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169화 (169/508)

168. 너 내 누군지 아니?

“끄으으……!”

“아그그……!”

연신 끙끙거리면서 몸을 일으킨 창응대원들이 곧 주변을 둘러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손우곤 역시 주변 광경에 넋을 놓고는 남궁천을 돌아보았다.

“주군…… 여긴……?”

“왕릉 같다.”

“왕릉이요?”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 중원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고대 왕릉을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우연히 도굴꾼을 알게 됐는데, 그 녀석을 따라서 들어갔다가 죽을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나중에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무림맹을 따돌리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당시에 보았던 왕릉과 지금 이곳의 분위기는 몹시 흡사했다.

“새끼들, 머리 좀 썼네.”

남궁천이 피식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마단곡은 마교가 패망하기 직전에 만들어진 곳이다.

한마디로 급조한 곳이란 뜻.

그래서 어지간한 기관 장치를 설치할 여건이 없을 거라고 여겼다.

입구를 발견한 직후 겁 없이 뛰어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데 착각이었다.

패망 직전의 마교가 기관 장치를 설치할 여력은 없었겠지만, 이미 존재하는 기관 장치에 숨길 여력은 있었겠지.

즉, 천마는 이곳을 진작 알고 있었고, 여차하면 이용하려고 벼르고 있었을 거란 뜻이다.

손우곤도 남궁천의 말에 납득이 된 건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마단곡을 이렇게까지 만든 건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그렇다.

지금 남궁천과 창응대가 서 있는 곳은 하나의 별궁처럼 느껴진다.

그 웅장함에 압도되어 절로 숙연해지는 기분이 들 정도다.

대리석 바닥은 먼지만 없다면 광채가 날 정도고, 기둥마다 양각으로 새겨진 조각은 경이로울 정도로 섬세하다.

곳곳에 박힌 최상급 야명주도 넋을 놓게 만든다.

한낱 창고로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정성을 들였다.

물론, 마교가 모아둔 영단을 ‘한낱’으로 표현하는 건 어폐가 있지만.

어쨌거나 이곳이 원래 마단곡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거 생각보다 까다롭게 됐는데.”

“무슨 말씀이신지요?”

손우곤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느샌가 남궁천을 의지하고 있었다.

이곳을 보자마자 왕릉이라는 걸 알아챈 것도 놀라웠지만 굳이 따져 묻진 않았다.

이제 남궁천을 보면서 놀라는 건 예삿일이 되어 버렸으니까.

남궁천이 전생의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대개의 왕릉에는 기관 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그것도 그 시대 최고의 기술자를 불러서 말이야.”

“역시 도굴꾼들 때문일까요?”

“아마도.”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짐작대로 이곳이 왕릉이라면 지하궁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지하궁에서도 왕의 처소, 즉 왕의 관이 묻혀 있는 곳에 가야만 영단을 얻을 수 있으리라.

결국 자신이 도절귀로부터 전해 들은 지도는 반쪽짜리나 마찬가지.

도지휘사가 지도를 가지고도 적극적으로 마단곡을 찾아 나서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리라.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이 지도가 온전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테지.

‘이거 골 아프게 됐는데…….’

더구나 지금은…….

“입구부터 갈라지는군요.”

손우곤이 정면의 커다란 문 두 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입구가 두 개였다.

하나는 금관을 쓴 왕, 다른 하나는 금관을 쓴 왕비가 양각된 문이었다.

아마 둘 중 하나는 죽음의 문이 되리라.

“어쩌죠?”

“나도 몰라.”

“어…… 그럼…… 되돌아갈 수도 없고…….”

“되돌아가긴 왜 되돌아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잠깐 생각을 해보자고.”

물론 생각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궁지에 몰렸을 때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게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아…… 누가 막 쫓아오는 중이면 뭔가 좋은 생각이 날 것도 같은데.”

이래서 습관이 무서운 거다.

* * *

“남궁천…… 어쩌면 여기로…….”

바닥과 암벽이 맞닿은 곳에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다.

그 앞에 선 백무극.

그가 멍한 표정으로 시커먼 입구를 내려다본다.

후우우웅.

어쩐지 서늘한 공기가 시커먼 구멍에서부터 불어나온다.

백무극이 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말 제대로 본 거냐?”

“그래.”

“남궁천이 왜 이딴 구멍으로 들어가?”

“몰라.”

“도대체 그놈은 왜 자꾸 찾냐고!”

“너 좀 패달라고.”

“미친놈.”

일극과 티격태격하던 백무극이 시커먼 구멍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따라갈래.”

“뭐? 이 미친놈아! 이 안이 어딘 줄 알고? 보기만 해도 답답한데!”

“남궁천이 갔으면 나도 간다.”

“아니, 이 병신 새끼는 왜 이렇게 그딴 녀석에게 목을 매는 거야? 정신 안 차려?”

백무극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 남궁천은 이 구멍 앞에 서 있었다.

아주 잠깐 연막탄이 희미해진 틈에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다만 그 직후에 누군가가 또 새로운 연막탄을 터뜨리면서 연무가 다시 짙어졌다.

겨우 여기까지 찾아왔더니 남궁천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누군가 이 구멍 안으로 흘러 들어간 흔적이 있었다.

백무극은 그게 남궁천일 거라고 확신했다.

남궁천이 누군가와 얘기하는 것 같았고, 그 직후에 구멍 안으로 몸을 날리는 것 같았으니까.

“좋아, 결정은 내렸다.”

“이 미친놈아! 뭘 너 혼자 결정 내려! 안 돼! 나는 저 두더지 굴 같은 곳으로 안 들어가!”

“나는 간다.”

백무극이 몸을 밀어 넣으려고 할 때, 마침 팽수혁이 나타났다.

“너 거기서 뭐 하는 거냐?”

“남궁천을 찾으려고 한다.”

“남궁천? 그 녀석이 어디 있는데?”

“저기.”

백무극이 턱짓으로 시커먼 구멍을 가리키자 팽수혁이 눈살을 잔뜩 구겼다.

“장난하냐?”

“진짜다.”

“전투 중에 뭔 헛소리야?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거면 어디 처박혀서 숨이나 좀 돌리고…….”

“간다.”

백무극이 팽수혁의 말을 더 듣지도 않고 두더지 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백무극이 시커먼 틈으로 사라지자 팽수혁이 눈을 부릅떴다.

“아니, 저 미친놈이……! 대체 어쩌자고!”

“팽 소협! 무슨 일입니까?”

마침 유현이 나타나면서 묻자 팽수혁이 얼른 마단곡 입구로 몸을 날렸다.

“남궁천이 이 안에 있다잖아. 일단 확인해 볼게!”

“어어? 같이 가시죠!”

팽수혁이 먼저 구멍 안으로 몸을 날렸고, 유현마저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세 사람이 순식간에 검은 구멍 안으로 감쪽같이 사라졌다.

* * *

“아무래도 답이 없다. 그냥 정면 돌파다.”

“정면 돌파라고 하시면……?”

남궁천의 말에 손우곤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박이냐, 쪽박이냐지.”

“쪽박이면 죽을 수도 있을 텐데요.”

“원래 인생이라는 게 한쪽 발은 저승에 담고 있는 법이야.”

“그럼 어느 쪽으로…….”

“음, 일단은…….”

남궁천이 왕의 문과 왕비의 문을 번갈아 보다가 막 입을 열려는데,

“음?”

움찔거린 그가 고개를 꺾어 들더니 빠르게 말했다.

“다들 몸 숨겨.”

“예?”

“누가 온다! 어서!”

“존명!”

스스슷.

창응대원들이 대답과 동시에 기척을 감쪽같이 지워 버렸다.

‘기감을 감추는 것 하나는 정말이지 기가 막히네.’

왜 세간에서 창응대를 최고의 조직 중 하나로 여기는지 알 만한 부분이다.

그러고 잠시 후.

투두둑.

까마득한 천장에서 돌가루가 부스러져 내리는 것 같더니 이내 뭔가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슈우우우우, 쿠우웅!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인영이 몸을 움찔거리면서 떨었다.

“넌…… 백무극?”

남궁천이 눈을 부릅뜨자, 백무극이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바보처럼 웃는다.

“찾았다. 남궁천.”

왜 저 말이 섬뜩하게 들리냐?

남궁천이 침을 꿀꺽 삼키는데, 마침 천장에서 또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우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천장의 구멍으로 한 명이 튀어나오더니, 곧이어 또 한 명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쿠웅! 쿠우웅!

“아그그그!”

“으윽……!”

남궁천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아니, 너희들은 여기 왜 온 거야?”

“으으……! 엇! 남궁천! 정말 여기에 있었군!”

팽수혁이 엉덩이를 쓰다듬다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유현도 어깨와 다리를 이리저리 돌려보고는 곧 남궁천에게 다가왔다.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아니, 너희들 여기 왜 왔냐니까?”

“구해주러 왔다.”

팽수혁의 말에 남궁천이 여전히 이해 못 할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왜 갑자기?”

“저 녀석이 네가 여기에 빠졌다고 했으니까.”

팽수혁이 턱짓으로 백무극을 가리켰다.

백무극이 남궁천에게 저벅저벅 다가오더니 돌연 포권을 하며 소리쳤다.

“남궁천! 날 때려줘.”

아니, 이 얼빠진 놈은 갑자기 뭐라는 거야?

남궁천이 미간을 푹 찡그리자, 백무극이 애원하듯 말했다.

“부탁이다. 날 좀 때려줘.”

“뭐야? 너 그쪽 취향이었어?”

“무슨 말이야?”

“허! 요구는 다 해놓고 나만 쓰레기 만드는 전략이냐?”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날 좀 패줬으면 좋겠다.”

이쯤 되자 팽수혁과 유현도 지켜만 보지 않고 나섰다.

“저 미친놈 말은 들을 필요 없고.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곳에 떨어진 거냐?”

“함정에 빠진 겁니까?”

아니, 내 발로 들어온 건데.

남궁천의 속내를 듣지 못한 팽수혁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새삼 놀랐다.

“허어, 그런데 여기 엄청난데? 도대체 뭐 하는 곳이지?”

“마치 황궁을 보는 것 같군요.”

“이런 곳에 황궁이 있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왕궁이 지하에 있을 리도…… 어?”

팽수혁이 뭔가에 생각이 닿았는지 유현을 휙 돌아보았다.

유현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여긴 왕릉이군요.”

“그래, 왕릉! 그렇다면 남궁천 너……!”

팽수혁이 남궁천을 휙 돌아보더니 빤히 쏘아보았다.

결국 남궁천도 체념했다.

이제 와서 숨길 수도 없는 노릇.

남궁천이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들 생각대로 나는…….”

“지독히도 운이 좋은 놈이구나!”

“……어엉?”

“함정에 빠져서 떨어진 곳이 하필이면 왕릉이었다니! 이곳에 묻힌 금은보화만 가져가도 부자가 되겠어!”

잠시 잊고 있었다. 이놈이 지독하게 단순한 하북팽가 팽수혁이라는 것을.

남궁천이 뭐라고 반응할지 고민하는 사이 유현이 핵심을 짚었다.

“그게 아닐 겁니다. 팽 소협.”

“아니라니? 왕릉에 금은보화가 없단 말이야?”

“그쪽이 아니라…… 그러니까 남궁 소협은 아마도 함정에 빠진 게 아니라 일부러 이곳에 들어온 걸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유현의 맑은 눈이 남궁천을 빤히 바라본다.

“혹시 수레바퀴를 부순 것도 일부러 그런 것인지요?”

쩝, 얘는 못 속이겠군.

남궁천이 어쩔 수 없이 시인했다.

“맞아. 여길 오기 위해서였어.”

“역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이곳이 정말 왕릉이라면 서로 힘을 합쳐야 할 겁니다. 각종 기관진식에서 살아남으려면요.”

뭐, 이렇게 된 이상 숨길 수도 없으리라.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해 줄 테니 하나는 반드시 지켜.”

“뭡니까?”

“내 걸 노리면 동료고 뭐고 다 뒈지는 거야.”

“……?”

* * *

유현이 마단곡 입구로 들어간 후 그곳에 흑도인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암벽을 따라 달리면서 벽과 바닥만 살폈기에 이미 드러난 입구를 찾는 게 어렵진 않았다.

적상방주가 입매를 비틀었다.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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