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157화 (157/508)

156. 금수저의 삶이란

이젠 모용강도 넌지시 나서며 물었다.

“그럼 보통 혼자 다닐 때는 수행원이 몇 명이오?”

그는 조금 전까지 팽수혁을 향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던 사실마저 잊은 듯 자연스럽게 대화에 섞여들었다.

팽수혁 역시 그런 모용강을 내버려 둔 채 진소홍만 빤히 보았다.

모든 생도들이 진소홍의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이젠 왠지 모르게 기대하게 돼.’

꿀꺽.

누군가 마른침까지 삼키자, 이목이 쏠린 것을 확인한 진소홍이 빙그레 웃었다.

“나 혼자 다닐 때는 그렇게 많지 않아. 용천관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수행원이 없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 전엔 몇 명이었는데?”

팽수혁이 다시 다그치자, 진소홍이 잠깐 눈을 굴리다가 대답했다.

“별로 안 많은데…… 한 오백 명?”

“오, 오…… 오백!”

“혼자 다니는데 오백 명?”

“내가 외동이라서 아빠가 좀…… 지나치긴 하지?”

좀이 아니잖소, 좀이!

모용강이 헛기침을 하고는 대답했다.

“과연 하루 만에 집을 짓는다는 게 납득이 되긴 했소.”

다른 생도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윤종승이 다시 물었다.

“그때 짓는 집은 안 크지? 혼자 쓰는 거니까.”

“당연히 안 크지. 그냥 잠만 잠깐 자는 건데, 뭐.”

“역시…… 그래도 집을 짓는다니…….”

“그냥 침실과 욕실만 따로 있을 뿐이야.”

“…….”

“씻어야 하니까.”

“…….”

“너무 초라해서 말하고 나니 왠지 부끄럽네.”

부끄러움의 기준이 너무 일반적이지 않잖아!

생도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소홍은 정말 쑥스러운 듯 희미하게 웃었다.

한편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팽수혁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터덜터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무공 따윈 개나 줘버리라지. 장사를 했어야 해. 장사를. 이 세상은 돈이 전부야. 제길…… 뭘 내다 팔면 그만한 돈을…… 중얼중얼…… 중얼중얼…….”

윤종승도 허탈감이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짜 부럽다. 우리 아버지는 재벌이 안 되시고 뭐 하셨나 몰라.”

“부럽냐?”

불쑥 질문을 던진 사람은 다름 아닌 남궁천.

윤종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부럽지. 넌 안 부럽냐?”

“글쎄. 피곤할 것 같은데.”

“뭐?”

“재벌이 되면 주변에서 내 아버지 재산을 노리는 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수작질을 하지 않을까? 회유, 협박, 사기, 기만…… 수많은 사람 중 진심으로 다가오는 자가 누구일지 구분하기도 힘들겠지. 무연회 도중에 납치를 당하고, 죽을 위기도 처하고, 그런 걸 일상처럼 받아들이게 되면…… 역시 피곤하단 말이지.”

“아…….”

미처 거기까진 생각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진소홍이 주근깨 박힌 인피면구를 쓰는 것도 그 비슷한 이유라고 들은 것 같다.

저 화려한 생활 이면에는 엄청난 압박과 시달림이 있을 것이라는 걸 간과했다.

‘남궁천은 거기까지 생각을 했구나.’

왠지 남궁천이 또 다르게 보인다.

과격하고 저돌적이기만 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생각이 깊은 구석이 있다.

진소홍도 달리 보인다.

헤실헤실 웃기만 해서 고생 한 번 해보지 않은 금수저라고만 여겼는데.

그런 환경 속에서 저리 해맑은 걸 보면…… 아니, 해맑은 걸 연기하는 건가? 아무튼 어느 쪽이든 대단하지 않은가?

‘난 아직도 멀었구나.’

윤종승이 새삼 반성하는 사이 진소홍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아무튼 이번 임무도 무사히 잘 마쳐서 귀환하자. 오는 길에는 광서성에서 기념품도 사야겠어. 나, 광서성은 처음 가보거든!”

‘저런 걸 보면 결국 또래의 평범한 여자아이인데. 선입견을 버려야지.’

윤종승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노잣돈은 챙겨왔어?”

“급히 출발하게 돼서 많이 챙기지 못했어.”

“하하. 그럼 내가 사 줄게. 얼마나 챙겨왔는데?”

“그냥 만 냥짜리 전표 한 장.”

“…….”

“…….”

“만…… 냥?”

“응.”

“아…… 그래…….”

윤종승이 해쓱한 얼굴로 하늘을 보았다.

젠장, 역시 그래도 부럽다. 금수저!

* * *

며칠에 걸쳐 이동한 견습생들이 마침내 광서성 계림 지역으로 들어섰다.

중원에서도 비교적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계림의 지형은 생도들에게 무척 낯설고 신비롭게 다가왔다.

수천 개의 석회암 산봉우리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리강(漓江)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선계(仙界)에 와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유현이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에 흠뻑 취해서 감탄을 터뜨렸다.

“아…… 정말 아름답군요. 명산이라면 충분히 봤다고 생각했는데…… 여긴 또 다른 느낌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현의 출신이 화산이 아니던가?

화산의 절경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다른 생도들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심지어 황산을 끼고 살았던 윤종승도 이색적인 풍경에 흠뻑 취해서 감탄을 연발했다.

“뭐랄까? 굉장히 귀여운 느낌이 들면서도 웅장하고 아름답네. 모순된 말이지만 뭐라고 표현하기가 힘들어.”

“확실히 중원의 장엄한 절경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군.”

팽수혁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물론 전 중원을 누비며 돌아다녔던 남궁천은 시큰둥했다. 그저 오랜만에 다시 와 보니 감회가 새롭다는 정도의 느낌이랄까?

한데 생도들 중에서도 가장 감탄을 연발하는 이는 바로 진소홍이었다.

“와아! 정말 아름다워! 너무 예뻐요! 여기서 살고 싶을 것 같아!”

강을 끼고 걸으면서도 내내 감탄하는 진소홍이었다. 아무리 금수저라지만 그녀 역시 이렇게 변방 지역까지 와본 것은 처음이었다.

마침 강에서 낚시하는 나룻배 몇 척을 본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배마다 새가 있네. 까마귀인가? 오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가마우지야.”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남궁천. 이미 계림 지역을 와본 적이 있는 그로서는 새삼스러울 게 없는 광경이었다.

생도들의 시선이 남궁천에게 돌아갔다.

“가마우지? 새 이름이야?”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깃털이 검어서 얼핏 보면 까마귀 같고, 생김새는 오리처럼 보이기도 하지. 실제로 발바닥을 보면 오리처럼 물갈퀴가 있고.”

“오오, 그렇구나.”

“정말 그렇군요. 저 가마우지 발을 보니 마치 검정 가죽신을 신은 것처럼 보입니다. 오리하곤 또 다르네요.”

유현이 내공으로 안력을 높여서 배에 올라탄 새를 관찰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군요. 가마우지들이 전부 목줄을 차고 있습니다.”

“낚시용이니까.”

“낚시?”

이번엔 다시 진소홍이 불쑥 물었다.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가마우지 주둥이는 갈고리처럼 되어 있어서 물고기를 사냥하기에 최적이지. 하지만 목을 줄로 묶어놨기 때문에 물고기를 삼키지는 못해. 그럼 어부가 가마우지 주둥이에서 물고기를 빼내고 다시 가마우지에게 사냥을 시키는 거야. 굶주린 가마우지의 사냥 능력은 최고니까.”

“불쌍해라.”

진소홍이 안타깝다는 듯 가마우지들을 보았다.

남궁천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우리도 가마우지 신세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은데?”

“그게 무슨 말이야?”

“재주는 우리가 부리고, 공은 맹주라는 영감이 가로채잖아.”

그러자 앞서 걷던 비량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뭘 또 그렇게까지…… 그나저나 천이는 별걸 다 알고 있구나. 광서성에 와본 적은 없을 것 같은데.”

없긴 왜 없나?

중원 바닥에서 안 가본 곳 찾는 게 더 어려울 텐데.

남궁천이 속내를 삼키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공식 호구가 할 일이 뭐 있겠습니까? 집구석에 틀어박혀서 주야장천 책이나 보는 거죠. 그러다 보니 상식이 좀 많습니다.”

“호오. 호구 생활도 나쁘게만 볼 건 아니구나.”

그걸 말이라고 하나? 저 인간.

남궁천이 내심 발끈했지만 그냥 무시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을 테니.

어쨌든 상당히 먼 곳까지 온 견습생들은 이색적인 풍광을 넋 놓고 구경했다.

뭔가 늘 보던 경치에서 벗어나니까 정말 여행이라도 온 기분이었다.

* * *

비월문주 연추량이 문도들을 잔뜩 이끌고 계림분타를 찾아왔다.

분타주가 마당까지 나와서 연추량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장문인. 그런데 무슨 일로 이리 많은 식구들을 데리고 오셨습니까?”

“오늘쯤 도착한다고 하시지 않으셨소?”

“아, 지원군 말씀이군요.”

“그렇소. 해서 문도들과 함께 예를 다해서 맞이하고자 일부러 데려왔소.”

“하하. 그러셨군요. 그것도 좋은 생각이십니다. 아마 맹에서 오신 분들도 좋아하실 겁니다.”

“본 문을 위해서 먼 길을 오신 분들이니 최대한 극진히 대접해야겠지.”

“암요. 옳으신 생각입니다. 아예 마을 어귀까지 함께 마중을 나가실까요?”

“아니오, 그건 좀 조심스러워서. 삼봉파가 미리 알아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소.”

“아…… 하긴.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일단 분타에서 최대한 성대히 맞이하고, 다 함께 본 문으로 이동하면 되지 않을까 싶소.”

“예, 장문인의 뜻 잘 이해했습니다.”

분타주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추량 역시 마주 웃어 보이고는 북동쪽 하늘을 보았다.

지금쯤 맹에서 보낸 이들은 얼마나 다가왔을까?

어쩌면 벌써 계림으로 들어섰을지도 모른다.

맹에서 직접 파견한 지원군.

그들을 대면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렌다.

듣기로는 청랑단이든, 철혈대든, 그들이 작정하면 어지간한 문파 하나를 소멸시킬 수 있을 만큼 대단하다던데.

‘초면인 만큼 극진히 맞이해야겠지.’

부푼 가슴을 진정시킨 연추량이 문도들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오와 열을 갖추고 귀하디귀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예, 장문인!”

대답을 마친 문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대열을 정비했다. 누구든 분타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상당히 많은 무인이 모여 환대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으리라.

문도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연추량이 분타주를 조심스레 불렀다.

“저어, 분타주.”

“말씀하시지요, 장문인.”

“아직 어떤 조직이 오는지는 모르는 거요?”

“예, 죄송합니다. 사실 거기까지 꼬치꼬치 캐묻는 게 조심스러워서요. 자칫 지원군을 가려서 받으려는 것처럼 비쳐질까 봐…….”

“하하, 이해하오. 그래도 호법당에서 파견한 것만은 확실한 거니 됐소.”

“그럼요. 분명 호법당 호민각주가 직접 파견했다고 전서를 받았습니다.”

“그렇군. 분타주, 참으로 고맙소. 덕분에 이번 표행을 무사히 마치고 본 문의 신뢰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소.”

“저야 뭘 한 게 있겠습니까? 그저 장문인의 사정을 전하고 지원요청을 한 것뿐이지요.”

“아무튼 이로써 삼봉파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소. 맹이 결코 본 문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시켜 줄 수 있겠지. 비록 변방에 있으나 이곳에도 맹의 손길이 뻗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 거요.”

“물론입니다.”

그때였다.

수하 하나가 급히 달려 들어와 보고했다.

“맹에서 파견한 지원군이 마을 어귀에 들어섰습니다. 곧 분타에 도착할 겁니다!”

“오오, 드디어! 우리도 최대한 예를 다해서 맞이하도록 하자! 본 타와 비월문을 위해 먼 길을 오신 분들이다!”

“알겠습니다!”

분타의 무인들이 우렁차게 대답하며 역시 대열을 갖춰 대기했다.

좌우로 갈라서서 빽빽하게 마당을 채운 무인들.

그 끝에는 분타주와 연추량이 부푼 가슴을 안고 서 있었다.

‘드디어 무림맹에서 정예군들이!’

마침내 분타 정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이 열리네요. 그들이 들어오죠. 첫눈에 난…….

‘웬 애새끼가?’

제일 먼저 들어섰던 남궁천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와아, 개많네.”

뭐? 뭐가 많아?

남궁천이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잘못 찾아왔나 봐요. 여기 사람 개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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