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비켜, 이 새끼들아!
흑혈대가 제일 앞에 서 있었고, 이살과 삼살 그리고 거신이도가 후방을 맡았다.
거신쌍도를 비롯한 세 명의 고수는 우선 흑혈대의 싸움을 지켜볼 요량이었다.
한데…….
“비키라고, 이 새끼들아아아아!”
달려오는 생도가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는다.
마치 혜성이 날아와서 부딪치듯 그대로 흑혈대를 향해 돌진하는 게 아닌가?
“어어……? 어?”
부대주가 당황해서 검을 앞세우고는 공력을 끌어 올렸다.
‘이 미친 새끼! 왜 안 멈춰?’
당황한 부대주가 버럭 소리쳤다.
“저, 저놈을 막……!”
쾅! 쾅! 퍼퍼퍼퍼퍼퍽!
순간 부대주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자신의 눈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당하면 사람이 저렇게 하늘로 날아오를 수가 있나?
심지어 저 생도는 검을 검집에서 뽑지도 않았다.
“끄아악!”
“으악!”
굴러온 바위가 갈대를 쓰러뜨리는 것만 같다. 아니, 사람이 튕겨서 날아가고 있으니 더한 광경이다.
후방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이살과 삼살, 거신이도가 입을 딱 벌리고 팔짱을 풀었다.
삼살이 금붕어처럼 눈을 끔뻑이며 이살을 향해 물었다.
“형님, 제가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거죠?”
“끄응. 조심해라, 아우야!”
차차아앙!
이살과 삼살이 동시에 칼자루를 뽑아 들었다.
거신이도 역시 자기 덩치만 한 대도를 뽑아 들고는 앞으로 겨눴다.
“제길, 뭐 저런 미친 녀석이 다 있지? 오냐, 어디 한 번 덤벼……!”
말을 꺼내던 중에 흑혈대에서 마지막으로 막아서고 있던 부대주가 비명과 함께 튕겨 날아간다.
“끄아아아악!!!”
“저, 저……!”
“막아랏!”
이살과 삼살, 그리고 거신이도가 재빨리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고 했다.
그런데…….
휘이이이잉!
한 줄기 광풍이 세 사람 사이를 스치며 지나가는 게 아닌가?
“어……?”
“방금 뭐가 지나간 것 같은데?”
이살과 삼살이 얼이 나간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경직된 얼굴로 눈을 끔뻑이던 거신이도가 표정을 와락 구기며 돌아섰다.
“저놈!”
어느새 세 사람을 스쳐 지나간 남궁천이 벌써 저만치 내달려가는 게 아닌가?
놈의 앞을 막아섰던 흑혈대원 서른 명은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이살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내가 쫓겠다! 너희들은 남아서 아직 쫓아오는 한 놈을 맡아라!”
아직 쫓아오는 한 놈이란 바로 유현이었다.
말을 마친 이살이 바닥을 차려는데,
쒸에에에엑!
섬뜩한 파공성을 이끌며 비수 한 자루가 뒤통수를 노리며 날아드는 게 아닌가?
“치잇!”
쉬따아앙!
이살이 얼른 돌아서며 칼을 후려치자, 빛살처럼 날아들던 비수가 튕겨 나갔다.
돌아보니 어느새 지척에 다다른 유현이 걸음을 멈추며 검을 뽑아 들었다.
차아앙!
“죄송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단 한 분도 보내 드릴 수가 없습니다.”
“허! 요즘 애들은 전부 미치기라도 한 건가?”
이살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말을 이었다.
“내가 쫓아가지 않는다고 저 애송이 생도가 살아 있을 것 같나?”
“글쎄요. 선배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유현이 차분하게 대꾸하자, 이살이 이맛살을 푹 찡그렸다.
눈앞에 선 새파란 애송이.
강호초출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시종 침착하다.
기본기가 탄탄하단 뜻이리라.
게다가 견습 생도라면 지난 무연회에서 팔 강 안에 들었을 터.
그렇다고는 해도…….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로구나. 보아하니 도가 출신으로 보이는데 사문이 어디냐?”
“화산의 유현입니다. 제가 견문이 짧아 선배님들을 알지 못합니다. 고명을 여쭙니다.”
“알 것 없다. 어차피 뒈질 녀석에게 알려줄 이유도 없고.”
발목이 잡힌 이살은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최대한 빨리 유현을 처리하고 남궁천을 쫓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저벅저벅……!
그가 기세를 끌어 올리면서 유현에게 다가갔다.
어딘지 무방비해 보이는 자세.
하나 그건…….
‘귀주삼살 특유의 무공이겠지.’
이살의 생각과 다르게 유현은 이들의 정체를 꽤나 자세히 알고 있었다.
유현의 시선이 힐끗 거구의 사내에게 향했다.
‘하면 저자가 거신쌍도 중 한 명이겠고.’
생각을 마친 유현이 검을 쥔 채로 서서히 보법을 밟았다.
그는 조금 전 남궁천이 했던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 * *
탈주범을 쫓던 남궁천은 일부 무리가 앞을 막아서는 걸 보고 유현을 돌아보았다.
“상황이 급하니 짧게 말할게.”
유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방진을 짜서 막아서고 있는 조무래기들은 내가 처리한다.”
“조무래기……? 저기 진영을 갖춘 자들 말이오?”
“그래.”
“어떻게 처리한다는…….”
하나 남궁천이 말을 끊으며 빠르게 일렀다.
“우측에 두 명이 귀주삼살 중 이살과 삼살. 왼쪽에 덩치 큰 놈이 거신쌍도 중 이도!”
“아니, 그걸 어떻게…….”
질문을 던지려던 유현이 말을 꿀꺽 삼켰다.
남궁천의 심각한 표정에서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뜻이 역력했으니까.
하긴 지금 노닥거릴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그나저나 이 인간, 정말 강호초출이 맞긴 한가?
놀라운 이야기는 그 후로도 계속됐다.
“이제부터 공략법이니까 잘 들어.”
“공략법이라니…… 설사 남궁 소협이 저들을 다 뚫고 지나간다고 한들 나 혼자서는 저자들을 막을 수 없…….”
“할 수 있어. 내 말만 잘 들으면!”
* * *
‘정말…… 가능할까?’
유현이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귀주삼살과 거신쌍도는 강호에서 꽤나 유명한 흑도인들이다.
분명 강호초출인 자신이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자들.
하나 부딪쳐 보기 전에는 모른다.
이젠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
남궁천의 말이 틀림없다면…….
‘이들은 합격술을 펼치지 않을 거다.’
심호흡을 한 유현이 입을 열었다.
“어느 선배께서 오시겠소?”
남궁천의 예상이 틀림없다면 가장 성질이 급한 이살이 나설 터.
아니나 다를까, 이살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선다.
건들건들.
허점투성이처럼 보이지만 섣불리 치고 들어갔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고 했다.
일단은 참는다.
“애송아, 너를 여기까지 보낸 맹을 원망하거라!”
타닷!
순간 이살이 번개처럼 몸을 날려왔다.
‘확실히 빨라!’
하지만…… 남궁천 만큼은 아니다!
이살의 신형이 갈지자로 흩어지면서 파고든다.
어디로 공격이 들어올지 알 수가 없다.
“이살은 왼손잡이야. 네가 그 녀석들의 정체를 모르는 척하면, 분명 우측에서 파고들겠지. 그 녀석 성격이 제일 급하니까.”
‘우측!’
쉬파앗!
역시나 남궁천이 말한 대로 이살의 칼자루가 오른쪽에서 옆구리를 향해 날아든다.
만약 미리 예측하지 않았다면 자칫 부상을 입을 수도 있을 만큼 빠른 속도다.
남궁천이 예측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니, 마치 옆에서 조언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우측에서 공격이 들어오면, 녀석은 필시 오른발에 공력을 더 많이 실었을 거다.”
확실히 오른발을 디딘 바닥이 더 깊이 파였다.
“뒈져라앗! 애송아!”
쉬이이이익!
이살이 왼손에 들린 검을 횡으로 그으며 내질렀다.
역시나 예측대로!
“특히 이살은 무공 특성상 수양명대장경을 따라 운기하게 되는데, 이때 거궐혈과 견우혈에 공력이 집중되는 특성이 있어. 그 바람에 반대쪽 어깨가 많이 열리지. 흥분할수록 더욱.”
유현은 남궁천의 말을 떠올리면서 몸을 낮게 숙이고는 이살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땐 쫄지 말고 녀석의 겨드랑이 쪽으로 파고들어. 몸을 낮게 숙이고. 그런 다음엔 곧바로 검을 수직으로 쳐올린다.”
파바밧!
슈카아악!
생각은 길었으나 일련의 과정은 무척이나 신속하게 이어졌다.
섬뜩한 파육음과 동시에 칼을 쥔 이살의 왼팔이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어, 어찌 이런……!’
이살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한낱 생도를 상대로 단 일격에 당하다니!
핏방울이 흩뿌려지고 이살이 비틀거리며 쓰러진다.
“끄아아아악!”
뒤늦게 터져 나온 비명.
정말이지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깔끔한 검술!
기본적인 검초는 화산의 무공을 응용했지만, 이 과정은 남궁천의 조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이게…… 되네?’
유현이 다소 얼떨떨하게 서 있는데, 이살의 잘려 나간 어깨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츄아아아아!
“형, 형니이임!”
대경실색한 삼살이 이살에게 달려갔다.
그 역시 방금 일어난 일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
귀주삼살이 누군가?
그래도 강호에서 칼밥 좀 먹은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별호다.
그런데 견습 생도의 일격에 당해?
저 애송이는 마치 이살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상이나 했다는 듯이 움직이지 않았나?
“형님! 형니이임!”
이살을 부축하던 삼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유현을 홱 돌아보았다.
“이노오오오오옴!”
삼살이 사자후를 터뜨리며 몸을 날렸다.
역시 남궁천이 말한 대로 상황이 흘러간다.
“이살이 당하면 삼살은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 거야. 꼴에 우애가 돈독한 편이니까. 문제는 삼살이 이살보다 무공이 더 강하다는 거지. 흥분해서 미쳐 날뛸 때를 공략하지 않으면 좀 까다로워질 수 있어. 그러니 확실히 죽여야 해.”
‘망설임 없이 확실하게!’
마음을 굳힌 유현이 검을 고쳐 쥐었다.
착!
“죽여 버리겠다아앗!”
예상대로 삼살은 극도로 흥분해서는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러왔다.
“삼살은 무공 특성상 흥분했을 때 인당혈이 뜨거워지는 특성이 있어. 한마디로 미쳐 날뛴다는 거야. 머리가 무거워지니 다리는 가볍지. 여기서 가볍다는 건 빠르다는 게 아니라, 중심을 잡기 어렵다는 거야. 그러니 화산의 검초로 하반신을 공략하면 어렵지 않게 빈틈이 생길 거다.”
파바바밧!
유현이 매화검법을 펼치면서 하반신을 집중적으로 노리기 시작했다.
대개 검술을 펼치면 상반신을 노리게 마련인데, 다짜고짜 하반신부터 공격이 들어가니 삼살의 보법이 대번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이 개 같은……!”
‘과연 효과가 있다!’
순간 손발이 어지러워진 삼살이 마지못해 뒤로 물러나려고 할 때였다.
촤아악!
“크윽!”
유현의 검신이 삼살의 허벅지를 베면서 피를 뿌렸다.
털썩!
삼살이 한쪽 무릎을 꿇는 순간, 유현은 돌개바람처럼 회전했다.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남궁천의 조언을 떠올렸다.
“여기서부터 중요해. 잘 들어. 이건 비무가 아니다. 손속에 사정을 두는 순간 끝이야. 살검을 쓰지 않으면 네가 살검에 당한다.”
살검을……!
하나 역시 첫 살인에 대한 일말의 망설임이 있었던 것일까?
정말이지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스스로도 느끼지 못할 만큼.
하나 삼살은 그 빈틈을 놓칠 정도로 허술하지 않았다.
“흐아앗!”
기합성과 함께 삼살이 칼을 횡으로 그어왔다.
촤아아악!
“크읍!”
눈 깜빡할 사이에 옆구리를 베인 유현이 비틀거리며 물러날 때,
“뒈져라! 애송이이잇!”
삼살이 벌떡 일어나면서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내 칼이 유현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그 순간,
“어……?”
삼살의 머리 위로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게 아닌가?
이윽고,
쿠우우우우웅!
삼살을 그대로 깔아뭉개며 떨어진 팽수혁이 대도를 들고는 유현에게 소리친다.
“뭘 멍청하게 서 있어! 뒈지려고 작정했어?”
“아아…… 그게…….”
절체절명의 순간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감도 잠시, 유현은 팽수혁 아래에 깔려 입에 거품을 문 삼살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았다.
꼬록…… 꼬로록……!
삼살의 눈이 천천히 뒤집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