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비켜, 이 새끼들아!
“대주님! 수상했던 녀석을 끌고 왔습니다!”
정검대원 하나가 만신창이가 된 사내를 질질 끌고 왔다.
계두식이 눈살을 찌푸리고 보니, 처음 아이들을 야단치던 그 사내였다.
남궁천이 제일 먼저 의심했던 사내.
그리고 자신을 기습하다가 남궁천에게 손목이 잡혔던 사내.
까득.
어금니를 깨문 계두식이 사내 앞으로 저벅저벅 다가갔다.
“정체가 뭐냐?”
“킬킬. 내가 묻는다고 알려줄 병신으로 보이시나?”
도발적인 태도에 계두식과 정검대원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정말이지 아이들을 야단치던 양민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 아닌가?
정검대원 하나가 목덜미를 내려찍었다.
“묻는 대로 대답 안 해!”
퍽!
“큭!”
사내는 그대로 고꾸라지면서도 예의 그 비릿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어이쿠, 무능한 무림맹이 생사람 잡는다!”
“닥쳐라!”
“사람 살려! 사람…….”
사내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데, 문득 차분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무림공적 제백십팔호, 위소공(僞笑公). 주로 남을 속여서 등처먹는 짓을 일삼고 살인, 강간도 서슴지 않는 악질 중의 악질이죠.”
어느새 다가온 비량이 사내의 정체를 줄줄 읊자, 위소공이라 불린 자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계두식이 위소공 뒤에 선 두 아이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럼 저 꼬마들은?”
“아마 위소공이 노예처럼 부리는 아이들일 겁니다. 어디선가 납치당했겠죠. 주기적으로 약도 먹이고 끊임없이 세뇌를 시켜서 위소공을 따르는 걸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호송 대열에 뛰어들었던 그 두 아이는 어딘지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해 보였다.
‘이제 보니 아주 악질 쓰레기였군!’
계두식이 어금니를 빠득 갈았다.
“비량 교관께서도 바로 알아보셨소?”
“아뇨. 미처 몰라봤습니다. 나중에서야 눈치챈 거죠.”
“한데도 남궁천이 먼저 알아본 거요?”
도대체 남궁천이 어찌 이자의 정체를 안 것일까?
계두식이 위소공에게 저벅저벅 다가가서는 다짜고짜 뺨을 올려붙였다.
철썩!
“네놈 혼자 저지른 짓은 아닐 테고. 소속이 어디냐?”
“크크큭. 크하하하!”
위소공이 돌연 앙천광소를 터뜨리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계두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 소속? 크큭. 중원 전체에 널린 흑도다.”
“…….”
“어이, 무림맹의 높으신 나리들. 도절귀를 원하는 인간이 한둘일 것 같아? 전 중원의 흑도인이라면 누구나 도절귀를 노릴걸?”
“그럼 도절귀만 노리면 되지 생도들은 왜 끌고 간 것이냐?”
“응? 그건 또 뭔 소리야?”
도절귀가 미간을 푹 찡그리며 되묻는다.
표정을 보니 정말 모르는 눈치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다.
“네놈들이 생도들까지 납치한 걸 모를 줄 아나?”
“흥, 뭔 개 같은 소리야? 그보다 내 뒤통수 후려갈긴 그 생도 놈은 뭐냐? 생도 주제에 내 정체를 어떻게 안 거지?”
계두식이 흠칫거렸다.
‘이놈도 남궁천을 모른다고? 한데 남궁천은 이놈을 바로 알아봤고.’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계두식이 조금 복잡해진 표정으로 비량과 시선을 교환했다. 비량으로서도 아는 게 없다는 눈치.
위소공이 입매를 비틀었다.
“어쨌든 도절귀는 이제 못 찾는다고 생각해라. 너희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절대 도절귀를 찾지 못……!”
퍼억!
위소공의 안면에 주먹을 냅다 꽂은 계두식이 손을 털며 지시했다.
“이 녀석 끌고 가서 가둬.”
정검대원들이 다가와 기절한 위소공을 질질 끌고 갔다.
계두식이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만약 생도들이 납치당한 게 아니라면 설마…….”
“너무 염려 마세요. 생각보다 강한 녀석들이니까요.”
옆에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는 비량.
계두식이 다소 어이없는 표정으로 비량을 보았다.
‘도대체 이 인간은 생도들이 사라졌는데도 뭘 믿고 이렇게 천하태평인 거야?’
* * *
팟! 타앗!
발끝이 나뭇가지를 찰 때마다 화살이 쏘아지듯 쭉쭉 날아간다.
주변으로 수풀과 나뭇가지들이 정신없이 스쳐 지나간다.
맞바람을 맞으면서 윤종승이 팽수혁을 향해 물었다.
“헉, 헉! 우리 정말 이래도 돼?”
“쫄리면 뒈지시던가.”
옆에서 나란히 달리던 팽수혁이 차갑게 대꾸하자, 윤종승이 괜히 주눅 든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니, 뒈지긴 싫고. 그냥 돌아가고 싶은데…….”
“그럼 돌아가라. 너보고 따라오란 소리 아무도 안 했으니까.”
“그럼 넌 왜 가는데?”
“저 녀석들이 가니까.”
팽수혁이 턱짓으로 조금 더 앞서 달리는 남궁천과 유현을 가리켰다.
대략 일각 전.
연막탄이 터진 후 부상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 생도들은 주변을 경계하면서 긴장을 놓지 않고 있었다.
한데 갑자기 남궁천이 냅다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를 쫓은 것이 유현이었고, 두 사람을 보고 달린 게 팽수혁이었다.
혼자 남은 윤종승은 괜히 무서워서 따라왔는데…….
‘더 무섭고 지랄…….’
하나 너무 멀리 와서 돌아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게다가 다들 뭐가 이렇게 빠른지.
윤종승이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남궁천과 유현 곁으로 따라붙었다.
“헉, 헉……! 도대체 어쩌자고 이러는 거야?”
“어쩌긴. 잡아야지.”
남궁천의 대답에 뒤로 따라붙은 팽수혁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묻는다.
“뭘?”
“탈주한 죄수 놈.”
순간 팽수혁과 윤종승이 화들짝 놀라면서 서로를 돌아보았다.
팽수혁이 목소리를 높였다.
“죄수가 탈주했어?”
그러자 이번엔 유현이 오히려 놀라서 되물었다.
“어…… 그럼 두 분은 그걸 모른 채로 오신 건가요?”
뭐야? 이 녀석도 알고 있었던 거야?
내심 뜨끔한 팽수혁이 느닷없이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무, 무슨 농담을! 당연히 알고 있었지! 다만 남궁천도 알고 있는 줄은 몰랐단 거지.”
“잠깐만! 그럼 우리 지금 죄수와 공범자들을 쫓고 있는 거야?”
윤종승이 잔뜩 겁에 질려서 묻자,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맙소사. 우리끼리? 다른 대원들은?”
“아마 격렬하게 싸우는 중이라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겁니다. 그나마 우린 전투에서 조금 빠져 있었으니 눈치챌 수 있었죠.”
“헉, 헉…… 그런데 속도를 조금만 늦추면…….”
“안 됩니다. 그럼 놓칩니다.”
말을 마친 유현이 더욱 세차게 바닥을 차며 앞으로 날아갔다.
윤종승은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토해내며 모든 힘을 쥐어짰다.
그래도 남궁천과 유현을 쫓아가기에는 역부족.
조금씩 뒤처지던 윤종승은 어느새 저만치 앞서 달려가는 생도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어야 했다.
‘제길…… 도대체 저 괴물들은 왜 저렇게 빨라? 팽수혁은 원래 이렇게 빠르지 않았잖아!’
한번 뒤처지기 시작하니 거리는 점점 벌어진다.
한편 세 번째로 달려가던 팽수혁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남궁천의 조언 덕분에 경공술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긴 했지만, 아직 남궁천과 유현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뒤를 힐끔 돌아보니 윤종승은 거의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다.
‘젠장! 저놈들 금혈서라도 잡아 처먹었나? 왜 이렇게 빨라!’
아, 남궁천은 정말로 금혈서를 잡아먹었지. 젠장, 좋은 건 혼자 다 처먹고.
악으로 버텼지만 이젠 정말 무리다.
결국 팽수혁이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헉, 헉……! 너희들은 먼저 가 있어라! 내가 저 느려터진 윤종승 데리고 가마! 헉, 헉…… 절대로 내가 힘들거나 경공이 느려서 그런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알았냐? 이 새끼들아, 왜 대답을 안 해!”
그제야 유현이 힐끔 돌아보며 빙그레 웃는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칫!”
어딘지 떨떠름한 기분이 든 팽수혁이 혀를 차고는 서서히 달리기를 멈췄다.
이내 두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그대로 대자로 넘어가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헉…… 괴물 같은 새끼들! 지독한 새끼들!”
* * *
일단의 무리가 숲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내달렸다.
한데 이들의 구성이 어딘지 묘하다.
만약 강호에 몸을 담고 있는 자라면 필시 이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으리라.
우선 검은 무복을 갖춰 입은 삼십여 명의 무리는 적상방의 흑혈대였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나란히 달리는 자들은 귀주삼살(貴州三殺)이라 불리는 세 명의 흑도인과 거신쌍도(巨身雙刀)로 불리는 쌍둥이 무인이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귀주삼살과 거신쌍도는 다른 흑도인들과 거의 왕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데도 이들이 함께 나란히 달리고 있으니, 확실히 기이한 광경이었다.
흑혈대주 조위가 옆에서 도절귀를 업고 달리던 부대주에게 소리쳤다.
“도절귀를 내게 넘겨라.”
조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부대주가 축 늘어진 도절귀를 던져주었다.
파밧!
얼른 손을 뻗은 조위가 도절귀를 옆구리에 낀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옆에서 바짝 따라붙어서 달리던 거신쌍도 중 거신일도가 뒤를 힐끔 돌아보고는 미간을 찡그렸다.
“흐음. 뭐지? 아직도 두 놈 정도가 붙어 있는데?”
“붙어 있을 뿐만 아니라 거리도 점점 좁혀지고 있어.”
귀주삼살 중 맏형인 귀주일살이 대꾸했다.
확실히 등 뒤에서 추격해오는 적의 기척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조위가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선배들께서 그 둘을 좀 막아주시지요.”
“지랄하지 마라. 누구 좋으라고? 우리가 재주를 부리는 동안 맛있는 건 네놈들끼리 처먹으려는 걸 모를 줄 아느냐?”
귀주일살이 퉁명스레 대꾸하자, 조위가 이맛살을 구기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 애들도 같이 남기겠소. 다섯 분 중 두 분은 절 따라오시고, 세 분이 남으시면 되지 않겠소?”
그러자 귀주삼살과 거신쌍도가 저희들끼리 힐끔거리면서 의견을 교환했다.
곧 귀주일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꼬리 끌면서 다닐 순 없겠지. 좋다. 내가 따라붙을 테니, 이살과 삼살은 저놈들을 막아라.”
“알겠습니다, 형님.”
거신쌍도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내가 대주를 따라갈 테니, 네가 남아서 처리해라.”
“예, 형님!”
촤아아아악!
그렇게 거신이도와 이살, 삼살이 멈춰 서자, 함께 달리던 흑혈대원들도 모두 경공을 거두고 돌아섰다.
촤촤아아악!
한 무리의 무인들이 동시에 멈춰 서자 뿌연 먼지가 풀썩 일어났다.
이살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럼 어디 한 번 놀아볼까?”
“지금까지 따라붙었다면 제법 고수겠죠? 형님?”
삼살이 히죽 웃으며 칼을 뽑아 든다.
흑혈대 부대주 역시 시커먼 묵검을 뽑아 들고는 소리쳤다.
“흑사진법을 펼쳐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추격자는 막아야 한다!”
“복명!”
대답과 동시에 흑혈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순식간에 진법을 갖춘 흑혈대원들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투기가 우러나왔다.
“호오, 제법. 저 정도면 우리가 나설 일도 없겠는데?”
“그러게 말이오.”
이살의 감탄에 거신이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방심은 금물.
기습을 펼친 마을에서 꽤 떨어진 곳까지 쫓아온 무림맹원이다.
아마 정검대주나 그에 준하는 실력을 가진 자들일 터.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거리를 좁혀왔으니 상당한 고수이리라.
“준비!”
처처처척!
부대주의 명령에 흑혈대원들이 일제히 검을 고쳐 쥐며 공격 태세를 갖춘다.
그런데…….
“응? 저건 뭐야?”
“새파란 애송이 아냐?”
이살과 삼살이 눈살을 잔뜩 구기고는 중얼거렸다.
부대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했다.
“본 방의 조사에 의하면 이번 정검대 호송에는 견습 생도가 참여했다고 들었소.”
“그럼 지금껏 우리를 쫓아온 놈들이 생도였다고?”
“킬킬. 형님, 무림맹도 이제 갈 때까지 간 모양입니다. 하다 하다 이젠 애새끼들을 사지로 몰아넣다니. 어쩔까요?”
“어쩌긴 뭘 어째. 가지런히 썰어서 맹으로 돌려보내 줘야지.”
“킬킬. 최고의 선물이 되겠네요.”
삼살이 비린 웃음을 흘리면서 혀로 칼자루를 핥았다.
부대주가 흑혈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온다! 선두에 온 놈부터 확실히 조진다!”
“옛!”
우렁찬 대답이 터져 나온다.
그런데…… 어째 좀 빠른데?
확실히 달려오는 생도의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마침내 지척에 다다른 남궁천.
다다다다다다닷!
먼지를 이끌며 바람처럼 내달리는 남궁천이 사자후로 외쳤다.
“비켜, 이 새끼들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