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비켜, 이 새끼들아!

우두둑!

“끄아아악!”

남궁천이 손목을 부러뜨렸는지,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찰나!

쒸에에에엑! 푹!

“커억!”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 한 대가 정검대원의 목에 틀어박혔다.

동시에 사방에서 암기와 화살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쒸이익! 쒜에엑! 쒜쒜에엑!

“기습이닷!”

쉭쉭쉭! 쒸에엑!

“헛! 막, 막앗!”

따당! 티티팅!

푹! 푸푹!

“크악!”

“아악!”

곳곳에서 비명과 고함이 터져 나온다.

“꺄아아악!”

“우왁! 피, 피햇!”

저잣거리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허둥지둥 자리를 피하려던 양민들이 서로 뒤엉키면서 마구 넘어졌다.

“으악! 비, 비켯!”

“윽, 밟지 마! 사람이 넘어졌단 말이야!”

푸푸푹!

“커억!”

“억!”

날아드는 화살, 튕겨 나간 암기 등이 양민들에게도 쏟아지자 사상자가 속수무책으로 발생했다.

“젠장! 다들 침착해라!”

계두식이 이를 빠득 갈고는 날아드는 화살과 암기를 마구 쳐냈다.

바로 옆에 있던 정검대원은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 기습이라니!’

지난 수년간 정검대가 호송하던 중 기습이 일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비했기 때문이다. 정검대가 병풍이라는 말을 듣는 이면에는 그러한 철저함이 뒷받침되어 있었다.

한데 이번엔 소수의 정검대원들로 급하게 파견된 임무.

그렇다 해도 정말 기습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건만.

사고가 굳어버리니 모든 광경이 느릿하게 펼쳐진다.

서로 부딪치거나 다리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 쓰러진 부모 앞에서 울어대는 아이, 화살이 박힌 채 피를 흘리며 다리를 저는 양민, 머리가 깨져 비틀거리는 여인.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그때 바로 옆에서 웅크리고 있는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뭐지?’

남자의 품에 뭔가가 있는 건지 가슴께가 불룩하다.

‘폭약?’

순간 정검대원은 훈련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남자에게 달려가 냅다 검을 휘둘렀다.

“노오오오옴!”

“헉, 으아아악!”

정검대원을 본 남자가 기겁을 하면서 물러나다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우왁! 살, 살려줘!”

정검대원의 검이 남자의 목을 치려는 순간!

까아아앙!

금속성과 함께 정검대원의 검신이 튕겨 나갔다.

“뭐, 뭐얏!”

정검대원이 미간을 팍 구기며 돌아서자, 뜻밖에도 남궁천이 서 있는 게 아닌가?

“너, 네가 왜……?”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남궁천이 버럭 소리쳤다.

정검대원이 이맛살을 팍 구겼다.

“이 새끼가 지금 누가 할 소리를! 저놈은 폭약을 품고……!”

삿대질하며 소리치던 정검대원이 흠칫거렸다.

‘아…… 아기?’

사내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은 폭약이 아닌 갓난아기.

그제야 아기의 울음소리가 주변 소음을 비집고 정검대원의 귀에 틀어박힌다.

“응애! 응애애!”

남궁천이 정검대원의 가슴팍을 거칠게 떠밀며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이 정도 기습에 허둥댈 거면 그냥 병풍처럼 서 있기나 하든지.”

“……!”

정검대원이 뭐라 대꾸도 하지 못하는 사이 남궁천이 날아드는 화살을 다시 쳐냈다.

쒸에에엑! 티잉!

“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궁천 덕분에 목숨을 건진 양민이 아기를 품은 채로 어디론가 달려갔다.

한편 기습 공격으로 주변이 아수라장이 되자, 계두식은 수레 위로 새처럼 날아올랐다.

파바바밧! 탁!

“정검대! 육각방진(六角方陣)을 펼쳐라! 무고한 양민을 해치지 않도록 주의해라!”

“존명!”

지시가 내려지자 정검대원들이 빠르게 대열을 정비하기 시작한다.

수레는 완전히 저잣거리 한복판에 멈춘 상태.

과연 대주가 직접 나서서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자, 당황하던 정검대원들도 신속하게 방진을 구축했다.

윤종승은 그 광경을 보면서 어금니를 부서지도록 깨물었다.

‘이, 이게 실전……!’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어디서 날아든 것인지도 모를 화살과 암기 때문에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간다.

그 와중에도 정검대원들은 명령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인다.

비무와는 차원이 다르다.

생사의 경계에 선 기분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인가?

전신이 떨린다.

어금니를 꽉 깨물지 않으면 이가 딱딱 부딪쳐 소리가 날 것만 같다.

그때 양민들 사이에서 누군가 윤종승에게로 달려왔다.

“어……?”

저 사람은 왜 이쪽으로 달려오지? 뭔가 화난 표정인데?

순간 사내가 품에서 반짝이는 뭔가를 꺼낸다.

‘단도……?’

다음 순간 남자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단도가 목전으로 날아들었다.

“비켜랏!”

“허억!”

뒤늦게 정신을 차린 윤종승이 팔을 들어 올리며 엉겁결에 물러났다.

창졸지간,

슈컥!

츄아아악!

한 줄기 빛이 눈앞을 스치고, 뜨끈한 피가 얼굴을 확 덮친다.

잘린 목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어낸 상대가 그대로 목석처럼 쓰러졌다.

쿠웅!

쓰러진 자 곁에서 비량이 검을 휘둘러 묻은 피를 털어냈다.

“종승아, 정신 차려야지?”

비량이 미소 지으며 말하고는 생도들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정검대가 육각방진을 펼치는 동안 우리는 부상자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자. 유현, 종승.”

“옛!”

“예? 옛!”

“부상 당한 정검대원들을 옮기도록.”

“알겠습니다!”

“옛!”

“수혁과 천은 나와 함께 엄호한다.”

“알겠습니다!”

팽수혁이 우렁차게 대답한 것과 동시에 날아드는 화살을 얼른 쳐냈다.

팅! 슈칵!

남궁천도 얼른 나서며 날아드는 암기 서너 개를 쳐냈다.

따다다앙!

그때였다.

툭, 투두둑!

푸쉬이이! 푸쉬이이익!

자욱한 연기를 내뿜는 연막탄 수십 개가 수레 주변으로 쏟아져 내리는 게 아닌가?

“제길! 안 그래도 적아 구분이 안 되는데……! 골치 아프게 됐네!”

팽수혁이 투덜거리자, 비량이 외쳤다.

“양민이 다칠 수 있으니 섣불리 공격하지 말고 덤벼드는 적들만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이래서 시가전이 어렵다.

남궁천이 시가전을 조심해야 한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목적을 가진 흑도인들은 대개 양민이 다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다.

어차피 그들은 양민들로부터 지켜야 할 명분 따위가 없으니.

하나 무림맹은 다르다.

명분에 살고, 명분에 죽는 정도가 아니던가?

그들의 목적이 아무리 숭고해도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다면 무림맹은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때문에 이런 시가전에서는 무림맹 쪽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이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중 누가 진짜 적인지 가려야 하기에.

마침 뿌연 연막을 뚫으며 사내 하나가 남궁천을 향해 날아든다.

‘우측!’

상대의 공력 흐름을 간파한 남궁천이 재빨리 방향을 틀면서 검을 내질렀다.

상대는 남궁천의 기민한 움직임에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그로서는 남궁천이 마치 자신의 움직임을 미리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어느 정도는 그게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그는 이제 놀랄 수도 없었다.

슈컥!

남궁천의 군더더기 없는 검식이 그의 목을 일격에 날렸기에.

툭, 데굴데굴.

츄아아아!

목을 잃은 사내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 후로도 남궁천은 정체불명의 적들이 병장기를 들고 나타나면 가차 없이 베어 버렸다.

만약 누구라도 그 모습을 보았더라면 왠지 모를 서늘한 기분을 느꼈겠지만, 지금은 온통 뿌연 연기로 휩싸여 있었기에 남궁천의 활약을 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한편 정검대를 지휘하는 계두식은 연무에 휩싸인 채 소리쳤다.

“생도! 생도들을 보호해라!”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놈들일지라도 견습 생도가 죽으면 대주로서 그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

한데 잠시 후 들려온 목소리에 그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생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뭐?

제길, 벌써 죽은 건가?

생도들이 비량의 지시에 따라 부상자들을 보호하는 걸 모르는 계두식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보모역할은 딱 질색인데!’

슈칵! 촤아악!

연무를 뚫고 불쑥 튀어나온 적을 일격에 베어낸 계두식이 내심 혀를 찼다.

‘제길! 도대체 몇 놈이나 달려드는 건지!’

뚜카앙! 촤아악!

막고, 베고.

베고, 베어도 끝이 없다.

마치 주변의 양민들이 전부 기습에 가담한 것 같은 착각마저 일어날 정도.

도절귀가 이렇게까지 흑도인들의 비호를 받고 있을 줄이야.

그저 칼 좀 쓰는 좀도둑 정도로 여겼건만.

쉬이잇!

그 순간 다시 안개를 뚫으며 날아드는 검!

‘어딜!’

계두식이 재빨리 보법을 밟아 피하고는 그대로 검을 올려 쳤다.

따앙!

몸을 회전하면서 검을 횡으로 베자 파육음과 함께 피가 흩뿌려진다.

촤아아악!

“끄으윽!”

신음에 이어 털썩 쓰러지는 소리.

그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

“……!”

계두식이 휙 돌아서는데 칼 한 자루가 빛을 받아 번뜩이며 머리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젠장!’

낭패감이 서린 그 순간!

빛줄기가 스쳐 지나가더니, 떨어져 내리던 칼이 팔과 함께 통째로 날아가는 게 아닌가?

촤아아아악!

“끄아아아악!”

팔을 잃은 녀석이 허우적거리며 연기 너머로 사라졌다.

꿀꺽!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목숨을 건진 계두식이 마른침을 삼켰다.

연기 너머에서 나타난 자는 다름 아닌 비량.

“크흠. 고맙소.”

“별말씀을.”

비량이 해맑게 웃으며 대답한다.

“생도들은? 생도들이 보이지 않소!”

“생도들은 부상자들을 안전한 곳에 대피시키고, 지키는 중입니다.”

“아…… 도움을 받았군.”

“응당 견습생들이 할 일이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연막탄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도 조금씩 줄어들더니 이젠 이따금씩 끙끙 앓는 소리만 들려왔다.

비량이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한숨 돌렸네요.”

“아직 방심하긴 이르오. 놈들이 언제 또 기습을…….”

그때 수레 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앗! 대주님!”

“무슨 일이냐?”

계두식이 몸을 홱 돌리고는 달려가니 옅어져 가는 연막 너머로 수레의 창살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던 계두식이 눈을 크게 부릅떴다.

“이런 젠장!”

찢어진 천과 활짝 열린 창살. 그 안에 들어 있어야 할 죄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거야!”

“그, 그것이 저희들이 확인했을 때부터 이미 이런 상태였던지라…….”

“이 멍청한!”

계두식이 버럭 화를 내다가 이내 마음을 다스리고는 명령을 내렸다.

“주변을 샅샅이 살펴라! 흔적이 보이면 곧장 추격하고!”

“존명!”

대답과 동시에 정검대원들이 흩어졌다.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또 벌어졌다.

“엇! 대주님! 여, 여기도 없습니다!”

“제길, 뭐가 또 없어졌다는 거야?”

계두식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면서 달려가자, 포목점 앞에 부상 당한 정검대원들이 보였다.

마침 그곳을 발견한 대원 하나가 달려왔다.

“대주님, 여기도 생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뭐? 어떻게 된 거야?”

“그게…… 부상자들도 연막탄 때문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기랄!”

계두식이 휙 돌아서서는 비량을 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음…… 글쎄요. 분명히 제가 자리를 뜨기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어디로 갔을까요?”

아니,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이 사람아!

정말이지 천불이 나서 죽을 지경이다.

‘조금이나마 의지를 했던 내가 병신이지!’