푸욱!
섬뜩한 파육음에 이어 머리에 검을 박아 넣은 삼봉대주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후우……!”
긴 숨을 내쉰 운경이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연무 속에서는 여전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낸 운경이 머리가 갈라진 채 절명한 삼봉대주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그러게 선배의 검은 너무 가벼웠소. 자고로 검은 무거워야 하는 법.”
그나저나…….
’팽수혁은 어디 간 거지?
그러고 보니 남궁천도 보이지 않는 것 같고.
‘설마 벌써 죽은 건 아니겠지?’
미간을 잔뜩 구기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마침 저만치 신위를 펼치는 비량의 모습이 보였다.
운경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강호엔 괴물들뿐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